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한담 33- 칠거리 연가
■장흥한담 33- 칠거리 연가
  • 장흥투데이
  • 승인 2020.08.20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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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용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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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 장흥읍사무소 사진 속 앳된 소나무가 이젠 노송이 되어 허리를 굽었다. 오래전부터 원 하나를 기점으로 일곱 갈래로 난 칠거리에는 장흥사람들의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스며있다. 장흥의 역사는 칠거리를 이야기하지 않고서는 한 장도 넘길 수 없다. 이제 시끌벅적함을 내어주고 한료(閑寥)한 칠거리를 넉넉한 마음으로 바라본다.

매일 점심시간이면 경찰서 오포가 울리던 거리에 가난을 벗어나고자 장흥 다리를 힘들게 오가며 살아온 치열함이 있었고, 내 자식에게는 지긋지긋한 가난을 물려주지 않으려는 억척스러운 삶이 있었다. 법원을 오르는 길에는 화투를 치다 고발당한 사람들, 술 먹고 옆집 형님과 아재와 싸움질에 경찰서 감옥소에 갇힌 사람들, 그리고 강진, 완도, 영암 사람들이 재판소를 들랑거리던 눈물 나는 이야기와 삭임 질이 배인 칠거리에서 오래된 추억을 듣고 있다.

법원과 검찰청, 경찰서로 가는 길에는 서리서리 맺힌 전설 같은 건물들 아른거린다. 유치과, 제중의원, 공제약방과 경찰서, 검찰청, 법원에서 내려와 엽차 한 모금을 들이키고 담배 한 대를 피우던 허름한 다방이 눈에 선하고, 다음날 일찍 법원 검찰에 들어가 일을 봐야 하는 사람들과 술 먹다 막차를 놓치고 하룻밤을 묵고가야 하는 넉살스러운 사람들이 찾아들던 중앙여관, 목포여관과 이름조차 기억 속에 사라져간 여인숙이 아련하다. 이제는 휑한 주차장으로 내어준 장흥극장에서 눈물 없이는 볼 수 없었다는 「저 하늘에도 슬픔이」라는 영화를 보기 위해 마늘이나 떨어진 흰 고무신을 팔아 영화표를 끊었다는 후일담은 끊어진 필름과 함께 영사기 속에 감겨버렸고, 맑은 물이 흐르던 동동리 긴 골목 개천 넘어 장흥농업중학교의 아련한 운동장과 고목들, 경찰서 무덕관에서 젊은 경찰관들 기합 소리와 함께 우리들의 올망졸망한 서러운 가난은 불평 없이 흘러갔다.

장흥읍 교회와 홍제의원, 신덕관으로 내려가는 길에서 아직도 듬성듬성 일제강점기의 적산가옥들이 눈에 들어온다. 남루한 웃을 걸치고 오가던 할머니, 할아버지는 다들 어디로 갔을까. 마을 뒷산에서 캐왔을 몸에 좋은 약초를 팔던 어머니 손끝에서 또래의 형들과 우리는 서럽게 학교에 다녔다. 이제 그 길에는 빛바랜 햇볕이 치열하게 살아온 세월을 위로라도 하는 듯 곱게 덮어주고 있다. 불덩이 같은 자식을 품고 허겁지겁 병원에 들어간 어머니는 홍제의원의 영험한 의사에 의해 열이 내려갈 때 안도하던 모습을 종종 보았고, 피를 흘리고 들어선 어느 젊은 친구는 몇 바늘을 꿰매고 붕대 한 쪼가리를 붙이고 나오면서 피 묻은 옷을 훌훌 털어내며 병원 문을 나서던 사람들도 오갔다. 아직도 신덕관의 음식 냄새가 코끝을 자극한다. 하늘을 찌르던 높은 영감들에게 대접하던 음식은 잘못을 해결하는 통로였고, 가난한 사람들의 원성 높은 민원이 해결되는 창구였기에 아직도 장흥에는 한식 문화가 대를 이어오고 있다.

장터로(2일.7일) 가는 길은 꿈속에서도 그리운 길이다.

장흥 여객과 광주 여객 터미널이 있던 자리에서 발길을 멈춘다. 기름 묻은 허름한 옷을 입고 힘들게 타이어를 때우던(빵구?) 그 사람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버스 문을 두드리며 스톱, 오라이(출발)를 외치던 누나들은 지금 어디서 무얼 할까. 매표소에서 담배를 꼬나물고 버스표를 끊어주던 무서운 형의 안부가 궁금하고, 비좁은 길바닥에 좌판을 깔아 놓고 쌀과 보리쌀, 콩, 팥을 팔던 쌀전 어머니의 후덕한 인심에 눈물이 맺힌다. 쌀 사러 나온 자취생에게 쌀 한 톨이라 더 담아주려던 어머니는 어디에 있으며, 노란 종이봉투, 쌀 됫박은 다 어디로 사라진 걸까. 쌀전을 오르내리며 시커먼 이명래 고약과 작은 병에 담긴 이약, 길게 늘어진 검정 고무줄, 참빗 등을 팔던 손수레 노점상 아저씨는 어느 장을 떠돌고 있을까.

