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인물/천방 유호인(5) - 천방 유호인의 시 세계를 고찰한다(1)
■역사인물/천방 유호인(5) - 천방 유호인의 시 세계를 고찰한다(1)
  • 김선욱
  • 승인 2019.07.11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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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소시(詠梳詩)’-허균 자기 저적물에 2회 소개한 명시
위백규, “당대 널리 회자되었던 ‘하늘의 뜻’ 담은 명시
천방공의 서당도
천방공의 서당도

천방 선생의 대표적인 시 ‘빗을 읊은 시(詠梳詩)’가 있다.

“얼레빗으로 빗고 참빗으로도 빗질하니

산란한 머리 가지런하고 이는 절로 없어져

어찌하면 천만척이나 되는 큰 빗을 얻어다

백성들 속에 들끓은 이떼(백성들의 머릿니)를 다 없앨까

木梳梳了竹梳梳/亂髮初分虱自除/安得大梳千萬尺/盡梳黔首無餘”

이 시는 대빗질을 하여 백성들을 괴롭히는 탐관오리를 없애버리자는 우의(寓意)가 깃든 시로, 천방공의 대표적인 시다.

이는 조선 중기의 유명한 문인이며 <홍길동>의 저자 허균(1569∼1618)이 쓴 유명한 문집 <성소부부고惺所覆螺藁>에 실리기도 했을 정도였다.

천방의 영소시-

허균, 2회나 소개한 명시

즉 <성소부부고>의 수록 내용을 보자.

윤면(尹勉, 1543-1592, 자:斯文, 부사 역임)이 사명을 받들고 호남으로 떠나 어느 산을 지나가는데 산 속에 초가집이 있었다. 거기서 한 늙은이가 나무 아래에서 다리를 뻗고 앉아 있었고 책상 위에는 책 한 권이 놓여 있었다. 펴 보니 늙은이가 다가와서 빼앗으며,

“되지 않은 작품이라 남의 눈에 보여 줄 수가 없소.”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겨우 첫머리에 쓴 빗을 읊은 시만을 보았는데 다음과 같았다.

얼레빗 빗질하고 참빗으로 빗질하니(木梳梳了竹梳梳)
빗질 천 번 쓸어 내려 이는 벌써 없어졌네(梳却千回蝨已除)
어찌하면 만장 길이 큰 빗을 얻어다가(安得大梳長萬丈)
백성들의 물것을 남기잖고 쓸어낼꼬(盡梳黔首蝨無餘)

그 이름을 물었더니 대답을 하지 않고 도망가 버렸다고 한다.

혹은 말하기를 전주 진사 유호인(兪好仁)이라고도 한다.

(尹斯文勉奉使湖南。造一山中有草屋。一老翁樹下槃博。几有一卷。展看則就奪之曰。鄙作不堪入眼。僅見首題詠梳詩曰。木梳梳了竹梳梳。梳却千回蝨已除。安得大梳長萬丈。盡梳黔首蝨無餘。問其名。不對而遯去。或言全州進士兪好仁也)

-<성소부부고 제25권> 설부

<성소부부고惺所覆螺藁> 부록인 ’ 학산초담‘에도 이와 비슷한 일화가 거듭 수록돼 있다.

“근세 어떤 선비가 지리산(智異山)에 유람갔는데, 한 외진 숲에 이르니, 폭포는 이리저리 흐르고 푸른 대 우거진 가운데 한 띳집이 있는데, 한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섰다가, 선비를 보고는 몹시 반기며 손을 맞아 솔 아래 앉혀 놓고 막걸리에 나물국으로 대접하고는 말하기를,

“이 늙은 것이 평소에 머리 빗기를 좋아하여 하루에 꼭 천 번은 빗어내린다오.”

하면서 쪽지를 내어 놓는데, 그 속에 든 것이 바로 머리를 빗는다는 소두시(梳頭詩)였다.

얼레빗으로 솰솰 가려 낸 다음 참빗으로 훑되(木梳梳了竹梳梳)

천 번이나 훑어내니 이는 벌써 없어졌네(梳却千廻蝨已除)
어떻게 하면 만 길 되는 큰 빗 구하여(安得大梳長萬丈)
백성의 머릿니 모조리 훑어 없앨꼬(盡梳黔首蝨無餘)

선비가 자신도 모르게 뜰 아래 내려가 절하고 그 이름을 물으니 숨기고 알려주지 않았다.

이튿날 친구들에게 이 사실을 이야기하고는 두세 사람이 같이 다시 찾아가보니 집은 그대로 있었으나 사람은 이미 떠나고 없었다.

-<성소부부고 제26권> 부록 1/‘학산초담’

이처럼 반곡의 영소신은 조선의 유명한 문장가인 허균이 2회나 걸쳐 소개할 정도로 당대 유명한 시였던 것이다. 이뿐이 아니다.

