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고 새로 쓰는 장흥(6) - 장흥의 시인(詩人), 새로 발굴 - “임극충(任克忠)-위대한 시인”(下)
■다시 읽고 새로 쓰는 장흥(6) - 장흥의 시인(詩人), 새로 발굴 - “임극충(任克忠)-위대한 시인”(下)
  • 김선욱
  • 승인 2023.04.05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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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의 ‘강촌야흥’- 김달진 『한국한시』, 이병두 『한국역대 명시전서』에도 출전

임규 시, 고려 최고의 문장가‧시인 이규보(李奎報) 시와 나란히 소개 될 정도였다

장흥 최초 시인 3인 - 위계정, 임규, 원감국사…임규 시(詩) 『동문선』 최초 수록

 

 

金善旭/시인, 본지 편집인

<지난 호에서>

‘모든 머물며 지은 시[留題詩]들은

말은 간략하고 뜻은 곡진한 것을 아름답게 여기고’

모든 머물며 지은 시[留題詩]들은 말은 간략하고 뜻은 곡진한 것을 아름답게 여기고, 과장되게 말을 많이 하거나 요란하게 꾸미는 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런데〉 참정(參政) 박인량(朴寅亮)이 ‘승가굴(僧伽窟)’이라 제목 붙인 20운(韻), 낭중(郞中) 함자진(咸子眞)이 ‘낙산(洛山)’이라 제목 붙인 44운(韻), 사관(史館) 이윤보(李允甫)가 ‘부처의 그림자’라 제목 붙인 100운(韻)은 모두 사실(事實)을 기록한 것이어서 말이 번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자[亭], 대(臺), 누(樓) 같이 지나가면서 본 것을 읊은 시는 단지 한두 연(聯)으로 풍경을 묘사한다. 빼곡한 눈앞의 경계를 그린 것처럼 바삐 지나가던 나그네가 읽어보고서 입으로 마음으로 계속 남은 흥취를 읊고 완미할 수 있으면 그만이다.

내 평소 상국(相國) 임극충(任克忠)에 대해 익히 들었는데, 그가 지은 「황려현 객루(黃驪縣客樓)」라는 시에서 이르기를, / “달빛 어둑해지자 까마귀 물가에 날고 / 연기 자욱하자 강물 절로 일렁이네. / 고기잡이배는 어디에서 묵나 / 막막함 속에 한 가락 노랫소리”

라고 하였다.

〈이 시는〉 단지 적절한 운에 기대어 말하였을 뿐으로, 시의 맛을 아직 터득하진 못하였다. 〈내가〉 중도(中道)의 안렴사였을 때 이 객루에 도착해 묵었는데, 이때 강 안개가 자욱하고 희미한 달빛이 몽롱하고, 물새가 노래하며 날아다니고, 어부들이 노래하고 있었다. 눈이 호강하고 귀가 감동하여 총체적으로 전부 임공이 읊은 대로였다. 그의 시의 가치가 풍경을 마주하자 더욱 높아졌다.

ⓒ『補閑集』 卷上 >凡留題以辭簡義盡爲佳, 不必誇多耀富 >국사편찬위원회|한국사데이터베이스

『신증동국…』, 『여재촬요』 등에도 소개

임규의 시는 조선조에 와서도 많이 회자되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여재촬요』, 『삼한시귀감』, 『청구풍아(靑丘風雅』 등 여러 사서(史書)나 시문집에도 소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개성부’와 ‘경기’편에서 ‘고려’사람이라고 내세운 임규 시를 소개하고 있다.

