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옥봉 백광훈 집안의 4문장
■특별기고 -옥봉 백광훈 집안의 4문장
  • 장흥투데이
  • 승인 2019.06.22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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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무/다산연구소 이사장·우석대 석좌교수

한 집안에서 시문으로 뛰어난 문장가 한 사람만 나와도 이름난 집안으로 대대로 칭송을 받기 마련이다. 한데, 호남의 장흥과 해남에 살던 옥봉(玉峯) 백광훈(白光勳:1537∼1582) 집안에서는 4문장(文章)이 나왔으니 그 명성이 어떠했을지 짐작이 간다. 더구나 옥봉의 아들로, ‘난중일기’에 이순신이 큰 도움을 받았다고 나오는 송호(松湖) 백남진(白南振:1564∼1618) 또한 진사(進士)로 시문에 뛰어난 문장가였으니, 실제로는 한 집안 5문장이 나온 집안이라고 말해도 될 것이다.

옥봉의 형인 기봉(岐峯) 백광홍(白光弘)은 ‘관서별곡’의 저자로 세상에서 큰 이름을 얻었던 분이고, 형인 백광안(白光顔)과 종형인 백광성(白光城) 또한 문장가여서 4문장인데, 아들까지 뛰어난 문장가였다면 그런 집안이 어디 쉽게 찾을 수 있는 집안이겠는가. 뭐라 해도 그 집안의 대표자는 역시 옥봉이었다. 옥봉은 장흥에서 태어나 일찍 해남의 옥천으로 옮겨 생활했으며, 진사과에 합격한 뒤에는 과거에 응시하지 않고 오직 자연과 함께 살면서 당시 ‘3당시인’으로 알려지고 조선 중기의 대표적 시인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중국 사신(使臣)들까지 옥봉의 시를 읽어 보고는 감탄을 금치 못해 중국의 문인들에게 널리 알려졌으니 이른바 천하의 시인의 지위를 얻게 되었다.

고죽(孤竹) 최경창(崔慶昌), 손곡(蓀谷) 이달(李達)과 백광훈이 이른바 ‘3당시인’이다. 최경창 또한 영암 출신이고 이달은 호남 출신은 아니지만 많은 세월을 호남에서 지내면서 호남의 시인들과 어울려 지냈다. 따라서 조선 중기 조선의 시단은 역시 호남인들이 단연코 독점하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송강 정철의 후손으로 대제학에 영의정을 지낸 장암(壯巖) 정호(鄭澔)는 옥봉의 ‘묘갈명’(墓碣銘)에서 옥봉의 삶과 시문학에 대하여 뛰어난 해설을 남겼다. 장암은 그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당시에 옥봉을 좋아했던 사람이자 옥봉이 좋아했던 사람으로 선배에는 이후백·노수신·임억령·양응정·박순 등이고 동년배로는 율곡 이이, 우계 성혼, 송강 정철, 이의건 등 당대의 어진 이들이었다.” 대부분 호남인들인데 국중의 대문장가들과 서울의 몇몇 어진 이들과 가까이 지냈음을 알게 된다. 역시 호남의 학문과 문장의 영향으로 옥봉과 같은 대시인이 배출되었음을 보여 준다.

예전에 읽었던 ‘옥봉집’(玉峯集)을 근래에 책장에서 꺼내 읽어 보면서 호남에 이런 탁월한 시문학의 대가가 있었음을 다시 확인하게 되었다. 문집에는 세 편의 서문(序文)이 실려 있는데, 서경 유근(柳根), 월사 이정귀, 상촌 신흠 등 조선을 대표하던 문장가 모두가 옥봉의 뛰어난 시문학에 극찬을 아끼지 않는 평가를 내렸었다.
화순 태생으로 해남으로 옮겨 살았던 친구인 천유(天維) 양산형을 기다리면서 지었다는 옥봉의 우정(友情) 어린 시 한 편을 읽어 본다. “비 개자 온 뜰에 새 이끼 자라고/ 책상에 진흙 떨구는 어린 제비도 돌아왔네/ 한가로운 생각에 잠겨 있다 문득 슬퍼져/ 녹음 아래서 온종일 그대 오길 기다리네”

‘기양천유’(寄梁天維)라는 제목의 시다. 뛰어난 감성과 탁월한 묘사력이 돋보인다. 아름답기 그지없는 초여름, 제비도 돌아왔건만 기다리는 친구는 오지 않는데, 녹음 아래서 온종일 그대만 기다린다는 시상! 이 한 편의 시만 읽어 보아도 옥봉의 시 솜씨를 제대로 알 수 있다.

‘3당시인’이자 ‘조선 8문장’의 한 분이라는 옥봉이건만, 오늘날 젊은이들 누가 옥봉을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가. 우리 것 내 것이라면 무조건 외면하고, 옛것, 오래된 것, 한문으로 된 시문은 무조건 멀리하는 세태에 분개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요즘의 젊은 문인들, 이런 멋지고 의미 깊은 옛날의 시를 본받고 익혀서 새로운 시를 창작하고 읊어 보면 어떨까.

‘옥봉집’을 읽다 보면 옥봉과 교유했던 대부분의 학자나 문인들이 호남의 문장가들이었음을 알 수 있다. 백호 임제, 건재 김천일, 미암 유희춘 등 호남의 문학과 학문의 분위기에서 빚어진 시문이 바로 옥봉의 시문학이었다. 이제 할 일은 하나다. 그 많은 호남 학자나 문인들의 학문과 시문학을 제대로 연구하고 현양하여 그때 조선 중기의 찬란했던 호남이 다시 살아날 수 있도록 우리들이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으로 돈독하게 옛날의 시문학에 대한 천착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호고(好古)해야만 창신(創新)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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