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한담 25-초계변씨십삼충훈유허비를 더듬어 기록하다
■장흥한담 25-초계변씨십삼충훈유허비를 더듬어 기록하다
  • 장흥투데이
  • 승인 2019.11.14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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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용수 / 시인·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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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겁게 푸르렀던 시간이 시들고 있다.

노을빛을 닮아가던 나뭇잎이 하나둘 뜨거움을 풀어내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다가올 혹한을 견딜 수 없다는 것을 나무는 스스로 알기에 화려한 것들을 내려놓으며 겨울을 준비 중이다. 아수라의 여름을 기억하며 사라지는 계절은 매양 똑같이 되돌아가는 것 같지만, 우리는 옛것을 익히고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온고지신溫故知新으로 항상 새로운 것에 도전하며 살아간다. 역사란 인류가 남긴 물질문명과 정신적 유산을 포함한 모든 발자취와 일어났던 모든 사실적 이야기를 현재와 끊임없는 대화이기에 이 땅에 살았던 선조들은 어떤 역사관과 국가관을 가지고 살았을까를 더듬지 않을 수 없고 그 속에서 나라를 위해 분연히 일어나 목숨을 바쳤던 의병활동 중 유독 장흥에 주목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왜 장흥을 의병의 고장이라 불리고 있는가를 자문하며 찾아간 초계변씨십삼충훈유허비 草溪卞氏十三忠勳遺墟碑 는 도로가에 우두거니 서서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최근 전라남도에서 의병들의 충혼을 기리고 의병 역사를 새롭게 하기 위해 전국규모의 호남 의병 역사공원을 조성한다고 분주하다. 나라를 위해 이름 한 줄 남기지 않고 목숨을 던진 사람들을 위해 공원을 조성한다고 한다. 늦은 감은 있지만 이제서라도 올곧은 역사를 기리고 가르친다고 하니 다행한 일이다. 다만, 호남 의병 역사공원이 다들 자기 고장에 건립되어야 한다는데 공감 하면서도 유독 장흥에 조성되어야 하는 이유는 수많은 자료와 흔적들이 아직도 서슬 퍼렇게 남아 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중에서도 초계변씨십삼충훈유허비에 기록된 내용은 장흥이 의병의 고장임을 다시금 증명하고 있다.

1592년 임진왜란은 백성에게는 참혹한 전쟁의 역사였다. 원균의 칠천량 전투 패전으로 백성들은 서쪽 전라도를 향해 피난길에 오른다.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 도중 삼도수군통제사로 재 직첩(1597. 8)을 받았다는 소식에 통제사를 따라 장흥 회령포(지금의 회진면)로 모여든 백성들은 통제사가 희망이었으리라. 장군은 장흥 회령포에서 삼도수군통제사로 재 취임하였고 이곳이 명량대첩의 출발지였다.

초계변씨는 충남 아산, 경남 초계, 장흥 안양 동촌 마을 등에 세거를 이루고 살았다. 장흥에 터를 잡은 초계변씨들은 임진왜란이 터지자 통제사 이순신 장군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하였던 것 같다. 장군의 어머니가 초계변씨로 외척들은 장군을 도와 명량해전에 참가하기 위해 변홍주등이 전선 10여 척과 노를 젓는 사람 300여 명을 데리고 통제사의 군영에 합류하여 국난극복에 온몸을 바쳤음을 유허비는 기록하고 있다. 명량대첩에 참전한 초계변씨들은 참패한 왜군들이 고향인 장흥이 적에게 유린당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적을 막는 데 주저함이 없이 나아가 적을 무찌르다 순절한 충과 효의 이야기를 1968년 초계변씨 문중(이조참판공파)에서 장흥군 안양면 수양리 357-2번지 (구)안양서초등학교 옆에 선대의 터전인 안양면 동촌마을을 바라보도록 비석을 세우고 상세히 기록했다.

명량해전에 참전해 대승을 거둔 변국형, 변국간, 변국경 3형제는 왜군들이 장흥지역으로 침입하였다는 소식을 접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왜군과 지포해전(현 안양면 지천해안 추정)에서 치열한 교전 끝에 변국형과 그의 아들 3형제중 변홍원, 변홍제가 순절하고 변홍주는 아들 변덕황과 함께 남해에서 순절한다. 특히, 변홍주는 명량해전에서 순절한 마하수 장군의 사위이니 장안과 사위가 한해에 순절하는 통한의 가족사를 쓰고 있으며 변국간은 아들 변홍건, 변홍달, 변홍적, 변홍선과 명량해전 참가 후 당포해전에서 모두 순절하였다. 변홍건 또한 사위가 남원성에서 순절한 문기방이니 그해 또다시 장인과 사위가 나라를 위해 순절하였고 변국경의 아들 변홍량도 지포해전에서 전사하였다.

이분들을 모신 사당은 안양면 지천마을 초입 덕후재 德厚齎로 「논어 학이편에 나오는 신종추원 민덕귀후의 愼終追遠, 民德歸厚矣에서 따온 것으로 돌아가신 부모에 대해 소홀하지 않고 조상을 받드는 효와 예가 바로서면 자연히 백성의 덕이 두터워진다」라고 한 구절을 기억하며 안양면 모령리 풍암 마을에서 들어가는 지천포芷川浦(옛사람들은 안양면 지천마을을 지천포 라고 불렀음) 초입에 서 있다. 이 길은 어머니의 품안으로 들어가는 탯줄과도 같은 포근한 길이다. 길 끝에서는 감내할 수 없는 어머니의 젖가슴에서 흐르는 비릿한 젖 내음을 맞을 수 있는 이곳이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지포芷浦해전이 치러진 곳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충무공전서와 초계변씨 문중에 기록된 몇 줄과 유허비에 새겨진 것뿐이다.

꼬막재 큰 소나무에 안개가 자욱하다. 샛바람을 타고 올라온 푸른 바닷물이 오래된 역사를 지우고 있다. 1938년 바닷물을 막고 농토를 만든 간척지에서 사람들은 또다시 새로운 삶을 위해 치열하게 역사를 만들어 가고 있고 바닷물이 멈칫거리는 안양면 목단마을 목단꽃 자리에 푸른 소나무만이 국난을 극복하고자 목숨을 바친 초계변씨십삼충훈이 묻힌 곳이다. 이곳에서 내려다보이는 바다 가장자리는 장흥의 세미를 걷어 조운선으로 운반하던 해창 마을이고 선소가 있던 자리는 500여 년의 세월 속으로 사라지고 없지만 세미를 보관하던 창고터와 선창터를 짐작할 만한 곳이 남아 있고, 그곳에서 살다간 사람들의 흔적과 명맥을 이어가는 구전, 그리고 종이에 기록〔1872년 장흥부 지도(규장각 소장)〕되고 돌에 새겨진 하나의 단어와 한 문장이 역사가 되어 오늘까지 더듬더듬 전해주고 있다.

초계변씨십삼충훈유허비는 볼품없는 자리에서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오가는 이의 눈길 한번 손길 한번 받지 못하고 충과 효의 역사를 보듬고 있는 차디찬 돌비석이 낮 설게 다가오는 것은 비단 나뿐일까. 11월 늦가을 비가 오려나 보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흔적을 찾아보는 오늘, 유난히도 나뭇잎이 후드득 지고 있는 자리에서 올곧게 살다간 사람들의 역사를 더듬으며 기록한다.

* 참고문헌과 유허비 충훈자의 명단은 할애된 지면 때문에 기록하지 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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