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임진란의 영웅, 반곡 선생의 현창사업이 절실하다
■사설-임진란의 영웅, 반곡 선생의 현창사업이 절실하다
  • 김선욱
  • 승인 2019.03.02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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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군이 손놓고 잇는 사이 보성이 반곡을 뺏아가고 있다
반곡 정경달 선생을 제사해온 장동면 반산리의 사당 반계사
반곡 정경달 선생을 제사해온 장동면 반산리의 사당 반계사

임란 때 경상도 금오산에서 적을 크게 물리쳤던 인물.

1594년에는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의 종사관이 되어 가장 큰 공을 세웠던 인물.

이순신이 투옥되었을 때 왕에게 나아가 “전쟁에 나가 싸움을 미루는 것은 병가의 승책(勝策)인데, 어찌 적세를 살피고 싸움을 주저한다 하여 죄로 돌릴 수 있겠습니까?” “왕께서 이 사람을 죽이면 나라가 망합니다”며 충무공의 석방을 강력히 주장하였던 인물. 이 분이 바로 장흥 출신의 임진란의 영웅 반곡(盤谷) 정경달(丁景達) 선생이다.

반곡 선생이 정작 출신지 장흥에서 철저히 외면 받고 있을 때, 인근의 보성군이 반곡 선생에 대한 조명사업을 활발히 펼치며, 마치 반곡 선생이 보성 출신인 것으로 착각하게 만들었다. 선생의 후인인 장흥 사람들에게 참으로 낯을 들 수 없게 만드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장흥군은 장흥 출신의 위인이요 임진란의 영웅인 반곡 선생에 대한 학술대회 한 번 개최하지 못했을 때, 보성군은 지난 2012년 8월 23일, 보성문화원과 서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와 공동으로 보성문화원 강당에서 ‘호남 지역사와 문화연구’ 라는 주제의 ‘학술토론회’를 열었는데, 제1 섹션의 주제 발표가 조선대 김경숙 교수(역사학)의 ‘임진왜란과 정경달 형제의 활동’이었다.

또 반곡 선생의 ‘난중일기’를 중심으로 ‘반곡 정경달 시문집(1,2권)’이 보성군의 지원으로 한글 번역이 추진되기도 했다. 즉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이 보성군으로부터 번역 발간비 2천만원을 지원받아 지난 2017년 6월 10일 펴낸 ‘반곡 정경달 시문집(1,2권)’이 그것이다.

실인즉 이것 이상 장흥인을 수치스럽게 만드는 일이 또 있을 것인가.

그뿐이 아니다. 장흥에서 반곡 선생의 ‘난중일기’ 번역을 시도조차 못했을 때인 지난 2016년 에는 ‘반곡 난중일기(상)(하)’라는 책자 2권이 가 전남대학교 신해진 교수 번역으로 출판사 ‘보고사’에서 발간되기도 했다.

반곡에 대한 조명사업도 마찬가지다. 경북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에 위치한 ‘영남유교문화진흥원’은 구미시의 보물 창고다.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는 이곳에 구미시가 유교문화의 메카로 조성한 것이다. 전통문화 계승과 보급을 위해 유교에 걸맞게 순수 전통 한옥으로 된 20여 동의 전시관과 각종 기념관 등을 건립했는데 그 부지만도 자그만치 20만 평에 5백억이 투입된 대규모 유교 문화공간이다. 이곳에는 임란 때의 선산 부사 정경달을 주신으로 하여 임진·병자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했던 영남의 위인 20여 명의 위패를 모신 대규모 서원도 조성했다. 그런데 바로 이 대 서원 앞 큰 석비에는 ‘선산부사 정경달을 주신으로 모신다‘는 안내 글이 있다. 유교문화 메카인 영남의 구미시에서는 이순신 장군도 아니고 다른 누구도 아닌 반곡 선생이 가장 높이 받들여지는 영웅이요 위인인 것이다.

또 보성군 회천면, 영광정씨 세거지인 봉강리에는 봉강 고택(전남도 지정문화재 제261호. 2005.12.27. 지정)이 있다. 이 고택의 문화재 지정은 보성군이 앞장서서 추진했으며, 문화재 지정 이후 전남도와 보성군으로부터 10여억 원의 지원까지 받아내 복원공사를 추진했다.

2,3년 전부터 보성군은 보성군 일원에 대대적으로 ‘충무공 이순신 장군 유적복원 사업’을 추진했다. 역사 왜곡의 문제(?)까지 일으킬 만큼 자의적인 의미까지 더해 이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면서, 이 봉강 고택이 큰 관심이 되기도 했다. 왜냐하면, 봉강고택을 소개하는 표지판에서, 보성군은 이 고택에 대해 “현 가옥 터 자리는 15대째 거주해오고 있는 반곡 정경달 후손의 집으로 조선 중기에 입향하였다”고 소개해 놓고 있어, 보성군이 역점적으로 추진하는 이순신 성역화 사업과 관련 있는 저택으로 부상시켰기 때문이다.

실제는 봉강 저택은 정경달 후손의 고택은 아니다. 반곡은 6형제였는데, 첫째는 용산으로, 셋째, 넷째, 다섯째, 여섯째 4형제는 당대 장흥부 소속 현이었던 회천으로 분가를 나가(둘째인 반곡만 장동에 남았다), 지금의 봉강리에서 세거를 했던 반곡 아버지 형제들이었으므로 반곡의 방계 후손이지 직계 후손은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반곡 후손 집’으로 표기, 반곡의 직계 후손인 듯 착각하게 만들고 있으며, 반곡의 후손이 보성 사람이기에 반곡 또한 보성 사람으로 상징화시킨 것이다.

장흥과 보성 일대의 영성 정씨 문중은 1500년을 전후해 영광에서 장흥 장동면 반산리 일대로 이주한 집안이 뿌리다. 이런 이유로 반산리에는 1714년(숙종 40)에 영광 정씨 문중이 주도적으로 건립한 향사인 ‘반계사’가 있다. 반계사에는 이순신과 반곡의 조부 정인걸을 주벽으로 모시고, 정경달, 정명열(반곡의 子), 정남일(정명열의 子), 임진왜란 때 이순신 막하에서 큰 공을 세운 임영립을 모시고 제사해 온 사우이다.

결국, 장흥에는 반곡선생을 제사해 온 사우만 있었지, 선생의 업적을 현창하고 기리고 조명하는 등 그분의 현창사업은 거의 외면해온 것이 사실이다. 경북 구미시에서는 주벽으로 추앙하고 있으며, 보성군 같은 곳에서도 보성의 인물로 상징화시키고 있는데, 장흥은 아직도 이렇다 할 움직임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이제부터라도 반곡 선생이 ‘장흥의 영웅’으로 새롭게 시급히 재조명해야 하는 이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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