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예양강(5)/옥봉 백광훈과 예양강(1) - 용호(龍湖)로 부르며 예양강을 사랑했던 옥봉 시인(1)
■아, 예양강(5)/옥봉 백광훈과 예양강(1) - 용호(龍湖)로 부르며 예양강을 사랑했던 옥봉 시인(1)
  • 김선욱
  • 승인 2023.05.10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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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양강 관련 30여 수 중 용호・용강・청영정 관련 시만 20여 수

“용호‧용강으로 재탄생시키며 예양강 서정을 묵시(默示)로 승화”

김선욱/본지 편집인. 시인

예양강의 시편을 가장 많이 작시한 시인은 옥봉(玉峯) 백광훈(白光勳,1537∼1582)이다. 이칭으로 ‘삼당시인’(三唐詩人-조선 중기 3인의 당풍시唐風詩로 시단에 이름을 크게 드날린 백광훈白光勳, 최경창崔慶昌, 이달李達 세 시인을 일컫는 말)으로 불려졌던 장흥 출신 옥봉의 480여 시편 중 예양강 관련의 시편은 28수에 이른다.

옥봉의 예양강 시편은 3가지 형태로 분류할 수 있다. 용호(龍湖)‧용강(龍江)‧용연(龍淵)으로 표현된 시들이 그 하나이고, 지금의 부춘정(富春亭)의 옛 이름인 청영정(淸暎亭) 관련의 시편들 그리고 또 하나는 예양강 중심부라고 할 수 있는 지금의 장흥읍 부근 예양강(汭陽江)에서 작시한 듯한 시편들이다.

첫째, 예양강 관련의 시편 중에서 ‘용자(龍字)’가 들어간 ‘용강(龍江)’, ‘용호(龍湖)’, ‘용연(龍淵)’ 등이 소재나 주제로 된 시들로 14수에 이른다.

①‘용호에서 놀이 삼아 짓다 龍湖戱題-2수’ ②‘용호에서 입부와 작별하며 龍湖別入夫’ ③‘용호를 지나며 過龍湖’ ④‘용호에서 이런저런 것들을 읊다 龍湖雜詠’ ⑤‘용호에서 장남삼아 짓다 龍湖戱題’-5수 ⑥‘김계의와 용호 풍경을 이야기하다 與金季義話龍湖之勝’ ⑦‘용강의 노래 龍江詞’ ⑧‘용강에서 성보를 이별하며 龍江別成甫’ ⑨‘용연에서 술에 취해 작별하며 龍淵醉別’ 등이다.

둘째, 청영정(淸暎亭) 관련의 시편은 6수로 ‘청영정 淸暎亭’, ‘청영정 사시사 淸暎亭 四時詞’-4수, ‘부춘의 농막에서 富春別墅’ 등이다.

셋째, ‘예양강’으로 표현된 시들이 8수에 이른다.

①‘예양동교 汭陽東橋’ ②‘예양강 길에서 취한 뒤에 짓다 汭上路醉後’ ③‘취중인 채 예양강을 가면서 自汭陽醉行’ ④‘예양강 위에서 취한 유정보와 작별하면서 汭上醉別柳靜甫-名潑’ ⑤‘예양강에서 거문고 타는 스님에게 주다 汭陽贈琴僧’ ⑥‘봉명정 밑에서 차운하다 鳳鳴亭下次韻’ ⑦‘예양강에서 작별하면서 汭江別’ ⑧‘죽강정에서 竹江亭’-첫구절 “강 근원은 저 멀리 예양천에서 말미암고 江源遙自汭陽川” 등이다.

여기서 ‘봉명정 밑에서 鳳鳴亭下…’를 예양강 시편으로 넣은 것은 당대 봉명정은 예양강 동쪽 언덕에 있었기 때문이다. (‘鳳鳴亭 : 在汭陽江 東岸, 卞建今廢’ -장흥읍지-정묘지).

이들 예양강 시편 중 가장 많이 나온 시들은 용호(龍湖)요 용강(龍江)으로 표현된 시들이다.

