다시 읽고 새로 쓰는 장흥(3) - 원표(元表), 장흥 역사 최초의 위인(偉人)이었다(2)
다시 읽고 새로 쓰는 장흥(3) - 원표(元表), 장흥 역사 최초의 위인(偉人)이었다(2)
  • 장흥투데이
  • 승인 2023.01.18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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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영덕 불교계, “원표는 천관보살 전파한 지제산의 개산조”

나라연굴 ‘나라암비기’ “원표는 나라암 창건 개산저”로 명기
김선욱 / 시인. 본지 편집인

 

 

 

 

 

 

 

 

 

▲천관보살상은 명·영락 연간에 왕실에서 주조했을 때 천 개의 철상이 있었는데, 오월왕이 절을 파괴한 후 동상이 없어졌다. 현존하는 천존은 명 성조의 인효황후가 하사한 것으로 오랜 세월 침식과 ‘문화대혁명’의 난으로 몇십구가 파괴되어 현재 남아 있는 것은 947건에 불과하다.
▲지제산 화엄사에 안치된 천관보살상
▲지제산화엄사에 안치된 천관보살상

 

 

 

 

 

 

 

 

 

 

 

 

 

 

 

 

지난 호에서는 중국 ‘지제산화엄사’에 적시되어 있는 원표에 대한 내용을 소개하였다. .

그렇다면 중국의 고대 문헌에서 원표는 어떻게 등장하고 있는가. 이를 연대순으로 고찰하면 다음과 같다.

① 승려 호덕 승려(好德)의 〈支提山記〉

이는 원표에 대한 최초의 기록(868)으로 《순희삼산지(淳熙三山志)》에 출전된다. (《淳熙三山志》권37, 寺觀類5 僧寺 寧德縣 支提政和萬壽寺(《欽定四庫全書》484책, p.559). …(이 글은 지난 호 ‘지제산화엄사’ 글에서 소개하여 생략한다.)

② 찬녕의 『송고승전(宋高僧傳)』

두 번째 원표의 기록은 찬녕(贊寧, 919-1001)이 988년에 기록한 『송고승전(宋高僧傳)』이다.

이 기록은 『송고승전』에 기록되어 있다. (《宋高僧傳》권30, 雜科聲德篇 l0-2 唐高麗國元表傳)

북송의 불교 역사학자이자 문인이었던 찬녕은 오월왕 전숙(錢俶)의 측근인 승관(僧官)으로 오월국감단과 양저승통(兩浙僧統)을 지냈다. 후에 송 태종은 찬녕에게 ‘통혜대사(通慧大師)’는 호를 내리고 부승록으로 삼았다. 그는 단공 7년(982)에 항저우로 돌아와 《대송고승전》(송고승전)을 편찬하였고, 단공 원년(988)에 완성했다.(이 글 역시 지난호 ‘지제산 회엄서’에서 소개되어 여기서는 생략한다).

③ 승려 담악, 원표 소개(원표조)

원나라 승려 담악(曇噩, ?-1285)이 쓴 이 글은 『신수과분육학승전』에 실려 있다.(『修科分六學僧傳』(卷第二十八 定學 證悟科 元表條)

당 원표, 고려인. 천보중, 서쪽으로 중국을 여행하고, 또한 왕천축으로 가 성적을 순례하고, 심왕보살을 만나 천관보살이 거처하는 지제산으로 가라는 말을 들었다. 그리하여 화엄경 80권을 받들어 남쪽의 민둥지방 산(지제산)에 거처하였다. 그 산은 일은 맹수·독충·귀매로 가득 차 사람이 살지 못하는 땅이었다. 원표는 그곳에서 살았다. 승려의 몸은 산기슭으로부터 십수 리 밖에 있었다. 또 정신을 놓아버리거나 내버린 듯 번뇌했다. 때는 회창 폐불(會昌廢佛, 841~846)로 불교가 탄압받던 시기였다. 그는 화려목 함에 경(화엄경)을 넣어 석실에 보관하였다. 대중(大中) 초 선사를 알았던 보복사 혜평이 여러 신사들을 인솔하여 그 경을 감로도위원에서 영접하였다. 그 경의 지묵은 새로 쓴 것 같았다.

