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 위백규 선생은 평생토록 ‘적폐청산’, ‘세상 바로서기’를 추구했다
존재 위백규 선생은 평생토록 ‘적폐청산’, ‘세상 바로서기’를 추구했다
  • 김선욱
  • 승인 2018.11.13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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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 위백규를 다시 읽는다❶

‘적폐청산積幣淸算’은 오랫동안 누적된 잘못되고 부정적인 것들, 즉 악습 같은 것을 깨끗히 정리한다는 뜻이다. 즉 잘못되어 있는 것들을 드러내어 살펴보고 그러한 잘못이 다시는 없도록 제도적으로 시스템화 하는 일이 적폐청산인 것이다. 이 적폐청산은 기실은 이른바 ‘개혁정신’으로 어느 시대든 요구되거나 추진되었던 일이기도 했다.

'최순실 국정농단이 누적된 폐단으로 이를 청산해야 한다’는 것이 시민들의 촛불혁명으로 이어졌고 이러한 기조 위에서 탄생한 정부가 문재인 정부였다. 하여 문재인 정부의 첫걸음은 사회 각 분야에 켜켜이 쌓인 구체제의 적폐를 청산하고 정의롭고 새로운 체제의 기틀을 마련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이것이 문재인 정부의 초심이었고 역사적인 소명이기도 했다.

적폐청산은, 다른 의미로 ‘정도正道의 구현’이요, 이른바 ‘세상의 바로 서기’ 운동에 다름 아니다. 이러한 적폐청산의 개혁정신은 일찍이 조선조 실학자 존재 위백규에 의해 강하게 주창된 사회개혁론이기도 했다. 존재 선생은 평생을 세상이 바로 서기를 주창했던, 장흥이 낳은 위대한 실학자였다. 정치, 사회의 개혁으로 세상이 바로 서야 한다는 이 운동을 단기간도, 일시적으로가 아니라 평생토록 줄기차게 주창했던 분은 정도전도, 조광조도, 정약용도 아니었다. 오로지 존재 위백규 뿐이었다.

존재 선생은 12살(1738년) 때 “다른 사람을 보기보다 차라리 자신을 보고, 다른 사람의 말을 듣기보다 차라리 스스로에게 들어라”라는 문구를 좌우명으로 삼을 정도로 수신修身과 자기비판에 철저했고, 이처럼 엄정한 자기 정립과 자기비판 위에서 세상을 투시하며 세상이 바로 서기를 추구했다.

한 일화로, 1789년 68세 때, 남해안 태풍재난으로 정조가 검교직각檢校直閣 서영보를 위유사慰諭使로 급파해, 서영보가 과객행세를 한 채 존재의 집에서 하룻밤을 묵게 된 일이 있었다. 마침 그날 밤이 제삿날로 국법으로 밀주密酒를 단속할 때였다. 부인이 제주祭酒를 내오자 선생이 ”이 술은 안 된다. 백성들이 법을 안 지키면 누가 지키냐”면서 제주를 부어버리고 청수淸水를 길어오도록 했다. 이처럼 선생은 자신에게도 엄정했었다.

존재 선생은 31세 때 충청도 덕산까지 올라가 스승 윤봉구尹鳳九에게 성리학을 수학하면서 당대 잘못된 정치의 폐단을 지적하고 개선책을 제시한 ‘시폐십조時弊十條’를 지어 올렸다. 33세 때는 정치를 악기로 보고 새 줄로 바꿔야 한다는 의미를 함축한 ‘정현신보 시폐政鉉新譜 時弊’를 정리했다. 또 52세 때는 장흥부사 황간의 요청으로 29개 적폐를 지적한 상소문인 ‘봉사封事‘를 지어 올렸고, 65세 때는 사회의 온갖 적폐를 적시한 ‘구폐 32조舊弊32條’를 정리한 <정현신보正絃新譜>를 저술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선생은 70세 때 국가개조를 논하고 백성의 실상과 그 해결책을 논한 상소문인 ‘만언봉사萬言封事’를 집필했다. 선생이 정조에게 ‘만언봉사’를 올리자 정3품 승지 윤숙을 비롯한 사간원에서 사투리를 써서 임금의 귀를 더럽혔다고 성토했을 정도였다.

