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한담 32 - 연하동 참 선비를 찾아서
■장흥한담 32 - 연하동 참 선비를 찾아서
  • 장흥투데이
  • 승인 2020.06.04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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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용수 /시인·수필가

紅葉飛飛碧洞陰 (홍엽비비벽동음) 깎아지른 산그늘로 붉은 꽃들 날리고/柴門不掩夕陽深 (시문불엄석양심) 문단속도 하지 않은 사립문 뒤로 석양 짙구나 /尋眞何處歸來晩 (심진하처귀래만) 깊은 골짝이라 귀가가 늦는가/ 滿壁淸詩客自吟 (만벽청시객자만) 푸른 절벽이 꽉 들어찬 곳에서 시인은 혼자 시를 지으며 노네 -옥봉집 (옥봉 백광훈白光勳 1537~1582) 옥봉 선생이 천방 유호인 선생 불우헌을 찾아가 기다리며 지은 시

길 따라가는 곳마다 역사 아닌 곳 어디 있으랴. 사람이 살았던 흔적에서 고달픈 삶의 흔적을 보기도 하고 올곧게 살다간 사람의 흔적에서 향기를 느끼기도 한다. 바람은 항상 부는 방향으로만 불지 않듯이 조선왕조의 역사가 어디 백성을 위한 정치가 얼마나 있었던가. 사대부를 위한 나라이고 왕이 군림하는 나라였다. 그래서 백성은 헐벗고 굶주리며 역사를 이어온 민족이다. 절망보다는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함으로 세대를 이어와 오늘날 민주주의를 성숙시키고 있다. 사대부를 위한 조선 왕조에서는 한 가문을 평가하기를 열 명의 정승보다는 한 명의 대제학을 배출한 가문이 더 낫다고 했고, 왕비를 배출한 집안보다도 대제학을 배출한 가문이 낫고, 대제학을 배출한 집안보다도 문묘에 배향자를 배출한 가문이 낫고, 문묘 배향자를 배출한 집안보다도 처사를 배출한 가문이 낫다”고 했다. 그만큼 권력을 멀리하고 학문에만 전념하여 사람의 본이 되고자 했던 처사의 선비정신이야말로 조선을 지탱하게 한 정신이 아니었을까. 그러기에 삼벽의 고장 장흥에서 평생을 처사로 고고하게 살았던 천방 유호인(1502~1584) 선생의 흔적을 500여 년이 지난 시점에서야 교과서에서나 나올법한 이야기를 들추고 있다.

유호인(劉好仁), 자는 극기(克己)이고 호는 천방(天放)이다.

1502년 장흥읍 건산리에서 태어났다. 1534년(중종 29년) 32세에 갑오 식시년 사미시험에 입격한 후 다시 대과에 나아가지 않고 처사로 안빈낙도하며 후진양성을 위한 삶을 살았다. 선생은 거주하는 동명(洞名)을 자하동(紫霞洞)이라 하고, 거처를 정정당(定靜堂)이라 하였으며 장흥지역에서 유일하게 문하생을 배출하였다. 임진왜란 때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 장군의 종사관인 반곡 정경달, 용호 문희개, 청계 위덕의(참의), 앙지 김지주, 중집의 이섭, 사주당 백문린, 수정당 위홍주, 월암 조장일등 많은 문인들 배출하였고 구봉 송익필, 운곡 송수필, 부강 정렴, 지산 조호익, 월정 윤근수 등과 성리학을 논하기도 하였다. 또한 동방 18현에 배향된 사계 김장생, 중봉 조헌등 문인 백여 명과 예학을 강론하고 주자의 예를 본받기도 하였다. 천방 사후 29년이 지난 1612년에 도사 정명렬, 진사 이승, 선세기 등 십여 명이 향사하자는 의론을 주창하여 예양강 주변에 영천 신잠을 주향하고 천방을 배향하기에 이른다. 그 후 목은 이색, 월봉 김광원, 추강 남효온을 추배(追配)하여 장흥예양서원은 5현을 모시게 되고 예양서원은 천방으로부터 비롯된다는 연유가 예양서원 내력에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보면 천방선생은 향현(鄕賢)의 관면(冠冕)에 이르게 되었다. 또한 천방은 순천 월계사, 장성 송계서원에도 배향되었다.

선생은 처사로서 삶을 살았으나, 생전에도 그의 학덕과 인품은 당대 석학들로부터 인정받았다. 특히, 1570년 선생 나이 68세 때 노구를 이끌고 34세나 아래인 율곡을 찾아 사승관계를 맺고 학문에 전념하였던 것을 보면 학문을 익힘에 있어 지위나 나이가 자기보다 어린 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불치하문(不恥下問)의 정신으로 학문을 익혔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영남 사학의 거두 남명 조식(1501~1572)과 퇴계 이황(1501~1570) 등과도 경학을 논하였으며 조식은 나에게 넘치는 벗(吾益友也)이라 하였고, 퇴계는 호남에서 첫째가는 선비라고 평했다(湖南第一士). 율곡은 천방선생을 대가(大家)라 칭찬하고 내 도가 남쪽으로 내려간다(歎吾道之南)라고 탄식했다고 한다. 조선 성리학자는 퇴계 이황 선생과 율곡이이를 꼽는다. 또한 대표적인 처사를 꼽으라면 화담 서경덕(1489~1546)과 남명 조식(1501~1572)을 이야기하곤 한다. 남명 조식은 천방 유호인은 나에게 넘치는 벗이다 라고 송칭(頌稱) 하는 것을 보면 천방선생을 조선의 3처사로 불러도 손색이 없다고 할 것이다.

선생은 향리에 살면서 백성들의 고혈을 짜는 탐관오리들을 없애버리고자 하는 마음을 시로 토해냈다. 그 시가 허균의 곡조시산에 실렸고, 조선조 명시선집이라고 할 수 있는 시선집에 소개된 영소(詠梳)시다.

장흥군 장동면 거개마을 연하동 언저리에 맑은 바람 한 줌 지나간다.

잡풀은 쓰러지고 붉은 소나무만이 연하동에 주인이 있었음을 알려주고 있을 뿐 어떤 흔적도 어떤 글귀 하나 없이 고스란히 500여 년의 세월이 사라졌다. 소나무에 걸린 맑은 햇살이 선생의 영원한 안식처로 비춘다. 서기는 하늘을 위로 오르고 선생의 고매한 인품은 땅에 묻혀 쓸쓸하지만, 술 한 잔 따르며 권력을 향해 불나비처럼 모였다가 흩어지는 요즘의 세태와 뿌리를 잃어버린 채 오늘을 사는 우리들을 돌아보고 있다. 자신의 욕심을 버리고 사람이 지녀야 할 본래의 예의와 법도를 따르는 극기복례(克己復禮)를 실행하며 살다간 조선의 처사 천방선생의 인품을 되새기고자 문중에서 선생이 시묘살이를 한 연하동에 시묘유허비를 세운다는 자리에서 선생의 영소 시 한 구절을 뒤적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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