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논단-임란호국영령(壬亂護國英靈)을 달랠 무명용사의 비(碑)를 세우자
■장흥논단-임란호국영령(壬亂護國英靈)을 달랠 무명용사의 비(碑)를 세우자
  • 장흥투데이
  • 승인 2020.06.04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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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수/시인, 수필가, 향토사학자

사람들이 모여 살고 아름다움이 있는 곳은 반듯이 오늘을 있게 한 사람이 있다. 그 사람들은 자신을 나타내지 않고 자신이 이룬 일이 후에 오는 사람들도 자신과 같은 아름다운 마음으로 평화로운 삶을 살다 가기를 바랬음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오늘을 사는 우리는 보다나은 내일만을 갈구할 뿐 그 분들의 노력을 기억하지 못한다. 가끔씩 이 땅에 살다가 옛 어른들의 발자취와 그분들의 생활했던 흔적을 찾다보면 정말 우리가 잊지 않아야 할 흔적들을 발견하곤 한다. 특히 나라를 구하기 위해 죽음도 마다하지 않은 곳으로 가까이 6·25라는 한국동란의 격전지나 구한말 의병과 동학혁명의 흔적, 그리고 멀리 역사의 기록으로만 기억되는 임진왜란의 흔적을 볼 때는 더욱 그렇다.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국가의 존립과 주권수호를 위해 죽음도 마다하지 않고 희생을 감수하여 분연히 일어나 목숨을 바친 분들을 기려 보자는 달이다. 정부에서는 나라를 위해 가신 충혼을 달래고 그 유족을 위로하기 위해 단 하루만이라도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분들의 거룩한 뜻을 기려보자는데 뜻을 두고 한국동란이 어느 정도 수습되고 나라가 안정을 찾아가게 되자 정부에서 6월6일을 현충일로 정했다.

현충일을 6월6일로 결정한 것에도 이 땅에 살다간 선현들의 삶의 지혜와 역사가 있다. 옛날 농경사회에서 이 시기는 보리베기와 모내기에 적당한 시기였다. 보리를 수확할 수 있게 됨에 대한 감사와 모내기를 한 벼들이 풍년이 들게 해주기를 기원하는, 감사와 기원의 제사를 지내는 풍습이 있었고, 역사적으로는 고려 현종 5년(1014년) 6월에 거란과의 전쟁에서 전사한 장병들을 비록 유골이지만 집으로 귀가하도록 조치하고 제사를 지낸 날이 망종(芒種)일이었다는 기록이 있어 6월6일로 현충일로 지정하였다 전한다.

장흥에는 장흥출신으로 나라를 지키다 순절한 영령을 추모하기위해 1964년 6월6일 건립한 장흥읍 남산공원의 ‘충혼탑’이 있고, 한국동란당시 향토구국학도대로 참전하여 순절한 학도병을 위한 ‘위령비’를 1986년 3월15일 유치면 송정리에 세웠다가 2000년 6월4일 장흥댐 건설로 유치면 봉덕리 옮겨 그 충혼을 기리는 ‘위령비’가 있다. 또한 한국동란 당시 장흥경찰서 요원으로 참전해 순절한 경찰과 완도군 방위대원들의 유혼을 달래기 위해 당시 장흥경찰서 요원으로 참전했던 강종수(姜鐘守) 완도경찰서장이 완도군민들의 협조를 얻어 1961년 9월17일 세운 완도군 약산면 약산중고등학교에 위치한 ‘충혼비’와 1986년 11월23일 완도군민들이 장흥경찰과 완도군 방위군의 영령을 기리기 위해 약산면 장용리에 세운 ‘완도 약산 충혼탑’있다. 또한 한 세기가 넘은 세월로 멀어져 가는 기억을 묶어 놓기 위해 세운 장흥 충열리의 ‘동학혁명기념관’과 ‘동학혁명기념탑’은 순수한 농민으로 구국을 위해 몸을 바친 영령에게 장흥 땅에서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로서 예를 갖추고 뜻을 기리고자 함은 당연하다 할 것이다.

의병이라 이름하는 무명용사에게는

그러나 조선시대 임진왜란이라는 7년간의 전쟁 속에 살아남기에 급급하던 시절 나라를 구하고자 했던 선인들은 누구인가. 그들 또한 이 땅을 지켜 온 우리의 선조이다.

그럼 당신은 이런 이름자를 들어 보신 적이 있는가? 유성룡 곽재우 배흥립 김천일 고경명 조헌 정경달 위대기 선거이 최경회 백광언 정곤수 김부질세(金夫叱世) 김다물사리(金多勿沙里) 신마질치(申末叱致) 김어질(金於叱) 이돌(李石乙) 방돌이(方石乙伊) 박돌시(朴石乙屎) 정망난(鄭亡難) 돌이(石乙伊) 초돌이(肖石乙伊) 큰돌시(斤石乙屎) 자질사리(者叱沙里) 가질박지(加叱朴只) 가지금(加之金) 마질동(末叱同) 귀세(貴世) 막동(莫同) 둔만(屯萬) 개복(介福) 애복(愛福) 마적(亇赤) 거손(巨孫) 근석(斤石) 금이(今伊) 검산(檢山) - -

