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 탐진강의 본명 ‘예양강’을 찾아주자
사설 - 탐진강의 본명 ‘예양강’을 찾아주자
  • 김선욱
  • 승인 2023.02.01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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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진강은 일본인이 붙여준 별호(別號) … 본명인 ‘예양강’을 장흥인이 되찾아 줘야

강진 사람들은 ‘탐진(耽津)’을 애호한다. 그 말에는 그들의 역사와 전통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강진군의 ‘강진(康津)’도 당초 백제시대의 도무군(道武郡) 지역이던 ‘도강(道康)’과 동음현(冬音縣) 지역이던 ‘탐진’(耽津 - 이 지역은 본래 백제의 동음현冬音縣이었는데 통일신라 757년에 탐진현으로 개칭됐다)이 영합되면서 도강의 ‘강’자와 탐진의 ‘진’자를 합하여 강진이라 호칭되어 왔기 때문에 ‘강진’의 그 의미에는 ‘탐진’도 함께 있는 것이다. ‘강진’을 달리 ‘탐진’으로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탐진’을 고집하는 강진

그런 연유로 그들은 오늘날 자기네 역사인 ‘탐진현’에서 따온 ‘탐진강’의 기원에 대해서는 애써 함구하려고 한다. 장흥 쪽에서 “탐진강은 당초 예양강”이었다면서 탐진강 기원설을 들고 나오면 애써 침묵하고 만다. 그들도 일본인들이 ‘탐진강’으로 고지하기 전 단 한 번도 탐진강으로 불린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지난 2004,5년 장흥군이 ‘탐진다목적댐’을 ‘장흥다목적댐’으로 변경하고자 했을 때 강경하게 반대했던 곳이 강진군이었다.

당시, 탐진댐‧장흥댐 명칭 변경 문제가 언론에 수차 보도되기도 했다. 2004년 12월 30일자 「연합뉴스」는 "댐 명칭 변경 놓고 이웃 지자체 신경전"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장흥군은 댐 수몰면적 310만평(10.27㎢) 가운데 장흥지역이 99%에 달한 만큼 장흥댐으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강진군은 명칭 변경 반대에 강경한 입장이다. 강진군은 ‘탐진’이라는 용어는 특정지역만을 지칭하는 말이 아니며 당초 96년 기본계획 수립 당시부터 이 명칭을 쓴 만큼 고수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강진군 관계자는 ‘명칭변경은 인접 지자체간 갈등과 혼란만을 불러올 것’이라며 ‘하류인 강진지역도 댐건설로 인한 피해를 입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결국 2005년 6월 28일, 한국수자원공사 탐진댐건설단은 “지난해 주민들(장흥군민)의 요구로 건설교통부가 공고했던 탐진다목적댐 기본계획 등 변경안을 확정 고시했다”면서 “‘장흥 탐진댐’이 ‘장흥댐’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밝혔다.

이후 2021년 12월 17일 전남도 지명위원회가 ‘탐진호’를 ‘장흥호’로 변경해야 한다는 장흥군의 요구를 심의 의결, 국가지명위원회 심의와 국토지리정보원 고시 절차를 거쳐 2022년 상반기부터 ‘탐진호’가 ‘장흥호’로 그 명칭이 바뀌었다.

이젠 우리에게는 ‘탐진강’이라는 이 강과 전혀 연고도 없고 역사도 없는 강 이름만 남았다.

탐진강을 강진에선 ‘작천, 구십포‧구강’으로 불렸다

지금의 탐진강에 대해 강진 쪽에서 부르는 ‘작천(鵲川)’이 최초로 구체적으로 기재된 문헌은 『신증동국여지승람(중종2년,1530년)』의 ‘장흥도호부 산천조’에서이다. “작천(鵲川) : 영암군 월출산에서 나와 남쪽으로 흘러 강진현의 북내상(北內廂) 서남쪽을 지나 부(장흥부)의 남쪽 6리에 이르러 수령천(遂寧川)과 합류하여 강진의 구십포(九十浦)로 들어간다.”