唐 元表 , 高麗人. 天寶中, 西遊中國, 且將往天竺巡禮聖跡, 遇心王菩薩, 語以支提山, 卽天冠菩薩所住處. 於是頂戴華嚴經八十卷, 南造閩 越而居是山. 異日是山猛獸·毒虫·鬼魅充斥, 非人所居地, 嘗有僧宿, 且見其身乃在山麓十數里外, 蓋神明擲置之也. 屬會昌廢敎, 表以花櫚木, 圅其經, 而藏之石室. 大中初, 保福 慧評禪師知之, 乃率諸信士, 迎出於甘露 都尉院, 其紙墨如新云.

④ 승려 현구(顯求)의 「지제산기(支山山記)」

송나라 현구의 「지제산기(支山山記)」는 원표에 대한 소개의 글로는 가장 긴 문장이다. 이 「지제산기(支山山記)」는 『영덕지제사도지寧德枝提寺圖志』에 수록돼 있다. 『영덕지제사도지』는 청 강희(康熙) 8년(1669년)에 최애(崔嵸)가 편수하여 33년에 간행하였고, 동치(同治 청 황제 목종穆宗 연호) 11년(1872년)에 중판하였다. 여기에 기재된 이 글은 지제산화엄사 홈페이지(‘支提文苑>第六章艺文上’)에 기재되어 있다.

옛날 고려국 법사 원표가 서역으로 가 성적을 침례하고 우연히 심왕보살로부터 지침을 받았다. 지제산 진단국(중국의 별칭)에 유명한 산이 있으니 지제산이다. 그 산에 천관보살이 권속 천 명과 함께 상주하며 법을 설한다. “그대는 이 종려나무 함에 『화엄경』을 가지고 가 천관보살을 기다려라. 보살이 세상으로 나오면 도장을 세우는 증거로 삼을 수 있다”고 했다.

법사는 경전(화엄경)을 나라연굴(那羅延窟)로 가져가 매일 낭송하라는 지시를 받은 것이다. 금광(金光)은 원근 주민들이 그 법사를 ‘기이한 신(異寶)’으로 부른다는 것을 알앗다. 나무꾼이 길을 잃고 바위 아래로 내려오다가 맑은 범음(梵音)을 들었다. 그 법음이 흘러나와 사방으로 퍼졌다.

마침내 법사 원백이 이를 듣고 지팡이를 들고 홀로 나아가 바위 아래로 선사를 직접 찾아갔다.

"성자여, 무슨 경전을 외우세요?"고 물었다. 이에 스승은 "너가 용왕에게 땅과 큰 바위를 빌리면 내가 읽은 화엄경을 너에게 주겠다. " (선사)는 정성을 다하여 성취를 이루었다. 용왕을 감동하는 결과를 얻었다. 모래로 땅을 메웠다. 스승(元表)은 신통력을 발휘하여 하늘로 날아갔다.

원백은 감로사(甘露寺)에서 도위사 승려 혜평(慧平), 혜택(慧澤)을 거느리고 향로를 초청한 가운데 이 경전을 영접하여 민왕(閩王)에게 올렸다(奏). 왕이 다 읽고, 왕이 돈을 보내주었다.

전왕(錢王, 오월국왕 전錢씨) 선(宣)이 영은사(靈隐寺) 선사에게 묻고 선사에게 이르기를, "내가(민왕 閩王) 돌아다니다 제일동천(第一洞天)에 이르렀다. 어른들에게(耆老)에 전하니, 이 산에 보살이 거주하고 있고, 때에 천등(天燈)이 비치고, 아름다운 소리(寶鸣)가 울리는 것을 들었다. 이 땅은 천관보살이 설하는 땅이다”라고 하였다.

왕은 심상국(沈相國)을 보내 선사에게 민(閩) 나라를 찾아와 산 아래 소지에 머물게 했다. 밤에 종과 북소리를 듣고 다음날 울리는 곳을 찾아 길을 헤치고 나아갔다. 산 중턱에 이르자 갑자기 흰 유인원이 길을 안내했고, 3일간 계곡까지 인도한 흰 유인원은 갑자기 보이지 않았지만 큰 절의 전각이 우뚝 솟아 승려들이 만 손가락에 꼽혔다. 밤에 묵으며 함께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늘은 새벽녘에 아득히 자리를 잃었으나, 숲이 우거지고, 하늘 향기가 엄습하는 것을 보니, 옛 부처가 절로 변했다는 것을 알았다. 왕은 상국(沈相國)에게 이 이야기를 들었다. 왕은 상국에게 기이함을 감탄했다. 깨달음을 얻은 사찰을 건립했다. 삼보(三寶)와 천관보살(天冠菩薩)의 천존(千尊), 심왕보살(心王菩薩) 일존(一尊)을 조성하도록 하여 모두가 본성이 되어 불도에 오르게 하였다.

