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반곡 정경달은 조선의 위대한 시인(詩人)이었다
■사설-반곡 정경달은 조선의 위대한 시인(詩人)이었다
  • 김선욱
  • 승인 2019.03.14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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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반곡 ‘난중일기’-유성용·이항복의 ‘징비록’ ‘임진록’보다 뛰어나”

역대 조선조 장흥출신 한시의 대가로 옥봉 백광훈을 꼽는다.

옥봉은 유고집으로 4권 2책 <옥봉집>(목판본)을 남긴 데 시인이었다. 옥봉은 당시 고죽(孤竹) 최경창(崔慶昌), 손곡(蓀谷) 이달(李達)과 함께 이른바 ‘3당시인’으로 알려지고 조선 중기의 대표적 시인으로 자리매김하였던 대시인이었다. 이러한 옥봉마저 남긴 수는 불과 147수에 불과하다.

시의 질적인 문제를 떠나, 장흥 출신으로 당대 한시(漢詩의 대가 옥봉보다 더 많은 한시 작품을 남긴 이가 있으니, 바로 반곡 정경달이다.

반곡의 유고는 1793년(정조 17)에 목판으로 발행되고, 그 뒤 1815년(순조 15)에 9권 3책으로 다시 간행되었는데, 반곡이 남긴 시는 이 목판본을 기준으로 오언절구 40제 53수, 육언절구 4제 5수, 칠언절구 156제 199수, 오언율시 46제 51수, 오언배율(排律) 2제 2수, 칠언율시 56제 59수, 필언 배율 2제 2수로 모두 합하면 모두 306제 371수에 이른다.

장흥 출신의 역대 시인 중 가장 많은 유작 시를 남긴 것이다. 게다가 반곡의 시들이 아주 수준 높은 명시들이어서, 장흥 출신의 대시인으로서 뿐만 아니라 능히 조선조의 유명 시인의 반열에 올려놓을 수 있을 것으로 평가받게 될 것이다.

왜 그동안 반곡이 시인으로 조명받지 못했는가. 문관 출신으로 선산부사였을 때 왜군 토벌의 큰 공훈과 이후 이순신의 종사관으로서 큰 역할에 묻혀버렸다. 또, 정작 그가 남긴 많은 유고 중 ‘난중일기(亂中日記)’가 역사적 가치로 재평가‧재조명받으면서 그의 시인으로서 역할이 묻혀버렸기 때문이다.

실학의 선구자였던 구암(久菴) 한백겸(1552∼1615)의 7대손으로 다산 정약용과 막역한 친구로 문과에 급제, 벼슬이 병조판서와 한성판윤에 이르렀고 함경도 관찰사로 재직 중에 세상을 떴던 한치응(韓致應)이 <반곡집> 서문을 썼는데, 그는 서문에서 “…공적이 정대히 드러났으나 표창이 미진한 경우는 간혹 많이 있다. 이는 멀고 외진 시골에 살아 그(반곡)의 공로가 상세히 수집되지 못하고 후손이 영락하여 그의 공적을 미처 천영(闡揚-드러내어 밝혀서 널리 퍼지게 하다) 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니, 참으로 천고(千古) 지사(志士)가 개탄하는 것이다”라고 하면서 반곡이 남긴 공적이 크지만 세상에 드러나지 못하였던 안타까운 사실을 적시하기도 했다.

다산 장약용도 <반산세고盤山世稿> 서문에서 “…관직이 미천하고 세력이 없는 데도 아름다운 시문(詩文)을 수백 년 뒤 까지도 전하는 경우는 반드시 그 가운데 묻히게 할 수 없는 것이 있기 때문이니…”라고 적으면서, 청빈한 가문 출생이요 관직도 미천하고 세력이 없었던 반곡의 시문이 유고집으로 발간되어 오래도록 전승되어야 하는 이유를 밝혀주기도 했다.

