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반통신5 - 느린 세상 만들기
■호반통신5 - 느린 세상 만들기
  • 장흥투데이
  • 승인 2019.01.24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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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산월

아침이 항상 늦는 나에게는 안단테가 제격이다. 그러기에 난 행사가 끝난 부패 식사에서도 늘 진양조로 다가간다. 바쁜 사람 먼저 먹고 가라는 것이다. 하나도 잘못이 없다.

그것 보라지. 서두는 놈 전대 놓고 장에 가고, 성급한 놈 밥값 먼저 낸다. 아니다. 술값도 먼저 낸다. 내게 아무 손해가 없으니 뒤로 물러서기다. 파룬궁(法輪功)의 느린 동작이 비생산적이라지만, 심신의 건강을 위해선 그보다 좋은 기공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 분명한 것은. 빠름(바쁨)에서 얻어지는 행복과 느림에서 얻어지는 행복은 누가 보아도 비교가 되지 않는다. 자동차가 규정 속도로 가게 되면 연비와 안전성은 좋지만, 흐름을 방해한다나 어쩐다나.

어찌되었건, 밤 늦게 천천히 잠자리에 드는 나는 그저 행복하기 만하다. 남들이 잠으로 허비해 버리는 시간을 나는 금쪽같이 할용하고 있음이다. 이를테면, 늦은 시간까지 텔레비전의 교양 프로를 본다든가, 아니면 독서와 시상으로 평화로운 시간을 붙들어 해먹(요람)에 오르는 것이다. 누가 있어 나의 밤을 방해하랴. 혹여, 어린 아이가 울거든 안고서 무동을 태우면 대개는 그친다. 이유는 양수(羊水)에 있다. 아기는 엄마 뱃속의 양수에서 흔들릴 때가 요람이요. 가장 편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다. 우리가 성년이 되어서도 전철이나 고속버스 내에서 자꾸만 잠이 오는 것은 그 버릇이 여든까지 가기 때문이다. 여자가 수태를 하게 되면 입덧을 하는 것도 다 이유가 있다. 초기 인체의 각 기관이 형성될 때에 외부로부터 독소가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함이라고 한다. 이를 모르고 한사코 못 먹어서 걱정 말라는 것이다. 느슨하게 기다리면 해결이 되는 일이다.

예전에 ‘느림의 미학’이라는 졸필을 지역신문에 실었더니만 어느 분께서 우둔한 나의 설득력을 지적해 주었다. 안 그래도 부진한 장흥의 발전을 우려하는 판에 무슨 엉뚱한 느린 세상 만들기냐는 핀잔이었다. 송구스럽기 그지없었다. 세상 물정 모르는 서생이 함부로 논할 주제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 고개 숙일 수 없었던 것은, 건강한 세상 만들기 위한 나의 의지를 접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차라리 평화와 행복을 위한 밑그림을 어설프게 그렸다고 하면 승복하겠다. 불녕한 나의 역량을 감출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내 자신이 무지렁이로서니 만인에게 합당한 메시지를 줄 수는 없다. 더 심하게 말한다면, 천국이 싫다는 데야 하나님도 어찌할 수 없다고 하지 않던가.

자, 흥분을 멈추고 이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자꾸만 욕망을 채우는 일로 행복해지려는 사람과 한사코 욕망을 버림으로써 행복해지려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어느 길이 더 쉬울까. 어느 쪽이 더 지혜로울까. 어느 편이 만인의 시선에서 더 자유로울까. 그래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약이 없다. 약이 없으면 잠이나 자는 게 옳다. 늘어지게 실컷 자고 일어나면 에너지가 만당 충전되어 욱일승천하게 될 테니까 말이다. 현대인은 왠지 바쁘다. 바쁘지 않음 무능해 보이는 것일까. 작금의 대열에서 낙오될까 봐 그러는 것일까. 아니면, 자꾸만 뒤처지는 무력의 조바심일까. 그렇다면 묻겠다. 그토록 달려가 닿은 곳이 어디인가. 달려간 그곳에 행복이 도사리고 있던가. 행여, 놀란 평화가 더 멀리 달아나지는 않던가. 아니면, 우리 이렇게 하자. 집까지 등에 지고 다니며 아무도 해하지 않는 달팽이의 평화를 배우는 거다. 빨리빨리를 느슨함으로 갈아입고서 솜털 같이 부드럽고 따뜻한 마음, 낙천적 유머와 해학으로 엔돌핀을 확충해 평화와 행복이 꼬리치며 달려오도록 하는 거다.

그래, 카프치노 커피향이 은은한 카페의 모퉁이 조그만 공간에서 사랑의 밀어를 나누어 보자. 짙은 화장으로 회칠하고서 선글라스에 시선까지 가두어 자유 잃은 노예선에 끌려가는 여자는 불쌍하다. 괴물 같은 아파트 밑 달리는 흉기에 몸을 싣고서 자본주의의 줄자와 저울에 삶을 재단하는 사내도 불쌍하다. 정말이지, 은은한 불빛 새어나오는 조그만 카페에서 느긋한 대화에 취해 볼 일이다. 사철 온갖 맛있는 음식을 다 맛볼 수 있는 축복받은 땅에서 생을 재단하는 눈금 숭숭 뚫린 자를 들고서 그냥 웃어 넘기기다. 행여 이웃에 고통받는 자 있거든 졸지 말고 기도하기다. 모름지기 향유하는 기쁨이 소유하는 기쁨보다 훨씬 값진 것을 알기에 천천히 걷기다. 삶에 불평 아니 하고 미움의 씨도 뿌리지 않으며, 탐욕 같은 건 거세해 버리고서 더딘 걸음 옮기기다. 이제 덜 가진 자의 행복을 알았다면 느린 세상 입성하는 자의 기쁨도 알았으면 좋겠다.

무지렁이면 어떤가. 짜장 무녀리면 어떤가. 하늘 아래 맨발의 가난쯤은 너무도 당당해서 세상 악취를 덮고도 남을 만큼 눈 부시면 그만이다. 한 치의 부끄러움도 없이 열선조 앞에 천천히 걸어 가까이 가기다. 저 하늘이 저토록 푸르른 것은 푸른 빛의 눈빛만을 거두어 두기 때문이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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