여기서 ‘작천(鵲川)’은 현재 강진군 ‘작천면(鵲川面)’이라는 행정지명과 동일명이다. 이 작천면은 1914년에 생겨난 합성지명이다. 그러니까 지금의 작천면은 그 이전의 지금은 ‘금강(錦江)’으로 불리는, 즉 『신중동국여지승람』에서 탐진강의 옛 이름의 하나로 불렸던 그 ‘작천(鵲川)’에서 따온 이름인 것이다. 이처럼 강진에서 불렸던 작천(금강)은 월출산에서 발원하여(월출산 남쪽의 도갑산과 무위산 부근) 옛 도강현 북내상의 서남쪽을 지나(지금의 성전‧작천‧병영면) 장흥에서 흘러온 수령천과 만나 구십포로 들어가는 하천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강진현 쪽에서 탐진강을 당시는 ‘구십포(九十浦)’로, 구십포를 축약해서 ‘구강(九江)’으로 불렸다. 지금의 강진읍 남포리(南浦里)는 본래 구십포(九十浦)라고 부르던 남포(南浦)에서 유래하였다.

이처럼 강진군 쪽에서 탐진강 하류 쪽을 ‘구십포’나 ‘구강’으로, 작천·성전·병영면 쪽에서는 ‘작천’으로 불렸다면 장흥군 쪽에서는 아예 처음부터 ‘예양강’으로 불렸다.

조선조 5세기 동안 지금의 탐진강은 하류인 강진에서보다 장흥에서 더욱 중요시되었던 강이었다. 조선조 초기 장흥부가 관산에서 장흥읍으로 이전되어 오면서 탐진강은 장흥부 치소의 강(당대 강진군은 장흥부과 달리 여러 현으로 나뉘어져 있었다)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최근 강진군 쪽에서 탐진강 기원에 대해 “조선 후기 실학자 유득공(柳得恭,1748년〜1807)이 1778년(정조 2)에 지은 ‘이십일도회고시(二十一都懷古詩)’ 중 ‘탐라(耽羅)’라는 시에서 ‘탐진강’이 나온다”면서 일제가 탐진강으로 지명을 고시하기 전이던 조선조 때부터 불렸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유득공의 ‘18, 탐라(耽羅)’라는 시는 “삼을라가 쌓은 성에 장기 안개가 걷히고 나니 三乙那城瘴霧開 / 탐진 강어귀에 높은 돛대를 단 배가 돌아왔네 耽津江口峭帆廻 / 처음부터 제주목에 오히려 모흥 동굴이 있었더니 厥初還有毛興穴 / 하필이면 다른 사람은 바지가랭이로 나왔는가? 何必他人袴下來”이다. 여기서 “탐진 강어귀(탐진강 강어구)에 높은 돛대를 단 배가 돌아왔네 耽津江口峭帆廻”가 문제의 시구이다. 그런데 여기서 나오는 ‘탐진 강어귀 耽津江口’는 자연지명으로서 ‘탐진강’이 아닌 ‘탐진(현)의 강어귀‘로 해석돼야 합당하다. 유득공이 이 시를 지었을 때 자연지명으로 ‘탐진강’은 없었기 때문이다. 즉 유득공 이전까지 탐진강이라는 자연지명이 어느 문헌이며 사서에도 나온 적이 없었기 때문에 고유명사로서 ‘탐진강’이 아닌 ‘탐진현의 강’이라는 의미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탐진강- 1912년 조선지형도에서 최초 표기

그렇다면, 과연 언제부터 자연지명으로 고유명사인 탐진강이 나오는가. 일제강점기 때 만들어진 『조선지형도』는 2종이 있다. 축척은 모두 1/5만인데, 1909년(明治 42년)에 측도(測圖)하여 1912년(明治 45년)에 제판(製版)한 지도와 1917년(大正 6년)에 측도(測圖)하여 1918년(大正 7년)에 제판(製版)한 지도가 그것이다. 실제로 지금 볼 수 있는 지도는 1912년판 제판 지도와 1918년판 제판 지도라 할 수 있는데, 이 2종의 지도 중 1912년판 강진편에서 ‘탐진강(耽津江)’ 표기가 나온다. 지금까지 확인된 자료로 보면 가장 빠른 시기의 ‘탐진강(耽津江)’ 표기는 1912년 『조선지형도』 지도라 할 수 있다.

또 그동안 통상적으로 일제가 1911년 발간한 『조선지지자료』에서 탐진강이 기재되기 시작했다고 여기기도 했다. 그런데 『조선지지자료』는 1911년 발간본과 1919년 발간본 2종이 있다. 1911년 발간본은 전국의 지명을 정리한 것으로 각 시군별, 면별의 지명이 조사되어 있다. 그런데 1911년 발간된 강진군편·장흥군편 모두에 탐진강은 나오지 않는다. 강진군편에는 그때까지도 ‘구강(九江)’(구십포 준말), 장흥군편에서는 ‘예양강(汭陽江)’의 기록이 보일 뿐이다.

