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렴’의 의미를 다시 돌아보며
‘청렴’의 의미를 다시 돌아보며
  • 정남진 장흥신문
  • 승인 2018.12.14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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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박 원 재(강원대 강사)

지난달 20일 국회에서 다산연구소가 주관한 세미나가 있었다. 〈다산으로 미래를 열다〉는 큰 제목 아래 ‘다산 사상의 현대적 활용과 문화 콘텐츠의 미래’라는 세부 주제로 진행된 세미나였다. 다산에 대해 문외한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처지임에도 불구하고 어찌하다 보니 발제자의 한 사람으로 참여하는 영광을 얻었다. 전에 있던 직장에서 전통문화와 관련된 일을 했던 것이 일조를 했을 터였다. 발제를 맡은 주제는 ‘다산정신의 정립과 확산’이었다. 전통학술 연구 분야에서 다산학이 퇴계학 다음으로 활성화되어 연구성과가 이미 한우충동(汗牛充棟)으로 쌓여가는 현실에서 다산학 르네상스를 위해 이제 필요한 일은 그 성과들을 관통하는 다산사상의 핵심, 이를테면 ‘다산정신’이라 할 만한 것을 조형해내고 그것을 대중적 언어로 풀어내는 것이라는 생각에서 잡은 주제였다.

‘공정’과 ‘청렴’

이와 같은 관심에서 다산정신의 상징어로 길어올린 것은 바로 ‘공정[公]과 청렴[廉]’이었다. 28살 되던 해(1789) 문과에 급제한 후 임금 정조를 알현한 뒤 다산이 지은 5언율시에 나오는 용어이다. 「정월 스무이렛날 과거에 급제하여 희정당에서 임금을 뵙고 물러 나와 짓다[正月卄七日賜第熙政堂上謁退而有作]」라는 긴 제목의 이 시에서 다산은 과거급제를 하늘에 감사하면서, “둔하고 서툰 재주라 완숙한 업무 어렵겠지만[鈍拙難充使], 공정과 청렴으로 온 정성 다하리[公廉願效誠]”라며 공직에 첫발을 딛는 각오를 다졌다. ‘공정과 청렴’이라는 말은 여기에 등장하는 ‘공렴(公廉)’이라는 단어를 현대적 의미로 풀어낸 것이다.

‘공정과 청렴’은 이른바 ‘일표이서(一表二書)’에 투영되어 있는 다산사상의 근간을 대표하는 정신일 수도 있겠다는 판단도 한몫했다. 비록 거친 감은 있지만, 『흠흠신서』와 『목민심서』와 『경세유표』에 담겨 있는 문제의식은 차례로 ‘공정한 법집행’과 ‘청렴한 관직생활’ 그리고 이를 뒷받침할 ‘제도적 구상’으로 요약될 수 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기 때문이다.

공무원 청렴도의 양면

그런데 이 제안에 대해 세미나에 참석한 청중 한 분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반응을 보였다. 말씀인즉, 공무원 대상의 연수에서 청렴이라는 주제를 꺼내면 공무원들이 자신들을 아직도 부패의 상징으로 여긴다며 싫어하니 다산사상과 관련하여 청렴 이야기는 그만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정색을 하며 제기한 의견도 아니고 재미도 있어 그때는 그냥 웃고 넘겼다. 그러나 돌아오는 길에 두 가지 단상이 떠오르면서 머리가 사념에 빠지기 시작하였다.

청렴교육을 받을 때 공무원들이 보인다는 반응부터가 그렇다. 공직에 계신 분들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 싶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 전에 먼저 분명히 해야 할 부분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국제투명성기구에서 매년 발표하는 부패인식지수(CPI)에서 우리나라의 2017년도 순위는 잘 알려진 대로 100점 만점에 54점으로 조사대상 전체 180개국 51위이고, OECD 회원국 가운데서는 3개국 가운데 29위이다. 결코 자랑스러워할 성적이 아니라는 데 대해서는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그런데 이것과 비교되는 재미있는 지표가 또 하나 있다. 국민권익위원회에서 연초에 발표한 〈2017년도 부패인식도 조사 종합 결과〉이다. 내국인을 상대로 한 이 조사에서 공무원들은 행정기관을 가장 청렴한 분야로 꼽았다. 공무원이 행정기관에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그렇긴 하지만, 이것이 공무원들이 자신들을 가장 청렴한 집단으로 자부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자료임은 부정할 수는 없다. 이런 사실은 앞의 국제투명성기구의 조사결과와 여러모로 배치된다. 국제투명성기구의 부패인식지수 산정에서 부패 정도를 평가하는 대상이 조사대상 국가의 정치인과 공무원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물론 우리나라의 부패인식지수가 그렇게 나온 것은 공무원 때문이 아니라 앞의 국민권익위 조사에서 응답 그룹 모두로부터 최하점을 받은 정치인들이 점수를 다 깎아 먹은 결과라고 하면 할 말이 없긴 하다. 하지만 안과 밖의 시각 사이에 존재하는 이와 같은 갭에 대해서는 좀 더 설득력 있는 해명이 필요해 보인다. 이 경우 둘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대답은 한 가지일 듯하다. 공무원들 스스로 생각하기에 청렴도가 예전에 비해 눈에 띄게 높아진 것도 사실이지만, 국제적 기준에는 아직 못 미친다는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그간의 노력을 알아주지 않아 섭섭은 하겠지만 앞으로 더 나아가는 수밖에 없다. 구성원들 간의 ‘신뢰’를 비롯한 사회적 자본이 국가경쟁력의 중심요소로 등장한 시대에 '국민의 공복'으로서 그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는가?

