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5호 사설 - 장흥엔 유명 인물이 왜 그리 많느냐?
제225호 사설 - 장흥엔 유명 인물이 왜 그리 많느냐?
  • 김선욱
  • 승인 2024.06.19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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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세기 부사고을의 전통, 백두산 영기靈氣‧정기精氣도 장흥서 분출했다

서울에 들렸다. 보성 출신의 시인으로 오랜 지기(知己)였던 친구를 영풍문고에서 우연히 만났다. 우리는 밖으로 나와 식사 겸 술을 마셨다.

요즘의 정치 얘기에서 시작된 대화는 어쩌다 보성과 장흥에 대한 비교 얘기로 이어졌다. 친구는 율포 얘기부터 꺼냈다. 이순신 수군 재건로, 이순신과 안방준 얘기, 서편제, 녹차, 일림산까지…. 그리고 통일신라 이전엔 장흥이 보성 관활지역이었다느니, 회천 율포와 안양 수문리의 격차가 엄청난다느니 하며, 여러 면에서 보성이 땅도 더 넓고 인구도 더 많고 관광 문화도 더 웃길이어서 보성이 장흥보다 훨씬 낫다는 식이었다. 그 친구 말에 고개만 끄덕이며 듣고만 있다가, “서편제의 고향이라는 회천은 당대는 장흥부 관활로 본시 장흥 것이었다”, “이순신의 수군재건로 사업에서 회천 군학리가 군영구미가 된 데는 역사의 왜곡이 있었다” “서재필은 친일인사다, 의향이라고 자랑하면서 어찌 친일인사를 그리도 자랑하느냐” “일림산 최 정상은 장흥군 안양면 학송리 산1번지다. 보성이 지명위원회위원들한테 로비해 어거지로 뺏어간 게 아니냐? 주소는 시방도 학송리로 되어 있다.” 하는 식으로 그의 말에 반론을 제기했다. 그리고 인물론으로 이어졌는데, 그 점에선 친구도 장흥만의 독특한 인물론에 수긍을 했다.

“그 점에선 나도 인정하제. 장흥엔 인물이 많았제. 지금 국회의원도 니 명(4명)이나 되니... 문학인만 해도 한국 문학계에선 대표적인 거봉이라고 할 수 있는 이청준, 한승원, 송기숙, 이승우. 한승원 딸 한강 등등이 배출되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제.”하고.

무엇보다 그의 기세를 팍 죽인 것은, 그의 가장 아픈 부문인 광주민주화운동을 운운하면서였다. (당시 광주상고 재학 중이던 그의 남동생이 희생되었다.) 광주 민주화 운동의 전신인 장흥동학 혁명을 장흥이 주도했다는 얘기로 옮아가면서 그의 보성 자랑론을 침묵시켰음은 물론이었다.

장흥지역은 왜 인물의 배출이 많았을까. 필자는 그에게 보림사 창건에서 수호신 역할을 했던 유치 가지산의 성모천황의 전설과 백두산의 영기와 정기가 장흥에서 분출한 땅이라는 점 등의 장흥지역만의 독특한 산수(山水) 배경과 7세기 동안 부사고을이었다는 문화 역사적인 전통 등을 그 이유로 대충 설명했는데, 그는 부사고을이라는 사실에는 공감은 표했지만, 성모천황이며 백두산 영기 등은 다소 허황하다는 식으로 응대했다.

그래서 필자가 친구에게 말한 결론은, 고인돌 분포 수가 대한반도에서 가장 많았다는 사실로 미루어, 문명 이전 대한반도에서 장흥지역은 당대 원시인들에게는 삶의 경쟁력이 가장 우월한 땅이었다는 식으로 매조지었다.

‘백두산의 정기와 영기가 장흥에서 분출되었다’ 이는 생태학적으로는 결코 허황된 것만은 아니다.

대한반도에서 성산 백두산은 백두대간을 타고 내려와 호남부에서 호남정맥으로 분기되고, 그 호남정맥의 기운이 남해바다 앞까지 내려와 바닷가에 저립한 삼비산 정상에서 동쪽으로 틀어 보성 일림산을 거쳐 순천 백운산으로 흘러가 거기서 멈추게 된다.

