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의 창시자는 공자였습니다. 공자는 세상 사람 모두가 칭송하는 성인(聖人)이었습니다. 그래서 공자는 ‘생이지지(生而知之)한 사람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때문에 공자같은 성인은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공자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나는 생이지지한 사람이 아니다. 옛것을 좋아하고 민첩하게 노력하여 학문과 인격을 구해낸 사람이다.(好古敏而求之者也)”라고 말하여 보통사람에서 학문을 연마하고 인격을 도야해서 그런 수준에 오른 사람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누구라도 공부하고 노력하면 자기와 같은 사람이 될 수 있다면서 가능과 진보의 인간론을 주장했습니다.
더 진지하게는 자신이 보통사람과 차이 없음을 사례를 들어 설명까지 했습니다. “덕을 닦지 못함, 학문을 강론하지 못함, 의로움을 듣고도 옮겨가지 못함, 착한 일을 안하고도 고치지 못함이 나의 근심이다.(德之不修 學之不講 聞義不能徙 不善不能改 是吾憂也 : 「述而」)”라고 말하여 갑남을녀라면 지니고 있을 근심이 자신의 근심이라고 명확히 말했습니다. 덕을 닦고 학문을 강론하고 착하지 못함을 고치기만 한다면 원하는 인간의 수준에 오를 수 있다는 성인의 말씀이었습니다.
이렇게 인간은 누구나 성인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 공자도 해결할 방법이 없는 경우를 말하기도 했습니다. “어찌할 도리가 없구나! 나는 잘못을 저지르고도 마음속으로라도 잘하고 잘못함을 판단해내는 사람을 보지 못했노라.(已矣乎! 吾未見能見其過而內自訟者也 : 「公冶長」)”라고 말하여 자신의 잘못을 저지르고도 마음속으로라도 잘잘못을 판단해 반성하고 뉘우칠 줄 모르는 경우, 그때는 아무런 방법이 없다는 절망의 탄식을 발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주자(朱子)는 이에 대해 친절한 설명을 합니다. 마음속으로 잘못과 잘함을 분별해낸다는 말은 입으로 말은 하지 않아도 마음으로라도 자신의 허물을 느낀다는 뜻으로 풀이하고, 그렇게만 해도 깊이 반성하여 고칠 가망성이 있는데, 그것조차 없다면 그때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고 공자가 탄식했다고 풀이합니다. 개과천선(改過遷善)의 문제에 대하여 다산 정약용도 많은 주장을 폈습니다. 다산은 자신의 삶을 거론할 때마다 자신의 일생은 참으로 뉘우칠 일이 많은 사람임을 전제하고, 잘못한 일과 잘못 살아온 삶에 대하여 후회하고 반성하고 고쳐야겠다는 각오를 언급하지 않은 경우가 많지 않습니다. 1822년 61세 회갑을 맞아 자신의 자서전을 기록하며 “60년의 회갑을 맞았다. 뭐로 보더라도 죄를 회개할 햇수다.(六十朞 皆罪悔之年也)”라고 말하여 회개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일생을 기록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다산은 공자의 절망적인 탄식에 자신의 뜻을 보충했습니다. ‘내송자(內訟者)’의 송(訟)을 공개적인 변론으로 보고 마음속으로 자신의 행위가 옳았는가 글렀는가를 따져서 판단을 내리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마음속에서 천명(天命)과 인욕(人欲)이 싸워 옳은 판단을 내리듯 인욕을 이겨내면 사람은 저절로 그 허물을 알게 되어 옳고 그름도 판단하고 허물도 고치게 된다.(天命人欲 交戰于內 克己如克訟 然人能自見其過 … 必能見其是非而知所以改過也 : 「논어고금주」)”라고 말해, 개과할 때에만 인간이 인간일 수 있다는 결론을 맺었습니다. 공자⦁주자⦁다산, 인간이란 잘못을 저지르기 마련이지만, 잘못을 알아 고칠 수 있다면 문제는 언제나 해결된다고 여겼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권력자들, 아무리 잘못하고도 잘못인 줄을 모르고 마음속으로라도 회개하려는 생각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어찌할 도리가 없구나!”라는 공자의 탄식을 읽다보니 나라의 장래가 참으로 걱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