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 반곡(盤谷) 정경달은 장흥의 유일한 영웅이었다
■사설 - 반곡(盤谷) 정경달은 장흥의 유일한 영웅이었다
  • 장흥투데이
  • 승인 2019.03.07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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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곡 정경달이 배향된 반계서원
반곡 정경달이 배향된 반계서원

영웅은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나 탄생될 수 있지만 대체로 수난의 시대에 나타난다. 특히, 국가, 민족이 칠흑 같은 절체절명의 위란을 맞았을 때, 그 어둠을 헤치고 일어서기 위해 자신을 헌신하여 존경을 받게 되는 사람이 영웅이다.

물론 아무나 영웅이 될 수는 없다. 19세기 영국의 평론가·역사가로 <프랑스 혁명사>, <영웅 숭배론> 등의 저서를 남겼던 토머스 칼라일은, 영웅의 조건으로 지극한 헌신성, 성실성, 투철한 소신과 통찰력을 들었다. 평생 아무것도 갖지 않겠다는 소신을 실천한 걸인 철학자 디오게네스를 영웅으로 인정하면서도 통찰력이 부족한 나폴레옹은 영웅으로 인정하지 않았던 이유이기도 했다.

영웅론 따위는 접어두고 …우리나라 역사에선 이순신, 권율, 김좌진 등을 영웅시 했다.

이 문제를 지역으로 한정해 보면, 과연 우리의 장흥에는 영웅이 있었을까. 고려, 조선조 할 것없이 많은 ‘위대한 인물’이 출현했지만 대부분은 고관이요 학자요 문인으로 그쳤다. 존재 위백규 선생이나 기봉 백광홍 선생이 있었지만, 그분들은 영웅은 아니었다. 호남의 대실학자요, 가사문학의 효시를 연 대문인으로 칭할 수 있을 뿐이다.

임진왜란이나 정유재란 등 국난의 위기에서 살신성인으로 국난 위기 극복에 앞장섰던 문위세, 마하수, 임계영 등 여러 뛰어난 의병장들이 있었긴 하지만, 그분들 역시 영웅으로까지 칭하지는 않는다.

다만, 영웅이라 칭할 만한 인물이 있었다면 임진-정유재란 때 반곡 정경달이 유일하다. 그렇다. 장흥의 영웅이라면 반곡 선생이요 정경달 장군이라는 것이다.

1591년(선조 24) 선산부사로 도임했던 반곡은 다음 해인 1592년(선조 25) 4월, 임진난을 맞이한다. 4월 28일 상주가 함락되자 순변사(巡邊使) 이일(李鎰)은 싸움을 포기하고 달아났다. 이처럼 왜군을 맞아 모두 도망가는 다른 수령과 달리, 반곡은 문반 출신임에도 잠시 몸을 피했다가 산산조각으로 흩어져 있는 관군과 군민들을 모아 금오산에 진을 치고 참호를 파고 복병을 매복시킨 채 종일 적과 싸워 많은 병기를 노획하였으며 많은 왜군을 포로로 잡았다.

이러한 전공에 관찰사 학봉 김성일(金誠一)이 전공을 기리는 서찰을 보내왔고 뒤이어 창석 이준(李埈), 백사 이항복(李恒福), 임당 정유길(鄭惟吉)이 의병을 일으켜 합세하여 반곡 휘하의 선산 의병은 대군이 되었고 반곡은 김성일(金誠一), 병마절도사 조대곤(曺大坤)과 함께 금오산(金烏山)을 중심으로 왜적을 크게 물리쳤다. 1953년 5월부터 이듬해인 1594년 5월까지 반곡의 선산 의병이 일년 간 적을 죽인 숫자가 수천 명이었다고 한다.

명나라 군의 영남 진격에 따라 각 고을에서 식량을 공급하게 되었는데 고을마다 식량이 바닥이 났다. 그때 반곡은 금오산 도선굴에 비축하여 두었던 양곡으로 일부 명나라 군사의 군량미로 충당하여 명나라 장수 유총병(劉總兵)이 반곡을 ‘식리장군(識理將軍)’이라 하며 치하하는 글과 금빛 부채를 주어 선산 의병의 공적을 찬양하였다.

또 어사 윤경립(尹敬立), 순찰사(巡察使) 김근(金勤)이 선산 의병의 전공을 나라에 알려, 나라에서 크게 치하하는 서찰을 내려보내기도 했다.

이처럼 반곡과 선산 의병 활동은 왜군을 위협하여 조령(경상도에서 서울로 통하는 요충지)을 경유하는 주력 부대의 진출을 견제하고 후방을 교란하는 힘이 되었던 것으로 사가들은 평했다(이상은 <구미 市誌>에 기록돼 있는 반곡 선생의 선산 금오산에서의 전공 내용이다).

이러한 선산 전공으로 반곡 선생은 유명세를 탔다. 또 반곡의 금오산 전승은 임진왜란 당시 육지에서 왜군과 싸워 유일한 승전을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1594년 당시, 전쟁이 장기전이 되면서 군량미 확보에 어려움에 봉착했을 때, 이순신의 계청과 유성룡의 승인으로, 금오산 전승으로 잘 알려진 선산부사 반곡이 이순신의 종사관이 되었다.

이순신의 종사관이 된 반곡은, 특히 군량이나 군대 경비를 충당하기 위해 병사가 경작하던 토지인 둔전(屯田) 책임을 맡아 호남지역 여러 곳에서 둔전을 운영, 조선 수군의 식량을 조달하고 군수물자를 성공적으로 관리하게 된다.

또 반곡은 영호남 지역과 한산도 본영 일대에서 고기잡이, 소금생산, 그릇생산 등을 추진하며 물자를 비축하여 상당한 군량으로 환원했으며 백성들에게 해운업의 길도 열어주어 피난민 중 상업가를 지휘하여 무역을 행하는 이도 생겨났다. 이렇게 군-민이 단결하여 나중에는 양곡, 어염, 포목할 것 없이 구하지 못하는 것이 없게 돼 저장된 곡식이 수만 석에 달했다. 당시 제찰사 이원익(李元翼)이 내려와 현지 상항을 보고 크게 감명을 받을 정도였다.

반곡에 대한 이순신의 신임 또한 매우 두터워 군영을 비우고 작전을 나갈 때는 반곡이 본영의 살림과 운영을 대신 책임지기도 했다. 이순신은 반곡이라는 최고의 일류 병참 참모를 곁에 둔 것이었다.

1597년 3월 이순신이 모함으로 투옥 되자, 반곡은 조정에 나아가 탄원서를 내고 직접 선조 임금을 독대하여 그의 석방을 위해 결사적으로, 종횡무진으로 노력하였다.

이순신은 통상 성웅(聖雄)으로 지칭된다. 가장 드높은 영웅이란 뜻의 성웅은 우리나라에서는 곧 이순신을 뜻하며, 성웅이라는 말 자체가 이순신의 고유 호칭처럼 쓰이고 있다. 그러한 성웅의 존재는 반곡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하여 문관 출신임에도 반곡은 임진란 선산의 금오산 전투에서 큰 승리를 일구었던 탁월한 지략가요 의병장이요 장군이었으며, 해전의 성웅 이순신의 종사관으로서 혁혁한 공을 세운 인물이었으니, 우리는 능히 그분을 영웅으로 칭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 장흥 출신의 반곡 정경달 선생. 그는 장흥 역사에서 유일하게 영웅 칭호를 받을 수 있는 장군이었다. 우리가 이제라도 임진-정유재란의 영웅 반곡 선생을 재조명하고 그분의 현창 사업을 추진해야 하는 이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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