백두대간-호남정맥으로 이어진 산줄기는 무등산에서부터 거의 남으로 직진하며 장흥 북동부인 장평면 북부 000까지 타고 내려왔지만, 장흥에서는 계속해서 남으로 직진하지 않고 몸을 북서로 틀어 유치북부까지 흘러들었다가 유치와 장평 경계지점에서 한 줄기는 유치 북서로 흘러 국사봉과 수인산이 분출한 땅끝지맥으로 흘러들고, 유치 장평 분기점에서 호남정맥의 본류는 다시 남으로 틀어 용두산까지 타 내렸다가 거기서 다시 동으로 방향을 틀어 작은산까지 흘러들고, 거기서 다시 남으로 방향을 틀어 사자산까지 흘러들었다가 사자산에서 한 산줄기는 천관산이 있는 천관지맥으로 흘러들어 용산 부용산과 천관산을 거쳐 대덕의 천태산까지 흘러들어 남해로 빠져들고, 사자산에서 본류인 호남정맥은 다시 동남으로 방향을 틀어 삼비산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백두산의 정기와 영기를 이어받은 한반도의 호남정맥이 장흥에 진입해서는 남으로 직진하지 않고 여기저기서 웅크리며 둥지를 틀었다가 고산을 분출시키고는 다시 이리저리 방향을 틀며 곳곳에 고산들을 분출시키니, 그 고산들이 바로 호남정맥상에서 분출된 500m 이상의 고산들로 17개에 이르고, 400m 이상의 고산들까지 합하면 무려 32개에 이를 정도가 된 것이다.

이처럼 한반도 등허리를 타고 내린 백두산의 정기‧영기가 한반도 최남단 장흥에서 분출한 것이 장흥의 고산들이고, 이 고산들이야말로 백두산의 그 영기‧정기가 장흥에 머무르며 분출했음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백두대간의 본류는 대반반도의 남부에서 멈춘 곳이 지리산이다. 그리고 지리산에서 분기된 정맥이 호남정맥이다. 왜 고대 한국인의 산신(山神)의 주체였던 성모천황이 지리산에서 자리했을까. 그 성모천황은 백두산에서부터 반도 최남단 지리산으로 이거해 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리산의 그 성모천황은 다시 호남정맥을 따라 장흥 가지산 일대까지 이거해 왔던 것이고, 그러한 성모천황이었기에 통일신라 때 가지산에서 개창한 보림사의 수호신도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고려 때 어찌하여 개성부에서 최남단으로 변방의 변방이나 다름없는 장흥지역에서 공예태후가 배출될 수 있었을까. 과히 기적 같은 일이 아닌가. 가지산 일대에 둥지를 틀었을 성모천황이 굳이 가지산에만 머물렀을까. 아니다. 장흥 남부 천관산까지 흘러갔을 것이다, 그리하여 지리산의 성모천황이 고려국의 국왕을 낳을 수 있었다면, 천관산의 성모천황은 공예태후를 비롯하여 고려조에 배출된 수많은 장흥의 인물들을 배출시켰을 것이며, 더 나아가 호남정맥을 따라 분기된 곳곳의 고산들에까지 영향을 미쳐, 장흥에서 수많은 명인명사와 위인들을 수없이 배출되는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인걸(人傑)은 지령(地靈)이니 어찌 명현달사(名賢達士)가 아니 나겠는가?” 이 말은 동학(東學)의 창시자 수운 최제우(崔濟愚) 선생의 ‘용담가’에 나오는 한글 가사의 한 구절이다. 여기서 ‘인걸(人傑)은 지령(地靈)이다’는 말은 인물은 땅의 기운이 조화를 이룬 터에서 태어난다는 뜻에 다름이 아니다. 즉 산천이 수려하고 지세가 빼어나서, 그 지기(地氣)를 띠고 태어난 그곳 주민들도 한결 뛰어나다는 의미인 것이다. 원 가사문은 “인걸(人傑)은 디령(地靈)이라 명현달ᄉᆞ(名賢達士) 아니ᄂᆞᆯ까(아니 날까)”이다. 여기서 명현달사((名賢達士)는 이름난 어진 사람과 사물에 정통한 사람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용담가』, ‘용담유사’)

이처럼 덕지(德地)‧복지(福地)로 불리울 정도로 산수(山水)가 수려한 장흥의 땅, 전남의 최남단부에서 유일하게 근 7세기 동안 부사고을로 입지했던 장흥의 그 전통의 역사에 그 수려한 산수·풍토의 정기(精氣)와 영기(靈氣)가 더해지면서, 장흥의 찬란한 역사적 전통이 맺어졌고, 그 터 위에서 그토록 많은 명인 명사들이며 위인(偉人)들이 대대로 배출될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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