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 경세학자 이민기 '만수재 유고' 국역 발간
조선 중기 경세학자 이민기 '만수재 유고' 국역 발간
  • 김선욱
  • 승인 2019.03.07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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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수재-백성의 고퉁 외면 않았던 재야 경세학자 역할 다해
3책 6권 유고집 남겨-詩 117수 작시한 시인이기도
치인 이봉준 국역-“상소등 경세학문의 명문장 남겨”
<만수재 유고晩守齋遺稿>

 

최근 조선조 장흥의 저명한 선비요 유학자였던 만수재 이민기(晩守齋 李敏琦, 1646~1704) 선생이 조명을 받았다. 치인 이봉준이 <만수재 유고晩守齋遺稿>를 통해, 호남의 대실학자 존재 위백규(1727∼1798)에 앞선 경세학자로서 만수재 선생을 소개하며, 장흥의 전통 학맥의 본류로서 만수재 선생을 조명한 것이다.

이 책은 장흥문화원이 2017년부터 추진한 ‘정남진 장흥 고전국역총서 간행’ 사업에 의해 1차 연도인 2017년 백진항(白鎭恒 1760-1818) 선생의 <계서유고溪西遺稿> 발간에 이어 두번째 국역집으로 2018년에 출간한 책으로, 국역은 서예가이자 한학자인 치인 이봉준 맡았다.

▲<만수재 유고> 국역자 이봉준

 

만수재는 어떤 사람이었나

만수재 이민기 선생(이하 ‘만수재’ 또는 ‘공’이라 칭한다)은 조선 중기의 유학자로 자는 경징(景徵), 호는 만수재(晩守齋). 본관은 인천(仁川)이다. 장흥읍 건산리 출신이다.
아버지 이원욱(李元郁)이 일찍 죽은 관계로, 이민기는 어머니 순창조 씨(淳昌趙氏)의 가르침 속에 자랐다.
공은 어려서부터 학문에 뛰어났으며, 장흥(長興)으로 유배 온 노봉 민정중(老峯 閔鼎重, 1628-1692, 후에 좌의정 역임)에 ‘주자가례(朱子家禮)’를 배웠으며, 조선 중기 문신·학자로 유명했던 우계 성혼(牛溪 成渾, 1535~1598)의 학문을 수학하였다.

또 한 마을에서 먼저 살았던 천방 유호인(天放 劉好仁, 1502∼1584)의 학통(學統)을 이어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만수재는 1681년(숙종 7)에 식년시(式年試)로 생원이 되었다. 뒤에 민정중이 유배가 풀려 서울로 올라간 이후, 공을 여러 벼슬에 추천하였지만, 공은 어머니의 가르침에 따라 과거공부를 준비하여 1699년(숙종 25) 책문일 교문관학(策文一 敎問館學)으로 장원, 책문이 관학(策問二 館學)으로 입격(入格)하여 이창명(李昌命)‧위세직(魏世稷)과 <여지승람신증(輿地勝覽新增)>을 수정하였다. 그러나 더 이상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5년 후 낙향, 만수동(萬壽洞)에 칩거하며 후학들에게 강학하고 학문을 연찬하며 유학자로서 생을 마감했다.

만수재-‘충직하고 소신 있는 관리’

낙향 후 경tp학자로 역할 다해


관학에 입격하여 관리로 있었을 때, 공은 충직하며 소신 있는 관리로, 유학정신에 충직한 책무를 다했던 것으로, 그가 당시 올린 여러 상소문에서 드러나고 있다.

1694년(숙종 20)에 정읍(井邑)에 원재서원(元齋書院)을 세울 것을 상소하였고, 1696년(숙종 22)에는 장흥읍 연곡(淵谷)에 노봉서원(老峰書院)을 세우는 일을 주도하였으며, 조선 중기 대사헌, 이조판서, 우참찬 등을 역임한 문신이요 학자였던 현석 박세채(玄石 朴世采, 1535~1598)를 비봉서원(飛鳳書院)에 배향하는 것을 주도하기도 했다.(비봉서원은 황해도 연백군, 현 황해남도 연안군에 있는 서원으로 주자朱子·최충崔冲·김굉필金宏弼·이이李珥·성혼成渾·박세채朴世采 등이 배향되어 있다)
만수재는 당대 지방의 대학자로서 ‘전라남도 민속자료 제 43호’로 지정된 부산면 호계리별신제의 축문과 홀기 등을 저술하기도 했으며, 관직에서 낙향한 재햐 학자로서 순찰사에게 당시 민생의 폐단과 사회제도의 모순을 적시하고 이를 구제, 개선하려는 사회개선책인 ‘상순상민막장(上巡相民瘼狀)’을 비롯하여, 또 흉년에 피폐한 민인의 구제 방안을 담은 ‘상순상청진황민장(上巡相請賬荒民狀)’, 토지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상순상청개량장(上巡相請改量狀)’, 흉년에 피폐한 장흥읍민을 진휼하자는 ‘상순상청문장(上巡相請文狀)’ 등 여러 상소를 올리기도 했던 지방의 저명한 경세학자이기도 했다.