昔高麗國法師元表,雲遊西域,瞻禮聖蹟,偶值心王菩薩指南:“閻浮提東震旦國有山名曰‘支提’,天冠菩薩眷屬千人,常住其中而演說法。汝可負此櫚木函《華嚴經》,往彼持誦,待天冠菩薩出世,出此證明建立道場。”法師承囑,領負此經至那羅延窟,旦夕披誦。金光發現,遠近居民鹹謂異寶。樵夫失道至巖下,忽聽梵音清徹,遂乘流而出,傳佈四方。時有法師元白聞之,遂

攜筇獨進推尋,直詣巖下,頂禮問:“何聖者,誦何經典?”師曰:“吾所誦《華嚴經》也。汝就龍王借一片地以卓庵,吾即付汝。” 白遂陳悃,果感龍王,涌沙填地。師乃現神通騰空而去。元白出甘露寺,邀都尉寺僧慧平、慧澤率鄉老迎請此經,具奏閩王。王閱遍,復進錢王。錢王宣問靈隱寺了悟禪師,師曰:“臣少遊閩,至第一洞天,耆老相傳,山有菩薩居止,時現天燈照耀,寶磬鳴空,知是天冠說法地也。” 錢王於是遣沈相國同了悟禪師來閩尋訪,止於山下小支。夜聞鐘鼓之聲,次日尋響處,伐路而進。行至山半,忽一白猿引道,三日至一溪澗,白猿忽然不見,卻見大寺殿閣崢嶸,衆僧萬指。是夜棲宿共話,天曉茫然失所在,但見林木森森,天香襲襲,乃知古佛化成寺也。相國表聞王,王嘆異。敕了悟相地建剎,裝塑三寶及天冠千尊、心王菩薩一尊,化諸有情同登佛道。

⑤「나라암비기那羅岩碑記」 에 소개된 원표

‘나라암비기’가 세워진 때는 만력 갑진년(32년 1604) 정월이고, 작성자는 시주자인 진도종(陳道宗)이다. 이 비기(碑記)는 순천대학교 박현구 교수의 「복건 나나암비기와 신라승 원표 행적」이란 논문에서 처음으로 밝혀졌다.

민녕 입사도 승량(閩寧 卄四都 勝梁- 오늘날 영덕 蕉城區 虎貝鄕 東源村)에 있다. 지제산을 골간으로 삼고, 동원(東園) 줄기에서 분리되었다. 궁원(窮源)한 곳에 만길이나 되는 절벽이 나 있고, 천 가지나 되는 봉우리에는 한 움집이 있었다. 석실로 되어 있고 동굴이 깊숙하다. 파도치는 맑은 바다에 잠룡이 몸을 감추며 81권 화엄경을 지켰다. 그래서 진여(眞如)의 이치를 깨닫고 용수(龍樹)가 연원에 □□했다. 화엄경을 송독하니 신령(神龍)이 점화하여 서서히 모래를 솟구쳐 기를 모아 만들었다. 선승 員表(元表)가 처음으로 사찰을 세우고 員白(元白)과 함께 공덕을 일으켜 명산 도장을 열어 해국의 좋은 본보기가 되었다. 이를 걸으면 구름 위에 노는 듯하고, 이를 □□하면 신선이 되는 듯하다. 실로 민동(閩東) 제일가는 동천(洞天)이다. 삼교(유교, 불교, 도교를 가르킴)가 끊임없이 왕래하나 한 화상이 지탱한다. 내가 힘든 일을 하고 □□을 건너는 것을 목도하고, 구(九) 무(畝-100보를 1무 함) 음식을 화상이 마련하였다. 화로 연기가 끊어지지 아니하고 높이 받드는 인물이 나오기를 바란다. 이것이 보찰(宝刹)이 천하의 대관임을 저버리지 않는 것이다. 마땅히 돌에 새겨 그 서를 기술한다.

