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 제대로 된 ‘장흥댐 백서’ 다시 출간돼야 한다
사설 - 제대로 된 ‘장흥댐 백서’ 다시 출간돼야 한다
  • 김선욱
  • 승인 2023.02.08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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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댐이 남긴 과제①

국책 사업인 장흥댐 건설은 장흥군에는 적지 않은 피해를 주는 국책사업이었다.

댐이 건설됨으로써 첫째, 탐진강 강물이 고작 하천 유지수만 흐르게 되어 어종 감소 등 강의 생태계 변화와 오염도 가중 둘째, 수많은 문화재를 보유한 보림사가 담수 유역에서 불과 100m 거리에 위치, 목조 및 석조 문화재의 부식 등 훼손의 가중 셋째, 안개 등 습도가 높아지는 등 기후 변화로 인한 피해 가중, 농작물의 직간접적인 피해 넷째, 농경지 533ha, 임야 210ha 등 총 1,027ha의 군 과세 물건 수장과 633가구 1,847명 수몰민을 야기하고 이들 대부분이 타 지역으로 이주하게 되면서 지방세 지방 교부세 재원의 감소로 인한 군세 약화 등 여러 면에서 손해가 예상되었고, 이와 같은 우려는 현실이 되고 말았다.

특히 당초에는 예상되지 못한 부문으로, 유치면의 상당 부분이 장흥댐 수변 지역으로 지정, 지역 개발에 제한을 받지 않을 수 없어, 유치면으로서도 그만큼의 피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수변 구역으로 지정될 경우 공장 폐수 배출 시설, 축사·축산 폐수 배출 시설, 숙박 시설, 음식점, 목욕탕, 공동 주택의 신축이 금지되는 등 행위 제한이 따르고 수변 구역 내 기존 음식점, 숙박 시설 등의 경우 수변 구역 지정 후 3년이 경과한 날부터는 오수 처리 기준이 2배(현행 BOD, SS : 20㎎/L이하→10㎎/L) 이하로 강화된다.

그러므로 장흥댐 건설은 장흥의 현대사에서 가장 큰 변화를 주는 대사건이라고 할 수 있었다.

장흥군도 국책 사업으로 추진되는 댐 건설이었음으로, 이와 같은 피해를 감수하고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기 위해 다양한 댐 건설 대안 사업 등을 정부·전라남도에게 요구했고, 전라남도 등도 이 같은 장흥군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기도 했다. 이에 전라남도와 장흥군이 1998년에 공유한 대표적인 대안사업으로 ‘목포-장흥-보성간 철도 신설’, ‘장흥-광주간 4찬선 도로 개설’, ‘선사 문화 유적 공원 조성’ 등이었고, 그로부터 5년 후에 장흥군이 장흥댐 대안 사업으로 추가 요구한 사업주의 대표적인 것들이 ‘정남진물과학관 건립’, ‘보림사 주변 종합 개발 사업’, ‘장흥군 소각 시설 사업’ 등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이들 대안 사업 중 제대로 추진되고 성사된 사업들은 얼마 되지 않는다.

결국 장흥군은 건설교통부, 수자원공사, 전라남도 등 정부의 국책 사업 추진이라는 그 현안에서 제대로 응대하지 못했고, 장흥댐 건설로 큰 수혜를 얻지 못한 채 마무리 짓고 말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장흥댐은 여전히 장흥군의 현실이다. 그리고 몇 가지 과제는 앞으로 장흥군이 정부 당국과 공조, 협조로 당연히 풀어가야 하는 몇 가지 과제가 있다.

첫째, 제대로 된 ‘장흥댐 백서’가 발간되어야 한다.

지난 2006년에 준공된 장흥댐은 10여 년의 공정, 총 사업비 6,679억 원 거액의 투자라는 이런저런 내용 말고도, 근대사 이후 전국적으로 줄기차게 추진돼 왔던 다목적 댐으로서 장흥댐이 마지막 댐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또 장흥군 입장에서도, 유치면 19개 마을과 부산면 지천리 1개 마을 그리고 강진군 옴천면의 1개 마을 일부를 수장시키면서 697가구 2200여 명의 수몰민을 만들어 냈다. 또 '수몰지의 문화 유적의 발굴'이라는 미명으로 수만 점의 문화유산을 발굴하기는 했지만, 그 발굴된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들이 지금도 대학 박물관 지하에 방치되고 있으며, 생태계의 인위적인 변화로 인한 환경 변화를 초래함으로써 미래에 직간접적인 해도 감수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큰 교훈과 시사점을 던져 주고 있는 것이다.

기록은 가장 구체적인 역사성을 갖는다. 우리가 과거 역사에서 그 정체성을 규명하고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정사(正史)든 야사(野史)든 간에 역사에 대한 기록 때문이다. 장흥댐 건설은 장흥군의 현대사에서 가장 큰 사건(주민 반대 운동 때문에 ‘사건’으로 본다.)이었다. 징흥군민은 이 장흥댐 사건을 우리 눈앞에서 고스란히 지켜보았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늦기 전에, 우리의 기억에서 잊혀지고 현장 인물들이 더 많이 사라지기 전에, 관련된 역사적 유물들이 사라지기 전에, 장흥댐에 대한 모든 것을 우리 장흥의 정사(正史)로 편입시키는 일, 즉 이 ‘역사적인 사건’을 올바르게 기록하고 문헌 등으로 남겨야 한다. 우리는 이 장흥댐 사건에서 미흡하거나 결핍된 요소를 남기는 우(憂)를 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라도 장흥댐 사건을 장흥의 정사(正史)로 접근, 철저하고 객관적인 기록 작업을 추진해야 한다.

