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림사 연기설화 고찰 (1)
보림사 연기설화 고찰 (1)
  • 김선욱
  • 승인 2024.05.22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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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림사 연기설화, 보림사 창건주는 원표였다

‘신라국무주가지산보림사사적기’(이하 ’보림사사적’)는 전반부에 원표 대덕이 가지산에 보림사 사찰을 세웠던 내용을 중심으로 한 연기설화에 이어 후반부는 선문(禪門) 가지산문을 열었던 보조선사 체징에 대한 기록으로 그의 비문(보조선사창성탑비)을 요약하여 소개하고 있다. ‘보림사사적’은 조선 세조의 때인 1457년(세조 3)에서 1464년(세조 10) 사이에 만들어졌으며, 현재 미국 하버드 대학교 옌칭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한국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사적기로 유명하다. 《역주 보림사 중창기》에 소개돼 있는 ‘보림사 사적기’는 국역과 원문이 함께 소개되어 있는데, 국역은 송광사 조계총림 방장인 남은현봉이 담당했다. 이 ‘보림사사적’의 보림사 연기설화를 주제로 하여 그 의미와 가치 그리고 보림사의 정체성 등을 고찰해보고자 한다. (보림사 연기설화의 원문과 국역문은 생략한다.)

처음부터 원표, ‘삼국의

가지산 보림사 창건‘ 강조

‘보림사사적’의 연기설화는 첫 부분부터 마지막까지 원표가 삼국의 가지산에 보림사를 창건했다는 내용이 강조되고 있다.

왜 보림사 창건주가 원표였을까. 이 문제를 세 가지 관점에서 살펴본다.

첫째, 정명(定名) 보림사 이전의 가지산사 창건주 원표가 실제로 보림사 창건주일 수도 있다는 관점이다.

원표가 가지산에 창간했던 사찰은 ‘보조선사창성탑비’에서는 분명히 ‘가지산사(加持山寺)’라고 표기 돼 있다. 그리고 보림사라는 사찰 이름은 체징 사후인 883년, 헌강왕이 보조선사의 비석을 세워 달라면서, 체징의 시호를 ‘보조(普照)로, 탑호를 ‘창성(彰聖)’으로, 사액(寺額)을 ‘보림(寶林)’으로 하사했다고 기록된 이후에야 비로소 체징이 주석했던 사찰은 원표가 세웠다는 가지산사까지 포함해서 ‘보림사’라고 하는 가지산문의 정명(定名)으로 불려져 오고 있다.

어찌됐건, 체징 이후 보림사는 가지산문의 정식 명칭이 되었고, 원표 대덕이 창건했던 가지산사는 ‘고가지사(古迦智寺)’, 또는 ‘가지사(迦智寺)’나 ‘가지산사(迦智山寺)’로 불려오고 있다.

보림사에 대해 자주 인용되는 홍보 문구가 “장흥의 보림사는 인도 가지산의 보림사, 중국 가지산의 보림사와 함께 ‘동양의 3보림’으로 불렸다.”이다. 이 글은 ‘보림사사적’의 연기설화에서 비롯된 글이다.

그런데 연기설화에서 원표 대덕이 ‘서역(월지국)이나 중국의 가지산에 보림사를 세웠다’고 기록한 내용은 거의 모든 사료를 검토해 보아도 사실(史實)과는 다르다.

먼저 가지산(迦智山)에 대하여 고찰해 보자.

