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재란과 장흥 지포전투(5)/초계변씨들의 시(詩) - 시문에 담긴 초계변씨들의 굳은 절의정신
▣정유재란과 장흥 지포전투(5)/초계변씨들의 시(詩) - 시문에 담긴 초계변씨들의 굳은 절의정신
  • 김선욱
  • 승인 2024.09.25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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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충절 가문... 기상, 시문(詩文)에 담겼다

김선욱/시인. 본지 편집위원

 

 

 

 

 

 

 

 

<지난호에 이어>

충정사(예전 금곡사)는 권율을 주벽으로 이치대첩에 참여하거나 나라에 공이 많은 선조들를 배향한 사당이다. 이 사당에서는 그동안 『금곡지』(『금곡사지』)에 대하여 3회의 중간 과정을 거쳤다. 금곡사의 역사서이기도 한 『금곡지』에는 금곡사의 연혁, 대첩비, 배향 인물, 배향 인물의 업적, 관련 인물의 시(詩) 등이 실려 있다.

더 구체적으로 보면, 1932년 목활자본으로 첫 번째로 발간한 『금곡지』(정운표 저, 금곡사 간)에는 장흥 출신 배향 인물인 의사(義士) 변국간·변홍주와 후인 변성규 시가 실렸다. 1934년 석판본으로 간행된 『금곡지』(정운표 편저, 홍문간 간)에는 의사 변국간·변홍달의 시가 실렸다. 또 1966년 신연활자본으로 간행된 『금곡사지』(안시로·문옥현 편저, 청우당 간)에는 의사 변국간·변홍달의 시가 실렸다.(관련 자료 변수남卞壽南 제공)

즉 3회에 걸쳐 중간된 『금곡지』(『금곡사지』)에는 변국간의 시 3수, 변홍주·변홍달 시 각각 1수 식 2수 그리고 추모시 성격의 후인 변성규의 시 1수 등 총 6수의 시가 실린 것이다. 그러므로 변씨 의사(義士)들의 시는 모두 5수로 이들 시에는 그들의 충절·절의 정신이 잘 나타나 있다.

금곡사에 배향된 초계변씨 의사 4인 및 변성규의 추모시까지 살펴 보자.

월산의 원운 月山軒原韻 | 변국간

일거에 먹구름을 쓸어버리니 밤기운이 활짝 열리고 / 一掃頑雲夜色開 /

차가운 달은 하늘에 우뚝하여 맷돌이 떠있는 듯하네 / 冰輪碾上海天嵬 /

바라는 바는 오직 저 달빛이 오랫동안 내 가슴에 비추어 / 願言長照心胸裏 /

하늘의 밝은 이치로 모든 물생 고루 비추고 싶구나 / 天理昭明物欲灰 /

©『금곡지』, 변국간 시/‘초계변씨대종회’ 역

*월산(月山) : 월산(月山)은 변국간의 호이다. 여기서 어둠은 왜구 침입으로 인해 빚어진 난세를 의미한다. 이 시는 2,3구의 “바라는 바는 오직 저 달빛이 오랫동안 내 가슴에 비추어 願言長照心胸裏 / 하늘의 밝은 이치로 모든 물생 고루 비추고 싶구나 天理昭明物欲灰”하는 시구에서 밝히듯이 ‘왜구로 인한 난세’를 평정하여 광풍제월(光風霽月)의 세상을 구현하겠다는 시인의 강한 의지가 표현되었다고 추정된다.