이 영소시는 허균뿐만 아니라 절구가 조금 변이된 채 조선 중기 문신 우복룡(禹伏龍, 1547~1613)의 <동계잡록東溪雜錄)>이나, 조선 중기의 문신·문장가였던 유몽인(柳夢寅,1559∼1623)의 시문집 <어우집於于集>, 조선 중기 기인으로 유명한 조여적(趙汝籍)의 <청학집靑鶴集(1648)> 등에도 소개되었다.

천방의 영소시-

<동계잡록><어우집> <청학집> 등에 소개

우복룡의 <동계잡록> 1581년 10월 11일~1582년 8월 22일까지의 일지에 천방 선생과 그의 영소시가 소개돼 있다.

심의겸(沈義謙, 1535–1587)이 (전라)관찰사로 부임하여 말몰이꾼도 없이 홀로 필마를 타고 가 만났다.

…호남에 유호인(劉好仁)이라는 사람이 있다. 나이는 80을 넘었다. 산에 들어간 지 이미 30년이 되었다. 책상 위에 다른 물건은 없고, 그저 서책이 있다. 항상 시를 읊기를,

얼레빗 빗질하고 참빗으로 빗질하니(木梳梳了竹梳梳)
난발 처음 가르자 머릿니 절로 사라졌네(亂髮初分蝨自除)

어찌하면 만장 길이 큰 빗을 얻어다가(安得大梳長萬丈)
백성들의 머릿니를 남기잖고 쓸어낼꼬(盡梳黔首蝨無餘)

라 하였다.

(湖南有劉好仁者。年過八十。入山已三十年。案上無他物。只有書冊。常有詩云。木梳梳了竹梳梳。乱髮纔分虱未除。安得大梳千萬尺。盡梳黔首虱無餘。沈義謙為方伯。盡去騶率。只以匹馬跪進。筐篚亦不辞云。劉即丁景達之表叔云)

유몽인의 시문집 <어우집(於于集)>에도 천방공의 영소시가 소개돼 있다

얼레빗으로 빗질하고 참빗으로 빗질하니(梳梳了竹梳梳)
어지럽던 머리카락 정리되고 이는 절로 없어졌네(亂髮初分蝨自除)
어떻게 하면 천만 자 되는 큰 빗을 얻어(安得大梳千萬尺)
한 번 빗질로 백성의 이를 남김없이 쓸어낼까(一梳黔首蝨無餘)

(허균許筠의 <성수시화惺叟詩話>에는 지리산에 사는 이름 모를 노인의 작으로 되어 있다.<惺所覆瓿稿 卷25>

-<어우집 제2권>/ 시詩/습유록拾遺錄/빗을 읊다〈습유록〉〔詠梳 拾遺錄〕

조여적의 <청학집(1648)>에도 천방 선생과 그의 영소시가 소개돼 있다

“이 처사 유(李愈)의 자는 퇴부(退夫)요 호는 소두자(梳頭子)라 하였으며, 지리산 자초동(紫草洞)에 은거하였는데 이는 이곳의 천석(泉石)이 아름다운 까닭이었다. 날마다 천 번씩 머리를 빗으며 지냈는데 그의 시에,

얼레빗 빗질하고 참빗으로 빗질하니(木梳梳了竹梳梳)
빗질 천 번 쓸어 내려 머릿니는 벌써 없어졌네(梳却千回蝨已除)
어찌하면 만장 길이 큰 빗을 얻어다가(安得大梳長萬丈)
백성들의 머릿니를 남기잖고 쓸어낼꼬(盡梳黔首蝨無餘)

비록 일사(逸士)라 하나 경세의 재주가 있어서 대추꽃이 열매 맺고 뽕잎 먹은 누에가 실을 뽑는 데에 비해 손색이 없다 하겠다.”

천방공 영소시는 이렇듯 여러 사람들이 인용하거나 수정 보완하여 인용하였을 만큼 명시로서 인기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존재 위백규 선생도 “…영소시는 …언어가 하늘의 뜻을 이룬 것으로…더욱이 그 시는 아주 진기하고 절묘하여 사람들 입에 많이 읊어지고 회자되었다. 지금에 혹 무명씨(남제학南提學 용익龍翼은 <청구풍아靑丘風雅>에 이 시를 끌어다 들이고 무명(無名)이라 칭하거나 혹은 유뢰계(兪雷溪 : 兪好仁 1447~1494)라고도 인지했다.

여기서 언급한 <청구풍아靑丘風雅>는 조선 전기 김종직(金宗直)이 간행한 시선집으로 신라 말에서 조선 초에 이르는 126가家 각 체의 시 503수를 정선하여 실었던 시선집이었다.

그러니까 당대 이 영소시를 그 유명한 ‘청구풍아’의 시선집의 시라면서 인용하기도 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본명이 유호인(兪好仁)이엇던 유뢰계(유(兪雷溪) 역시 조선 조기 문인이었다. 그의 본관이 고령(高靈)이고 자는 극기(克己), 호는 임계(林溪)·뢰계(雷溪)로 <청구풍아>를 편찬한 김종직(金宗直)의 문인이었다. 1487년 노사신(盧思愼) 등이 편찬한 <동국여지승람> 50권 다시 정리해 53권으로 만드는 데 참여했으며, 시·문장·글씨에 뛰어나 당대의 삼절(三絶)로 불렸던 조선조 전기 때 저명한 시인이었다.

