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 마음으로 즐길 일
특별기고 - 마음으로 즐길 일
  • 장흥투데이
  • 승인 2023.05.17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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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경호/고려대학교 특훈명예교수

이즈음 사람들은 기쁜 마음을 갖기 어렵고 즐거운 일도 없다고들 한다. 고향도 잃어버리고 안식처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더 그럴 것이다. 샘 페킨파David Samuel Peckinpah 감독의 1971년영화 <지푸라기 개>Straw Dogs가 생각난다. 주인공 부부 데이빗과 에이미는 에이미의 고향으로 돌아가지만 마을 사람들로부터 소외당하고 그들의 폭력성 때문에 위협을 느끼다가, 데이빗이 폭도 가운데 다섯 사람을 살해하게 된다. 가까스로 자신들을 지켜내지만 그들 자신이 불한당이 된 것이다.

1786년 2월, 정약용은 별시 초시에 응시하여 차하(次下)를 받았으나 전시(殿試)에 나아가지 못했다. 여름에 소내에서 지내며 남송 장자(張鎡)의 산문 「장약재상심낙사(張約齋賞心樂事)」를 읽고, 한 해 열두 달의 즐거운 일을 6언시로 노래하여 「초천사시사, 장 남호의 상심낙사를 본떠서[苕川四時詞, 效張南湖賞心樂事]」 13수를 연작했다.

상심낙사는 본래 사미(四美) 가운데 둘을 말하지만, 결국 그 넷을 아우르는 말이다. 남조(南朝) 사영운(謝靈運)의 「의위태자업중집시서(擬魏太子鄴中集詩序)」에 “천하에 좋은 날, 아름다운 경치, 기쁜 마음, 즐거운 일, 이 넷은 아울러 갖기 어렵다.[天下良辰美景賞心樂事, 四者難并.]”라고 한 말에서 기원한다. 북송의 소식(蘇軾)은 마음으로 즐길 경치들을 선정하여 「상심십육사(賞心十六事)」라고 했다.

정약용의 13수 연작에서 첫 번째 시는 경기도 광주(廣州) 두미협 어구의 검단산(黔丹山)에서 꽃 구경하는 즐거움을 노래했다.

작은 마을에 배꽃 새하얗고

깊은 산골 진달래는 타는 듯 붉어라.

천천히 돌비탈 오솔길 따라갔다가

안개 낀 물가 바위를 고깃배로 다시 찾는다.

村小梨花白立, 山深杜宇紅然. (촌소이화백립, 산심두우홍연.)

徐從石磴樵路, 還訪烟磯釣船. (서종석등초로, 환방연기조선.)

장자는 임안(臨安, 지금의 절강 항주시)에 거처하며, 남호(南湖)와 원정(園亭)을 두고 호사스러운 생활을 했다. 1207년 사농 소경(司農少卿) 시절, 일이 있어 광덕군(廣德郡)으로 좌천되고 1211년에 상주(象州)애 편관(編管)되어 있다가 죽었다. 장자의 상심낙사가 호사스러운 유흥인 데 비하여 정약용의 상심낙사는 고향 소내의 자연 속에 어우러져 생활하는 즐거움을 꼽았다. 봄은 검단산의 꽃구경[黔丹山賞花], 수구정의 버들 구경[隨鷗亭問柳], 남자주의 답청[藍子洲踏靑]. 여름은 흥복사에서 꾀꼬리 소리를 들음[興福寺聽鶯], 월계의 고기잡이[粵溪打魚], 석호정의 피서[石湖亭納凉]. 가을은 석림의 연꽃 구경[石林賞荷], 유곡에서 매미소리 들음[酉谷聽蟬], 사라담에서 달밤 아래 배를 띄움[䤬鑼潭汎月], 천진암의 단풍 구경[天眞菴賞楓]. 겨울은 수종산의 눈 구경[水鐘山賞雪], 두미협의 물고기 구경[斗尾峽觀魚], 송정에서의 활쏘기[松亭射帿].

정약용은 1796년 11월 하순 규장각에서 『사기』를 교정할 때 수종산 설경이 그리워져 검서관 박제가에게 섬계(剡溪)의 흥취를 이야기하다가 이 「초천사시사」 13수 가운데 12수를 외워 들려주었다. 또 강진에 유배되어 있던 1811년, 도강(道康) 병마우후(兵馬虞候) 이중협(李重協)에게 12수를 베껴 주었다. 「성화에게 준 초천사시사첩[與聖華苕川四時詞帖]」이 2009년 한 화랑에 전시된 적이 있는데, 13수 가운데 ‘유곡에서 매미 소리 들음[酉谷聽蟬]’의 시가 빠져 있다. 이중협은 자(字)가 성화(聖華)로, 양근(현 양평)의 서쪽 끝인 서종(西終)에 집을 두었다. 정약용은 그와 함께 『비어고(備禦考)』를 엮었다. 1813년 6월 12일 이중협이 서종으로 떠나게 되자 정약용은 그를 위해 시도 지어 주고 글도 써주었다.

1796년 11월 하순의 규장각 숙직 때 정약용이 자신의 「초천사시사」를 외운 것은 답답한 마음을 털어버리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정약용은 또, 명말 청초 김성탄(金聖嘆)의 「불역쾌재(不亦快哉)」33칙을 계승하되 칠언절구 연작 형태로 「그 얼마나 좋을까 노래 20수[不亦快哉行二十首]」를 지었다. 그 제11수는 이러하다.

옹색하게 서울에서 움츠려 지내길

병든 새가 조롱에 갇혀 있듯 하다가,

채찍 울리며 교외로 훌쩍 나가서

눈앞에 펼쳐진 들판을 볼 수 있다면,

그 얼마나 좋을까.

局促王城百雉中, 常如病羽鎖雕籠. (국촉왕성백치중, 상여병우쇄조롱.)

鳴鞭忽過郊門外, 極目川原野色通. (명편홀과교문외, 극목천원야색통.)

不亦快哉! (불역쾌재!)

우리는 누구나 그 나름의‘광경’을 보고 싶어한다. 지금 여기를 벗어나서 드넓은 들판을 볼 수 있다면, 그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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