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한담 23 -동학농민혁명기념관에 서다
■장흥한담 23 -동학농민혁명기념관에 서다
  • 장흥투데이
  • 승인 2019.09.19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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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녹두꽃 -
유용수
유용수

유용수/ 시인·수필가

역사는 과거의 굴레에 묶여 어제와 오늘을 이어주는 결과물이며 우리는 그 결과물에서 옳고 그름을 선택하고 선택의 조각으로 오늘을 만들어가는 거울이다. E. H. CARR는「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책에서 역사란 “현재와 과거와의 끊임없는 대화”이며 “사실과 역사가와의 상호 작용의 결과”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흩어진 역사를 추스르고 더듬으며 기억하고 과거의 삶과 대화하여 잘못된 것은 반성하고 지혜로운 것은 계승하는 것이다.

1894년 갑오년 2월 일어난 고부봉기가 동학란이 되고 동학군이 되고 동학농민군이 되고 동학농민혁명이 되기까지 한 세대를 부대끼며 살아왔다. 반상의 법도가 정립된 조선 후기의 흔들리는 세상에서 지배계층에서 보면 동학은 체제의 도전이었고, 지배당해온 백성들은 새로운 세상을 꿈꾸어온 새날의 혁명이다. 동학은 사람이 하늘인 세상을 만들고자 했기에 백성의 가슴에 들불처럼 번지며 스며들었으리라.

석대들에 바람이 일었다.

날 선 벼잎은 무디어지고 벼들은 열매를 맺고자 가을 햇살을 기다리고 있다. 늘 그랬던 것처럼 오도치 고개를 지나 부용산, 억불산 능선을 넘어오는 가을바람을 기다리는 저 들판은 백여 년 전 흰옷을 걸치고 죽창 하나 들고 핏발선 눈으로 새로운 세상을 이루기 위해 발버둥 치다 스러져간 자리에 붉은 꽃이 피었고 강물은 피를 받아 예양강 둔치로 상여소리와 함께 스며들었다. 그날 이후, 장흥사람들은 입을 열지 않았다. 누구도 안부를 묻지 못하는 삶이 시작된 것이다. 가슴속에는 시커먼 먹물이 서서히 물들어 가고, 눈에는 아픔의 진눈깨비만 맺힌 채 지내온 세월은 길었고 삭인 눈물은 메말라 멈춘 지 오래었지만, 감출 수 없는 진실한 역사가 세상으로 나오자 사람들은 깨어나 입을 열었고, 터지는 통곡으로 몸부림치다가 피지 못한 피 묻은 꽃들을 부둥켜안았다.

꽃이 되어 만났다.

8월이면 서러운 녹두꽃이 피듯이 석대 잔등에 노란 꽃 하나가 곱게 피었다. 짚불처럼 자지러진 자리에 꽃 한 송이가 피어 펄럭이고 있다. 그 자리는 통곡마저 멈춘 자리이기에 웃을 수가 없다. 가끔은 수많은 동학군의 한을 풀어주고자 살풀이를 하는 것 이외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위대하고 성스러운 자리이다. 이 공간은 서로를 도닥여주며 가슴에 맺힌 원한을 풀어내는 해원解冤의 장소다. 22살 여성 농민 지도자 여전사 이소사가 백마를 타고 광제창생(廣濟蒼生) 깃발을 휘날리고, 13살 어린 나이에 동학군을 이끌던 소년장수 최동린이 있고, 동학군 수백 명을 피신 시켜 살려낸 열여섯 소년 뱃사공 윤성도가 있고, 용반접주 이사경이 있고, 고읍접주 김학삼이 있고, 대흥접주 이인환이 있고, 박치경 접주와 박채현 접주가 있고, 아들 성호와 함께 장흥 장대(현 장흥서초등학교 터)에서 참형을 당한 장태장군 이방언 장군이 있고, 보국안민(輔國安民)과 척양척왜(斥洋斥倭), 제폭구민(除暴救民)을 부르짖으며 사람을 하늘처럼 섬기는 나라를 만들고자 분연히 일어났다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꽃(事人如天 無量花)들이 영면한 동학 꽃자리이다.

꽃자리에서 바라보는 자푸지재와 자울재가 운무에 갇혀 서럽다.

길로 이어지는 마을마다 동학을 숨기며 살아왔다. 베개닛과 베적삼에 눈물을 적시며 설움을 참아야 했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었기에 검은 눈만 끔뻑거리며 고달픈 삶을 부뚜막과 장독대에 정화수 한 사발 떠 놓고 간절한 기도로 삭혀냈으니 어찌 서러운 것들이 온전히 전해질 수 있었겠는가. 그나마 눈으로 보고 들었던 사실을 귓속말로 전해준 한 구절과 누군가 호롱불 켜 놓고 써내려간 진실이 남아있어 그날 피의 역사를 오늘도 더듬고 있기에 누군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라고 하고, 또 누군가는 “영원히 승리하리라.”라고 외치고 있다.

서러움을 뼈에 묻고 살다간 자리에서 간간히 들려오는 소리는 동학 년에 죽은 사람 묘지라는 소리뿐이다. 동학군이 관산 대내장(죽천장) 으로 길을 잡아 자푸지재와 자울재를 넘으며 내뱉은 가쁜 숨소리와 간절함은 어디로 스며들었을까. 핏덩이 자식이 눈에 밟혀 자꾸만 뒤를 돌아봐야 했던 사람들. 어머니를 간절히 불러대던 통곡의 소리는 다 어디에 묻힌 걸까. 석대들 양지바른 들판에서 가쁜 숨 몰아쉬다 큰아들 베냇저고리 하나 품고 눈을 감은 곳에서 백여 년 만에 하늘이 열릴 때, 장흥읍 예양리 뒷산 숲속에서도 또 하나의 설움이 열리고 있다.

그곳에는 둥근잎유홍초가 붉은 꽃을 수놓았고 주변은 성근 대나무가 그날의 결기를 말하고, 시퍼렇게 멍든 유자와 메마른 모과나무가 쓸쓸하다. 이방언 장군 등에 맞서 1894. 12월 장흥부성을 사수하다 절명한 부사 박헌양 등 관민 96인의 위패가 안치된 영회당(永懷堂). 1899년 전라어사 이승욱이 순절비를 세우고 후손들이 당을 세우자 순무사 이도재가 영회(永懷)라는 당호를 내린 영회당 뒤편에는 ‘광서20년갑오동란수성장졸순절비’가 있고, 그곳에서 1㎞ 남짓한 거리에 동학 농민 혁명 기념탑이 있다. 이 둘은 한국 근ㆍ현대사의 비극을 오롯이 담고 서로를 위로하고 있다. 장흥부를 지키고자 했던 관군도 나라를 위한 행동이었고, 동학군 또한, 썩은 조정을 뒤집고 사람이 하늘인 세상을 만들고자 일어났기에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이라고 말하겠는가. 둘 다 나라를 위함이고 백성을 위함이 아니던가. 고개 숙여 상념이 들었다. 가을바람이 슬그머니 자리를 털고 지나갈 때, 눕지 못한 풀잎 하나가 구월 중순 햇살에 고개를 숙여 서로를 위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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