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의병장 오우당을 상기하며 제향 봉행
조선시대 의병장 오우당을 상기하며 제향 봉행
  • 장흥투데이
  • 승인 2023.03.20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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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재란 승전지 흔적 재조명, 오우당의 애국지성 역사의 등불

 

경주김씨 두계공파 장흥·강진 종회(회장 김상윤)는 지난 3월 9일 장흥읍 평장리 소재 예남사에서 경기전 참봉 오우당 김응원선생의 충효사상과 애국지성의 업적을 기리는 제향을 봉행하였다.

오우당은 1597년 정유재란 때 강진 남포마을에 주둔한 왜구가 장흥을 침범하려고할 때 이를 물리치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래서 예남사 사당에서는 매년 음력 9월 15일 지역유림이 참여한 가운데 봉열대부 홍문관 응교를 역임한 청강 김세좌 선생과 함께 혈식군자로 제향을 봉행한다. 오우당은 지난해부터 타개하신 음력 2월 28일에 오우당선생을 추모하기위해 건립한 추원당에서 별도의 제향을 봉행하고 있다. 이번 제향에는 경향 각지의 후손 30여명이 참여하여 경건하고 엄숙하게 봉행하였다. 제향을 마친 다음에는 강진군 군동면 평덕마을 후등에 모셔진 임향조 김광우의 묘소를 찾아 분향하고 성묘하였다.

김응원은 정유재란 당시에 판관공인 형 김응규와 같이 임진왜란 때 정비해둔 약 1,000여명의 의병을 소집하고 특수한 전술기법을 발휘하여 왜구가 장흥땅을 밟지 못하도록 하였던 애국지사 이셨다. 장흥 금안마을 뒷편 도고동에서 계속 훈련 중에 있었는데 왜구가 홍수처럼 쳐들어오자, 중과부적인지라 직접 부딪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색다른 작전을 세웠다. 꽁지깃 횃불 수백 개를 야산 나무에 매달고 의병들을 매복시켰다. 그리고 밤마다 여기저기에서 함성을 지르게 하여 많은 병력이 매복해있는 것처럼 위장하자 왜구가 도주하였다. 이에 전세를 타고 추적하여 100여명의 왜구 목을 베니 혼비백산하여 퇴각하였다. 그 후 왜구가 장흥 침입을 포기하니 주민들은 평온한 생활이 계속되었다. 당시 장흥 부백이 병영(전라 병마절도사영)에 이 사실을 알리고 조정에까지 보고되어 침랑에 특별 제수 되었다. 부백이 계곡의 바위에 각왜동(卻倭洞) 세 글자를 새겼는데 지금도 자획이 뚜렷하다.

그 후 1883년 오우당을 추모하고 세인들의 애국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후손들의 노력으로 금안마을 앞 장흥·강진 행로변에 각왜비(卻倭碑)를 근수하였다. 각왜비가 2018년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88호로 지정됨에 따라 본격적인 위선사업이 진행되었다. 오우당 김응원 선생을 추모하기 위한 추원당이 건립되었고 지난해부터 각왜비를 중수하고 있다.

조정에서 왜구를 물리친 골짜기라는 뜻으로 도고동 계석에 각자된 ‘각왜동’유적이 정비되면 추원당과 각왜비, 그리고 각왜동이 정유재란 전승지의 흔적으로 또하나의 의향 장흥에 유적지가 되어 후세에 각광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김상윤 종회장은 “오우당 선조님의 구국업적이 재조명되어 당국에 감사드린다”며 조선시대 승전지 흔적을 답사하고 체험하여 나라사랑하는 마음을 일깨우는 기회가 되기를 소망한다고 말했다.

경주김씨 두계공파 장흥·강진 종회는 참봉공 김광우가 1396년 장흥 평장마을에 정착한 입향조다. 장흥에 평장과 덕제마을, 그리고 회진면 신상마을에 세거지를 두고 있다. 강진에는 중산마을과 시목마을이 세거지이며 세장산은 용산면 운주리 뒷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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