즉 “고려 임규(任奎)의 시에, ‘누가 군신을 권하여 취향(醉鄕)에 들어가게 하였나. 숙장(肅墻) 안에 화(禍)가 있는 줄을 몰랐구나 경루(瓊樓) 위에 취한 노래가 그치기 전에 피비린내는 연로(輦路) 옆에 흘렀네. 수 양제(隋煬帝)의 변하(汴河)에 가을이 쌀쌀한데, 당 명황(唐明皇)은 촉도(蜀道)에 빗소리 처량하네. 그때에 이 한을 아는 이 없으니, 눈에 가득한 강산에 눈물만 두어 줄 흐르네.’ 하였다. 高麗任奎詩:‘誰勸君臣入醉鄕?不知禍自在肅墻。酣歌未闋瓊樓上,腥血交流輦道傍。煬帝汴河秋冷落,明皇蜀道雨凄涼。當時此恨無人識,滿目溪山淚數行’

또 ‘경기(京畿), 제영’ 편에서도 “연침강자파(煙沈江自波) 임규(任奎)의 시에, ‘달이 침침한데 까마귀 물가에 날고, 연기가 잠겼는데 강이 스스로 물결치네. 고기잡이 배 어디에서 자느냐. 멀고 아득한 한 마디 노래로세.’ 하였다. 煙沈江自波。任奎詩:“月黑烏飛渚,云云。漁舟何處宿?漠漠一聲歌”

이 뿐이 아니다.

『여재촬요(輿載撮要)』에서도 임규의 시가 출전된다. 『여재촬요』는 평생을 목민관으로서 삶을 살아온 오횡묵(吳宖默, 생몰년 미상)이 1894년에 간행한, 10권 10책의 분량의 지리서이다. 이 책자 ‘경기도, 여주목’의 제영(題詠) 편과 ‘경기도 개성부’ 고적편에 임규의 시가 소개되고 있다.

또 고려 말 최해(崔瀣, 1287∼1340)가 평점(評點)을 하고, 조운흘(趙云仡, 1332∼1404)이 정선(精選)한 신라·고려시대 문인들의 시선집으로 우리나라에서 온전히 전해오는 가장 오래된 평점서라 할 수 있는 『삼한시귀감(三韓詩龜鑑)』에도 ‘병으로 휴가 얻어…得病告暫’ ‘과연복정(過延福亭)’ 2편의 시가 소개되고 있다. (시인은 ‘平章 任奎’으로 소개)

특히 임규의 시 3편 중 ‘강촌야흥(江村夜興)’은 명시로 잘 알려져 있는데, 조선 중기 문인 김종직(金宗直, 1431~1492)이 찬한 『청구풍아(靑丘風雅』(권6)에서는 신라‧고려 때의 오언절구 시 34편 중 첫 번째로 소개된 최치원의 ‘가을밤 비[秋夜雨中]’ 에 이어 두 번째로 ‘강촌江村의 밤에 흥이 나서[江村夜興]-任奎’를 소개하고 있다.

‘강촌야흥(江村夜興)’은 김달진(金達鎭, 1907~1989)이 편찬한 『한국한시 01(고조선-조선중기)』(4판 간)(민음사, 1989)(100여 명의 고려조 시인들의 시를 소개)에서도 ‘강촌의 밤흥취(江村夜興)’라는 시제로, 또 이병두(李丙斗)가 편찬한 『한국역대 명시전서(韓國歷代名詩全書), 4판』(명문당, 1997)에서도 130여 편의 고려조 대표시의 하나로 임규의 ‘강촌야흥’을 소개하고 있다.

한편, 장흥출신의 시인이며 한문학자인 장희구 박사는 ‘강촌야흥(江村夜興)’에 대한 시 감상평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月黑烏飛渚 : 연기 잠긴 데 강물 절로 물결이 이네 煙沈江自波 / 고기잡이 배는 지금 어디서 자는고 漁舟何處宿 / 멀고먼 한 가락 노랫소리 들리네 漠漠一聲歌이 시는 은은한 한가락이 아득한 뱃노래 소리로 들리네(江村夜興)로 번역되는 오언절구다. …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밤은 침침한데 지금까지 까마귀는 물가에서 날고 / 안개는 자욱하게 깔리고 강은 절로 물결을 치네 // 고깃배는 하마 어디에서 머물 것인가 / 은은한 한가락의 아득한 뱃노래 소리가 멀리서 들리네’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강촌의 밤에 보는 흥취’로 번역된다. 강촌의 밤은 그지없이 조용하기만 하다. 한낮동안 사냥에 나섰던 물새도 깊은 꿈을 꾸고 있고, 생활을 위해 낮 동안 고기잡던 어부도 곤한 잠에 취해 있는 한가한 시간이다. 낮잠에 취했던 까마귀가 물가를 찾아 혹시나 먹이가 있지 않을까 망을 보는데, 유람선에선 낭랑한 뱃노래가 들려왔을 것이다.