寧德縣 鳳池 경내에 陳道宗이 병신해에 22량 5전으로 後山墽後尾 苗田 貳石과 後藍口 5斗를 구입하여 본 암자의 향불로 주었다. 또 4량 5전을 가지고 비석을 세우고 상을 만들어 자취를 남겼다.

那羅岩, 閩寧卄四都勝梁也. 本支提之幹, 分東園之枝, 窮源万仞, 千岫一窩, 石室洞深, 波澄海, 藏潛龍, 守八十一卷華嚴, 於是圓通降跡, 龍樹□淵, 誦憶華嚴之經, 點化神龍之起, 徐湧沙聚氣顯像. 肇基始禪員表之建, 偕侶員白之功, 開名山道場, 爲海國善覽, 步之若雲遊, □之如羽化, 誠閩東一洞天也. 三敎絡繹, 一僧支持. 予目其負戴□涉, 捐九畝之粮, 敷數僧之膳, 庶爐烟不斷, 崇接有人, 斯不負那羅之 宝刹來天下之大觀也. 宜勒石以紀其序.

寧德縣鳳池境, 陳道宗丙申, 用價貳拾二兩伍錢, 買置後山墽後尾苗田貳石, 後藍

口伍斗, 捨給本岩香燈, 復用四兩伍錢立碑, 塑相遺跡

⑥‘지제산화엄사’, 역대조사 편에 원표 소개

‘지제산 화엄사’의 ‘역대 조사’ 편에 원표대사를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석원표, 고려의 승려, 당무는 당나라 때(685-704) 지제산 나라연굴에 거처하며 아침저녁으로 《화엄경》을 읊었는데, 범음이 맑고 고상하여 멀리까지 전해졌다. 산에 들어가 나무뿌리를 캐는 사람들이 이를 듣고 서로 전파하여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송나라 초 영덕현 보복사 승려 원백(元白)이 이를 알고 나무꾼 안내로 나라연굴에 올라가 원표스승(元表師)에게 경건하게 예배하고 내력을 물었다. 원표 스승(元表師)은 “나는 고려 승려인데 서역을 유학하다 심왕보살을 만나 화엄경(80권본)을 전수받고 지시받았다. 동진단(東震旦)의 땅 동남쪽에 지제(支提)라는 산이 천관보살(天冠菩薩)의 거처이니 찾아가 거처하라고 지시받았다. 여기서 20리 떨어진 '나가룡담(那伽龍潭-나라연굴)이 성적지라고 했다.” 그렇게 말한 후 화려함에 담긴 화엄경을 백사(원백)에게 주며 널리 알려달라고 했다. 백사(白師)는 경을 받은 후 산 밑에 있는 감로사(甘露寺)의 승려 혜평(惠平)·혜택(惠澤)과 향로(鄉老)를 거느리고 감로사에서 공양하였다. 나중에 오월왕 전숙에게 바쳤다. 원표는 경을 원백에게 수수한 후에도 나라연굴에서 거주하며 목식(木食)으로 식사하며 평생토록 《화엄경》을 수련하고 지켰다.(《송고승전》,《지제사지》)

釋元表,高麗僧人,唐武則天當朝時期(685-704)居住支提山那羅延窟,朝夕唪誦《華嚴經》,梵音清雅怡人,傳揚悠遠。入山採樵的人聽到、望到後相互傳佈,使得周圍很多人都知道了這件亊。宋初,寧德縣保福寺僧人元白知道後,在樵夫的引導下,攀登上了那羅延窟,向元表師虔誠禮拜,並詢問來歷。表師告訴說:自己是高麗僧人,因遊學西域,遇見“心王菩薩”, 菩薩傳授給《華嚴經》(八十卷本),並指示,東震旦土東南方有座山名“支提” 是“天冠菩薩” 住處,所以尋訪並居止這裏。並說,距這裏20裏的“那伽龍潭” 就是聖蹟地。說着把華櫚木函盛裝着的《華嚴經》傳授給白師,請他廣爲宣說。白師受經後,與山下甘露寺僧人慧平、慧澤率鄉老迎經供養於甘露寺。後輾轉獻於吳越王錢俶。

