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기획 / 아, 예양강① 예양강(汭陽江), 정녕 잊혀져 버릴 것인가(하)
신년기획 / 아, 예양강① 예양강(汭陽江), 정녕 잊혀져 버릴 것인가(하)
  • 장흥투데이
  • 승인 2023.03.09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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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의/전 장흥문화원장

 

* 이 글은 강수의 전 장흥문화원정이 쓴 글로, 강수의 선생의 유고집 『향토학 백년 현장에서』(p196-208)에 실린 글이다. 예양강에 대한 선생의 애정이 잘 드러난 글이다. 지난호에 이어 이번호에 싣는다 - 편집자 주.

 

 

 

 

 

 

<지난호에 이어>

남추강 선생은 장흥이 예양서원에 모셔진 인물이다. 이 서원도 예양의 이름을 쓰고 있다. 서원이란 교육기관 겸 제향공간이다. 지역의 유명인물이나 학자, 충절인물 등을 배향한다. 서원의 명칭은 지역의 대표성이 있는 지명을 따른 경우가 많다. 예양이란 지명이 이미 장흥을 대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암 송시열(1607∼1689)은 남추강의 예양서원 봉안문을 짓는다. 또한 영천 신잠, 월봉 김광원, 천방 유호인 등 삼현의 고유문도 짓는다.(長興汭陽書院奉安南秋江文, <송자대전> ; 汭陽書院告申靈川 金月峯 劉天放三賢文, <송자대전>)

그림자가 물에 이는 유리처럼 푸른 예양강

눌재 박상(朴祥, 1474∼1530), 조선전기 문인학자로 성현(成俔, 1439-1504)·신광한(申光漢, 1484-1555)·황정욱(黃廷彧, 1532-1607) 등과 함께 서거정(徐居正, 1420-1488)이후 4가(四家)로 칭송되면서 신비복위소를 올려 호남사림의 종장으로 추앙받는 분이다. 그도 장흥 예양강 관련 시를 남긴다.

‘신원량의 시에 화작하다(和申元亮)’라는 제목의 시인데 눌재 선생이 충주목사로 있다가 사도시 부정을 임명받고 서울에 올라갈 무렵(1526년, 중종 21) 장흥에서 유배생활을 하던 영천자 신잠(申潛, 1491-1554)의 시를 받고 화작한 것이다. 이 시는 24구의 칠언율시인데 마지막 두 구절에 예양강 정경이 나타난다. 영천 신잠선생이 장흥에 있을 때 눌재선생을 초대하여 가지산 보림사를 방문한 인연도 있다. 역시 몇 구절 골라본다.

春半招邀渡數溪 봄철 다 지나 부름받고 시냇물 건너가니

寶林伽智白雲迷 보림사와 가지사는 흰구름에 아른거렸다

南望汭陽江上柳 남쪽으로 예양강 가 버들 바라보니

不聞鸎曲意酸然 꾀꼬리 소리 들리지 않아 슬퍼진다

장흥이 낳은 명문장가이자 학자였던 옥봉 백광훈(白光勳, 1537-1582), 그 역시 예양강을 오가면서 많은 시를 남긴다. 한잔 술을 들고 시를 읊조리며 예양강을 걸었던, 오갔던 시인의 눈을 보라. 마음을 생각해 보라. 시인이 읊었듯이 “그림자가 물에 이는” 예양강의 그런 모습이 그려지지 않은가.

백옥봉의 시는 “예양강 윗길에서 술에 취하여(汭上路醉後)” “술에 취해 예양강을 거닐면서(自汭陽醉行)” “예양강 위에서 취하여 유정보와 작별할제(이름은 潑)(汭上 醉別柳靜甫 名潑)” “예양동교에서(汭陽東橋)” “예양강에서 거문고를 타는 스님에게 주다(汭陽 贈琴僧)”등의 시가 있는데, 일부만 옮겨 본다.

