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반통신 25 -조국과 조광조
■ 호반통신 25 -조국과 조광조
  • 장흥투데이
  • 승인 2020.01.10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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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산월/시인

조국(曺國)은 1965년 부산 출신으로 1481년 서울 출신인 정암 조광조(靜庵 趙光祖)보다 484년 후인이다. 조국은 청와대 정무수석을 역임한 개혁 진보파요, 조정암 역시 조선조 대사헌으로 개혁 진보파였다. 이 두 사람은 그들과 벋선 보수세력에 밀리어 참으로 험난한 길을 걸었다.

조광조는 개국공신 조온의 5대 손으로, 17세에 평안도에 유배 가 있는 김굉필에게서 수학하였다. 1515년 34세로 뒤늦게 문과에 급제하여 승승장구 4년 여에 대사헌에 이르렀다. 연산군의 이복동생인 중종은 반정 이후 영명한 조광조를 늘 가까이 불러 국정을 논의하였으나 마지막은 변심하고 말았다. 결국 조광조는 노련한 훈구파에 몰리어 중종 14년, 1519년 11월 이웃 화순군 능주로 귀양을 왔었다. 이른바 기묘사화이다.

어눌한 중종은 공신들에게 휘둘리다가 영특한 조광조를 만나 많은 정책을 개혁하려 했었다. 이에 조광조의 시대를 앞서간 개혁정책은 반정 공신들인 훈구파에 의해 견제받다가 결국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과거 조선시대에는 연산군이나 광해군을 따르던 패족들은 도망가거나 숨어 살기에 급급했었다. 예나 지금이나 패족들은 잘못이 있으면 조용히 살아야 하는 것이 도리이다.

조광조는 사림(유도의 선비나 학자들)의 지지를 받아 천거를 통해 인재를 등용하는 ⌜현량과⌟를 주창하여 유도계 사람들을 불러 국정에 동반케 하였다. 나아가 조정암은 중종을 왕위에 오르게 한 공신들 중 잘못된 공신들의 공을 삭제하는 이른바 위훈삭제 운동을 펴려다가 훈구세력들의 눈에 가시가 되었다. 중종 역시 위훈삭제 운동이 반정으로 정권을 잡은 자신에 대한 도전으로 인식해 조광조와 조금씩 거리를 두게 되었다.

그러던 차에 그 유명한 주초위왕(走肖爲王)이라는 파자 역모에 휘말린 조광조는 끝내 이를 피해 가지 못했다. 결국 사사(賜死)의 명을 받았으나, 영의정 정광필의 간곡한 비호로 이곳 곰치재 너머 능주에 귀양와 한 달 후인 1519년 12월 16일 사약을 받아 생을 멈추고 말았다. 그의 나이 38세 시였다. 중종은 궁중 후원의 나뭇잎에 새겨진 주초위왕(조씨가 왕이 된다는 거짓 공작)의 흉계를 몰랐다면 무능한 것이요, 알았다면 교활했다 할 것이다.

권불십년이라 하였던가. 정적 제거를 능사로 여기는 당쟁정치는 그래서 비참하였다. 이는 패정(悖政)임이 분명하다. 정암 조광조는 사약을 앞에 놓고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 “임금 사랑하기를 어버이처럼 하고/ 나라 일을 내 집안처럼 다독였네/ 해가 세상을 널리 굽어보니/ 나의 충정을 밝게밝게 비추리”라고 읊조렸다. 조선왕조실록에는 당시 화순의 집주인과 이웃 주민들이 흘린 눈물이 땅을 적셨고, 그들은 오래도록 육식을 하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훗날 퇴계 이황은 조광조를 일러 참으로 영민한 자질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었다고 찬했다. 조정암은 일찍 신원(伸寃)되어 동방사현으로 불리우기도 했다. 묘는 경기도 용인에 있다.

낙마한 조국은 법학박사요, 헌법학 전공이다. 서울대 법학교수로 제직해 있다가 대통령에게 발탁되어 청와대 정무수석으로 일하다가 법무장관 직에 올랐다. 그 즈음 박근혜 대통령 당시의 기무사 문건이 발견되어 구데타니, 내란음모니, 반역이니, 하는 말이 난무했었다. 이를 두고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조국은 보수파의 타깃이 되어 무수한 공격을 받아내다가 장관직 한 달이 조금 지나 하차하고 말았다. 뭔가 밀리고 있다고 판단한 보수세력 앞에 주초위왕이 어른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나라의 권력이 검사들 손에 놀아나는 폐단을 바로잡아보겠다는 문재인 정권이 꺼내든 카드가 조국이었다. 오죽하면 검찰공화국이란 말까지 나왔을까. 검찰 공동체에는 큰 충격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 검찰의 개혁을 선봉으로 내세운 조국은 가족까지 만신창이가 되어 쓰러지고 말았음을 눈 있는 자, 귀 있는 자는 다 안다.

이처럼 지성인으로서의 두 사람은 보수세력에 밀리어 비참하게 끝을 맺고 말았다. 인터넷 공간에서도 승패가 요란하다. 가슴을 치며 물러난 조국 법무장관의 공과는 참으로 뜨겁거도 차가웠다. 이에 본인은 나름의 갈무리를 지으며 외치련다. 공수처를 허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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