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반통신 10..우상을 말한다
■호반통신 10..우상을 말한다
  • 장흥투데이
  • 승인 2019.03.22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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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산월/시인

우상에 대한 사전에서의 기술을 먼저 적는다. 우상이란 목석이나 금속 따위로 만든 상, 신불을 본떠 만든 상, 종교적 숭배의 대상이 되는 형상, 미신 등의 자연 대상물,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신상이나 형상이라고 되어 있다.

여기에서 기독교적 우상이 되는 것은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신상이나 형상이 되겠다. 문제의 발단이 되는 우리네 조상은 만들어 낸 신이 되는 것인가. 그렇다면, 기독교를 믿는 자만이 영혼이 있어 천국 가고, 기독교는 믿지 않은 조상의 영혼은 사라지는 것인가.

그렇지가 않다. 인간은 누구에게나 영혼이 있어 조상신에게 제사하는 것이다. 기독교에서 하나님을 창조의 하나님으로 가르친다면 우리의 조상은 하나님과 맞닿아 있다. 아버지의 아버지를 찾아 계속 나아가면 누구라도 시조를 만나게 된다. 그 조상신은 하나님의 분신이요 창조물로 다가서게 되어 있다.

그런데도 조상신은 우상이 되는 것인가. 내가 아는 하나님 앞에 우상이란 없다. 내가 좋아하는 어떤 형상이 하나님 앞에 우상이 되어진다면 이 세상 모든 것이 우상 아닌 게 없게 된다. 하나님 앞에 우상이 되는 것은 하나님과 동격을 이루는 형상을 말한다.

기독교의 경전인 성서의 창세기에 아브람(훗날 아브라함)을 하나님이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낼 때에 아브람의 아버지 데라는 우상 장사를 하는 사람이었다. 하나님은 어찌하여 그 많은 가정 중 하필이면 우상장사 집에서 아브람을 불러냈을까. 아브라함을 기독인의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심은 하나님 앞에 우상이란 없기 때문이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석판을 들고 내려왔을 때 자기가 이끈 민족이 우상을 만들어 춤추며 놀고 있었다. 이른바 모세의 형 아론의 금송아지 사건이다. 이때 모세는 화가 치밀어 들고 있던 석판을 내던져 깨버리고 말았다. 그 유명한 모세의 반석이타가 그것이다. 응당 기도하고 있어야 할 이스라엘 민족이 난장을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다시금 시내산으로 올라간 모세는 기도 후 석판을 들고 내려왔다. 그 석판에 기독교의 강령인 십계명이 새겨져 있었던 것이다. 물론 처음 깨어진 석판에는 없었던 십계명이었다. “우상을 섬기지 말라. 나 이외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고 되어 있었다. 이는 금송아지의 난장을 경계하는 계명이기 때문이다. 십계명에 부모에게 효도하라 해 놓고 제사를 못 하게 함은 이율배반이 아닐 수 없다.

하나님께서 석판을 불칼로 새기었든, 모세가 도구를 써서 새기었든 그것은 중요하지가 않다. 요즘 21세기 사람들은 노아 때의 물 심판이나 모세의 홍해 가르기, 예수의 이적기사 등을 하나님이 행한 일이라고 믿지 않는다. 그만큼 현대인의 지적 수준은 옛날과 다르다. 하나님이 이적기사를 일으키지 않으심은 창조에 의한 자연의 질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은 부리는 신이 아니시다. 이적기사가 하나님의 특권이라면 에덴동산에서 진작에 잘못을 저지르지 못하게 했어야 했다. 미개했던 선사시대를 지나 예수 이후 이적기사가 일어나지 않음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은 우리를 꼭두각씨로 지으신 게 아니다.

기독교를 선교할 때 대개의 미국 선교사들은 후진국의 미개한 신앙 행위를 우상으로 주입시켜 타파의 대상이 되게 했다고 몇몇 신학자들은 말하고 있다. 물론 그 들은 그들의 조상을 우상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들은 또한 우리 단군상을 우상이라고 하지도 않는다. 이는 우리 나라 목회자들의 잘못된 가르침이다. 돼지의 해에 황금 돼지저금통은 왜 우상이라고 말하지 않는 겐가.

제사란 조상이 돌아가신 날에 후손이 모여 기념하는 행위이다. 이때 예물(제물)을 올리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기에 옛사람도 제사는 못다한 효를 소급하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이 얼마나 성스런 의식인가. 제사를 정성스럽게 준비하고 예를 갖추어 지내는 것은 그 때문이다.

나를 이 세상에 있게 한 분이 조상일진대,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이 나를 있게 한 것이라고 고집한다면 지금까지 자연의 생명 진화는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사랑의 하나님은 편협한 분이 아니시다. 인간 행위의 아름다움은 하나님이 보시기에도 아름다울 것이다.

민속신앙 등 우리 생활에서 가르침이 되는 미풍양속은 지켜져야 한다. 인간만이 지닐 수 있는 지정의와 진선미는 하나님이 보시기에도 좋으실 것이 분명하다. 우리들의 영혼이 언젠가는 하나님과 빛과 빛으로 만나 하나님의 체화가 될 것을 믿는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천사를 부리어 인간 수태시 하나님의 생기(생소)를 불어넣어 생령이 되게 하셨기 때문이다.

본인의 맏형은 우리 마을 10대 종손으로 형제들의 본이 되고 있다. 제손은 명절이나 향사가 있게 되면 당연히 참여하게 된다. 요즘처럼 이기주의나 개인주의가 만연한 때에 좋은 본보기가 되고 있다. 그나마 제사가 있기에 모였다가 흩어지며 숙형제질 간에 누가 누구인지를 알게 된다.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제사 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개신교인들은 천주교의 제의에 따랐으면 하는 마음이다. 인간이 인간됨은 천도를 따른 원형이정과 인도를 따른 인의예지가 펼쳐졌을 때 보람되고 거룩한 것 아니겠는가. 우리가 짐승과 다른 점은 이렇듯 형이상학적 질서 속에서 하늘길을 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그렇다고 세상 죄는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기도하고 찬송하는 자만을 거두시는 하나님이신가. 아니다. 하나님은 믿음에 관계없이 공평 공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기독교 신앙자들은 하나님을 제발 욕되게 하지 말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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