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의 역사산책 15-장흥의 다방과 카페(상)
■장흥의 역사산책 15-장흥의 다방과 카페(상)
  • 장흥투데이
  • 승인 2019.02.23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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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사회가 되며 남녀가 공히 산업현장에서 일하며 생계를 꾸리다 보니 아예 사람들이 만남의 편익을 위한 장소를 제공하는 업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그곳이 곧 다방(茶房)이고 카페(cafe)이며 찻집이다.…옛날 우리 선조들에게도 오늘날처럼 사업하는 사람들이 출입하던 곳으로 객주집이나 주막이 있었다. 그러나 그곳은 만남의 장소만을 제공하는 곳이 아니라 숙식을 동시에 제공하였다.”

양기수/시인, 수필가, 본지논설위원, 장흥향토사학회장

전 근대시대 우리의 선조들은 조금은 번거롭지만 만나고자 하는 사람이 있으면 집으로 찾아 가거나 초대하여 만났다. 그때는 반듯이 다과상이나 주안상을 놓고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우리의 생활이 복잡해지고 각자의 삶에 여유가 없어져 서로가 예를 갖추어 뵙고 맞는 문화가 사라지게 되었지 않나 생각된다. 특히 산업사회가 되어 남녀가 공히 산업현장에서 일하며 생계를 꾸리다 보니 아예 사람들이 만남의 편익을 위한 장소를 제공하는 업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그곳이 곧 다방(茶房)이고 카페(cafe)이며 찻집이다. 물론 옛날 우리 선조들에게도 오늘날처럼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출입하던 곳으로 객주집이나 주막이 있었다. 그러나 그곳은 만남의 장소만을 제공하는 곳이 아니라 숙식을 동시에 제공하였다. 이 또한 시대의 변화로 식사와 주류음료를 제공하는 곳은 요식업으로 바뀌었고, 잠자리를 제공하는 곳은 여인숙이나 여관이라는 이름으로 나뉘어져 변천되었다.

요즘처럼 청량음료와 만남의 자리만을 제공하는 곳은 없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우리는 다방이라는 곳에서 사람을 만나고, 사업 얘기를 하고, 무료한 시간을 보내는 장소가 되는 곳을 출입하게 되었다. 그런데 요즘은 이 다방마저 점차 사라지고 있고, 새로운 만남의 장소가 카페나 찻집이라는 이름으로 영업을 하고 있다.

그럼 다방(茶房)이란 말이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언제였을까? ‘차를 마시는 공간’에 대한 기억을 한국의 차 문화 연구자들은 이미 고조선 시대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하나 역사학계에서는 삼국시대로 추정하고 있다. 이는 차에 대한 생활유적으로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에 소재한 '한송정(寒松亭)'에 남아있는 차 우물(茶泉=茶井 )과 돌 아궁이(石竈) 돌절구(石臼) 등이 이를 뒷받침하기 때문이다. 7세기 중엽에 세워진 것으로 알려진 '한송정(寒松亭)'은 당시 화랑들의 다원으로 우리나라 다원 중에서 가장 오래된 유물로 알려지고 있다. 또한 유적으로 통일신라시대 있었다는 '다연원(茶淵院)'이다. 이곳은 연못을 내다보면서 운치 있게 차를 마실 수 있는 곳으로 신라 초창기 왕궁 터로 알려진 경주 창림사 터(昌林寺址)에서 ‘다연원’의 기와 조각이 1968년 발굴되어 학계에 관심을 끌었었다.

그러나 ‘다방(茶房)’이라는 용어는 고려시대에 처음 등장한다. 다사(茶事)와 주과(酒果) 등의 나랏일을 주관하는 국가 기관(官司)으로 ‘다방’이었다. 이 시절 장흥도호부에는 차를 재배하고 생산하는 수태소(守太所), 거개소(居開所) 등 13개소의 다소(茶所)가 있었던 것으로 기록이 보이나 차를 마시는 공간에 대한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고려시대에는 중앙과 지방 각 관아에 차모(茶母)가 배치되어 있었다. 그들이 다담상(茶啖床)을 정성스럽게 내놓게 되자 고려의 차가게인 다점(茶店)이 존재가치를 잃어 소멸되고 말았다고 전한다. 이렇게 관아에서 손님을 맞아 다담상을 차려 내는 관습은 지금까지 민가에도 전해져 손님을 맞을 때면 으레 다과상을 놓는 우리문화로 자리 잡았다. 물론 다담상을 차리는 기준은 각 가정의 살림형편에 알맞은 정도였다.