시인은 안개는 자욱하게 깔리고 낮에 조용하기만 했던 강이 바람의 노래에 못이겨 물결을 치고 있음을 상기한다. 선경의 시상을 담아 달은 침침한데 지금까지 잠 자리에 들지 못한 까마귀는 물가에서 서성이고, 안개는 자욱하게 깔리고 있는 강은 절로 물결을 친다고 했다. 달이 그만 낮잠에 취하여 떠오르지 못하고 침침한데 까마귀가 물가에서 서성이는 장면을 떠올렸다.

시인은 낮동안 바쁘게 노를 저었거나 낚시나 구물을 올리는 손길은 어디서 머물렀는가를 상기시킨다. 후정의 시상은 고깃배는 하마 지금쯤 어디에 머물고 있는가를 묻고, 선유객의 은은한 한가락의 아득한 뱃노래 소리 멀리서 들린다고 했다. 강촌의 밤풍경의 어깨 들썩이는 흥취를 한껏 담고 있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까마귀는 물가를 날고 강은 절로 물결치네, 고깃배 어디서 머물까 뱃노래를 멀리서 듣네’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임규는 고려조 장흥 한시의 선구자였다.

고려조의 장흥 출신 시인은 3명이다.

위계정(魏繼廷,?~1107), 임규(任奎.?∼1171),원감국사 충지(圓鑑國師 沖止,1226~1293)가 그 주인공들이다. 위계정은 시문 2편을 남겼는데, 『해동역사』(제68권 人物考2)에 출전되는 관등시(觀燈詩)와 『동문선』(제31권)에 ‘천안절을 하례하는 표(賀天安節表)’ 등이 출전 된다. 그리고 원감국사는 유고집 『원감록』 등을 통해 총 304편의 시문을 남겼는데, 이중 21편의 시가 『동문선』에 출전된다.

이들 3인의 시인 중 연대순으로 보면 생몰기준으로 보면 위계정이 임규보다 64년이 앞서므로 위계정이 장흥의 최초의 시인이고, 다음이 임규와 원감국사 순이다.

위계정은 당대 고려 조정에서는 종1품, 정1품직에 오른 최고직의 관인으로서 위명(偉名)을 떨쳤지만, 한편으로 당대 문학계에서 영수(領袖), 즉 문학계의 최고봉에 이르렀던 문인이기도 하여 이른바 ‘사림 종장(詞林宗匠)’이란 문인으로서 명성을 가진 분이었다.

물론, 출전되는 시문이 관등시와 표문(‘천안절을 하례하는 표’) 등 2편에 불과하지만, 그럼에도 이 두 시문(詩文)이 장흥 역사상 최초의 시문이었다는 점에서 그를 장흥 최초의 시인으로 정의하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당대 시(詩)의 전형이었던 칠언율시, 칠언절구, 칠언고시, 오언율시, 오언절구, 오원고시 등 ‘한시(漢詩)의 전형으로서의 시’를 쓴 사람은 위계정이 아닌 임규였다. 그런 까닭으로, 임규의 시는 그 사후 여러 시문집에 소개되며 회자된, 장흥의 최초 시인이었다.

임규의 시를 소개한 『신증동국여지승람』(개성부)을 보면, 이규보, 이제현, 이인로, 정몽주, 이색, 김극기, 변계량, 최충, 정도전 등 ‘내노라 하는’ 고려조의 대표적인 명헌‧문인들의 시가 소개되고 있는데, 장흥 출신의 임규의 시도 이들의 시와 함께 당당히 소개되고 있다.

