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일본에서는 외로움을 피해서 스스로 감옥을 선택하는 노인들이 많다고 한다. 이해되는 일이다. 외로움에 갇혀 사는 노인들에게 차라리 감옥일지라도 감옥 안에서 여러 사람들과 어울리는 삶이 더 나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일 것이다.
이제는 ‘외로움’이나 ‘고독’이니 하는 말들이 엄연히 사회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영국 같은 선진국에서도 지난 2018년 1월 ‘외로움부’ 장관을 임명했고, 2021년 2월에는 일본에서도 ‘고독부’ 장관을 임명하기도 했다.
선진국에서는 이미 ‘외로움이라는 것도 개인적인 문제를 떠나 이제는 사회가 공유하고 안아야 할 사회적인 문제’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증거 해 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현실도 이와 하등 다를 것이 없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5년이 되면 국민 5명 중 1명이 65세 이상이 되는 초 고령화 사회에 진입하게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또, 2022년 기준으로 65세 이상 인구의 20.8%가 홀몸노인이다. 2050년이면 홀몸노인이 40%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한 국회의원실의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발생한 고독사의 43%가 홀몸노인이었고, 고독사한 홀몸노인의 80%가 경제적 빈곤에 시달린 것으로 나타났다.
홀몸노인의 고독사, 이제는 우리들의 사회문제로 급부상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노인들의 복지 혜택은 요즘의 거의 모든 지자체에서 할 만큼 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도 된다. 그런데 문제는 최소 70세 이상의 홀몸노인들의 경우에서, 경제적 지원의 문제를 떠나 다소나마 삶의 활력을 북돋을 수 있는 지원책 마련의 여하일 것이다.
굳이 반찬 제공이며 집안 정비나 수리며, 일자리 마련 같은 경제적인 차원의 지원책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인력의 차원에서 매일 매일이 번거롭다면. 최소 2,3일 간격으로 정기적으로 방문, 인사를 나누고 안부를 확인하는 정도에서 보살필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문제를 전적으로 지자체의 몫으로만 돌릴 수 없다. 엄청남 비용 때문에 실은즉 국가적으로 추진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막연히 지자체에서 손 놓고 보기만 해서도 안 될 것이다. 시골의 노인들, 홀몸노인도 그 해당 지자체의 중요한 인적 자원이기 때문이다.
읍면 별로 민간인을 대상으로 지원자를 선정하여 홀몸노인 방문 사업을 추진하면 더할 나위없는 시책이 될 수 있지만, 여기에는 관련 비용의 확보가 불투명하고 지자체에 그 책임의 몫을 전적으로 떠넘기는 셈이어서 바람직하지는 않다. 그도 아니라면, 지역 별(읍면단위 별)로 60세 미만의 건강한 봉사인을 회원으로 한 ‘민간인 자원봉사단체’를 설립시키고, 지자체에서 최소한의 교통비 정도만 지원해주며 민간 봉사인이 직접 독고 노인 방문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면 최선책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도 지자체의 비용가중이 문제가 될 수 있고, 더구나 민간인들이 순수한 자원 봉사인으로 참여를 낙관할 수가 없어 이 방법 역시 궁리에서 그칠 공산이 크다.
문제는 언제까지 우리가 노인들, 특히 홀몸노인의 고독 문제를 지켜보기만 해야 하느냐이다.
노인문제는 우리 모두에게 다가온 엄연한 현실이다, 홀몸노인의 문제 역시 갈수록 문제가 커질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현실이다.
아직은 단번에 단칼로 무우를 베듯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지만, 이제부터라도 지자체를 비롯해 지금 우리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이 문제를 공유하고 함께 해결해나갈 수 있도록 고민해야 할 것이다.
그러잖아도 요즘은, 미래의 불투명성이 우리를 세차게 압박하고 있다.
기후위기가 현실로 다가오면서 이전과 다른 걷잡을 수 없는 기록적인 천재(天災)가 거의 매일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형국이다. ‘지구촌 좌초’의 위기라는 절대위기의 와중에서도 인간의 욕심은 끝없이 커져가고, 국가적 이기주의에 사로잡힌 나머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도 종식을 모른 채 지속되면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전쟁사(戰爭死)를 안겨주고 있는 실정이다.
인간의 종생(終生)은 생명의 한 부분이다. 생명이 있어 필연적으로 맞이하는 게 종생(終生)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종생(終生)은 순리적(順理的)인 종생이어야 한다. 전쟁사(戰爭死), 기후(氣候死)(이상기후 폐해로 인한 사망), 교통사, 병사(病死), 급사(急死), 기아사(飢餓死), 살상사(殺傷死) 등으로 인한 종생은 순리사(順利死)가 아니다. 그러므로 순리사는 생명있는 자에겐 가장 큰 축복일 수 있다. 자기 생(生)을 다 영위하고 순리대로 생명의 끝인 종생에 이르게 되기 때문이다.
요즘에 예기지 않게 기후사와 고독사가 급증하고 있다.
이러한 종생 역시 순리사는 아니다. 기후사야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해도 고독사, 특히 홀몸노인의 고독사는 얼마든지 우리가 예방할 수 있다. 우리 모두 공동체로서 조금만 더 배려하고 조금만 더 이해하고 조금만 더 나누어 가지면서 조금만 공유(共有)의 인식으로 이 문제 해결에 나서면,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라도 우리 모두가 이 문제를 고민할 때인 것이다.
이번 추석 연휴는 5일간이다. 며칠 있으면 그 추석 명절이다. 시골의 홀몸노인들이 더욱 외로워질 때인 명절인 것이다.
젊은이들은 거의 다 해외로 나간다. 하다못해 제주도라도 여행을 떠난다. 젊은 사람들이 빠져나간 시골은 한적하다 못해 적막강산이 되기 쉽다.
그나마 추석 명절 쇤다고 서울서 내려온 젊은이들도 추석 다음 날이면 하나 둘 빠져나가고, 명절 다다음 날 쯤이면 시골은 사람 그림자 하나 구경하기가 힘들 정도가 된다. 이것이 요즘 명절 때의 시골이다. 바로 이런 때 진한 외로움이 홀몸노인들을 휩쌀 것이다
이런 추세는 요즘의 거의 모든 시골 마을들이 점점 붕괴되어가는 시점이어서 더욱 불가피한 일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그래서 더욱 시골의 활력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노인의 복지 수혜, 독거노인의 고독사의 대책, 노인들이 여생을 보다 질적으로 행복하게 영위해갈 수 있는 보다 효율적인 대책들을 우리 모두 보다 진진하게 고민할 때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