장흥댐은 앞으로도 유일하게 친환경적인 댐으로 축조되고, 마지막 다목적 댐이었다는 점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흥댐 수몰지에서 발굴된 수만 점의 유물들이 대학 박물관 지하에 그대로 방치되고 있다는 점에서, 장흥댐은 환경·문화사 등 많은 전공 학자들의 연구 대상이 될 것이다. 최소한 인공 호수에 대한 관광 자원화나 댐과 생태계 변화의 상관관계 등의 입장에서라도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연구의 대상이 될 것이다.

더구나, 지금 세계적인 추세가 댐 축조 개발에서 댐 해체 시대로 전환돼 가고 있는 시대이고 더불어 수자원 부족 시대의 도래도 직면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 장흥댐은 장흥의 미래의 역사에서도 여러 가지 큰 사건들을 야기할 동인을 갖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 장흥군이 2007년 『장흥 다목적 댐 백서(이하 ‘장흥댐 백서’)』를 출간했다. 그런데 첫 번째로 발간된 백서는 도용된 사진으로 문제가 불거지면서 모두 회수 조치했다가 2008년 재 발간되었지만 재 발간된 백서도 여전히 폐기 처분되어야 할 정도로 부실 투성이었다.(‘08년 백서’는 ‘07년 백서’와 내용에서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사진 자료만 바뀌었을 뿐이다.)

첫째, 재발행까지 거친 백서는 무엇보다 내용이 매우 부실하다는 데 문제가 있었다. 백서 전체 153쪽 중에 본문이 고작 81쪽에 불과했다. 본문이 고작 81쪽에 불과하니, 내용의 편집도 거론하지 못할 정도로 구체적이지 못하고 대충대충 기술, 자료집으로서의 가치도 없어 '백서'라는 의미에서 거의 무용지물에 가까웠다. 결국 이 백서는 졸속 행정과 군 담당자의 무책임성이 빚어낸 결과물이었다.

백서에 어떤 내용이 기술되어야 하느냐는 것은 상식이다. 기본적으로, 댐 건설 추진이 제기되고 그에 대한 주민의 반대 운동이 일어나고, 댐 건설에 대한 고시가 이루어지면서 촉발된 주민의 토지 보상 운동 등에 이르기까지 주민 운동이 구체적으로 기술되어야 한다.

또 수몰지에 대한 문화 유적 발굴 사업들을 비롯, 댐 주변 지역에 대한 지원 사업, 본격적인 댐 건설 축조 사업 등 댐 건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의 전체 과정과 일체의 업무 추진을 객관적으로 기술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백서가 ‘장흥댐 사건’의 역사적 기술이라는 점에서, 각 부문에 대한 성격과 의미, 과제 등의 규명도 중요한 내용으로 기술되어야 마땅하다. 예컨대, 장흥댐에 대한 주민 운동에 대한 부문에서 그 동기와 과정, 결과라든지, 장흥댐의 주민 운동이 실패했다면 그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정치적인 배경이 작용하지는 않았는지 등의 성격 규명도 분명히 기술돼야 한다.

특히 유치 수몰 지역에서 얼마만큼의 문화 유적이 발굴되었으며, 그 발굴된 유물 유적에 대한 역사적 가치는 무엇이고 그 유물 등에 대한 사후 관리는 어찌되고 있는지, 선사 유적 공원에 대한 추진 과정이 어찌 변경되었으며, 왜 당초 3만 평 규모에서 3천 평 규모로 축소되었는지, 강성서원에 대한 이전 사업은 어찌 추진되었으며, 무엇이 문제가 되었는지 등등, 장흥댐과 관련된 모든 사건과 사업의 성격이 분명히 규명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더불어 가장 중요한 내용의 하나로, 장흥군 지도에서 영영 사라져간 각 마을에 대한 소개와 마을 모습이며 마을 사람의 단체 사진도 함께 편집되어야 마땅하며, 수몰민의 인명록이라도 부록으로 편집되어야 하며, 수몰되기 이전 유치 지역에 산재한 모든 문화재며 모든 문화 자원 등도 구체적으로 사진과 함께 수록되어야 마땅하다.

한 마디로, 당초 백서의 출간의 목적이 발행사에서 표현된 것처럼 “장흥댐 건설 과정과 장흥댐 주변 지역에 대한 과거와 현재를 기술하는 것이 백서 편찬의 목적”이었다면, 최소한 이러한 내용들을 중심으로 기술되고 편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댐이 건설되기 전의 유치면 일대의 역사 문화를 책으로나마 복원하고, 그 역사 문화와 인간 공동체가 사라져버린 과정을 구체적으로 제대로 기술, 장흥댐 사건을 장흥의 당당한 역사로 편입시켜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관점에서 2008년에 발간된 백서는 어떠했는가. 한 마디로 ‘부실 투성이’ 그 자체였다.

이제부터라도 제대로 된 ‘장흥댐 백서’가 다시 추진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백서 발간 추진 위원회를 만들고, 장흥의 근현대사에서 ‘가장 큰 사건’이었던 장흥댐에 관한 보고서를 제대로 만드는 일을 착수해야 할 것이다.

다만, 덧붙인다면, 향후 ‘장흥댐 백서’가 재 발간된다면, 이와 함께 장흥군 전 지역을 대상으로 고찰, 조사한 ‘장흥 환경백서’와 함께 추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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