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인물/천방 유호인(7) 천방의 시(詩) 세계를 고찰한다(3)
■역사인물/천방 유호인(7) 천방의 시(詩) 세계를 고찰한다(3)
  • 김선욱
  • 승인 2019.07.26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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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정자‧선비‧백성들에게 성리학적 교훈 담아 작시(作詩)

연하동의 고독하고 청빈한 선비의 삶- 자족감 표현하기도

격물치지, 관조로 독특한 시세계 구축–‘당대 저명한 시인’

도학자‧선비의 정도正道-

시詩 통해 역설, 不正 경계

천방의 시에서 자주 나타나는 시의 주제는 도학자, 선비로서 당대의 위정자거나 선비나 일반 백성들이나 할 것 없이 모두 올바른 삶, 정도(正道)의 길을 가도록 권면하거나 그릇되거나 사리 사욕을 경계하는 주제가 대부분이다.

‘지팡이(杖)-충신의 지팡이는 행험行險이다’는 시에서는,

微村擁腫扶衰疾 작은 마을에 종기를 낀 약한 병을 붙들고도

壯節生稜助王威 서슬 퍼런 장한 절의로 임금의 위엄을 돕네

我有素持異於他 내가 지니고 있는 본바탕은 남들과 달라서

可行蠻貊永無違 북방 오랑캐 행동을 해도 영원히 어긋나지 않네

라고 읊었다.

이 시에서 천방은 ‘자신은 사심(私心)이 없으므로 비록 오랑캐 같은 행험(行險-위험한 방도를 행함)도 어긋나지 않는다’는 의미를 담았는데, 이러한 주제를, 결코 주인을 배신하지 않는 충직한 역할만 하는 지팡이의 역할에 비유하여, 충심의 행위를 반의적으로 표현했다.

짚신이란 발을 보호하면서 걷기에 편해야 한다. 그러한 용도로 만드는 것이 짚신이다. 그러므로 짚신에서 외양을 꾸미거나 치장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 오로지 발이 편해야 하고 튼튼해야 하고 질겨서 오래 사용할 수 있다면 그 짚신의 효용성이 더욱 두드러지게 된다. 이러한 짚신이 성질, 용도를 비유해 쓴 시가 ‘짚신(屨)’이다.

즉 ‘짚신(屨)-외모만 꾸며 어디에 쓰겠는가, 속이 편해야지(外飾安用 內守爲貴)’라는 시는,

屨雖華美不加巓 짚신이 아무리 예뻐도 떨어지기 마련이고

綠錦糚珠只取愆 푸른 비단과 진주로 장식해도 허물어진다

樂子有憂曾子戒 즐거움에 근심도 있다고 증자(曾子, 춘추시대의 유학자)는 경계했고

無忘步步竟歸全 생각없이 걷고 걸으면 종내는 돌아간다

이다.

이 시는 외모, 외양만 꾸미는 사람들을 경계하는 시다.

또 ‘먹(墨)-마음이 검은 자는 죽는다(心墨者死)’는 시에서 천방은,

松煤龍腦質玄香 송매*나 용뇌*로 만들어서 향이 그윽하고

潤色斯文任自當 색이 윤색하여 유림인들(斯文)에게 스스로 맡겨

頂踵俱磨終不免 발끝까지 모두 같아 종내는 남지 않으니

限渠無復避姦臟 모두 어그러져 복구 못함을 어찌 한限 하랴

*송매(松煤)-소나무를 태운 그을음. 이것으로 만든 먹이 송연묵(松煙墨)이다

*용뇌(龍腦)-용뇌수로 약재의 하나. 인도에서는 방향제나 훈향(薰香) 등으로 사용한다.

라고 읊었다. 이 시는, 검은 먹이 점점 닳아지며 종내는 남지 않듯이, 먹처럼 속(마음)이 밝지 못하고 검은 자는 죽는다는, 즉 밝지 못하고 맑지 못한 신성을 가진 사람들을 경계하는 시이다.

또 “봄에 피는 동백(春栢)-군자는 스스로 얻어진 것이 아니면 취하지 않는다(君子無入不自得)‘는 시에서는, 남의 것을 거저 얻으려 하지 않는, 즉 탐욕하지 않는 군자의 도리를 설파했다.