‘보림사사적’ 연기설화에 의하면, 원표 대덕은 월지국 가지산에다 당료(黨僚)를 갖추고 법려(法侶 : 승려)들이 무리를 이루어 불림(佛林)의 별세계와 같은 사찰을 세워 보림사(寶林寺)라고 했다. 이어 중국에 들어가서도 월지국의 산과 같은 것을 얻어 범우(梵宇 : 사찰)를 지으니 그 규모와 모습의 정도가 월지국의 것과 같아서 산 이름은 가지산이요 사찰 이름은 보림사로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 원표가 서역(천축, 월지국)을 순례할 당시 인도(천축)나 월지국 등 서역이나 중국 그 어디에도 가지산(迦智山)은 없었다. 가지산이 인도나 중국에는 없었지만 동국(신라)에는 있었다. 그 동국의 가지산은 장흥의 가지산 외 경남 밀양·울주에 있는 가지산(迦智山)이었다. 그런데 중요한 점은 ‘보림사사적’ 연기설화에서도 가지산이라는 산이 본래부터 월지국이나 중국에 존치되어 있었던 산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다만 원표 대덕이 사찰을 짓고 그 산세, 산형에 의해 ‘가지산(迦智山)’이라는 산의 이름을 지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연기설화에서 가지산은 원래부터 그 현지(월지국이든 인도이든 중국이든)에 있었던 산이 아니고 사찰을 지을 만한 명산이어서 원표 대덕이 이름을 지어 그렇게 붙인 산 이름이었을 뿐이라는 사실이다.

‘가지산은 부처의 지혜가 머무른 산’

그렇다면 왜 가지산이었을까. 자의적((子意的)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다. 가지산(迦智山)에서 ‘가(迦)’는 범어의 ‘kya’로, 범어로 ‘sakyamuni’ 곧 ‘석가모니(釋迦牟尼)’의 ‘가(釋迦)’를, ‘지(智)’는 범어 ‘jnana’로 ‘번뇌를 끊는 지혜(智慧)’에서 따 온 말로 풀이된다. 그러므로 가지산(迦智山)은 ‘부처님이 머무르는 지혜의 산’이란 뜻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가지산(迦智山)이라는 산 이름을 차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가지산이 이처럼 자의적으로 해석될 수 있다면, 보림사(寶林寺)도 자의적으로도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또 서역에는 보림산은 있었지만 보림사가 있었다는 기록은 확인되지 않는다. 중국에는 물론 중국 조계산의 보림사를 비롯해 한두 개 정도의 보림사가 몇 개 있었을 테지만 그 어떤 보림사도 원표가 세웠다는 근거는 없다.

가지산의 보림사가 중국 보림사로부터 비롯됐다는 점을 고려하여 중국 조계산의 보림사부터 알아보자.

가지산과 달리 ‘보림사사적’에 등장하는 ‘보림사(寶林寺)’의 경우, 중국 보림사는 확실한 역사적 근거가 있다. 특히 조계산의 중국 보림사는 남종선과는 밀접한 관련이 있지만, 화엄종을 신봉하고 화엄사상을 전파하였던 원표 대덕과는 아무런 상관은 없다.

또 ‘서역에 보림산이 있었다’는 기록은 중국 보림사와 관련된 사료, 즉 《육조단경》에서 출전이 된다. (다만 여기사 언급된 ‘보림산’이 ‘보림사’도 의미하는 지는 확실시 않다. 다만 사찰과 관련된 표현이므로 보림산을 보림사로도 보는 듯하다.)

혜능은 조계산 보림사에 주석했을 뿐

조계산의 보림사는 오늘날에는 남화선사(南華禪寺)로 개명되어 중국의 유명한 고찰로 인정받는 고찰이다. 난화선사 이전의 당초의 보림사는 광동성(廣東省) 소관시 곡강현 조계산(曹溪山)에 위치해 있었다. 이 조계산에 보림사를 짓게 된 내력이 《육조단경》에 전해오는데 여기서 ‘서역의 보림산(사)’이 언급되고 있다.

“이 보림 도량은 역시 이보다 앞서 서국(인도)의 지약삼장(智藥三藏)이 남해로부터 와서 조계의 입구 부근을 지날 때, … “완연히 서천의 보림산과 같구나.”하며 그 곳에 사는 조후촌(曹侯村 : 조계산 일대에 사는 사람들) 사람들에게 “이 산에 절을 지으십시오. 170년 뒤에 마땅히 위 없는 법을 이곳에서 연설하고 교화하여 도를 얻는 자가 수풀과 같을 것이니 응당 ‘보림’이라 부르시오. 그때 소주 목사인 후경준이 그 말씀대로 임금에게 상주하니 임금이 그 청을 받아들여 ‘보림’이라는 현판을 하사하시어 절을 지었고 양나라 천감 삼년(503년)에 낙성하였다.

