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한담 12- 소등섬 일출
■장흥한담 12- 소등섬 일출
  • 정남진 장흥신문
  • 승인 2018.12.26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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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용수 / 시인·수필가

어둠은 맹목적으로 순응을 요구한다.

누구도 농담 짙은 어둠 앞에 자연스러울 수 없다. 그래서 어둠은 비워둔 가슴으로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 밝아지는 햇살에 사라지는 것일까. 산자락을 지나온 새벽바람이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는 해안을 따라 호젓한 길을 따라 흐르고, 어둠이 걷히며 마중 나온 산새가 반갑게 맞아주는 길 끝에는 풋풋한 갯바람이 그리웁거나 마음의 흐름이 불완전 할 때, 그리고 내안에 머문 집착의 끈이 조여 올 때, 가고 싶은 장흥군 용산면 남포마을 소등섬이 바다에 잠방거린다.

먼바다에 고기잡이를 나간 남편을 위해 호롱불 켜놓고 무사 귀환을 빌었다는 소등섬 할머니. 섬을 보호하고 연인들의 간절한 소원을 들어주기 위하여 바다의 용이 승천하지 않고 섬 주변을 휘감고 영원히 머물러 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소등섬에 쓸쓸하게 들어오는 풍경이 아려온다. 물때에 맞춰 살아가는 사람들은 물결 부딪치는 소리에 잠을 깨고 일어나 노송의 움직임을 바라보며 오늘 하루의 노고를 이미 짐작하였으리라. 일출에 물들어가는 아름다운 새날. 결박해오는 추위와 아슴아슴한 정신을 도닥거리며 여명(黎明)을 기다릴 때, 장구한 세월 격렬하게 빗어낸 섬 하나가 우리나라 3대 해돋이며 영화 축제가 왁자지껄 묻혀있는 마을이다.

“사람들은 나이가 먹으며 키가 커진다고 했는데 할머니는 나이가 드실수록 왜 작아지는 거야 ?”

“ 응, 그건 말이다. 나이를 너에게 나눠주고 그 나이와 함께 키까지 나눠주시기 때문이지, 그리고 지혜도 함께 나눠 주시고 나면, 하얀 나비로 우리 곁을 떠나시게 된단다.”

준섭(안성기)과 딸의 대화가 바람 한 가닥에 여물었던 축제의 기억을 더듬는다. 시골 노모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은 작가 준섭이 시골로 내려오자, 시집와서 지금까지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아온 준섭 형수는 자신의 설움을 토해내며 장례는 시작된다. 5년 전부터 치매를 앓아온 노모의 죽음에 문상객들의 표정은 슬퍼함보다는 호상이라는 인식 속에 웃음이 묻어나고, 상주는 문상객을 맞이할 준비에 바쁘기만 한데, 13년 전 집 돈을 훔쳐 달아난 준섭 이복조카 용순(오정혜)이 나타나자 가족 내면에 숨겨진 갈등은 표면화된다. 장례가 치러지는 밤. 여기저기 노름판과 윷놀이 중 싸우는 사람들. 장례의 어수선함 속에서도 준섭은 구슬픈 초경 소리를 들으며 어머니의 삶을 더듬다가 섦은 눈물을 흘리고, 할머니를 모시지 않은 삼촌 준섭을 원망하던 용순에게 장혜림은 준섭이 쓴 동화를 건네면서 그 안에 빗새 이야기가 나온다며 아마도 그 빗새가 용순씨인 것 같다는 말도 함께 전한다. 동화를 읽으며 용순의 증오는 조금씩 녹아내리고, 장례를 마치고 용순은 가족 속으로 들어가 함께 가족사진을 찍으면서 축제는 끝난다. 잊혀진 남도의 장례문화가 오롯이 재현되었던 영화 축제는 1993년 한국영화 100만 관객을 돌파했던 임권택 감독의 연출작이다.

바람 한 자락에 온몸을 털어내는 소등섬 푸른 나무는 구슬픈 상엿소리와 오방색 만장을 펄럭이고 꽃상여 타고 떠난 어머니를 기억하고 있으리라.

소등섬을 기대어 작은 목선 하나가 오늘도 변함없이 갯마을의 한량없는 노동을 요구하고 있다. 푸석거리는 석화 껍질은 휘어진 어머니의 허리춤과 갈퀴 발이 되어버린 아린 손가락만큼이나 모질게 살아온 세월이 촘촘히 쌓여있는 산머리로 먹구름을 그을리며 떠오르는 일출 앞에서 상처 난 마음 다독이며 갈망보다 더 진한 간절함으로 한해를 살아갈 일상과 가치를 뱉어낸다.

어둠을 밀어내는 위대함에

우리 모두의 소원을 밀어 넣어주소서

그리하여 밝아오는 빛으로

어리석음의 혼돈을 털어내게 하시고

 

깊고 붉어진 바다에

갈급(渴急)하는 마음과

 탐욕과 집착으로 더럽혀진

묶은 때를 벗게 하소서

 

 옹골차게 떠오르는 새날 소망하오니

가난한 사람들의 간절함이

배어있는 소등섬을 깨워

삼백예순날 맑고 향기로움이 시들지 않는

상록(常祿)이 되게 하소서

그리하여

설렘만으로도 충만해지는

하루를 주시고

비워낸 만큼 충만되는

한해가 되게 하소서

<유용수 시인 소등섬 일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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