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한담 17- 꽃바람에 휩싸인 대원사
■장흥한담 17- 꽃바람에 휩싸인 대원사
  • 장흥투데이
  • 승인 2019.04.18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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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용수 / 시인·수필가
 

 아름다운 벚꽃 길에 바람이 세차다.
천봉산 맑은 물은 봄볕에 헐떡이는 늙은 나무를 적시고 내려가면서 돌 틈에 핀 노랑 꽃창포의 궁대를 흔들고, 반광반음(半光半陰)길 다리 건너 비탈진 곳에 내걸린 등불 하나는 비워내지 못한 욕심을 토해 내는 걸까. 휘어진 계곡너머에 애잔한 꽃창포 한 송이가 마지막 잉걸불을 태우고 있는 보성군 문덕면 천봉산 대원사. 503년(백제 무령왕 3)아도화상이 창건한 사찰로 1260년(고려 원종1) 송광사 제5대 국사인 자진이 중창하고 대가람의 모습을 갖춘 후, 산 이름을 중봉산에서 천봉산으로, 절 이름도 죽원사에서 대원사로 바꾸어 천년을 이어오다 1948년 여순사건 때 대부분 불에 탔으나 극락전만이 유일하게 남아 부처의 자비를 전하고 있다. 울울창창(鬱鬱蒼蒼) 산사로 가는 길에는 응달을 비집고 나온 철쭉과 하얀 찔레꽃이 어머니의 자궁 자리로 마중한다.
 꽃바람에 휩싸인 산사.
연지에 피어난 수련 향기가 법계와 속계를 가르는 일주문을 넘는다. 노랑 피나물 꽃과 보라색 각시붓꽃이 뿌려 놓은 향기로 위로 받으며, 우아한 꽃창포와 청순한 어리연꽃에 묻힌 산사에서 머무름이 없이 자유로움으로 살아갈 방법은 없는 것인지 묻고 있다. 
 나의 쪼들린 내면을 조심스럽게 들여다본다.
얻었다 해도 본래 있었던 것이고, 있었다고 해도 본래 없었던 것(得之本有, 失之本無- 碧嚴錄 중에서)이라고 하지 않는가. 내면에 쌓인 욕심을 덜어내고 비워내도 돌아서면 채워지는 것이 인간의 의식 본능일지 모르지만, 한 번만이라도 맑은 바람에 욕심을 덜어내고 싶은 것은 모든 이의 소망 아닐까.
내가 정해놓지도 않는 삶의 틀에서 전전긍긍 행복을 찾아 허덕거리는 내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행복은 미래의 목표가 아니라 현재의 선택이라고 하지 않던가. 차오르는 욕심을 붙들고 법당에 들어 두 손 모아 향불 하나 피워놓고 돌아 나오니 산비탈 차밭을 막 지나온 산바람이 법당을 채운다.
 뒤란 차밭에 말간 여름 햇살이 수런거린다.
대원사 범종소리 들으며 곱게 핀 노랑 민들레와 산죽 밭 언저리에 피어있는 피나물 꽃들이 오붓한 오솔길을 배웅 한다.계곡물 소리와 후박나무의 풋풋함이 산사를 짓누르고 있다. 타닥타닥 장작 타는 소리에 귀를 쫑긋거리며 걷다가 굴뚝을 타고 자우룩 피어오르는 연기에 발걸음을 멈춘다. 빨랫줄에는 광목 자락이 펄럭이고 부뚜막에는 스님 한 분이 쪼그리고 앉아 뭉근히 달아 오른 아궁이에 장작하나를 밀어 넣고 있다.
 대원사 기도스님인 석영찬스님이다.
광목보다 더 두꺼운 원단에다 염색 중이다. 통성명도 없이 이야기를 나눈다. 스님께서는 학정 이돈흥 선생에게 서예를 사사 받았고, 그림은 의재 허백련 선생으로부터 사사 받았다고 한다. 그림과 서예를 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특히 달마도에 심취하여 제주도 삼지연 폭포 부근에서 오랫동안 연마하였으며, 우리나라 고유의 염색을 배우고 매듭까지 한다고 하니 스님의 수행은 남달리 힘들고 험하다.
 스님이 묻는다.
“불교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불교는 종교라기보다는 문화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천년이 넘는 세월 동안 수행자들만의 종교가 아닌 민중과 함께 해왔기에 우리 생활 속에 호흡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궁이 앞에서 쭈그리고 앉은 채, 스님의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다. 불교는 인본주의 사상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스님, 마음자리가 어수선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수선한 마음자리에는 번뇌가 있습니다. 수행자들은 번뇌를 쫓아가지 않고 번뇌가 일어나는 자리를 찾아갑니다. 번뇌가 일어날 때는 낮아지려는 마음자리를 찾으면 됩니다. 불교는 자력 신앙으로 스스로 낮추어야 하고 비워야 하고 내려놓고 풀어놓아야 합니다.” 낮아지고 비워내지 않으면 감사하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듯이 자기성찰을 이루어 내는 것이 불교라고 한다.
“모든 인간은 삼독三毒에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삼독을 벗어날 때만이 충만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이 불교가 아니겠습니까.”라면서 가만히 장작하나를 아궁이에 집어넣는다.
 숲 바람이 산사로 밀려든다.
대원사를 씻어내는 천봉산 바람이 잎사귀에 매달린 햇살을 흔들자 풍경은 고운소리로 위로하는데 신산(辛酸)한 사람의 어수선한 마음자리는 자지러지지 않고 산사를 헤매고 있을 때, 법당에서 들려오는 창불소리가 고요를 깨운다. 나무아비타불, 나무아비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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