특히 ‘상순상민막장(上巡相民瘼狀)’은 순찰사에게 낸 것으로 국왕에게 낸 응지 상소와는 절차가 다르지만 당시 민생의 폐단과 사회제도의 모순을 적시하고 이를 구제, 개선하려는 사회개선책이라는 점에서 나름대로 큰 의미를 지닌 것으로 평가받는다.

만수재는 유고집을 남겼다.

유고집으로 천지인 3책 6권 남겨

117수 시 작시한 시인이기도

만수재 유고는 천‧지‧인(天‧地‧人) 3책에 6권으로 되어 있는데, 1898년에 선생의 후손인 이중배(李中培)· 이진휴(李鎭烋) 등이 편집 · 간행하였다. 이번 <만수재 유고>는 1889년 간행되었던 이 유고집을 국역한 것이다.

치인은 “제1책 1권에는 호남의병을 이끌었던 기우만(奇宇萬,1846~1916)의 ‘만수재 유고집 서문(晩守齋遺稿序)등 유고집의 여러 서문과 위백규의 제사(題辭)까지 이어, 오언율시 23수, 칠언율시 47수, 칠언절구 45수, 만시(挽詩) 12수 등 총 117수의 만수재 시들을 모아놓고 있어, 당대 만수재가 시인으로서 큰 역할도 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 제1책 2권은 10소(疏)를 모아 놨는데, 선생이 관학에 입각해 있을 때, 우암 송시열이 정읍에 사약을 받은 곳이어서 그곳에 우재서원을 세워야 한다는 소(館學請建 尤齋書院疏), 노봉 선생의 선생의 연곡서원을 장흥 연곡에 세우자(淵谷書院建院時伏閤疏), 조선 후기 대사헌, 이조판서, 우참찬 등을 역임한 문신이요 대학자였던 현석 박세채(玄石 朴世采)를 연안의 비봉서원에 배향할 것을 청하는 내용으로, 당대 박세채의 배향을 반대하는 신중한(申重翰)등을 반박하는 상소문(館學請配玄石 飛鳳書院 兼陳申重翰等 誣賢溯) 등이 실려 있습니다. 이러한 상소들은 선생이 관학에 입각해 있었을 때 관리로서 곧고 충직한 소신과 열정에 넘친 유학자로서 위상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경세학문의 명문장 남긴 상소문들

또 제1책 권에는 이외에도 아주 중요한 문건인 5건의 상소문이 실려 있습니다.

앞에서 상순상민막장(上巡相民瘼狀), 상순상청재장(上巡相請灾狀, ‘상순상청진황민장(上巡相請賬荒民狀)’, ‘상순상청개량장(上巡相請改量狀)’등이 실려 있습니다.

이중 상순상민막장(上巡相民瘼狀)은 烟役(연역)·군역軍役‧궁군宮屯‧송금松禁‧무판貿販‧조선漕船‧방언‧防堰‧도청都廳 등 남쪽지방의 큰 민폐를 순찰자에게 시정해 주라고 청원하는 절실한 호소이자 촉구로 그 대책까지 자세하게 지적한 상소문으로 실질적인 경세학문의 명문장 중 명문입니다.

이상의 10편의 상소문은 시종 일관 이치가 분명하면서 상세하고 정치(精致)하며 기어(寄語) 와 미어(美語)가 교묘히 상접하는 바, 오랜기간 잠들었던 보물로 선생의 천하의 명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또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대목으로 제2책 3권의 ‘여여지승람수정유사(與輿地勝覺修正)有司)에서 기봉 백광홍과 목사 반곡 정경달을 재평가한 내용입니다.

또 제가 가장 큰 감복을 받은 것 중 하나로 잡저(雜著)에 실린 ‘책문일 교문관학’(策問一 敎問館學)의 장원 답안지입니다. 여기서 ‘관학館學 가르침을 묻다’에서 고인들 중에 숙성자(夙成者)와 만취자(晩就者)를 비교하여 열거하며, 선생이 만년까지 성취를 못했어도 학문의 끈을 놓지 않았다는 감명 깊은 논저였습니다. 또 ‘책문이 관학(策問二 館學)’의 입격 답안지는, 호남과 중국 강남의 산천, 요숙(曜宿), 물산, 인재 등에서 같은 것과 다른 것은 무엇인가를 논하고 있는데, 여기서 선생이 중국의 강남을 훤히 들여다 본 것처럼 세세히 서술한 것을 보고 참으로 놀라웠습니다.”/김선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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