元表授經後,還居住在那羅延窟,澗飲木食,持修《華嚴經》,直至終老。

(《宋.高僧傳》、《支提寺志》)

지난호의 지제산화엄사 인터넷 소개 글 그리고 상기 문헌에 나타난 상기의 6개의 기록 외에도 원표 행적을 기록한 문건으로 『(가정)복녕주지(嘉靖)福寧州志』 『(가정)복련현지(嘉靖)寧德縣志)』 , 『(乾隆)寧德縣志』 등이 있지만 거의 개괄적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또한 원표에 대한 소개 내용도 대동소이하다. (한국에서의 원표에 대한 소개는 『보림사사적』 「보조선사 창성탑비명(新羅國武州迦智山寶林諡普照禪師靈塔碑銘」이 있지만, 이 기록은 한국에서의 원표의 활동을 고찰할 때 소개하고자 한다).

원표는 화엄 조동 개선조

복건성(福建省) 영덕시(寧德市) 지제산의 중심 사찰인 ‘지제산 화엄사’- 이 사찰은 원표 스님을 ‘화엄조동 개산조’로 받아들이고 있다.

지제산 화엄사는 원표가 지제산에서 처음으로 화엄경과 천관보살을 유포하였던 때(원표 지제산 거주, 742〜756)로부터, 2세기가 지난 971년(宋開寶 4년)에 ‘지제산 화엄사’기 창건되는데, 창건 때부터 지제산 화엄사는 중국 화엄종의 중심 사찰이었다.

나라사에는 원표 조사(祖師)상이 봉안돼 있다. 나라사는 석굴 안에 이층 건물의 암자가 있으며 관음보살과 문수보살 사이에 개산조인 원표의 석상도 봉안돼 있다고 한다.

“화엄사(華藏寺)는 한족(漢族) 지역 불교의 전국중점사원의 하나로 송개보(宋開寶) 4년(기원후 971년)에 창건되었는데, 당나라 고려 승려 석원표(釋元表)가 이곳에서 《화엄경》을 강송한 데서 연유한다 華嚴寺,也稱華藏寺,爲漢族地區佛教全國重點寺院之一,創建於宋開寶四年(公元971年),緣於唐代高麗僧人釋元表在此講頌《華嚴經》,缘于唐代高丽僧人释元表在此讲颂《《華嚴經》”

이 글은 중국의 인터넷 ‘백도백과(百度百科, baidu 백과)’에서 지제산 화엄사를 소개하는 첫 문장에 나오는 글이다.

“화엄사는…석원표(釋元表)가 이곳에서 《화엄경》을 강송한 데서 연유한다. 缘于唐代高丽僧人释元表在此讲颂 華嚴經”이라는 이 문구는, baidu 백과 외에도 중국의 관영 방송인 CCTV 인터넷 홈페이지에 소개된 지제산 화엄사 소개 글을 비롯해 수많은 인터넷 검색 사이트에서 공통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다음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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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기에 기제된 글은 이 글은 지제산화엄사 홈페이지(‘支提文苑>第六章艺文上’)에 기재되어 있다.     .http://www.zhitishan.org/wenyuan/Show.asp?ArtID=997

2) 박현구 福建 那羅岩碑記와 신라승 元表’ 2012, 신라문화 통권 39pp. 159-182

3) 여기의 員表員白은 각각 元表元白을 지칭한다. ‘자와 자는 동음자이다

4) http://www.zhitishan.org/sense/Show.asp?ArtID=564

5) 지제산 설법대(支提山的说法台)를 가르킨다. 이 설법대는 일명 천관설법대라고도 불리며, 오늘날의 곽동진 동원마을에 위치하고 있으며, 지제사에서 15리 떨어져 있다. "사방은 깎은 듯하고 높이는 수십 길이며, 위는 지극히 평탄하여 천 명이 앉을 수 있다"(청 최애(淸崔嵸) 영덕지제사도지1)는 천관보살의 분신설법(分身說法)으로 전해지는 곳이다. 支提山的说法台说法台又名天冠说法台位于今天的虎贝镇东源村距支提寺十五里四方如削高数十仞上极平坦可坐千人”(清崔嵸宁德支提寺图志卷一)相传是天冠菩萨分身说法之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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