또 장약용은 ‘선산부사, 정경달의 난중일기(亂中日記)에 제함’이라는 서문에서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의 《징비록(懲毖錄)》과 백사(百沙) 이항복(李恒福)의 《임진록(壬辰錄)》은 상세하고 분명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두 상공(相公)은…온 나라의 대세(大勢)를 논평하고 팔도의 많은 기무(機務)를 조정함에 있어서는 그 업적이 위대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물고기도 놀라고 산짐승도 도망간 상태라든가 비바람을 맞으며 들에서 밥해 먹고 지새우는 고초에 대해서는, 생동감 있게 기록한 이 기록(반곡의 난중일기)만은 못하다.…”고 평했다. 이른바 구성이나 문장력에서 반곡이 유성룡이나 이항복보다 웃길에 있었다고 평한 것이다.

최 근년 반곡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가 이뤄지면서, 반곡의 유고 중의 ‘반곡 난중일기’(상,하권)이 2016년 ‘보고사’에 의해 전남대학교 신해준 교수의 국역으로 출간되었고, <반곡 정경달 시문집, 1,2권>이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국역자 박종우교수)에 의해 2017년 6월에 발간되었다.

특히 <반곡 정경달 시문집1,2>는 굳이 시문집이라기 보다 ‘반곡 유고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반곡의 <난중일기> 등 목판본 반곡 유고집 9권의 내용을 다 국역해 출간하였다. 이 시문집에서 관심을 끄는 대목은 <반곡 정경달 시문집1>의 반곡의 시문이었다. ‘권 2’를 국역한 것으로 여기에는 반곡의 306제 371수에 이른 모든 시들이 포함돼 있다,

반곡의 시를 읽다 보면, 반곡의 탁월한 시적 재능과 탄탄한 시상(詩想)을 구축했던 당대 대시인으로서 탁월한 시적인 세계와 맞딱뜨리게 된다. 실로 충격적이었다. 그는 장흥이 낳은 대시인이었으며 조선조의 유명 시인 반열에 올라서고도 남음이 있었다.

이 시문을 국역한 박종우 교수는 반곡 시의 특징을①경물(景物)의 즉물적(卽物的) 완미(玩味)와 친화적 교감 ②전원의 지향과 일상적 삶의 자긍(自矜) ③전장의 응시(凝視0와 역사적 정의의 희구(希求)로 분류하여 분석하고 있다.

일상적 사물에 대한 관찰과 감동을 시로 형상화 하는 것이 전통적인 시작(詩作)의 기본적인 원리로 보았을 때, 반곡의 시도 크게 이 범주에서 벗어나지는 않는다. 다만 반곡의 경우, 많은 시인들이 즐겼던 도학의 이상적인 경물(景物)로 음영(吟詠)되는 시들과는 달리, 주위에 함께 공존하는 사물들, 지극히 평범하고도 일상적인 사물들을 시의 대상체로 보았으며, 그것도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사고나 인식으로서가 아니라, 실제적 사물에 비추어진 사물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직관하고 사유하는, 즉 즉물적(卽物的)으로 통찰하고 묘사하는 시작 태도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놀랍고, 그것은 곧 오늘날의 서정시 흐름과도 맥을 같이 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놀라웠다.

‘영매(咏梅)’나 ‘상국(霜菊)’ 같은 꽃을 주제로 한 시에서도 도학적 시 세계에서 흔히 발견되는 즉 사군자(四君子) 주제의 시들에서 지조니, 절개니 하는 도학적 의미가 강조되거나, 천지에 순행하는 자연 현상을 끌어내는 도식적인 것이 아니라, 실제 주변에서 만나는 일상적인 사물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그 정감을 읊었다. 그리고 대상체인 사물과의 교감, 교감에 이어지는 감흥과 몰입, 그 이후 그 사물과의 친화의 단계로 이어지면서 반곡 시인의 독특한 시 세계를 형성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반곡은 현대적으로 표현하면, <난중일기>에서는 이항복이나 유성룡보다 뛰어난 문장력을 보여준 대 문인이었고, 당대 시인으로서도 뛰어난 시작(詩作)을 일구어낸 탁월한 서정시인이었으며 대 시인이었던 것이다.

이번 반곡 시문집 발간을 계기로, 장흥인들도 반곡의 시문학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더 나아가, 학계에서도 반곡 시문학에 대한 조명과 평가 작업이 제대로 이루어지길 기대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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