그렇지만 1919년 발간된 『조선지지자료』는 1911년 본과 달리 일종의 지리지이며 통계자료인데, 여기서 비로소 ‘탐진강(耽津江)’이라는 자연지명이요 고유명사인 ‘탐진강(耽津江)’이 나온다. 이 책 하천을 소개하는 항목인 ‘하천명칭유과(유로)지명(下川名稱 流過地名)’이란 항목에서 “탐진강(耽津江) : ▶본원(本源)=장흥, 유치 ▶하구(河口)=강진, 군동 ▶유로연장 길이=4100㎞” 라고 표가 돼 있다. 이후 장흥군에서 펴낸 장흥 향토지인 『장흥지(무인지, 1938년)』에서도 “탐진강은 일명 예양강이라 하고 옛 이름은 수령천이다. 근원은 가지산과 국사봉에서 나오고 감천과 합해지고 바다로 들어간다 耽津江 一名汭陽江 古名 遂寧川 源出迦智山及國師峯 合鑑川 入海)”고 나온다. 그러므로 일제강점기 때인 1930년대부터 비로소 예양강은 탐진강으로 상례화 되기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탐진강은 일본인이 부른 별호, 본명은 예양강

모든 사람이 본명만 있는 게 아니다. 예전에는 문인이나 예술인이 호(號)나 별호(別號)를 짓기도 했으며 최근에도 예능인이 본명 이외 따로 지어 부르는 예명(藝名), 또는 필명(筆名)도 있다.

탐진강은 1912년 일본인이 지어 부른 하나의 별호였다. 그로부터 그 별호가 1세기동안 내내 본명처럼 불리어왔다. 그런데 그 별호 이전 거의 5세기 동안은 본디 이름은 예양강이었다. 5세기 동안 장흥인의 정신과 맥이 함께해 온 강이 예양강이었다. 예양간 외에 수령천(遂寧川)으로, 또는 예강(汭江), 예천(汭川), 눌강(訥江)으로 부기도 했지만 대표적으로 가장 많이 부르는 이름은 예양강이었다. 이 예양강을 일본인들이 탐진강으로 바꾸어버린 것이다.

(당시 일본제국은 장흥부(군)의 세(勢)을 약화시키기에 안간힘을 썼다. 1986년 장흥부 관할이던 완도 동북부 7개 섬을 완도군으로 이관시키고 1914년에는 회령면, 웅치면, 조천면 등 3개면을 보성군에게 이관시켰다. 장흥동학혁명 때 조선군과 일본군을 곤란지경으로 몰아넣었던 장흥부가 그들에게 단단히 미운털이 박혔던 것이다).

이제라도 탐진강의 본명을 되찾아줘야 한다. 굳이 ‘탐진강’이라는 자연 지명의 명칭을 변경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이제라도 장흥군이, 아니 장흥군민들이 탐진강의 본명인 ‘예양강’을 불러주고 더 많이 자주 애용하자는 말이다.

현재 ‘탐진강’이라는 하나의 자연지명인 강을 전적으로 ‘예양강’으로 부르자는 주장도 아니다. 그 탐진강의 본디 명칭이요 본명이 예양강이니 그 본명도 함께 부르자는 것이다. 호(號)도 있고 본명도 있을 때 호도, 이름도 함께 부르듯이 본명인 예양강도 함께 부르자는 것이다. 현대의 장흥 시인들이 쓴 ‘탐진강 시(詩)’는 많지만, ‘예양강 시(詩)’는 별로 없다는 것도 문제다. 장흥의 시인들도 이젠 예양강의 시를 써야 한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지난 2020년 12월, 장흥 출신의 화가들과 장흥군이 공공미술 프로젝트 사업을 추진하며 주제를 ‘예양강을 품다’고 정해, 이와 관련한 기사가 언론에서 많이 회자되며 본(本)이 되었는데, 앞으로 이와 같이 장흥 문화계나 장흥읍 쪽(행정)에서 이와 유사한 사업 추진이나 탐진강 관련의 문화 사업을 추진할 때 탐진강의 본명인 ‘예양강’도 찾아주는 노력을 하자는 것이다.

예양강은 장흥문화의 자존심이다. 이 자존심을 지키는 일의 하나가 바로 예양강의 본명을 찾아주는 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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