다방(茶房)은 조선시대에도 존속되었다. 조선시대는 이조(吏曹) 소속의 기관으로, 주로 '다례(茶禮)'라는 명목으로 외국 사신들의 접대를 맡았던 곳을 ‘다방’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사헌부 관리들이 차를 즐겨 마심으로써 “다시(茶時: 차 마시는 시간)”라는 관용어가 생겨나기도 하였다한다. 그러나 이는 우리가 아는 지금의 다방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사람들이 자유롭게 출입하며 정보를 교환하는 장소로서의 지금과 같은 다방은 언제 등장하였을까? 이는 개화의 물결을 타고 커피와 홍차 등이 보급되면서부터 다방이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요컨대, 다방의 역사는 바로 커피의 역사와 그 시작을 같이 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럼 우리나라 사람으로서 커피를 맨 먼저 마신 사람은 누구일까? 우리나라 사람으로 맨 먼저 커피를 마신 사람은 고종 황제로 알려지고 있다. 고종황제가 1896년 아관파천 때 러시아 공사관(公使館)으로 거처를 옮겨 머물렀을 때, 러시아 공사 웨베르(Karl. Waeber)가 건네준 커피가 최초로 마신 커피라고 전해진다. 고종이 커피를 즐겨마시자 당시 사람들은 커피를 서양에서 들어온 국물이라며 ‘양탕(洋湯)’ 또는 ‘가배차’ ‘가비차(加比茶)’라 불렀다 한다. 덕수궁으로 돌아온 고종은 ‘정관헌(靜觀軒)’이라는 서양식 건물을 지어놓고 여기서 서양음악을 들으며 커피를 마시곤 했다 전한다. 그러나 ‘정관헌’은 고종이 다과를 들거나 연회를 열고 음악을 감상할 목적으로 만든 공간이지 커피를 파는 곳은 아니었다.

개항 후, 우리나라에서 커피를 팔았던 곳은 개항 직후에 일본 나카사키(長崎) 출신인 ‘호리 리키타로(堀力太郞)’가 1888년 인천에 설립한 ‘대불호텔’이다. 경인선이 개통되기 전까지 서울로 가려는 사람들이 인천에서 하루 묵어가면서 인천에는 숙박업이 성행하였다. 배제학당(培材學堂)을 세운 ‘헨리 거하드 아펜젤러(Henny Gerhard Appenzeller, 1858~1902) 미국 감리교 선교사가 묵었다는 대불호텔은 최초의 서양식 호텔로 서양 음식과 더불어 커피를 맛볼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런가 하면, 서울에서는 러시아 공사 ‘웨베르(Karl Wae-ber)’의 처형인 손탁(孫澤, Antoinette Sontag, 1854~1925?)이 1898년 3월 16일에 고종황제로부터 ‘수옥헌(潄玉軒, 정동 27번지 소재)’을 하사받아 실내장식을 서구식으로 꾸민 후, ‘손탁빈관(孫澤賓館)’으로 영업을 개시하다가 방 다섯 개의 양관은 호텔 영업을 하기에는 너무 협소하므로, 손탁은 1895년에 이미 하사받은 정동 29번지 소재(현 이화여고)의 사저(私邸) 1,184평을 철거하고, 1902년 그 자리에 2층 양관으로 호텔을 지어 이를 ‘손탁호텔’이라 이름하고, 거기에 호텔식 다방을 선보였다. 이곳의 출입하며 커피를 즐기는 사람들은 주로 민영환(閔泳煥), 윤치호(尹致昊) 이상재(李商在) 서재필(徐載弼) 등과 미국공사 실(Sill,J,M,B), 프랑스 영사 플랑시(Plancy,C,de) 한국정부의 고문으로 초빙 된 다이(Dye,W.M) 등으로 구성 된 ‘정동구락부(貞洞俱樂部)’ 회원들로 특권층이었다. 이 때문에 커피는 대중들에게 크게 입소문을 타 많은 국민들에게 크게 알려지게 되었다.

이후 일본이나 서구로 유학을 다녀 온 지식인들이 나름의 문화권이 형성되면서 일반들의 다방 출입이 잦아지게 되었다. 이른바 일본인이 서울 명동에 ‘후다미(二見)’라는 다방과 충무로에 ‘금강산 다방’ 개업을 하면서 일반인들의 출입이 본격화 되었다. 특히 ‘후타미 다방’은 식당과 겸업이 아닌 다방을 전업으로 운영하여 근대적 다방의 원조가 되었다. 그 후 1933년도에 소설가 이상(李箱)이 ‘제비’라는 상호의 다방을 개업하자 연극영화인이나 화가, 문학인들이 다방을 개업하여 직접 경영하면서 예술인의 모임 장소로 활기를 띠다가 해방 이후 명동에 음악다방이 생기면서 서민들도 커피를 가까이 하는 계기가 되었는가 하면, 한국전쟁 때 미군들의 군수 보급품이 인스턴트커피가 시중에 유통되면서 커피의 대중화가 시작되었다.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친 다방은 크게 상업화 되면서 각 시군에까지 확대되어 우리의 부족한 문화시설을 보충하는 역할을 하였는가 하면 고등실업자들의 휴게실 역할도 하게 되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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