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2호 사설 - 보림사의 연기설화와 재조명의 필요성
제222호 사설 - 보림사의 연기설화와 재조명의 필요성
  • 김선욱
  • 승인 2024.05.22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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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림사 연기설화는 장흥을 대표하는 설화요 장흥의 서사문학을 대표하는 기록문학이다”

설화(說話)는 일정한 구조를 가진 꾸며낸 이야기다. 보통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이지만 주로 구전으로 전해지면 구비문학(口碑文學)으로, 문헌으로 전해지면 기록문학(記錄文學)으로 불려진다. 이 설화에 문학적인 구성이 두드러지면 일종의 서사문학으로 승화되기도 한다.

장흥에도 수많은 설화가 전해져왔다. 고인이 된 김석중 작가는 ‘제암산의 형제바위’등 40여 편의 설화를 정리한 《며느리 바위의 푸른 그림자》라는 전설‧설화집을 펴낸 바 있으며, 지난 2017년에는 장흥문화원이 500여 편의 장흥 설화를 집대성한 《문림의향 장흥설화 1,2》를 펴낸 바도 있다.

장흥의 역사에서 가장 먼저 설화 등 전설이 기록문학(문헌설화)으로 기록되기는 존재 위백규가 펴낸 《지제지支提志》를 통해서였다. 존재 선생은 이 책에서 천관산에서 신선이 살 만한 6곳의 동천(洞天)과 89개 암자를 일일이 소개해 놓았고, ‘아육왕탑 전설’ 등 천관산과 관련된 수많은 전설을 기록으로 남겨 장흥의 기록문학의 새로운 장을 열기도 했다.

설화는 서사성으로 문학성을 지니기도 한다. 보통은 구전에 적합하도록 단순한 구조를 지니지만, 여기에 독특한 의미와 잘 짜여진 구성에 역사성 등을 가미하면 이 설화는 훌륭한 서사적인 작품이 되기도 하고, 또 설화의 소재나 주제가 특정 작가에 의해 훌륭한 문학작품으로 승화되기도 한다. 관산읍의 샘섬은 이승의 단편소설 ‘샘선’으로 승화되기도 했으며, 형제바위 등 제암산에 산재한 수많은 전설은 이청준의 ‘비회밀교’의 주요한 주제‧소재가 되며 명작으로 탄생되기도 했다.

설화 중에 독특한 제재(題材), 즉 불교라고 하는 독특한 주제와 소재로 이루어진 ‘사찰 연기설화(緣起說話)’가 있다. 이 사찰 연기설화는 그 사찰이나 암자 등이 어떻게 창건되었는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이른바 사찰의 창건설화이다.

연기(緣起)는 인연생기(因緣生起)의 준말로, 인(因 : 직접적이 원인)과 연(緣 : 간접적인 원인)에 따라 생겨난다는 의미다. 즉 “이것이 있으면 그것이 있고, 이것이 생기기 때문에 그것이 생긴다. 이것이 없으면 그것이 없고, 이것이 멸하기 때문에 그것이 멸한다 此有故彼有 此生故彼生 此無故彼無 此滅故彼滅(잡아함경》제12권 제299경 緣起法經)”는 불설에 근거한 불교의 핵심이며 중심적인 가치관이다. 사찰의 창건도 당연히 이러한 연기법에 의한 것이므로 사찰의 창건설화를 연기설화로 통칭하고 있다.

사찰의 연기설화는 사찰에 대한 무형의 역사이며 그 사찰의 품격도 제고해 줄 수 있는 기록문학으로서 가치를 인정받는다. 그러므로 사찰의 연기설화는 의미 그대로 서사적(敍事的)으로도 구성되므로 불교의 전파나 대중의 교화에도 기여하고 불교도나 일반 대중에게 교훈을 주기도 한다. 이러한 사찰의 연기설화는 이미 《삼국유사》에 64편이나 출전되고 있을 정도였다.

보림사의 연기설화는 ‘신라국무주가지산보림사사적기(新羅國武州迦智山寶林寺事蹟記)-이하 ‘보림사사적기’)에 들어 있다. ‘보림사사적기’는 조선 세조의 명으로 1457〜1464년에 만들어졌다. ‘보림사사적기’는 현재 미국 하버드 대학교 옌칭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한국에서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사적기로도 유명하다.