특히 사회모순을 비판하고 개혁방안을 제시, 선생의 실학사상과 개혁정신이 집약됐다고 평가되는 <정현신보>는 33세 때 초안을 잡고 65세에 완성한 필생의 역작으로, 선생의 정치철학과 실학사상을 가장 잘 대변해주는 저작물로 손꼽힌다. 여기에서 선생은 학교·공거·용인·군현·관직·전제田制·노비·군제軍制·무선·조운·궁둔宮屯·전결田結 등 13조에 달하는 시폐를 설정, 당시의 부조리한 사회현상과 이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조목조목 피력했다.

본래 이 내용은 스승인 윤봉구에게 개진하였던 것으로, 윤봉구가 시폐만 논하지 말고 구폐舊弊도 함께 연구하라고 일렀고, 이에 시폐 13조 외에 인리人吏·벌열閥閱·호장戶帳·승니僧尼·관복冠服·전포錢布·봉수烽燧·금도禁盜·제언堤堰·목장牧場·포호捕虎·시전市廛·해도海島·어염魚鹽·우주송금牛酒松禁·총지塚地·공물貢物·공의工醫·기술 등을 합해 32 조목에 걸쳐 폐단을 구하는 방법을 논하고 있다 .

일례로 선생은 <정현신보>에서 “우리나라 전답은 몹시 좁은 데도 전택의 소유제한이 없어 세력 있는 부자는 더 많이 소유하니 부유할수록 사치하고 가난할수록 더욱 곤궁해지는 형세”라고 비판하고 “부자에게는 토지소유를 제한하고 세금을 제대로 걷을 것이며 가난한 사람에게는 잡다한 세금을 부과하지 말고 자력으로 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자”고 주장하였는데, 이처럼 선생은 현대의 그 어떠한 진보론자 보다 한 발 앞서간 진보론자였던 것이다.

‘만언봉사’는 존재 위백규 선생이 백성의 참담한 실상을 정조에게 올린 상소문으로 ①임금이 뜻을 세우고 전하여 학문을 밝히는 일(立聖志明聖學) ②보필할 사람을 가려서 어질고 재능 있는 인물을 기용하는 일(簡輔弼擧賢能) ③염치를 장려하고 기강을 떨치는 일(勵廉恥振紀綱) ④선비들의 습속을 바로잡고 서로 앞 다투어 출세하려는 습관을 억제하는 일(正士習抑奔競) ⑤뇌물을 탐하는 행위를 단속하고 사치를 금하는 일(律貪贓禁奢侈) ⑥옛 제도에 따라 잘못된 정치를 개혁하는 일(由舊章革弊政) 등 6개 항목으로 나누어 논하였다. 즉, 선생은 성학聖學을 밝힘으로써 정도政道를 구현하고 사도邪道를 물리치는 것을 근본사상으로 하여 폐정을 광정(匡正)하고 정치제도를 개선하자고 주창했는데, 이는 선생의 경세적인 개혁성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적폐청산으로 정도正道 세상의 구현, 이른바 ‘세상의 바로 서기’에 평생을 고뇌하고 이러한 적폐를 일소하기 위해, 궁벽한 장흥에서 고독한 한생을 살았던 분이 존재 선생이었다.

물론, 존재 선생의 개혁사상에서, 여러 문제점에 대한 개선 방안이 향촌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전체적으로 적극적인 개혁안보다 다소 소극적인 개선안이었다는 일각의 지적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존재 선생이 삼벽三僻(지역·성씨·사람이 궁벽)에 갇혔던 재야 선비요 재야 학자로서의 환경을 극복했던 위대한 실학자였음을 알고 있다. 즉 선생은 삼벽의 환경에서도 뜨거운 가슴에 경국제민經國濟民의 큰 뜻을 품고 평생을 오롯이 세상의 바로서기 운동을 추구했으며, 더 나아가서는 국가제도 개조와 문학, 세계지리, 우주로까지 눈을 돌렸던 것이다.

특히 200여 년 전 존재 선생이 문제를 제기하고 비판하고 대안을 제기했던 적폐, 즉 사회적 모순과 부조리에 대한 극복은 여전히 현재도 진행되는, 아니 너무나 당연히 가장 절실하게 추진돼야 하는 진행형이다.

이 시대 존재 선생이 우리의 가슴을 울리는 이유이다.

우리가 더욱 존재 선생의 사상을 더 깊이 연구하며 공부하고 그분의 정신을 기리고 그분의 업적을 현창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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