혹자는 이 시에서의 용호(龍湖), 용강(龍江)이 장흥 부춘리의 예양강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고(남한강 용산의 용호龍湖로 해석하기도 한다) 옥봉의 청영정도 한강의 청영정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옥봉 시 전문 학자들은 옥봉 시에 나오는 용호(龍湖), 용강(龍江)을 장흥 부춘리 앞 예양강으로 해석한다. 시 내용에서도 한강의 용호가 아닌 장흥의 부춘리 예양강이고 청영정도 부춘리의 청영정임을 확연히 알 수 있다.

『기봉집(岐峯集)』 역자이기도 한 정민 교수(한양대학교)는 『장흥문화』(2005, 제27호)에 발표한 ‘백광훈의 사향시(思鄕詩)와 용호(龍湖)의 청영정(淸暎亭)’이란 기고에서, 옥봉의 용호・용강・ 용연, 청영정 시들을 소개하고 이 모든 시들은 장흥 부춘리의 예양강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정민 교수는 ‘기내시(寄內詩)의 맥락에서 본 백광훈의 용강사(龍江詞)’라는 학술 논문에서도 용강(龍江)은 “(시인) 자신의 고향 앞으로 흐르는 용호(龍湖)를 우의적으로 나타낸 것이다.”고 발표한 바도 있다. 즉 옥봉의 고향인 장흥의 예양강(부춘정의 예양강)을 우의적(寓意的)으로 표현했다는 것이다.

『옥봉 백광훈의 시』 역자인 송주호 교수(연세대 국문과 명예교수)도 옥봉의 ‘용호를 지나며 過龍湖’의 시 해설에서 “용호는 장흥군 부산면 부춘리 탐진강에 있는 소(沼)인 용소(龍沼)를 이르는 말”이라며, 옥봉 시에 나오는 용강, 용호 등을 부춘리의 예양강으로 해설했고, ‘청영정의 네 계절 淸暎亭 四時詞’ 해설에서도 청영정(淸暎亭)의 강을 장흥 부춘리의 예양강으로 해설하고 있다.

■시 내용으로도 “용호는 부춘리 예양강”

거문고 악사 서인준에게 주다 贈琴師徐仁俊

용호와 천포사이 오며 가며 하는 채로, / 來往龍湖泉浦間.

거문고로 한평생의 한가로움을 얻어 살며, / 琴中占得一生閑.

그리울젠 다만 고향 가는 꿈(창주)만 꿔오면서, / 相思只作滄洲夢

눈 내린 속 매화 핀 산 저버리지 않았겠네! / 不負梅花雪後山.

*금사琴師 : 거문고나 가야금을 가르치는 선생이나 벼슬아치.

*점득占得 : 차지해 얻음.

*창주滄州 : 신선이 산다는 이상적인 섬, 숨어 사는 물가라는 뜻의 시어

-ⓒ玉峯詩集上/七言絶句/1608년/송준호 역

옥봉의 이 시는, 장흥 용호(예양강)와 지금 보성군 회천면의 천포를 오가는 거문고 악사 서인준의 삶을 부러워하는 시다. 그 거문고 악사는 고향(滄洲-이상향)이 아닌 현실의 예양강 용호와 천포 사이를 오가는 채로 살며 거문고 타는 풍류 속에서 한평생을 한가로움을 얻어 살 것이고, 그래서 고향(滄洲)이 그리워도 가지는 못한 채 다만 고향 가는 꿈만 꿀 때도 눈이 내리는 속에서도 매화가 피는 그 고향을 찾아갈 것이라면서, 악사의 그러한 한가로운 인생살이를 부러워하듯 읊어주는 시다.

그런데 이 시 첫 구절의 ‘용호’는 옥봉이 즐겨 찾고 시에서도 자주 애용해 온 부춘리의 예양강, 즉 청영정이 있는 용호이다. 그리고 그 부춘리의 그 용호와 천포는 장흥부에 속해 있는 한 고을이었디. 거문고 악사는 장흥의 예양강 용호와 천포(당시는 장흥부의 천포현으로 지금의 회천면 천포리)를 오가는 악사였을 것이다.

옥봉의 예양강 시 중 ‘예양에서 거문고 타는 스님에게 주다 汭陽贈琴僧’ 라는 시가 있다. 이 시에서 옥봉은 거문고 타는 스님을 친구로 여겼다. “…어찌 알 수 있었겠나 속인 말고 스님 친구 寧知人外觀空侶”. 그렇기에 이 스님에게 위로를 받고 시를 받쳤을 것이다. 예양강에서 거문고 타는 스님, 예양강인 용호와 천포를 오가는 거문고 악사. …이렇게 보면 이 거문고 타는 서인준 악사의 시가 더욱 이해가 잘 된다. 그러므로 추측컨대, 이 거문고 타는 스님이 바로 거문고 악사 서인준이 아닌가 싶은 것이다.