霜雪靑靑雨露洪 서리 눈 속에서도 푸르며 바와 이슬에도 붉고

愛渠無日不春風 임을 사모할 뿐 춘풍을 그리워하지 않는다

窮多慽慽富淫樂 다함이 없이 음탕한 풍락이 넘쳐도 시름 겨워하고

世俗皆爲桃李容 세속에서도 다 어진 사람(桃李)의 풍모를 지녔네

이 시는, 눈 속 겨울의 역경을 이기고 스스로 자라나 이른 봄에 피는 동백은 결코 춘풍을 탐하거나 그리워하지 않으며 오로지 임을 사모할 뿐이다. 이러한 동백의 성정을 표현했다. 그리고 그러한 동백의 지조는 음탕한 풍류에도 오히려 시름에 잠기고 세속에서도 어진 사람의 풍모를 지닌다는 의미를 표현했다. 그러므로 군자 역시 스스로 얻어진 것이 아닌 것은 탐하지도 욕심내지 않는다는, 군자의 도리를 표현한 시다.

‘궤(櫃:뒤주)-애심(愛心)해야지 재물로 좋아할 게 아니다(愛心不如愛財)’라는 시에서는, 마음보다 재물을, 보이지 않는 무형의 마음보다 보이는 재물(물질)을 더 좋아하는 사람들을 경계했다.

人愛珍財此貯儲 사람들이 진귀한 재물로 좋아하는 이 뒤주

煙塵不入鼠還除 연기 티끌도 들지 않고 쥐의 침범도 막네

可憐衆妙在腔子 가련하다 쥐생원들아(腔子) 모든 묘리 다 짜내도

外屢投間不可祛 외곽만 마구 두드리지 떨어낼 수 없구나

이 시는 강자(腔子:쥐생원 의미. 쥐생원은 생원을 속되게 이르는 말)들, 즉 쥐생원들이 기를 쓰고 재물(뒤주 속의 곡식)을 탐하지만, 외곽만 두드릴 뿐, 실속을 차리지 못하다는 의미로, 그러한 실속 없는 재물을 탐하고 좋아할 게 아니라 마음(정신)을 더 좋아해야 한다는 의미의 교훈을 담은 시라고 할 수 있다.

‘지렁이(蚓)-진실로 청렴한 자는 지렁이다(苟廉者蚓之)’라는 시에서도, 천방은 하찮은 지렁이의 속성을 통해 사람은 청렴해야 된다며, 청렴하지 못하는 당대의 관리들을 강하게 질타하고 있다.

朽木資生蟄土中 썩은 나무에서 자생하여 흙 가운데 숨기고

飮泉食土任長絡 샘물 마시고 흙을 먹으며 길게 둘러 임하네 ‘

於陵仲子眞堪笑 중자의 무덤에서도 진정한 웃음을 감내하니

效爾爲廉尙未充 너희는 그 청렴함을 본 받고 충만하지 말라

*중자(仲子)-둘째 아들을 의미. 춘추시대 노(魯)나라 혜공(惠公)이 애첩에서 낳은 아들을 후사(後嗣)로 삼았다. 그가 바로 환공(桓公)이니 혜공의 애첩은 본첩이 낳은 적자(嫡子)나 서자(庶子)가 모두 총애하는 첩으로 바뀌게 돤다. 그러나 이 경우, 서자와 작자가 바뀌는, 즉 인륜이 무질서하게 됨을 나타낼 때 인용되는 경우로 사용된다.

이 시는 지렁이의 속성을 잘 드러내고 있으며, 지렁이의 속성을 비유로 하여 남의 것을 탐하거나 치부하고 삿된 욕심을 가지면 안 된다는, 즉 그러한 사심으로 제 이익을 채우려는 사람들을 경계하는 의미의 시이다.

천방의 자연친화적인 사상-

시 ‘병풍’에 잘 드러나

우리 선조들은 조경을 함부로 조성하지 않았다. 자연 안에 정자 등 간단한 건물을 짓고 자연의 한 가운데로 스스로 들어가 자연과 친해지며 경관을 조망하기를 좋아했다. 즉 지연이나 경관을 인위적으로 소유하지 않았고 자연을 가두거나 속박하려고 하지 않았다. 자연 그대로를 보고 그 자연과 친화하려는 자연관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정도를 걷는 선비들의 경우 유독 그러한 자연관을 가졌다. 천방도 예외는 아니었다. 도학자로서 선비로서 천방의 그러한 자연관이 잘 드러나 있는 시가 바로 ‘병풍(屛風)’이라는 시다.

즉 천방은 ‘병풍(屛風)-병풍이 가려 풍경을 죽인다(殺風景)’라는 시에서 인공이 자연을 죽인다는 자연 친화주의를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圍掩卻嫌無所觀 병풍에 가려 경관을 못 본 게 되려 싫다

還將景物畵其間 돌아보니 자연경물이 그 사이에 그림인데

應知只是奢花事 아마도 이것이 화려한 사치임을 알겠구나

驪背猶堪風景寒 당나귀 등에서 찬 풍광을 견뎌내며 보네

‘나무하는 아이에게 주다(贈樵童)-군자가 아니라도 사랑한다(可愛非君子)’라는 시도 천방의 자연주의를 잘 드러낸 시다.