천방공의 이 영소시를 유뢰계의 시로도 오인했다는 것은 아마도 우연히 성(姓)도 음이 같고 명(名)과 자(字)도 일치했으며, 이 시를 뢰계 유호인의 시라고 해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로 뛰어났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사료된다.

<청구풍아靑丘風雅> : 조선 전기 김종직(金宗直)이 간행한 시선집으로 신라 말에서 조선 초에 이르는 126가家 각 체의 시 503수를 정선하여 실었던 시선집>에 이 시를 끌어다 들이고 무명(無名)이라 칭하거나 혹은 유롸계(兪雷溪 : 兪好仁 1447~1494)라고도 인지했다.

천방 문집의 시평들

보통 시문집 발문은 한 두 사람의 서문이나 발문으로 그친다. 그런데 천방 선생의 시문집에는 서문3개, 발문 1개가 상재되었다.

성균관 사홍(事弘) 문관제학(文館提學) 홍의준(洪義俊)은 ”…내가 유집(遺集)에서 가려 얻은 것은 다 사물을 읊은 시들뿐이다 그 시는 대개 도학(道學)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곤충이나 초목 등에서 성정(性情)을 움직여 나타난 맛을 문자에 기탁(寄託)하는 것들이다. 처사(천방공)의 시는 사물에서 심득(心得)한 뜻을 붙여 말했으니, 시전(詩傳-시경의 시를 쉽게 풀이한 책) 300편에 담긴 뜻과 다름이 있겠는가. 처사의 시는 임을 사모하고 백성을 근심하는 마음을 나타내는 말이 넘치며, 효행하는 소치(所致-까닭)를 가린 것으로 도리를 깨달아 이치를 규명해 내는 말들은 곧 사물 밖의 학문이 쌓인 말들이다.

…처사의 많은 시들은 비록 한두 마디 짧은 말과 문자라도 세사(世事) 교화에 관계가 있어 곧 사람들이 오래도록 읊어대니 차려입은 의복에 날개가 없다면 곤륜산(崑崙山)의 옥을 부셔 단혈(丹穴)에 영포(零苞)한 것(밑동에 붉은 구멍을 내는 것)과 같다. 그 시를 보면 그 사람의 덕성을 알 수 있다.“고 평가했다.-<천방선생문집> ‘문집 서1’에서

조선 후기의 문신 유정양(柳鼎養, 1767∼?. 1818년 영변부사로 재직 중, 홍경래 난과 관련하여 영변부안핵어사 한용의韓用儀 등의 탄핵으로, 6월 장흥부에 유배되었다)도 “…머리에서 끝까지 100여 편인데, 일용한 복식부터 초복과 금수(禽獸)까지 읊을 때는 반드시 제목이 뜻한 바를 붙였고, 언어를 이룸에 고금의 시어를 쓰는 것을 경계(警戒)하고 한언(閒言-귀한 언어)을 찾아 비유했다.

…태사(太史) 씨(氏)-천문역법을 관장하는 벼슬-도 이렇게 가려서 배치 할 수 없을 것이니, 모두가 정풍(正風)으로 벌렸구나” 하고 천방 선생의 시를 평가했다-<천방선셍 문집> ‘문집 서2’에서

장흥도호부사 이보원(李普源, 재임 1770-1772) 도 천방 시에 대해 “…그(천방) 시의 명제를 읽어보면, 짐승, 곤충, 초목, 꽃, 나물, 복식(의복,장신구), 그릇과 뜻을 붙인 반우(盤盂:소반, 사발) 궤안(几案: 의자, 안석, 사방침), 침석(枕席:베개, 잠 자리), 호영(戶楹: 문, 기둥), 검장(劒杖: 칼, 지팡이)의 이름으로 서로 비슷비슷하였다. 또 추수(秋水), 부용(芙蓉:부용, 연꽃), 조식(彫飾:새기고 꾸미는 것)의 형태와 천구(天球:천체), 홍벽(弘璧: 널리 아름다운 것), 섬애(纖埃: 가는 비단과 티끌)의 자취이니, 대체로 일정하지 않은 자연스러운 것들이었다.

…그는 빈둥거리며 노닐고 여가가 나면 심상(尋常)하게 한가로이 시를 읊다가 흥이 나면 몇자의 짤막한 문구로 시를 짓되, 법규가 있고 풍자하여 붙이되 이치를 갖추었구나. 아, 선생의 시는 사장(詞章)의 변변찮은 재주가 아니라 남명(南冥-조식), 율곡(栗谷)으 두 선생의 학문이니, 그의 유파를 거슬러 올라가면 그의 근원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더욱 신임(信任)이 넘칠 것이다….”고 평했다.-<천방 선생 문집>, ‘문집 시 서3’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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