이후 광저우(廣州)에 있는 광효사(光孝寺 : 옛 이름 법성사)에서 삭발 수계 후 1년여 동안 법을 펴던 혜능 스님이 677년 이곳 조계산으로 자리를 옮긴 후 보림사에서 주석하며 37년간 남종선을 천하에 전파하였다. (혜능이 보림사를 창건한 게 아니고 주석했던 사찰이었을 뿐이고 이로써 조계산과 보림사는 선종의 대명사로서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던 것이다.)

이후 보림사는 705년에 ‘중흥사(中興寺)’로, 707년에 ‘법천사(法泉寺)’로 개명되었고, 968년 태조가 황명으로 사찰을 복원하고 ‘남화선사’라는 이름을 하사, 이후부터 ‘남화선사’로 불려오고 있다.

그런데 당대 동국(신라)에서 보림사는 체징 사후 헌강왕이 사액으로 하사하여 붙여진 사찰 이름이었다. 그리고 앞에서 소개한 중국의 대표적인 보림사는 선종 6조 혜능이 조계산 보림사에 주석하여 남종선의 총본산으로서 위상을 가졌던 사찰이었다. 대개 체징이 도의(道義), 염거(廉巨)에 이어 6조 혜능의 법맥을 이었으므로 체징이 주석한 사찰 이름을 보림사로 명명하였다고 알려져 오고 있는데, 이는 추정일 뿐이다. 사실(史實)은 보림사라고 하는 사액을 헌강왕이 하사했다는 것뿐이다. 왕이 하사한 사액 보림사에 대해서 그 어디에서도 중국 조계산의 보림사와 연관 짓는 사료는 없다.

‘사액 보림은 원표의 창시의 뜻 기리기 위한 것’

그런 이유에서 ‘보림사사적’ 연기설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체징이 열반 이후 왕이 하사한 사찰 명 ‘보림사(寶林寺)’에 대해서 부연 설명을 하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헌강왕이 부여한 사액寺額인) 보림사는 원래 원표 대덕 선사가 붙인 옛날 이름이어서, 그 당시에 (보림사) 창시의 말미를 표현한 것이다. …寺額曰寶林 盖寶林者 因元表大德禪師 所扁舊額 而表其當日創之由也”라고 한 부분이 그러하다. 다시 말해 헌강왕이 하사한 사액 보림사는 원래 원표 대덕 선사가 붙인 옛날 이름이었고 그 이름을 중요시하여 정명으로 보림사라고 하였다는 뜻이다 이와 유사한 해설은 또 있다. 《동사열전》에서도 “…사액(寺額)을 ‘보림(寶林)’으로 하도록 했다. 아마도 보림이라고 한 것은 원표 대덕의 옛날 편액을 그대로 이어받아 창건한 당시의 내역을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서 그랬던 것 같다. …寺額曰寶林。盖寶林者。因元表大德。所扁舊額。而表其當日創之(「之」下甲本正誤表有「之」)。由也。”고 표현했다.

그렇다면, 체징 사후에 사액으로 하사된 보림사는 중국 조계산 선종 보림사와는 무관한 사액일 수도 있었을 것이며, 당초에 보림사 연기설화의 표현대로 원표가 보림사라는 산문을 창건했다고 볼 수도 있다.

체징은 원표의 옛 산문에서 주석하여 선종의 사찰을 개창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체징은 주석한 이후 첫 번째 일으킨 불사가 화엄종의 주불인 비로자나불을 모신 것이었다.

