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방 유호인’ 시묘 유허비 제막
‘천방 유호인’ 시묘 유허비 제막
  • 김선욱
  • 승인 2020.07.02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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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방은 ‘조선 3대 처사’ ‘장흥고문학 선구자’
장동면 하산리 연하동에…중국 종친들도 참석
천방 유호인 유허비
천방 유허비 제막에는 중국에서 거주하는 종친을 비롯 서울‧부산‧여수시와
강원도 일원에서 거주하는 종친 및 지역민 등 약 100여 명이 참석하였다.

장흥의 성리학 선구자이자 당대 사회상을 통렬히 비판했던 참여 시인 천방 유호인(天放 劉好仁, 1502-1584) 선생의 시묘(侍墓) 유허비(遺墟碑) 제막식이 지난 6월 28일 오전 11시 장동면 하산리 산 60-2번지 연하동에서 성대히 개최되었다.

강릉유씨 참의공종중(회장 유동종)이 주관한 이날 천방 선생의 시묘 유허비 제막에는 중국에서 거주하는 종친을 비롯 서울‧부산‧여수시와 강원도 일원에서 거주하는 종친 및 지역민 등 약 100여 명이 참석하였고, 혹시라도 있을 코로나19 예방에 만전을 기하기도 하였다.

이날 행사는 천방 선생이 연하동에 정정당(定靜堂)을 짖고 기거하면서 장흥지역에서 유일하게 정경달(丁景達,1542~1602), 위덕의(魏德毅,1540~1613), 문희개(文希凱,1550~1610)등 성리학의 문하생을 다수 배출하여 관계에 진출시켰던 명소이기도 하다.

선생은 벼슬을 마다하고 ‘처사(處士)의 삶’을 영위하며 탐관오리들을 통렬히 비판한 영소시(詠梳詩) 등 100여 편의 시를 남겼는데, 특히 영소시는 허균(許筠)의 ‘국조시산(國朝詩刪)’ 등에 실려 전해지고 있다.

이날 유동종 회장은 “백행의 근본이 되는 효를 되새겨 보는 오늘이 되었으면 한다”면서 “천방선생의 효와 학문, 시문학은 영원히 숭앙되고 기억되어 전승되어야 할 것”이라며 “오백여 년 전 이곳에서 시묘살이를 하며 학문과 후학 양성에 전념했던 천방 선생을 숭앙하는 하루였다”고 감사 인사를 했다.

천방 유호인 선생은 벼슬을 마다하고 향리에서 후학 양성에 매진하였던 조선조의 대선비요 유명했던 문인이었다. 선생은 당대의 사회상을 통렬히 비판했던 화담 서경덕(花潭 徐敬德, 1489-1546), 남명 조식(南冥 曺植, 1501-1572)과 더불어 ‘조선의 3처사’로 불릴 정도로 높은 학문과 고매한 인품을 가진 선비였던 분으로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 1607-1689) 등은 평가했다.

천방 선생은 특히 고려후기 대선사(大禪師)로 장흥 역사상 최초로 300여 편의 유수 한시(漢詩)를 남긴 원감국사 위원개(魏元凱,1226~1293) 이후, 장흥에서 거의 200여년 동안 절맥되었던 고문학인 한시 100여 편을 작시하였을뿐 아니라 장흥에서 최초로 학맥을 일구면서 장흥의 고문학을 중흥시켰던, 이른바 ‘장흥 고문학 선구자’였던 시인으로 평가 받고 있다./김선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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