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왜, 지금 장흥 가사문학관인가?(상)
■사설 -왜, 지금 장흥 가사문학관인가?(상)
  • 장흥투데이
  • 승인 2020.05.14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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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 가사문학의 정체성을 고찰해 본다
기행가사의 효시를 연 기봉 백광홍 선생
기행가사의 효시를 연 기봉 백광홍 선생

현대문학의 태동기를 대개 1910∼1920년이라고 볼 때, 1900년 즉 조선조 이전의 문학을 보통 고문학(古文學)이라고 정의 된다. 그리고 이 고문학 중, 고려조 말에 발생하여 조선 초기 사대부 계층에 의해 확고한 문학 양식으로 자리 잡은 가사문학(歌辭文學)은 시문(詩文,律文)과 산문(散文)의 중간적 형태로 조선조를 대표하는 문학양식으로 굳어졌다.

가사문학은 고문학 중 한시(漢詩)나 한문 산문과 다르게, 보통 한글과 한문이 혼용되는 문학으로서. 한국 현대문학의 전 단계로 본다. 즉 가사문학은 현대문학의 기저가 되었던 문학이었다.

가사문학은 시가문학의 요람이었던 호남지방에서 크게 부흥되었던 문학이었다. 실제로, 조선조 호남의 가사문학은 40여 명의 가사 작가와 70여 편의 작품에 이르러, 호남이 바로 가사 문학의 보고였던 것이다.

호남 가사문학에서도, 특히 장흥의 가사문학이 가장 돋보였다.

구체적으로, 백수인 교수(조선대)에 의하면, 호남 출신 가사문학 작가 31명 중 7명이 장흥 출신((호남 가사 작가 전체의 22.58% 차지)이고, 56편의 작품 중 15편(작자 미상 포함은 17편)이 장흥 출신 가사 작가의 작품(호남 가사 작가에 의해 창작된 전체 작품의 26.79% 차지)이었다. 따라서 가사의 작가나 작품의 수 그리고 문학적 가치에서도 장흥지역은 독보적인 위치여서, 당대 장흥지역을 가히 ‘장흥가단(長興歌壇)으로 불리기도 했었다. (참고로, 장흥군과 함께 가사문학의 고장으로 불리는 담양군의 경우, 창평을 포함하여 가사작가는 5명, 작품 수는 11편이었다)

그런데, 왜 담양이 장흥보다 가사문학의 고을로서 더 잘 알려졌을까. 송강 정철 때문이었다.

서울 출신이었지만, 어렸을 때부터 귀양살이를 한 아버지를 따라 생활했던 송강은 부친의 귀양살이 후 조부의 묘소가 있던 담양 창평 당지산(唐旨山) 아래로 이주한 이후, 여기서 과거 급제 때까지 10여 년을 보내며, 임억령(林億齡)·김인후(金麟厚)·송순(宋純)·기대승(奇大升) 등으로부터 시문과 학문을 배웠고, 관료로 나간 이후 40세 때 당쟁의 소용돌이 속에 벼슬을 버리고 담양 창평으로 돌아가 2년여 동안 야인으로 지내기도 했으며, 다시 탄핵 등으로 43세∼52세 때까지 2회에 걸쳐 6.7년을 창평에서 은거하는 등 평생의 20여 년을 지금의 담양군 창평에서 살았다,

게다가 송강은 담양(창평) 은거 중에 ‘성산별곡’ ‘사미인곡’ ‘속미인곡’ 등 가사와 시조·한시 등 많은 작품을 지었던 인연이 있어, 송강의 가사문학은 실로 담양과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담양에는 담양의 시가문학 산실인 소쇄원을 비롯하여 면앙정 송순이 가사 ‘면앙정가’를 창작했던 누각 면앙정을 비롯하여 송강의 ‘성산별곡’ ‘사미인곡’ ‘속미인곡’의 산실이었던 식영정과 송강정 등 정자문화 자원이 크게 넘쳐났던 고을이었다.