여기의 용호가 장흥 예양강의 용호가 아니고, 누군가의 지적대로 어찌 한양의 용호일 수가 있었겠는가. 옥봉에게 용호는 곧 예양강, 부춘리 예양강이었기에, ‘용호와 천포 사이’라는 표현이 가능했을 것이다.

■용호의 아름다운 추억이 없었다면 …

용호가 나오는 옥봉의 시 중 ‘김계의와 용호의 풍경을 이야기하다 與金季義 話龍湖之勝’의 시도 용호가 한양의 용호가 아닌, 시인 자신의 고향이었던 장흥의 예양강이었기에 그런 표현의 시도 가능했을 것이다.

옥봉은 말년에 벼슬을 얻어 서울 생활을 했는데, 그의 시 여러 편에서 서울 생활 속에서도 늘 고향의 정취를 자랑하고 그리워하기도 했다. 그 대표적인 시가 ‘김계의와 용호의 풍경…’이다.

김계의와 용호의 풍경을 이야기하다 與金季義 話龍湖之勝

외로운 성 오늘 밤엔 달빛이 어떠할까, / 孤城今夜月如何

기억하는 그 남강엔 흰 돌들이 많았는데, / 記得南江白石多

자네가 묻는 용촌마을이 기막히게 기이한 건, / 君問龍村奇絶事

눈 내리는 속 매화꽃이 안 핀 곳이 없던 걸세! / 雪中無處不梅花

*김계의 : 김종호(金從虎,1537~?)의 이명(異名). 장성 출신. 조선 전기 대학자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1510〜1560)의 둘째아들로 관직으로 찰방(察訪)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김인후의 아들 중 가장 기재가 뛰어났고, 후손 또한 이 아들의 자손에 의해 문중이 빛났다. 옥봉과 김계의는 절친이었다. 옥봉의 시에 김계의 관련의 시 몇 편(‘칠석에 회포가 있어 김계의를 생각하며 爲金季義七夕有懷’ 등)이 남아있을 정도였다.

*기절奇絶 : 비할 데 없이 기이(奇異)함.

-ⓒ玉峯詩集上/七言絶句/1608년/송준호 역

고향이 부안인 운강 김계의(雲江 金季義)와 절친했던 옥봉이 달밤에 그와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대화체의 시다. 이 시는 시인(옥봉)이 고향의 용호를 애타게 그리워하고 있음을 극명하게 나타내준 시다.

시인은 그곳(장흥 부춘리와 예양강)의 외로운 성안 마을(용촌)에는 달이 어찌 떴을까, 하고 자문하고는 “기억해 보니 용호가 있는 남강에는 흰 돌들이 많았었네” “자네가 묻는 그곳은 기막히게 신기한 풍경인데, 눈 내린 속에 매화꽃이 온 마을에 피어나 신비하고 기이하기 그지 없었네” 라고 하였을 것이다.

용호가 있는 그 용촌 마을에 대한 화자(옥봉)의 기막힌 감흥의 기억과 감탄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 고향의 부촌리 예양 강변 마을(부춘리)에 대한 그리움을 회상한 이 시는, 그래서 더욱 용호가 부춘리 예양강인 것을 그대로 대변해준다고 할 수 있다.

이 시구 중 ‘눈 속 매화’(雪中無處不梅花)’는 다른 용호나 청영정 관련 시에 나오는 ‘눈 속 매화’, ‘매화’와도 연결된다. 즉 시 ‘용호에서 이런저런 것들을 읊다 龍湖雜詠’에서 “강바람이 밤 내 불자 눈밭 매화꽃과 같아 江風吹夜雪如梅”, “매화꽃이 피어난 곳에 버들가지 우거지고 梅花開處柳依依’ 그리고 ‘청영정 네 계절 노래 淸暎亭 四時詞’ 중에 나오는 “매화 소식 또 찾아서 다리 앞쪽 와 있구나 也尋梅信到南橋” 라는 시구들이 그렇다.