얼핏 보아 선뜻 이해되는 일이 아니다. 왜 새로운 선종 사찰로 개창한 산문에서 화엄종의 주불을 모셨던 것일까. 이는 단순하게 볼 일이 아니다. ()와 선()의 공존, 또는 화엄종과 선종을 사상적으로 회통하려 했던 체징의 의지의 표현으로 볼 수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여기에 담긴 의미는 체징이 원표의 보림사(가지산사)의 창사 정신을 그대로 수용했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체징은 원표 때의 사찰 내 법당이며 여러 누각들을 그대로 활용했으며 심지어 건물 이름이며 용도까지도 그대로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원표가 가람의 수호신으로 모신 선아(仙娥)의 괴화당도 그대로 유지, 관리했을 것이다.

또 그런 이유에서 체징 사후 왕이 하사한 액호 보림사에 대해 동사열전에서 원표 대덕의 옛날 편액을 그대로 이어받아 창건한 당시의 내역을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서 그랬던 것 같다. 고 표현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원표의 행적을 기록한 중국 측의 자료에서는 원표는 천축·서역을 주유하고, 월지국(또는 우전국)에서 새로 편성된 80권 본 『화엄경』을 구했으며, 이 경을 가지고 중국으로 와 『화엄경』의 천관보살이 주처하는 남중국 복건성 지제산 나라 석굴에서 오랫동안 화엄 수행을 한 것으로 나온다. 특히 ‘송고승전’에는 원표가 ‘서역에 가서 불적에 예배했다.’라고만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또 원표의 입당동기를 당(唐)과 서역의 성지순례로 보기도 하며, 80화엄을 수학한 정도로 이해하기도 한다.

가지산 보림사=“부처님 지혜의 산이요,

그 보배가 숲을 이루는 사찰”

이런 이유로 보림사 연기설화에서처럼 원표가 월지국이나 중국에 보림사를 세웠다는 점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서역이야 그렇다 치고, 과연 중국에서 보림사를 창건하였다면 이곳에 주석하였을 텐데 실제로 그가 주석한 곳은 지제산의 석실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어떤 학자는, 역발산으로 원표가 보림사를 창건했다는 의견을 피력하기도 했다.

“원표가 중국으로 돌아온 후에 머물었던 장소는 지제산 나라암 동굴이다. 이 동굴에 세운 사찰은 나라사라고 한다. 그러나 지제산 나라사라는 명칭은 어디까지나 후세 사람에 의해 명명된 것이다. 어쩌면 원표는 중국에서 자신이 머물었던 장소를 오늘날 전해오는 명칭과 다르게 불렀을 수 있다. 달리 말하자면 원표가 지제산 나라사라고 부르지 않고 가지산 보림사라고 불렀을 가능성이다. 설령 원표가 중국 나라사를 보림사라고 부르지 않았다 하더라도, 사찰의 연기설화나 원표의 행적으로 미루어보아 최소한 원표의 마음 속에는 나라사가 중국 보림사였음이 확실시된다. 그리고 천축에도 (그런 점에서) 가지산 보림사가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므로 필자는 가지산의 의미 규명에서 가지산을 자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듯이, 가지산과 동시에 표기되는 보림사(寶林寺)도 자의적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고 여겨진다. 즉 보림(寶林)을 ‘보배의 숲’ ‘보물의 숲’으로 해석한다면, 이를 자의적인 의미의 가지산과 합쳐보면 ‘가지산 보림사’는 ‘부처님이 머무르는 지혜의 산’이요 보림사는 ‘(지혜의) 보배(보물)가 숲을 이루는 사찰’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원표의 ‘지제산’은 ‘부처님이 머무르는 지혜의 산’이요, 나라암 석실은 ‘그 지혜의 보물이 숲을 이루는 사찰’로 생각했을 수 있겠다는 것이다.