이처럼 송강 정철가지 더해지면, 나름 독특한 가사의 문학자원이 있었던 담양이었고, 이러한 가사문학의 역사적 전통을 살리기 위해, 담양군은 지난 2000년 11월에 남면 지곡리 일대 5000여평 부지에 가사문학관을 조성·개관하여 오늘날까지 한국의 대표적인 가사문학고을로서 그 위상을 구축해 올 수 있었던 것이다.

이제 가사문학의 고을인 장흥과 담양, 두 곳의 가사문학의 정체성을 따져 보자.

담양에서 서울 출신이지만, 담양 창평에서 여러 가사 작품을 남긴 송강이 있었다면, 장흥에는 천재시인 기봉 백광홍이 있었다. 담양의 송강 ‘관동별곡’이 있었다면, 장흥에는 그보다 25년 전에 쓰여져 ‘관동별곡’의 모태가 되면서 큰 영향을 끼쳤던, 국내 기행가사의 효시인 기봉의 ‘관서별곡’이 있었다.

담양에 ‘면앙정가(俛仰亭歌)’이라는 가사의 대가인 면앙정 송순(宋純)이 있었다면, 장흥에는 호남의 대실학자며 대시인으로 ‘자회가’ ‘권학가’ ‘합강정선유가’의 가사 작품을 남긴 존재(存齋) 위백규가 있었다.

결정적인 것으로 가사 작가와 작품이다. 담양은 송순 등 5명의 작가에 작품도 11편에 불과하지만 장흥은 작자미상까지 포함하면 8명의 작가에 작품도 17편에 이른다.(당대 타 지역의 경우, 2명∼3명의 작가를 배출한 곳은 5곳(태인 3명-6편/영암 2명-3편/고창 2명-2편/부안 2명-2편/화순 2명-2편)에, 작가 1명이라도 배출한 곳은 남원, 나주, 보성, 해남, 악산, 제주 등 6곳에 지나지 않았다-백수인 교수).

문학의 향맥 전승 여부에서는, 단연코 장흥이 독보적이다.

가사문학에 이은 현대문학에 이르러서도 장흥은 예전의 ‘장흥가단’에 이어 ‘문림의향’ ‘문학고을’로서 전승이 이어지면서 이청준 송기숙 한승원 이승우 등 국내의 대표적인 문인을 다수 배출했을뿐만 아니라 오늘날에 이르러 등단한 장흥 출신 문인만도 200여 명에 이를 정도이고, 이러한 문학적인 자원과 그 토대로 인해 지난 2008년에 전국 최초로 유일한 문학관광기행특구로 지정되기도 했다.

가사문학의 자원만 해도 그렇다. 담양에 문학자원으로서 소쇄원, 면앙정, 식영정 등 허다한 정자와 누각이 있다면, 장흥에도 용호정 부춘정 동백정 사인정 창랑정 등 수많은 정자와 누각이 있으며, 특히 사우인 기양사를 비롯하여 존재 위백규를 가사 작가로 포함시키면 존재 생가와 정천재 등도 가사문학의 자원에 속할 수 있어, 가사문학 자원에서도 장흥은 담양에 웃길이 될 수 있었다.

오늘날 장흥에서 ‘문림의향’, ‘문학의 고을 장흥’, ‘문학기행관광특구’라는 그 상징성의 뿌리요 그 토대를 만든 원천은 장흥의 가사문학에 있었다. 앞으로 10년∼15년 후쯤이면, 아마도 장흥의 인구가 3만여 명대로 떨어질 것이 분명하다. 그럴 때라면, 아니 앞으로 몇 년이 흐른 뒤라 해도, 누군가의 가사문학관 조성 등의 논의는 씨알도 안먹힐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많이 늦었긴 했지만, 더 늦기 전인 지금부터라도, 미래 장흥의 최고 비전의 하나로서 ‘장흥가사문학관’ 조성을 적극 추진해야 하는 이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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