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사순문 전라남도의회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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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란
  • 승인 2019.05.09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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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혁명 첫 국가기념일-큰 의미 있다

올해 동학농민혁명 125주년- 장흥에도 역사적 의미 커

Q. 지난 4월 8일 사의원은 ‘동학농민혁명 기념사업 지원에 관한 조례’를 대표발의하고 4월 11일 본회의에서 의결되었다. 대표발의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A. 동학농민혁명(이하 ‘동학혁명’이라 함)의 정신은 면면히 이어져 오늘날 우리의 시대적 가치와 사명이 되고 있다. 적폐청산과 반(反)봉건의 기치로 민주(民主)의식을 일깨우고, 나라를 지켜낸 역사이다. 동학혁명이야말로 ‘새로운 조선’, ‘새로운 대한민국’을 세워 낸 뿌리인 것이다. 특히 장흥군 ‘석대들’은 최후 항전지로서의 역사적 의미가 크다. 또 5.18민주화운동 등 저항정신은 호남인의 자긍심이다. 우리는 그 뿌리인 동학혁명의 정신을 더욱 기리고 계승해 나아가야 한다. 조례를 통해 동학혁명의 역사적 의미를 살리고, 또 관련 기념사업 등을 지원하고 싶었다.

Q. 동학혁명을 아직도 ‘반란’이나 ‘농민운동’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에 대한 견해는?

A. 왕조사관에 입각한 봉건보수 세력의 관점에서는 ‘반란’이라 한다. 또 ‘성공한 쿠데타’만을 ‘혁명’이라 하는 입장은 ‘농민운동’이라 폄하한다. 그러나 한말 항일의병운동과 3.1운동, 4.19의거, 5.18민주화운동, 6.10항쟁, ‘촛불혁명’으로 살아 숨 쉬는 동학혁명보다 ‘성공한 쿠데타’가 또 어디 있다는 말인가? 나는 평소에 즐겨 말한다. “나는 저항한다. 고로 존재한다.” 또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목사의 말을 즐겨 인용한다. “이 사회적 전환기의 최대 비극은 악한 사람들의 거친 아우성이 아니라 선한 사람들의 소름끼치는 침묵이었다.” 동학혁명은 ‘선한 사람들의 불의에 항거한 거친 몸부림’으로 ‘성공한 쿠데타’이고 또 ‘혁명’이다.

Q. 우리 지역 내 동학농민군 후손과 관군의 후손 간에 갈등이 크다. 그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런지?

A. 최근에 우리 군의 사회적 갈등으로 야기되는 비용이 적지 않음을 느낀다. 나는 신년 사자성어로 ‘집사광익(集思廣益)’을 제시한 바 있다. 그 의미처럼 ‘생각을 모아 더 큰 이익’을 얻어야 한다. 동학혁명 관련해서도 포럼 개최 중에 관군 후손의 폭언이 있었고, 영회당의 관군 추모비 훼손 사건이 있었다는 말을 들었다. 그런 일이 또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되겠다. 동학혁명의 의미와 관군의 안타까운 희생 모두 그 나름의 의미를 기리고, 역사적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농민운동을 진압하는 쪽에 안중근 의사가 가담했다 해도 대한민국 독립을 위한 그의 투쟁을 무시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번 동학혁명 기념사업 지원 조례가 자랑스러운 동학농민군 업적과 안타까운 관군의 희생도 함께 기리도록 추진되기를 바란다. 도문화재인 영회당의 관군 위령제도 군이 주관해서 추진할 수 있으면 좋겠다.

Q. 앞에서 편의상 동학농민혁명을 동학혁명이라 써 왔는데 ‘동학’과 ‘농민’이 어떤 과정으로 결합하게 되었는지?

A. “실상 농민군 속에 동학교도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강만길 『고쳐 쓴 한국 근대사』). 이 때문에 강만길 교수는 ‘동학혁명’이라는 용어 대신에 ‘갑오농민전쟁’이라 한다. 사료에서 ‘僞東學黨’(동학으로 위장한 무리)라고 쓰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 하겠다. 동학농민운동은 ‘동학’의 가르침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니라 당시 극심한 사회경제적 위기와 극도의 부당함을 겪은 농민을 위시한 피지배계층이 그 불만을 폭발시킨 데서 비롯된 것이다. 혁명주도세력인 전봉준, 최시형 등이 동학에 관련되었다는 점에서 그 연결고리를 찾을 수 있다.

Q. 동학농민혁명의 전개과정 및 그 역사적 의미에 대해 좀 더 설명해 줄 수 있는지?

A. 동학농민혁명은 당시 조선이 안고 있던 절체절명의 과제인 ‘사회개혁(근대화·반봉건)’ 및 ‘외세침탈의 배격(자주·반외세)’을 이루기 위한 농민들의 일대 항쟁이다. 혁명과정에서 농민군은 전근대적 모순과 부패의 척결, 즉 근대적 사회개혁을 요구하고 실행해 갔다. 사회적으로는 신분타파운동으로 양반질서를 깨부수고 평등사회를 실현코자 했다. 경제적으로는 조세 수취제도의 개선을 통해 농민과 상인, 수공업자 등 영세한 직접생산자들의 자립과 발전을 꿈꾸었다. 정치적으로는 왕정(王政)체제의 개선을 희망했다. 나아가 일제 침략이라는 민족적 위기에 맞서 싸우며 항일민족운동을 전개했다. 전봉준이 주도한 1차 봉기부터 집강소 설치시기까지는 반봉건의 성격이 강했고, 최시형이 주도한 항일투쟁기에는 반침략의 성격이 더 강하게 나타난다. 그 성격은 농민군의 ‘폐정개혁안 12개조’와 ‘4대 강령’의 내용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Q. 끝으로 못 다한 얘기가 있으면 마무리해 주겠습니까?

A. 2019년 올해는 동학농민혁명 125주년이 되는 해이다. 또한 정부는 5월 11일을 동학농민혁명 기념일로 하여 국가기념일로 제정하고, 올해 그 첫 국가기념식을 거행한다. 법률로 ‘혁명’이라 규정한 데 큰 의미가 있다. 비록 늦은 감이 있지만 박수를 보낸다. 동학농민혁명은 가장 밑바닥에서 고통 받던 백성들이 삶의 모순을 인식하고 새 시대에 대한 열망으로 그것을 바꾸려는 의지가 충만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때 그 민중들의 의기를 다시 되새겨야 할 때이다. 우리 삶의 모순에 깨어 있고, 저항해야 할 순간에는 정의롭게 목소리를 내야 한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양심이 아니다.”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말이다. 우리는 역사 속에서 교훈을 찾고, 과연 우리 시대의 정의가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시대가 암담하다고 느낄수록 우리는 각자의 등불을 환하게 밝혀야 한다./김용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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