‘보림사사적기’는 전·후반부로 나뉘는데 전반부는 원표에 의한 보림사의 창건 내용을, 후반부는 보조선사 체징의 창성탑비 내용을 요약하고 있다. 후반부 보조선사창성탑비 내용은 보조선사 체징 대 이후부터 익히 알려진 내용이어서 새삼스러울 게 없다. 그러나 전반부 연기설화는 사료로서는 이 ‘보림사사적기’가 최초의 것인 데다, 그 연기설화가 기승전결(起承轉結)의 구조로 이루어진, 서사적인 내용과 거의 완벽한 구성으로 이루어진 설화여서 여러 가지 면에서 가치와 의미를 더해준다.

특히 내용면에서 보림사의 창건 주역으로서 원표를 내세우고 있는 점, 보림사 창건의 반대세력으로 구룡(九龍)을 등장시키고 있는 점, 지리산 성모천황(聖母天皇)이요 선녀인 선아(仙娥)를 처음에는 중간자 입장으로 나중에는 우호세력으로 그리고 보림사 창사 이후에는 그 영정을 괴화당에 안치하여 ‘보림사의 수호신’으로 수용하고 있는 점 등은 많은 시사점과 함께 역사적인 의미를 부여해 주고 있다.

무엇보다 보림사 창건에 등장한 구룡이 당대 장흥지역 사회의 토호인 씨족사회를 은유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당대 가지산 일대의 산신(山神) 신앙을 대표하는 산악신앙의 주재자로서 천황성모인 선아를 보림사의 우호세력으로 등장시키고 있는 점은 당대 장흥지역사회의 역사성을 물론 시대상도 적극 반영했을 것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또 원표대덕이 759년 가지산사(보림사)를 창건하기 전, 장흥지역은 전라도 남부권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사찰이 존치되어 있지 않은 불교 불모지역이었다. 384년에 창건된 영광 불갑사를 비롯하여 나주에는 죽림사(440년 창건), 해남에는 대흥사(544년 또는 426년 창건), 보성에는 대원사(503년 창건), 고흥에는 능가사(417년 창건), 순천에는 선암사(529년 창건), 구례에는 화엄사(544년 창건)·연곡사(544년 창건)·사성암(544년 창건), 강진에는 무위사(617년 창건) 등 수많은 사찰들이 지금의 행정단위로 전라도 남부지역 군 단위에는 거의 빠짐없이 세워지며 불교가 전래되어 있었다. 전라도 중남부지역만 보더라도, 해남은 대흥사가 보성과 고흥은 대원사·능가사가 이미 250여 년 전에, 강진지역마저 100여 년 전에 사찰이 지어지며 불교가 전래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 250여 년 동안 장흥지역에서 만큼은 유일하게 불교가 전래되지 못했다. (아니 불교가 수용되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불교 불모지역 장흥에 화엄종의 선사 원표에 의한 사찰 건립이 추진되었다. 게다가 당시 그 사찰 건립에는 왕실이 무려 100여 칸의 사우의 대사찰을 지을 수 있도록 협조했으며, 또 사찰의 영역을 확보해주는 장생표까지 하사해 주었던 것이다. 이는 불교 불모지 장흥지역에 원표에 의한 불교 전래는 왕실 등 중앙에서 적극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미에 다름 아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일이 왜 장흥에서 일어난 것이었을까.

보림사 연기설화에는 이러한 역사적인 의미, 당대 장흥의 종교상과 시대상을 반영해주는 내용이 들어 있다. 무엇보다 그러한 내용의 설화가 탄탄한 구성에 위한 서사적인 문학으로서 설화의 표본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그 기록문학으로서 의미도 크다.

모호한 역사, 자칫 묻혀질 수 있는 역사는 반드시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 그럼으로써 제대로 된 그 역사적인 의미, 그 역사에 대한 정체성을 확보할 수 있고, 이러한 과정과 조명이 오늘과 내일을 보다 심도있게 제대로 모색할 수 있어서이다.

우리가 이제라도 제대로 ‘보림사사적’의 연기설화를 재조명해야 하는 이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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