등과를 읊다 登科時吟 | 변국간

성조의 임금을 만나 글공부 하지 않음이 늘 부끄러워서 / 聖朝投筆愧無文

무과에 합격하여 이름 높아지는 것을 바라지 않았네 / 虎榜高名不願聞

어쩌다가 내 반생의 손에 붙들림을 당했지만/ 然且班生先獲我

뜻은 늘 만리 하늘 위에 있는 청운에 있었다오 / 志存萬里上靑雲

©『금곡지』, 변국간 시/‘초계변씨대종회’ 역

*반생(班生) : 반생(班生)은 서역을 30년 동안이나 진수(鎭守)하여 정원후(定遠侯)에 봉해진 후한(後漢) 때의 장군 반초(班超)를 가리킨다. 그런데 당초 반초는 붓을 잡고 베껴 쓰는 일을 하며 모친을 봉양하다가, “대장부라면 부개자(傅介子)나 장건(張騫)처럼 이역(異域)에 나가서라도 공을 세워 제후(諸侯)가 되어야 마땅하지, 어찌 붓만 잡고서 긴 세월을 그냥 보내서야 되겠는가.” 하고는 마침내 서역(西域)에 사신으로 나가 큰 공을 세우게 되었다고 한다. 이를 반생투필[班生投筆] 이라고 한다. (『후한서(後漢書)』 「반초전(班超傳)」)

이 시에서 시인은 아마 청운의 뜻을 품고 무과에 합격은 했지만, 문관이 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을을 가졌던 듯싶다. 그래서 반생(班生)을 끌어왔을 것이다. 그래서 반생이 가졌던 꿈(즉 붓만 잡고 긴 세월을 허송세월을 접고 이역으로 가 웅지를 펴겠다는 꿈)을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아직은 그 꿈이 저 멀리에 머물러 있다는 현실(‘만리 하늘 위에 있는 청운’)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전라병영에 부임하며 읊다 再臨全羅兵營吟 | 변국간

팔곤의 으뜸인 칠도 장수를 내리는 윤음인지라 / 七授綸音八閫藩

살아서 임금 은혜 보답할 계획이 없으니 참으로 부끄러워라 / 生慚無計報天恩

만세토록 태평하길 마음 깊이 비노니 / 太平萬歲中心祝

군사들과 이속들은 북 치고 피리 불며 기뻐 환호하네 / 軍吏懽欣鼓角喧

©『금곡지』, 변국간 시/‘초계변씨대종회’ 역

이 시는, 시인이 강진 병영에 있는 전라병영 병사(兵使)로 재임하며 읊은 시다.

병사로서 소임을 다하여 나라를 태평하게 하여 임금의 은혜에 보답하겠다는 간절한 시인의 심사가 잘 드러나 있는 시다. 이 시로 우리는 변공이 충절의 용장(勇將)이요 덕장(德將)이었음을 추정할 수 있게 된다.

창의를 하며 倡義吟 | 변홍달

의병을 일으킬 때 문기방에게 준 시 / 倡義時贈文紀方

백 번 단련된 마음은 확고하여 변함이 없고 / 百鍊肝腸固

십 년 동안 갈아온 칼은 날카롭기만 하네 / 十年雪劒磨

궁도로서 우리네 가문 여기에 끝나지지 않으니 / 弓刀餘事業

평생 보전해야 할 일은 오로지 충효뿐이지 않는가? / 忠孝舊傳家

©『금곡지』, 변홍달 시/‘초계변씨대종회’ 역

*문기방(文紀方, ?∼1597) : 본관은 남평(南平). 자는 중률(仲律). 장흥 출신의 의병장으로 변홍달·변홍주 등 장흥의 초계변씨들과 함께 이치 전투에 참전했던 인물이다. 고려 강성군(江城君) 문익점(文益漸)의 후손이다. 어릴 때부터 남달리 무예에 뛰어나 자칭 장군이라 하였다. 1591년(선조 24) 무과에 급제하여 수문장이 되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전라병사 이복남(李福男)의 휘하에서 활약하였다. 1597년 재침한 왜적들과 남원에서 싸우다가 몇 겹으로 포위되자, 옷소매에 혈서하고 격전 끝에 이복남과 함께 전사하였다. 남원의 충렬사(忠烈祠)에 배향되었다.

이 시 역시 국란을 맞아 창의하게 된 시인의 충절에 대한 강한 의지가 잘 표현되어 있는 절창의 시다. “십 년 동안 갈고 닦아온 칼은 날카롭기만 하네 十年雪劒磨 / 궁도로 우리네 가문 여기에 끝나지 않으니 弓刀餘事業 / 평생 보전해야 할 일은 오로지 충효뿐이지 않는가? 忠孝舊傳家.”라는 시구가 감동적이다.