o 汭上路醉後 예양강 윗길에서 술에 취하여

醉眠江上石 강 위 돌팍에서 취하여 자우는데

日落遠峯陰 해는 떨어져 먼산에 그늘지누나

獨鳥前灘過 외로운 새 앞내를 지나가는데

沈沈煙雨林 연기 낀 숲 침침하기만 하다

o 汭陽東橋 예양동교에서

橋上遊人花滿頭 다리위 노는 사람 머리에 꽃 만발

城邊月出水悠悠 성 가에 달뜨고 물 유유히 흐른다

輕風解作春衣吟 가벼운 바람 봄옷을 입게 하네

爲惜淸歡盡夜留 즐거움 아껴서 밤새도록 머무르네

예양강 남으로 흘러 성을 둘러 싼 것이 띠와 같다

조선후기의 문인학자인 담헌 이하곤(澹軒 李夏坤, 1677~1724)은 2,000여수의 시를 남기는데, 보림사와 예양강 등 장흥 기행시도 많다. 그리고 일종의 문화유산 답사기인 <남유록(南遊錄)>과 <남행집(南行集)>이라는 기행기록도 남긴다. <남유록>과 <남행집>은 1722년(경종 2) 10월 13일 청주를 떠나 호남지방을 기행하고 12월 18일 진천으로 귀향하기까지의 일록과 지은 시에 대한 기록이다. 1722년 11월 12일부터 24일까지 장흥의 예양강 부춘정, 노봉사, 천관산, 보림사를 기행하고 시와 글을 남긴다. 다음 글을 보자.

o 어느새 장흥 땅에 이르렀다. 이곳은 신라시대 무주군이다. 들 가운데 산이 둘러싼 것이 큰 고리같다. 그 동쪽이 조금 이지러져 축성한 곳과 두루 만나니, 그 이지러진 곳이 문이 되고 고을의 관아가 반은 산에 의지하고 있으며, 누각이 자못 웅장하고 화려하다. 예양강이 남쪽으로 흘러 성을 둘러 싼 것이 띠와 같다. 인가가 모두 물가에 인접해 있으며 무성한 수풀과 우쭉한 대나무가 있어 바라보니 그림같다. 그 지세가 시원하게 탁트이고 강산이 밝고 길어 장성과 비교하니 더욱 좋다.(未刻至長興。是新羅武州郡也。野中有山。回抱如大環。其東稍缺。周遭築城。當其缺處爲門。州衙據山半。樓閣頗壯麗。汭陽江南流。繞郭如帶。人家皆面水。長林脩竹。望之如畵。其地勢之爽塏。江山之淸遠。比之長城尤勝也)(1722년 11월 12일)

o 율현(밤재)을 지나 여울물 줄기를 따라 동쪽으로 조그만 고개를 넘어 북으로 꺾어 몇 리를 가니, 남여승이 이미 와서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드디어 남여에 올라 천천히 동네 구렁가운데의 아늑하고 깊은 곳을 지나가는데, 소나무 고목이 그윽하고 빽빽하다. 시냇물이 흐르다가 가끔 웅덩이를 이루기도 하는데, 이것이 예양강이 발원하는 곳이다. 좌우를 살펴 보며 감상하다 보니,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이미 절에 이르렀다(過栗峴。沿流而東。又過一小嶺。北折行數里。籃輿僧已來候。遂登輿徐行。洞壑窈窕。松栝幽森。溪流往往成潭。是汭陽江發源處也。左右眺賞。不覺其已至寺矣)(1722년 11월 23일)

예양강의 발원지와 주변의 지형과 산세, 그리고 장흥읍성이 경관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다.

예양강의 경관지인 부춘정에서도 시를 남기는데, 강이름도 적고 있다. “부춘정. 장흥군 북쪽 예양강가에 있는데 맑고 깨끗하여 좋다(富春亭 在長興郡北汭陽江上 瀟洒可愛)”는 제목의 시인데 다음이 그 내용이다.