옥봉 시인은 이들 시에서처럼 부춘리, 즉 청영정이 있는 부춘 마을을 늘 매화와 함께 기억하고 추억했기에 “…용촌 마을이 기막히게 기이한 건 君問龍村奇絶事 / 눈 내리는 속 매화꽃이 안 핀 곳이 없던 걸세!”라는 시구의 시가 가능했을 것이다.

옥봉의 시 중 백미로 꼽히는 시가 있다. 바로 ‘용강의 노래 龍江詞’다. 칠언고시의 장시인 이 시는 옥봉의 모든 시 중에 가장 우수한 시로 잘 알려져 있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https://encykorea.aks.ac.kr/)’에 등재될 정도이다.

용강이라는 강가에서 농사짓는 아낙네가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그리워하면서, 뱃속에 들었던 아이가 태어나 아버지를 찾는다며 안타까워하는 내용의 시로, 이 시의 배경이 된 용강을 정민교수는 옥봉의 고향에 있는 강, 곧 예양강으로 풀이했다.

특히 이 시 중의 “임은 한양에 계시면서 편지조차 아니오네 君在京河書未廻”의 구절은 이 시가 누군가의 지적처럼 한양 용산의 용강이 아닌, 시인의 시골 강임을 강조하고 있다. 시골의 강, 그 강은 바로 자기 고향의 강이요, 애틋한 추억들이 담긴 강이었을 것이고 이 강을 배경을 이 절창의 강의 노래를 읊었을 것이었다.

자주 용호로 또는 용강으로 표현했던 옥봉의 시에서 여기의 용강을 한양의 용강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이유이다. 그러기에 이 시에서 용강은 옥봉 고향의 강이었던 부춘리의 예양강을 지칭했음이 틀림이 없다고 여겨지는 것이다.

■『장흥읍지』에 등장한 부춘동‧용암‧청영정

옥봉 이후 200여 년이 지난 후인 1747년에 발간된 『장흥읍지(丁卯誌)』의 부산방(釜山坊) 편에 용호와 청영정, 부춘동(富春洞)이 등장한다.

부산방 ‘여리(閭里-동네)’ 편과 ‘성씨(姓氏)’ 편에 고개동(古蓋洞-남평문씨 거주)과 부춘동(富春洞-남평문씨, 김씨 거주)이 있었다고 기재되어 있다. 그리고 부산방 ‘산천’ 편에는 용암(龍巖), 용호(龍湖), 칠리탄(七里灘)이 나오고 ‘대사(坮榭-정자)’ 편에는 청영정(淸暎亭)이 나온다. 이른바 옥봉의 용호‧용강‧청영정 시의 배경이 된 부춘리의 지명들이 다 나온 셈이다. 이 기록들을 살펴보자.

“용암(龍巖) : 부춘(富春-富春洞- 앞 물 속에 있다. 백광홍이 글씨로 용호라는 두 글자를 써 새겨놓았다. 龍巖 : 在富春前手中, 白光勳書, 龍湖二字刻之”

“칠리탄(七里灘) : 부춘(富春) 앞에 있고, 곧 별탄(鱉灘 : 부산방 북쪽에 있고 곧 예양강의 상류이다 鱉灘-在坊北 卽汭江上流)의 하류로 이름이 칠리탄(七里灘)이어서 부춘(富春)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在富春前, 卽鱉灘下流, 以富春得名”

“청영정(淸暎亭) : 문희개가 지었다. 칠리탄(七里灘) 위에 있다. 물가의 벽이 기이하고 예스러우며 고안한 데다 강가의 나무가 그윽하고 깊다. (이어진 문장에서 “이 비 그치면 강물은 푸르게 차오를 테고 雨霽淸江江水平…”로 시작되는 백광훈의 ‘청영정 사시사 淸暎亭 四時詞’ 4수를 소개해 놓았다 즉 “…淸暎亭 : 文希凱所築, 在七里灘上, (機)(磯) 壁奇古, 江樹幽邃, 白光勳詩曰 : 雨霽淸江江水平 江花深處浴鵁鶄 東風綠盡王孫草 唱轉新詞無限情 …”