보림사의 사액이 이미 원표 때 있었고 그 보림사를 원표가 창건하였다고 하여도, 보림사의 3조 체징이 보림사를 구산선문(九山禪門)의 종찰로 일구어낸 그 업적이나 위상에는 하등 달라질 게 없다. 이미 보림사라는 사액은 그의 사후에 하사된 것이므로 생전의 체징에는 이때의 보림사가 중국 조계산 보림사와 상관이 없다고 해도 하등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액 보림사는 체징 사후에 명명되었음은 분명한 사실(史實)이기 때문이다.

이와 과련, 체징이 원표의 옛 사찰에 주석하면서 사액을 별도로 달았다는 근거도 없다. 그의 행적을 유일하게 밝혀주는 ‘보조선사창성탑비’를 보면 더욱 그렇다.

이처럼 인도의 보림산을 보림사로로 본다면, 보림사는 인도에도 있었고 중국에도 있었으니 흔히 보림사를 홍보하는 문구에서도 “인도의 보림사, 중국의 보림사와 함께 ‘동양의 3보림’으로 불렸다”라고 한다면 전혀 근거 없는 문구는 아닐 것이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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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희태최인선양기수최선일, 2020, 역주 보림사 중창기, ‘보림사사적기’, 장흥문화원, pp 311-324

2) 가지산(迦智山가지사(迦智寺) : 경남 밀양·울주군에 있는 산이 가지산이고, 가지산이 품고 있는 사찰이 가지사이다. 지금은 가지산, 가지사라고 불리운다. 가지사는 헌덕왕(809826) 때 한국에 최초로 남종선 도입한 도의국사(道義國師) 체징이 일찌기 영산 명지를 찾다가 이곳 가지산의 동남쪽 기슭에 법운지를 발견하고 터를 정한 뒤, 신라의 호국을 염원기도하기 위해 창건하였다고 한다. 이 가지사를 품고 있는 산은 가지산이다.

3) 절강성 운횡산(雲橫山)에도 보림사가 있었는데, 원래 양 대동 5(539)에 선혜대사가 세운 쌍림사는데 송영종 때 보림사로 개칭하였다고 한다. 재인용,“呂聖九元表生涯天冠菩薩信仰硏究’,國史館論叢 第48, 2012, p 214 (19).”

4) 조계산에서 조계(曹溪)’라는 지명의 연원은 아주 먼 옛날에 조조의 현손(玄孫)인 조숙량이 이곳과 멀지 않은 곳에 거주하였기에 마을 이름을 조후촌이라고 칭하며 조계(曺溪)’라고 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조계는 본래 시냇물을 가리키기도 하는데, 혜능선사의 등장으로 선종의 대명사로서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5) 玆菩林道場 亦先是西國智藥三藏 自南海 經曺溪口 菊水而飮 香美異之 謂其徒曰此水 與西天之水 無別 溪源上 必有勝地 堪爲蘭若, 隨流至源上 四顧 山水 回環 峯巒 寄秀 歎曰宛如西天寶林山也 乃謂曺侯村居民曰可於此山 建一梵刹 一百七十年後 當有無上法寶 於此演化 得道者 如林 宜號寶林. 時 韶州牧侯敬中 以其言 具表聞秦 上 可其請 賜寶林爲額 遂成梵宮 落成於梁天監三年. -©육조단경(六祖壇經)/六祖大師法寶壇經 略序.

6) 동사열전/1/보조선사.

7) 당시의 성지순례는 두타행을 수반하며 이를 통해 진리를 체득하고자 하는 수행방법이었다.

8) 재인용 : 呂聖九, ‘元表生涯天冠菩薩信仰硏究’, 國史館論叢 第48, 2012, p216 (20) : “金相鉉,‘新羅華嚴思想展開’(新羅華嚴思想史硏究, 민족사, 1991) p.151를 보면 원표의 천축과 중국의 보림사 창건을 의심하면서 단지 迦智山 寶林寺는 그가 순례한 바 있는 서역 및 중국의 가지산 보림사로부터 이식해 온 것이라고 하였다.”

9) 박현규, (20122), ‘福建 那羅岩碑記 와 신라승 元表 행적’, 新羅文化 第39, pp 169-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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