水似桐江好 예양강 물 동강처럼 맑고

危磯亦自超 위험스런운 낚시터 또한 절로 부르네

亭名曾擅勝 부춘정 일찍이 명승지로 소문났는데

客興豈辭遙 흥취아는 나그네 먼들 어찌 지나치랴

雪盡山光潤 눈 녹자 산의 모습 너무 산뜻하고

潭空樹影搖 못은 맑아 나무 그림자 일렁이네

藍輿容徑造 남여타고 가는 나그네 지나는 길에

獨坐竹蕭蕭 홀로 쓸쓸한 대숲에 쉬어가네

이밖에도 예양정사, 예남사, 예양정 등이 있다. 이민기(李敏琦, 1646~1704)의 예강석교권선문(汭江石橋勸善文)(<晩守齋集>), 선익흠(宣益欽, 1826~1888)의 예양정사 잡영(汭陽精舍雜咏((<顧軒遺稿>), 이수하(李洙夏, 1861~1931)의 예양정상량문(汭陽亭上樑文)(<金溪集>)등의 자료가 전해진다. 예양리라는 마을 이름도 오래도록 사용해 왔고 지금도 현존한다.

담헌 이하곤이 지은 남유록의 1722년 11월 13일조. 예양강이 남쪽으로 흘러 성을 둘러 싼 것이 띠와 같다는 기록이 보인다.
담헌 이하곤이 지은 남유록의 1722년 11월 23일조에 기록된 예양강, 밤재를 지나 보림사로 가는 기행기록인데 이 골짜기가 예양강의 발원처라고 적고 있다.

 

1938년 장흥지 기록에 나타난 탐진강

다음으로 탐진강에 대한 역사 기록은 언제쯤부터 일까. 여러 가지자료가 있을 수 있겠지만, 우선 신문기사자료를 통하여 처음 나타나는 것은 1933년 4월 27일자 동아일보 3면 3단에 실린 ‘耽津江 銀魚를 榮山江에 養殖, 은어알 三十만개 인공양식, 全南水産課서 試驗’이라는 제목의 기사내용이다.

향토지에서는 장흥지(무인지)에 처음 나타난다. 이 책은 1938년 무인년에 편찬된 한문본 읍지로서 보통 무인지라고 부른다. 이 책의 속록 권2 하천조의 장흥면조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o 탐진강은 일명 예양강이라 하고 옛 이름은 수령천이다. 근원은 가지산과 국사봉에서 나오고 감천과 합해지고 바다로 들어간다(耽津江 一名汭陽江 古名 遂寧川 源出迦智山及國師峯 合鑑川 入海)

이 내용을 보면 예양강이 원래 이름이고 수령천은 옛 이름임이 분명하게 나와 있다. 그 이후로 직할하천이나 지방하천 따위의 용어를 쓰게 되고 언제인지 모르게 우리들은 예양강은 잊어버리고 탐진강으로 통칭해 온 것이다. 탐진이란 이름은 오랜 역사기록이 있지만, 탐진강은 이제 70여년 안팎이다. 반면, 예양강은 장흥의 오랜 역사와 함께 하고 있다.

예양강 찾기에 나서자. 강이름 개정운동을 추진하자.

그런데 생각해 보라. 원래 이름은 놓아두고 하나의 별명 같은 것이 본 이름으로 행세한다면, 그것이 올바른 일인가 말이다. 더더욱 그 원래 이름마저 이제는 사용하지 않고 자기의 이름인지 조차 모르고 있으니 통탄할 일이 아닌가 말이다.

이제 어쩔 것인가. “탐진댐자연형하천정화사업”이 마무리 되면 전보다는 조금 더 낫게 자연친화형이라는 느낌을 가질 것이다. 그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탐진강은 우리의 생활속에 마음속에 굳어져 버릴 것이다. 예양강은, 수령천은 역사속으로 사라져 버릴 것이다. 이제라도 예양강을 찾아 나서자. 기록을 더듬어 보자. 문화를 살려내 보자.

몇 가지 제안을 해 본다. 우선은 예양강에 대한 자료를 종합 수집하는 일이다. 사서와 문집과 전설과 지명, 인물 등등. 두 번째로는 자료집이 발간되고 해석되어 읽혀져야 한다.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토론회가 열려야 한다. 자연형하천정비사업이 마무리되기 전, 올해가 가기 전에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자료와 의지를 바탕으로 강명 개정운동을 벌려야 한다.

예양강, 정령 잊혀져버릴 것인가. 아니다. 이제부터라도 강이름 찾기에 나서자. 강이름 개정운동을 추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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