‘깨끗함’과 ‘부끄러움’

머리에 떠올랐던 다른 한 생각은 이보다 좀 더 근본적이다. ‘청렴’이란 덕목이 고작 부패하지 않음만을 의미하는가 하는 의문이 그것이다. 뇌물 안 받고 향응 안 받는 것이 곧 청렴의 처음이자 끝일까? 옛사람들이 그리 중시했던 ‘염(廉)’의 의미가 겨우 이것일까? 이런 의문이 들 때 떠올려지는 또 하나의 단어가 있다. ‘치(恥)’이다. ‘염’이 이와 어울려 ‘염치(廉恥)’라는 익숙한 말을 이루면, 그것은 ‘깨끗함’보다 ‘부끄러움’에 더 가까운 의미를 형성한다.

과문일지 몰라도 ‘염’과 ‘치’가 이렇게 어울려 쓰인 용례는 중국의 고전 『관자(管子)』가 처음으로 알고 있다. 여기서 ‘염’과 ‘치’는 예(禮)와 의(義)와 함께 예·의·염·치로 병렬되면서, ‘사유(四維)’라 불리며 나라를 지탱하는 네 가지 줄기로 강조되고 있다. 이 말들에 대한 『관자』의 이어지는 설명을 보면, ‘염은 악을 덮지 않음[廉不蔽惡]’이고 ‘치는 굽음을 좇지 않음[恥不從枉]’이다. 그러니까 ‘염치’란 곧 스스로 올곧아져 그릇된 것을 덮거나 추구하지 않는 행위이다. 『관자』는 여기에 덧보태 ‘악을 덮지 않으면 행동이 저절로 온전해지고[不蔽惡則行自全], 굽음을 좇지 않으면 거짓된 일이 생겨나지 않는다[不從枉則邪事不生]’고 부연한다. 바꾸어 말하면, ‘염’을 잃으면 행동이 편벽되고 ‘치’를 잃으면 거짓된 일을 스스럼없이 행하게 된다는 뜻이다. ‘염’이 우리들 삶에서 좀 더 적극적인 덕목으로 해석되어야 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것은 물질적인 깨끗함에 대한 추구를 넘어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을 통해 삶이 지름길의 유혹에 흔들릴 때마다 끊임없이 호루라기를 불어주는 내면의 파수꾼인 것이다. “사람이 부끄러움이 없으면 안 되니, 부끄러움이 없는 것을 부끄러워하면 비로소 부끄러워 할 일이 없게 된다”(『맹자』「진심상」6)고 한 맹자의 말은 그 파수꾼의 중요성을 정확히 일깨워 준다.

요컨대, ‘청렴’을 소극적인 의미로만 새길 일은 아닌 것이다. 예(禮)의 근본정신은 사라지고 형식에만 집착하는 세태를 두고 공자는 일찍이 “‘예다, 예다’ 하는 것이 비단과 옥과 같은 예물만을 가리키겠는가?”(『논어』「양화」11)라고 한탄한 바 있다. 그렇다면 청렴의 의미를 단순히 부도덕한 방식으로 사익을 취하지 않는 것으로만 이해하는 오늘의 세태에 대해서도 같은 식으로 말 수 있을 듯하다. “‘청렴이다, 청렴이다’하는 것이 뇌물과 향응을 받지 않는 것만을 가리키겠는가?”

▶글쓴이 / 박 원 재

· 강원대 강사
· 전 한국국학진흥원 수석연구위원
· 중국철학

· 저서
〈유학은 어떻게 현실과 만났는가〉예문서원, 2001
〈철학, 죽음을 말하다〉 산해, 2004 (공저)
〈근현대 영남 유학자들의 현실인식과 대응양상〉 한국국학진흥원, 2009 (공저)
〈500년 공동체를 움직인 유교의 힘〉글항아리, 2013 (공저)

· 역서
〈중국철학사1〉간디서원,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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