그렇다. 유성룡을 비롯한 정곤수 까지는 우리가 익히 아는 임진왜란으로 맹위를 떨친 명신과 장군들의 이름으로 우리가 쉽게 기억하는 이름이다. 그러나 김부질세 이하의 분들도 임진왜란 때 참전하여 공을 세운 분들로 ‘선무원종공신록(宣武原從功臣錄)’에 등재된 분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분들에 대한 기억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렇듯 ‘선무원종공신록’에는 9,060분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지만 공신록에는 우리가 기억하는 고급관리나 장군 보다도 상민(常民)과 천민(賤民) 출신으로 구국의 대열에 참여 한 분들이 훨씬 많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일부 관리와 양반만을 기억할 뿐으로 앞서 열거한 ‘김부질세’ ‘이돌’ ‘정망난’과 같은 상민이나 성씨마저 알 수 없는 ‘돌이’ ‘초돌이’ ‘큰돌시’ ‘자질사리’와 같은 천민출신들에 대하여는 ‘선무원종공신록’에만 기록되었을 뿐 이후의 상황에 대하여는 알 수 없다. 그나마 천민으로 공신록에 오른 분들은 그의 생존 당시만이라도 공신으로서의 대접을 받아 면역(免役)이나 면천(免賤)자로서 자긍심을 가지고 살았을지 않을까 한다. 그러나 반상(班常)의 법도가 엄격하던 시절. 상민(常民)이나 천민(賤民)으로서 많은 전투에 참여하여 승전을 위해 노력하다가 이름마저 남기지 못한 분들. 훗날 우리는 이를 의병(義兵)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많은 민중이 참여했다는 말로 역사에 전할 뿐 그들의 노력과 애국충정을 기리거나 이를 추모할 수 있는 공간과 기념물은 전하지 않는다. 그에 비해 그에 비해 양반으로서 출전한 분들은 어느 전투에서 승전을 올렸고 어느 전투에서 장렬히 순절하였다는 기록이 전하는 것은 물론이고 개인이나 문사우(門祠宇)를 두고 그 뜻을 기리고 있으나 생사를 같이했던 상민들에 대한 별도 의식도 없다.

이름을 세기지 않은 백비를 세우자

그래서 일까? 일찍이 우리민중들은 매월 정월이면 당제(堂祭)라 하여 마을민들이 제사를 받지 못한 분들을 위해 제를 지내며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였고, 양반가에서는 명절이면 후손을 두지 못한 이름없는 분들을 위해 ‘문전상’이라는 것을 차려 그들을 위로하는 풍습이 오늘에 까지 면면히 이어지고는 있다. 그러나 세월의 흐름과 인심의 변화로 이마져 맥이 끊기고 있음은 안타까운 일이다.

때문에 필자는 감히 이들을 위한 추모비로 “임란호국영령(壬亂護國英靈)을 달랠 무명용사(無名勇士)의 비(碑)”를 아무것도 세기지 않은 “백비(白碑)”로 우리고장 장흥 회진면 회령진성의 언저리에 세우기를 제안한다.

무엇보다 회진은 임란당시 충무공 이순신이 백의종군 후, 삼도수군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로서 칠천량(漆川梁)에서 패하고 온 전선들을 거두어 재정비하고 출전태세를 갖추면서 이 고장 출신인 김명립, 김성원, 마하수, 정명열, 변홍제 문영개, 백진성 그리고 변홍원, 변홍달을 위시한 형제들과 많은 의병이 줄을 이어 모여든 곳으로 이곳 회령진에서 1597년 8월19일 여러 장수에게 선조 임금이 내린 교유서(敎諭書)에 숙배하도록 한 후 명량해전(鳴梁海戰) 출정하여 7년 전쟁에 역사적 전기(轉機)를 마련했다는 점을 들어 역사의 현장에 그 시절의 교훈과 뜻을 전하는 기념석으로서의 의미도 부여하지만, 우리 할머니께서 그랬듯 오늘을 살아가는 고단한 사람들이 “임란호국영령을 달랠 무명용사의 비(碑)”를 찾아 차 한 잔을 올리면서 오늘의 세파를 헤쳐 나아가는데 있어 출정을 앞둔 그날의 충천했던 기백을 물려받고 얻어, 새로운 희망을 얻는 장소로 만들고 싶어서이다.

우리는 살아오면서 세상이 어지럽고 어려울수록 나와 네가 서로 도우며 살아야 난국을 헤쳐 나갈 수 있다는 사실을 역사와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 그리고 현실적인 삶에서 나의 능력과 힘이 부칠 때 누군가가 나를 지지하고 힘이 되어 준다는 믿음이 있을 때 우리는 용기를 얻어 앞으로 향해 나아갈 수 있었음 또한 경험했다. 때문에 우리들이 경험한 이러한 사실을 우리 후손에게 물려주어 그들이 살아가는데 있어 보다나은 내일을 만들지 않을까 하는 기대 속에 6월 보훈의 달을 맞아 제안해 본다. (2020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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