이로써 최소한 당대까지도 부춘동에 청영정의 정자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후에 청영정에서 그 이름이 부춘정으로 바꿔진 그 부춘정은 당시까지는 없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마을 이름이 부춘동(부춘리)이었을 뿐이다. 또 그 마을 이름은 부춘동 강인 예양강에 칠리탄(七里灘)이 있어 부춘이라는 이름을 얻으면서 부춘동으로 불리어졌을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어쨌든, 옥봉은 그 지명의 전설이었든 아니면 자의적인 시적(詩的) 상징성이었든 간에 부산면의 부춘리 앞을 흐르는 예양강을 용강(龍江)이고 용호(龍湖)이고 용연(龍淵)으로 재탄생시킨 것만은 틀림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옥봉이 장흥 예양강에 헌사(獻詞)한 시정(詩情)의 묵시(默示)가 아니었을까 싶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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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옥봉의 시는 옥봉집(韓國文集叢刊) 본에는 440여 수가 전하지만, 옥봉집삼당집(三唐集)본에만 있는 시들이 몇 편 있고, 하나의 시제(동일 시제) 아래 ()’로 이어지는 주제가 다른 시들이 30여 편에 이르러 총 480여 수로 파악되고 있다.

2) 여기서 부춘(富春)은 부춘정의 부춘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당시 청영정이 있었던 부춘동이라는 마을을 의미한다. 청영정이 있었던 부춘동()는 옥봉 이전부터 존치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부춘정은 당대로부터 훨씬 훗날에 불려지게 되었다. 그런 이유로 혹자는 부춘(富春)’의 뜻 풀이를 풍성한 봄등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3) 장흥 동동리 출신 취곡(翠谷) 조여흠(曺汝欽,15491679)중수봉명전서(重修鳳鳴亭序)’에 의하면, 봉명정은 장흥부의 동문 밖에 있고 예양강 위에 있었다. 조선 초 변포(卞包) 부사가 건립했다. 그 후 장공(張公=張應梁)이 중수하다가 마치지 못하자 새로 부임한 부사가 마무리를 하였다. 동국여지승람에도 장흥부의 동(東亭)은 동쪽 언덕에 있고 변포 부사가 건립했다고 기재돼 있어, 장흥부 동정(東亭)이 곧 봉명정이었다. -위의환

4) 허경진, 1992, 옥봉 백광훈 시선, 평민사, p97.

5) 정민, 2005, ‘백광훈의 사향시(思鄕詩)와 용호(龍湖)의 청영(淸暎亭)’ 장흥문화, 장흥문화원, pp 36-45.

6) 기내시(寄內詩) : 객지의 남편이 고향의 아내에게 보내는 시.

7) 정민, 2022, ‘寄內詩의 맥락에서 본 백광훈의 용강사(龍江詞)’, 한국고전여성문학회, 한국고전여성문학연구 5, p33

8) 송주호 편저, 2022, 옥복 백광훈 시, 학자원, p209.

9) 같은 책, pp210-213. 장흥 출신 한학자 김규정도 장령시문 長寜詩文에서 백호 임제의 시 淸暎亭’, ‘龍湖 淸暎亭’ ‘贈揖淸亭主人3수의 시 해설을 하며, 청영정을 장흥 부춘정의 옛 이름으로 소개하고 있다.

10) 칠리탄(七里灘) : 엄광(嚴光)은 자()가 자릉(子陵)으로 소시 적에 광무제(후한의 창건군주 유수劉秀/재위 : AD25-57)와 함께 공부했으나, 광무제가 즉위한 후 이름을 바꾸고 숨었다. 황제가 그를 찾게 하여 초빙하였고 사신이 3번이나 찾은 뒤에야 광무제를 만나 간의대부(諫議大夫)의 벼슬을 제수받았으나 끝내 받아들이지 않고 부춘산(富春山)에 숨어 밭 갈며 낚시하며 지냈다. 후인들은 그가 낚시하던 곳을 엄릉뢰(嚴陵瀨)라고 하였다. 그 부춘산의 강은 항주 전당강 지류이다. 부춘산 앞의 강이 동강(桐江)이고, 그가 낚시하던 곳은 동강의 빠른 물살이 7리나 곧게 흘렀으므로 칠리탄(七里灘)이라고 불렀으며, 그를 사모한 후인들이 부춘동·칠리탄 등의 지명을 인용하여 자기가 사는 곳에 붙인 경우도 많았다.- 후한서(後漢書)엄광의 고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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