창의를 하며 읊다 倡義吟 | 변홍주

우리나라에 요기가 침범하여 하늘을 가리어 음기가 성행하니 / 東來妖氣蔽天陰

뜻있는 선비가 적에 대한 의분을 품음은 당연한 일이네 / 志士堂堂敵愾心

만일의 사태에 철저히 대비했건만 상황은 갈수록 급박하니 / 矛淅劒炊時事及

변씨 일문이 함께 나라에 충성할 것을 맹서함이 천금과도 같구나 /一家約誓賭千金

©『금곡지』, 변홍주 시/‘초계변씨대종회’ 역

*모석검취(矛淅劒炊) : 창끝으로 쌀을 일고 칼끝으로 불을 땐다(矛頭淅米劍頭炊)는 말을 줄인 것으로, 만일에 대비하여 소홀함이 없이 함을 뜻한다. “남군공(南郡公) 환현(桓玄)과 고개지(顧愷之), 형주자사 은중감(殷仲堪)이 이야기를 나누다가 …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환현은 ‘전장의 한 복판에서 밥을 짓는 것(矛頭淅米劍頭炊)’이라고 했고 은중감은 ‘백 살 먹은 노인이 나뭇가지에 오르는 행위(百歲老翁攀枯枝)’라고 했으며, 고개지는 ‘우물 속 두레박에 아기를 눕히는 행동(井上轆轤臥嬰兒)’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은중감의 한 군인이 위험한 순간은 ‘장님이 외눈박이 말을 타고 캄캄한 연못가를 달리는(盲人騎瞎馬, 夜半臨深池)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마침 한쪽 눈을 다친 은중감이 맞장구를 쳤다.”

(©유의경(劉義慶 403년-444) 「세설신어(世說新語)·배조(排調)」)

이 시에서 결구(4구)인 “변씨 일문이 함께 나라에 충성할 것을 맹서함이 천금과도 같구나 一家約誓賭千金”라는 구절에서 장흥의 변씨 일문이 임진란과 정유재란의 국난을 맞아 일어선 그 충절에 대한 배경을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금곡사 이름에 붙이며 金谷祠題詠 | 변성규

아! 높구나 진남주에 있는 금곡사여 / 巋然祠屋鎭南州

추모하고 그리워하는 마음에 눈물이 자꾸 나네 / 追慕羹墻淚不收

대의의 당당함이 어제의 해와 같고 / 大義堂堂如昨日

영예로운 이름은 늠름하기가 천추에 / 짝하네 英名凜凜互千秋

굳게 지킨 그 지조는 소나무가 늦게까지 푸름과 같고 / 堅守其操松晩翠

나랏일은 물이 동쪽으로 흘러가는 것과 같은데 / 朝宗于海水東流

선생이 가신 후 지금은 어느 때인고 / 先生去後今何世

풍진이 눈에 가득하여 시름만 몰고오네 / 滿目風塵摠入愁

©『금곡지』, 변성규 시/‘초계변씨대종회’ 역

이 시는 시인 후인 변성규(卞晟奎, 호 죽헌竹軒)가 금곡사를 찾아와 변씨 선인들을 배향하고 지은 추모시로 여겨진다. 시인은 선인의 당당한 그 절의 정신이 소나무가 늦게까지 푸르러진 것처럼 청사에 빛나고 있기는 하지만 그러한 절의정신이 크게 현창되지 못하고 있어 안타까워한다는 심사를 잘 표현한 것으로 느껴진다. (죽헌 변성규가 어느 때 사람이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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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변수남(卞壽男, 1969) : 보성 출신으로 동국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했으며, 현재 목포 흥일중하교 교사로 재임 중이다. 변씨 관련 글을 마노이 집필하고 있으며, 저서로 소설 충무공 이순신 어마니 변덕현(주식회사 부크크, 2017)의 저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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