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욱 시인

늙기도 설웨라커든
할미꽃 4
여태 꽃 추윈 떠나지 않고
환한 봄날은 저만큼 서성거려
서둘러 세상 밖으로 나온 게 잘못이다
발부리에 걸린 동상은 채 낫질 않았는데
첫 봄에 피는 꽃이라 꽃 잔치 연다고 구경나와
볼품없다며 무시해버리는 속사정 모를 리 없지만
허리도 펴기 전인데
젊은 것들은 아예 발로 짓밟고 다니는 구나
남풍 불고 해가 풍요로운
이 땅이 내 고향인데
축복은 못할지언정
강제 징집으로 내 이웃들 파내어
네들 집으로 데려가는 꼴
지켜보노라니 울화통이 치민다
보라, 빈터에 잡풀 검불만 우거지는구나
당초 볼품없이 이 세상에 태어났으니
못 생긴 게 죄라면 죄일 터
내 잘못 아니라고 항변해 봐야 씨도 먹히지 않을 터
이 세상에 움트고 나와
피운 내 꿈이 얼마나 찬란했는지
네들이 어찌 짐작이나 하리
이른 봄에 세상으로 서둘러 튀어나와
네들 시선받는 게
내 죄이려나
늙기도 설웨라커든*,
어느 놈이 내 얼굴 짓뭉개고
허릴 댕강 부러뜨려 놓았으니
나 속절없이 죽어가는구나
그토록 보고 싶었던
그러나 허리 꺾어져 죽어가며
비로소 보는 하늘
저리 푸르고 푸르구나

*정철의 연시조 ‘훈민가’ 중 제16수 ‘반백자불부대(斑白者不負戴)’시조의 한 구절. “이고 진 저 늙은이 짐 풀어 나를 주오 / 나는 저멋거니 돌이라 무거울가/늙기도 설웨라커든 짐을조차 지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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