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흥한담 27 -‘비어 있어도 부족하지 않는 꿈’ 남포 당산제
■ 장흥한담 27 -‘비어 있어도 부족하지 않는 꿈’ 남포 당산제
  • 장흥투데이
  • 승인 2020.01.10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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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용수 시인, 수필가
유용수 시인, 수필가

유용수/시인·수필가

바람이 구름을 밀고 올 때 사람들은 몸을 낮추고 자연 앞에 순응한다. 사람이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잘 알기에 선하게 살기를 바라고 아무리 힘든 삶이라 할지라도 자연이 허락하는 것만큼만 취하며 살아간다. 갯마을 사람들은 자연을 거스르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그래서 굽어진 등짝에 소금꽃 필 때면 습관처럼 하늘을 향해 긴 숨으로 고단한 일상을 위로하며 살아가는 마을을 찾았다. 낯익은 산자락 끝에 바다가 상서롭게 둘러있는 마을. 일몰과 일출을 동시에 볼 수 있는 포근함이 질펀한 갯마을. 835번 지방도 길 끝에 물길이 열릴 때만 다가갈 수 있는 지성소(가장 거룩한 곳)가 있는 곳, 한 올 한 올 얽힌 한을 온몸으로 토해내는 장흥군 용산면 남포 마을로 몸을 밀어 넣는다.

검푸른 바다는 새벽을 깨우기 일쑤였다. 거친 바다에 몸을 의지한 가슴에는 바다보다 더 진한 푸릉댕이가 들어 가슴애피가 맺혀있다. 한 번도 자신 있게 보여주지 못한 손마디를 쳐다보면서 울음조차 멈추고 살아온 세월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 것인가, 가슴만 두근거릴 뿐이다. 땀을 흘리지 않고 대가를 바래본 적 없고, 어떤 것도 탐해보지 않았기에 당당히 거칠어진 손. 올곧게 살아온 손등을 애써 감추는 늙은 어머니를 바라보며 목구멍으로 쓴물을 넘기지만, 하늘 한번 쳐다보며 웃으시던 그 모습에서 메스꺼운 소란스러움은 밀려나고 존경의 성스러움만이 채워지고 있다.

마을로 들어오는 바닷물은 오늘도 고요하게 다가와 위로하고, 안녕을 바라는 간절함은 꽹과리 속에 묻혀있다. 펄럭이는 만장이 오백여 년 한결같이 그래왔던 것처럼 마을의 소원을 담아 하늘 높이 날았고, 옛길에는 기도가 서려 있고, 사람이 사는 곳에는 마을을 보호해주는 그들만의 믿음이 상주하였다. 수호신을 부르는 묵직한 북소리가 퍼지는 곳마다 염원이 깃들어 있다.

그래서 용산면 남포마을 당제는 간절하다.

몇 날 며칠 불어대던 앙칼진 바람도 자지러지고 바다가 속살을 드러낼 때 남포 사람들은 두 손 모아 허리 숙여 절대자에게 온몸을 내려놓고 한을 풀어낸다. 바다와 맞닿은 골 깊은 억새밭에 탯줄을 묻고 떠난 사람들까지 위로하고 기원하는 간절함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성스러운 해원解冤이다. 그래서 이청준 선생은 남도의 한을 기록했고 임권택 감독은 이 마을에서 장엄한 축제를 촬영했다. 만장을 펄럭이며 꽃상여가 떠나던 그 모습이 아련하다. 남포는 그 오래된 기억을 실행하며 살아왔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축제처럼 보냈기에 더더욱 서러운 영화로 남아 있는지 모른다.

바닷물의 흐름이 고운 남포 마을은 설을 지내고 나면 정갈해진다.

걸음조차 조심스럽다. 그 행위는 오랜 세월 변하지 않고 이어져 오고 있다. 녹의 홍삼을 입고 찾아온 할머니를 위한 당제 준비에 마을은 부정한 것과 삿되지 않은 몸가짐, 부정한 음식을 삼가고 부부간의 동침마저도 금하는 정갈함으로 빠져들어 정화수보다 더 맑고 깨끗해지기 시작한다.

정월 초사흘 날 밤. 마을은 당제를 모실 제관부부를 제주와 화주로 선출한다. 선출된 제주와 화주는 삼색 헝겊과 삼색실, 창호지, 양초, 나물, 해산물, 과일과 당 할머니가 좋아한다는 뜸북등 제물 준비를 마치면 마을은 서서히 치성의 기원이 흐르다가 찬바람이 마을 당산나무를 흔들고 바닷물이 열리는 음력 정월 대보름날, 소원을 담은 가오리 연줄은 소등섬을 넘어가고, 달집태우기와 다복을 축원하는 벽사진경辟邪進慶 (요사스런 귀신을 물리치고 경사스러운 일을 끌어들임)의 지신밟기로 마을이 들썩일 때, 부정이 없는 집에서 부정이 없는 사람이 당제 날 잡은 흑돼지와 제물을 제주와 유사가 이고 지고 소등섬으로 들어가 당제를 지낸다. 그 길은 누구도 앞서지 못한다.

소등섬 제단 앞에서는 다른 생각은 필요하지 않다.

마을의 안녕과 풍농 풍어를 바라는 간절함만이 있을 뿐이다. 술을 따르고 배拜를 하고 축원을 한 후, 소등섬을 돌며 헌식(갯제)*을 마치고 모아둔 낙엽을 태워 제가 무사히 끝났음을 알리면, 마을에서는 풍물패의 신명난 풍물놀이와 함께 제주 집에서 음복으로 제를 마무리한다.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순박함을 볼 수 있다. 누구도 자연을 거스르며 살 수 없다. 그래서 자연은 생명이다. 인간은 자연을 다스릴 수 없기에 절대자에게 의탁하고 위로받으며 살아가는 순수함에 경외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좇아가고 있는가. 권세가 있을 때는 아첨하여 좇고, 권세가 없어지면 푸대접하는 염량세태炎凉世態의 세상 속에 있지는 않을까. 혹여, 물이 흐르는 방향으로 넘치지도 부족하지 않으며 작은 것과 적은 것으로 만족할 줄 아는 소욕지족少欲知足의 삶을 꿈꾼다면, 들뜬 마음 다잡고 경건한 마음으로 소등섬 끝자리 지성소를 한 번쯤 들러 보시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가서 동분서주하며 힘겹게 살아온 삶이 한쪽으로 기울거든 조용히 토해 내 보시라. 그러다가 비어있어도 부족하지 않은 여유로움을 느껴보시라. 남포의 지성소는 항상 우리 곁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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