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 디지털 대전환의 의미, 기술의 시대에서 콘텐츠의 시대로
특별기고 - 디지털 대전환의 의미, 기술의 시대에서 콘텐츠의 시대로
  • 장흥투데이
  • 승인 2023.02.01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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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인/철학자, 경희대비교문화연구소 교수

동물의 지각이 의미 있으려면 행동과 관련되어야 한다. 할 수 있는 일과 무관한 지각은 무의미하다. 달리 말해, 무언가를 지각했더라도 그런 정보와 관련해서 행동할 수 없다면 그 동물 종은 이미 오래전에 멸종했을 것이다. 포식자나 먹이를 지각했지만 도망가거나 섭취하지 못한다면, 그 지각은 생존 수준에서 아무 의미가 없다. 인간의 경험을 동물 수준에서 평가해 보는 것은 이런 점에서 의미 있다.

몸은 이동하고 있거나 정지해 있다. 즉, 이동하는 몸(mobile body) 혹은 부동의 몸(immobile body)이다. 부동의 몸은 동물적 관점에서 보면 취약한 몸이다. 두 형태의 몸은 경험도 다르다.

경험이 일어나는 방식은 크게 셋이다. 첫째로 작용형(active) 경험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뼈와 근육을 움직여 힘을 가하는 작용이다. 물리적 장소에서 벌어지며, 몸 곁에 있는 대상의 존재 혹은 몸을 둘러싼 환경을 전제한다. 이 경험에서는 ‘접촉’ 혹은 ‘직접성’이 중요하다. 도구나 연장을 쓰는 행동도 여기 포함된다(가령 망치로 못 박기). 오프라인에서 일어나는 경험이 대부분 여기에 해당한다.

둘째로 수용형(receptive) 경험이다. 음악 감상이나 TV 시청은 우리에게 일방적으로 들어온다. 우리가 경험에 영향을 끼치는 건 매우 어렵다. 콘텐츠 감상은 대부분 여기에 해당한다.

셋째로 원거리 작용은 어떨까? 가령 집안에서 버튼을 눌러 바깥 현관문을 열거나, 스크린과 스피커에 둘러싸여 마우스와 키보드를 움직이며 통해 게임을 하거나. 이런 경험은 얼마간 작용적이다. 하지만 노출된 몸 혹은 이동하는 몸이 없어도 되기에 순수한 작용형 경험과는 확연히 구별된다. 원격형(distant) 경험이라고 부를 수 있다. 디지털 매개 경험은 대부분 수용형과 원격형이다.

몸을 중심으로 보면 경험은 다른 식으로 구분된다. 작용형 경험은 이동하는 몸의 경험이다. 손수 움직여야 경험이 성사된다. 수용형과 원격형 경험은 부동의 몸도 경험할 수 있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경험할 수 있다. 이동하는 몸은 모빌리티(mobility) 장비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걷거나 뛰는 정도를 넘어서게 되면 몸은 자전거든 자동차든 비행기든 뭔가 모빌리티 장비와 결합해야 한다. 한편 부동의 몸은 대개 인터넷과 컴퓨터를 통해 경험한다. 모빌리티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런데 지하철에 탑승한 경우라면? 몸은 이동하고 있더라도, 경험하는 몸은 부동의 몸이다. 이때 중요한 역할을 하는 건 이동 통신, 즉 모바일(mobile)이다.

디지털 초연결 사회에서 온라인 경험은 몰입(immersion)을 강화한다. 사이트와 사이트, 페이지와 페이지, 앱과 앱을 오가기 때문에 몰입보다 분산이 일어난다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그런 잦은 이동은 ‘지금 그곳’에 대한 흥미와 재미가 떨어졌다는 증표다. 지루함을 참을 수 없다는 것이 온라인 경험의 중심에 있다.

온라인 경험은 인간의 행동 양식을 바꾸게 된다. 인간은 더 자극적인 경험을 원하게 된다. 초연결 사회에서 인류는 몰입과 흥미, 지루함과 벗어남, 다시 몰입과 흥미를 추구하는 존재로 거듭난다. 초연결 기술로 인해 생긴 인류의 진화다. 지금 인류는 속도감을 즐기는 종(種)이다.

근대 이래로 인류가 속도를 추구했던 건 사실이다. 그러나 더 이상 빨라질 수 없는 국면에 다다르자, 인류는 속도 대신 속도감에 빠져들었다. 속도감은 속도의 변화, 즉 가속도다. 속도감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요인은 무엇일까? 바로 콘텐츠다. 속도는 기술의 문제지만, 속도감은 콘텐츠의 몫이다. 디지털 대전환기, 기술의 시대에서 콘텐츠의 시대로 전환되었다는 말의 진짜 의미가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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