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시 - 억불 바위
■초대시 - 억불 바위
  • 장흥투데이
  • 승인 2020.05.14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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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인/시인. 조선대 교수

 

 

단 한 번도 당당하게

쳐다 본 적이 없는 당신을 향해 걷는 길이었어요

환하고 널찍한 오르막길을 따라 고개를 넘고 있었어요 숨이 목까지 차오르자 문득 먼 길 당기고 싶은 욕심에 지름길을 택해 숲속 길로 들어섰지요 그런데 얼마쯤 지나자 길은 자취도 없어지고 하늘 높이 솟은 편백나무 그림자가 나를 덮치고 내 눈을 가렸어요 그리고 나무의 썩은 시체들이 가로세로 즐비하게 누워 내게 손사래를 치고 있었어요 여기저기 웅덩이가 파여 검은 물들이 출렁거리고 동서남북의 방향이 그루터기 속으로 곤두박질쳐 박혀버렸지요 어디선가 도깨비바늘이 폭풍처럼 몰려와 내 몸에 치욕처럼 덕지덕지 달라붙었어요 가시 돋친 넝쿨들이 내 다리를 걸고 멱살을 잡았어요 하늘을 쳐다보면 나무우듬지들이 무서운 시선을 한꺼번에 내 몸에 내리꽂았어요 얼마나 많은 허방을 딛고 얼마나 많은 허공을 허우적댔던가 나는 그때서야 스스로 새 길을 만들 수 없다는 걸 겨우 깨달았지요

나는 살아남기 위해 몸을 낮추고 낮은 곳으로 낮은 곳으로 발길을 옮기기 시작했어요 아래로 더 아래로 줄곧 내려가자 마침내 어디선가 하늘빛이 터지고 편편하고 반듯한 새 길이 나왔어요 그 곁에 작은 시내도 졸졸졸 흘렀지요

그때서야 당신이 내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는 걸 알았어요 환하게 뚫린 산길의 끝자락에서 나는 비로소 당신의 거룩한 얼굴을 당당히 쳐다볼 수 있었어요

*시제 억불바위는 장흥의 억불산을 상징하는 바위로 흔히 ‘며느리바위’로 불리고 있으나 한승원 작가는 이 바위를 “자비로운 미륵부처의 형상”을 한 ‘億佛바위’, 즉 ‘피플붓다’라고 했다.

억불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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