그러므로, 비록 남긴 시가 『동문선』에 소개된 3편에 불과하지만, 임규 시인이야말로 장흥의 고려조 한시문학의 선구자였다고 정의 할 수 있는 것이다.

延福亭, 毅宗二十一年, 六月, 自玄化寺, 幸延福亭. …忠肅王十五年, 七月, 胡僧指空, 說戒於延福亭, 士女奔走以聽. 鷄林府司錄李光順, 亦受無生戒之任, 令州民, 祭城隍, 不得用肉, 禁民畜豚甚嚴, 州人一日盡殺其豚. 忠惠王元年, 四月, 王率幸臣, 幸延福亭, 觀水戱及擊毬. 辛禑九年, 六月, 禑畋于延福亭三日. ○任奎詩, 李奎報詩, 李穡詩 『原志』, 在東大門外山臺巖下.世家下同 ○李公升傳, 明宗三年, 李義方等, 掜殺文士, 公升匿佛日寺, 有邀功者擒, 詣義方. 公升甞卜延福亭之基, 遂興大役, 人多怨之, 以故義方欲殺之, 賴門生文克謙免.『補閒集』作任克忠詩 ○誰勸君臣入醉卿, 不知禍自在蕭墻, 酣歌未闋瓊樓上, 腥血交流輦道傍, 煬帝汴河秋冷落, 明皇蜀道雨凄凉, 當時此恨無人識, 信作滿目溪山淚數行.憶昔明王遊幸日, 龍舟錦纜傍江湖, 勸歡仙妓回眸笑, 被酒詞臣倒腋扶, 自古窮奢難遠馭, 幾人懷舊發長吁, 頹堤不見滄濤拍, 複道渾成碧草蕪, 羅綺飄將雲共散, 笙歌換作鳥相呼, 箇中殷鑑分明在, 莫遣遺基掃地無.見山川考山㙜巖

▲『송경광고』(卷6,누정,연복정)에 수록된 임규의 시, 임극충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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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동문선19, 五言絶句 江村夜興[任奎]에 같은 내용이 있다.

2) 신증동국여지승람卷五 > 開城府[]

3) 신증동국여지승람卷七 > 京畿 > 제영

4) 輿載撮要卷三 > 京畿道 > 驪州牧 > 題詠 : 任奎詩 月黑烏飛渚, 煙沈江自波漁舟何處宿? 漠漠一聲歌李穡詩: “天地無涯生有涯, 浩然歸志欲何之? 驪江一曲山如畫, 半似丹靑半似詩

5) 輿載撮要卷三 > 京畿道 > 開城府> 古跡 : 任奎詩: “誰勸君臣入醉鄕? 不知禍自在蕭墻酣歌未闋瓊樓上, 腥血交流輦道傍煬帝汴河秋冷落, 明皇蜀道雨凄涼當時此恨無人識, 滿目溪山淚數行

6) 삼한시귀감(三韓詩龜鑑)의 첫 간행 시기는 명확하지는 않으나, 최항(崔恒,14091474)태허정집(太虛亭集)’1463(세조 9) 전라도 관찰사 원효원이 보내준 삼한시귀감을 언급하고 있어 초간본이 1463년 이전에 간행됐음을 알 수 있다. 1566(명종 21) 전라도 순천부에서 간행된 중간본(重刊本)이 고려대학교 도서관, 일본국회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7) 장흥출신 시인. 시조시인. 문학평론가, ()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8) 장흥신문2018.06.01. http://www.jh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56477

9) 원감국사가 남긴 시문은 총 304편이다. 이중 시는 240, , 서신 등 산문은 총 64편이다. 이중 67편이 동문선에 수록돼 있고 67편 중 시만 21편에 이르러, 고려조(삼국 시대 포함) 이전 승려시인으로 가장 많은 시문이 동문선에 수록된 시인으로 평가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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