慇懃囑爾護松林 너에게 은근히 송림이 보호를 부탁하노니

芟盡荊榛莫遣侵 잡목은 다 베되 마구잡이로 치지 마라

他日棟梁應有待 훗날 용마루나 들보로 기대할 수 있으니

爾今猶可憩淸陰 네 이제 마땅하다면 그 그늘에서 삿됨없이 쉬리라

이 시에서 시인은 잡목이라도 함부로 다 베지 말라고 충고하고 있다.

즉 잡목의 일부에는 훗날 귀히 쓸 것이 있다는, 잡목일지라도 보호해야 한다는. 잡목에 대한 애정을 잘 보여주는 시다. 그리고 이러한 의미를, 군자가 아닌 사람이라도 사랑할 만한 가치가 있으며, 그러한 사람들을 사랑하라(그들의 그늘에 쉬라)고 충언하고 있다.

연하동에서 처사로서 삶-

시에서도 자족(自足) 드러내

이처럼 성리학의 격물치지와 관조로 시 세계를 구축해 온 천방은 이러한 자기 삶에 대한 생각은 어떠했을까.

천방이 스스로의 삶에 대한 자평으로 쓴 시가 두어 편이 있다.

‘복숭아 나무를 옮기며(移桃)-연하동 속에 별다른 천지가 있다(煙霞洞裏 別有天地)’라는 시가 그 중의 하나이다.

措大淸寒蘖如冰 청한(淸寒)으로 청빈한 선비는 그루터기와 얼음 같으니

閉門終日更無朋 종일 문은 닫혀지고 찾아오는 벗도 없다

春園細雨移桃樹 봄동산 이슬비에 복숭아나무를 옮기고

儗待開花作武陵 복숭아 만발한 무릉도원(武陵桃源)을 꿈꾼다

이 시에서 천방은 자신을 ‘푸르고 차디 찬 청빈의 삶’으로 표현하고 있다. 또 자신을 만개한 꽃도 우람한 수목도 아닌 별 볼 일 없는 그루터기요, 차디 찬 얼음덩이로 표현했다. 아주 가난하고 청빈한 선비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나마 종일 손님도 찾아오지 않아 문을 닫혀있고 찾아오는 벗도 없으니, 그야말로 고적한 생활이다. 그럼에도 천방은 그러한 연하동의 고독한 삶의 터전에서 무릉도원을 꿈꾸고 있다.

또, ‘살구꽃(杏花)-행촌의 즐거움에 행원을 뺄 수 없다(杏村之樂 不減杏園)’라는 시에서도,

繁華何必曲江濱 번화한 곳은 하필 곡강(曲江)의 물가에만 있으랴

窮巷春來爛若雲 외딴 시골에도 봄이 오면 구름같이 빛난다

輸稅取餘爲薄釀 세금 주고 남음이 있으면 박주(博酒)라도 만들어

對此長醉亦君恩 그거라도 장취(長醉)하면 역시 임금의 은혜이니

라고 읊으며, 살구꽃이 피는 한적한 시골의 마을(연하동)에서 살고있는 자기의 자족감을 표현 하고 있다.

천방은 연하동이라는 깊은 골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았다.

그런 생활 속에서 주변의 모든 사물이나 자연물을 관조하며, 특히 자연물을 존재 그 자체로 보기보다는 그 속성이나 생태를 인간 중심으로 관찰하고 그것을 인간사와 관련지어 해석하였으며, 그러한 독특한 통찰과 해석을 통하여 작시(作詩)하였다. 매화, 난, 국화, 대나무 등의 화초나 온갖 식물들 그리고 물, 돌 등 무생물들…. 모든 존재물에 대하여 관조하며 생태적인, 형태적인 특성등을 살폈고, 그러한 존재물들을 특성울 끄집어내어 군자나 선비의 도덕적 심성이라든가 절의, 절개, 청렴 같은 의미와 결부시켜 자신의 시적(詩的)인 주제로 삼았던 것이다.

그러하였기에 우주 자연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자연물들도 천방에게 심상이나 정감으로 긴밀하게 연결되면서 소중한 시제가 될 수 있었다. 또 이러한 시작(詩作)으로 인해 천방은 성리학자요 선비로서 뿐만아니라 독자적인 시인으로 고유한 시 세계를 구축할 수 있었으며, 이러한 천방시인을 당대 저명한 시인으로 입지할 수 있게 하였던 것이다.<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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