건너편 오래된 건물하나가 나를 알아보겠다는 듯 포근한 미소가 고맙다.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전파사에서 들려오는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과 김정구의 눈물 젖은 두만강, 배호의 돌아가는 삼각지는 귀에 익어가고, 장흥극장에서 붙여놓은 신성일의 애로영화 포스터가 골목마다 도배되어 있다. 낯간지러운 그림에 힐끔거리며 지나가던 호기심 많은 빡빡머리 중학생과 듬직한 고등학교 형, 누나들은 다 어디로 떠난 걸까. 아련한 추억에 고개를 떨군다.

장흥 사람들에게 칠거리는 심장 같은 곳이다. 그래서 더 아련하고 정겹다.

장흥사람이라면 칠거리로 불어오는 바람 냄새도 알고 있다. 광풍처럼 몰아치던 세월도, 화려한 영화로움과 가난함도 칠거리에서 다 사그라지고 해결되었다. 이제 다들 떠나고 홀쭉해진 일곱 갈래 길 아래, 탐진강 둔치에서 맑은 햇살과 청아한 강바람을 마시며 걷고 있는 노부부의 뒷모습이 참 편하고 넉넉하다. 저 모습에서 나는 사색의 위대한 예술을 담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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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긋한 장원봉의 후덕함이 참 좋다.

소란스러운 마음을 다잡고 장원봉에 올라 탐진강을 내려다본다. 바람이 소리를 끌고 가듯 탐진강도 장흥의 역사를 끌고 흐르면서 화려하게 멍이 든 칠거리의 추억을 계속 새겨본다. 장흥읍 사람이라면 다들 한 번쯤 걸음걸이를 해야 했던 장흥읍 사무소 옆길에서 추억의 속삭임을 엿듣고 있다. 손님을 기다리던 삼양 택시와 호남여인숙, 빨간 불차가 번쩍거리던 장흥소방서, 주조장 자리를 알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오래전 구두를 닦던 슈사인 보이는 어디서 사는지 들려오는 소식조차 없고, 읍사무소 앞 쉼터에도 지게꾼의 한 숨소리가 서럽게 배어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

장흥 여객 터미널 자리와 어물전 시장으로 가는 길은 흔적도 없다.

터미널과 문화원을 지나 호수탕을 지나면, 좌우에 올망졸망한 집들이 늘어서 있었다. 비릿한 생선 냄새와 달콤한 팥죽 냄새가 어우러진 길, 이 길에는 사람 냄새가 배어 있었고 살아가는 삶이 꿈틀거렸다. 피곤함에 지친 어머니는 고기를 다 팔고 옷을 훌훌 털어내며 하늘 한번 쳐다보면서 무얼 생각하였을까. 그랬다.

어머니는 검은 교복을 입고 산 아래 고등학교에서 코피를 흘리며 공부하는 큰아들이 있는 곳을 야릇한 미소를 머금고 바라보았을 것이다. 어머니는 힘든 하루를 마감하면서 큰아들이 다니는 학교를 바라보며 피로를 씻어내었으리라. 아! 그렇게 위대하고 장한 어머니는 지금 어디에 계시는가. 그렇게 어머니의 피눈물로 자라고 배운 자식들은 다 어디에 있을까.

이제는 흔적조차 찾기 어려운 추억을 쫓아 내려가면, 소전 머리에 늘어선 막걸리 집에서 걸쭉한 이야기들이 아른거린다. 새벽 댓바람을 맞으며 자식처럼 애지중지 기르던 누런 황소를 끌고 나와 소전 머리에서 쭈그리고 앉아 연신 담배를 피우던 아버지의 마음은 어떠하였을까. 큰형 대학 학자금을 만들기 위해 새로운 주인에게 소고삐를 넘겨주고 말할 수 없는 서운한 마음에 거나하게 취한 몸을 비틀거리며 들어오시던 아버지의 쓸쓸한 뒷모습을 큰형은 알고나 있을까.

소전 머리 주변은 막걸리 거리였다. 외상술을 먹고도 왁자지껄 세상일을 털어놓을 수 있는 자유분방한 곳이었다. 이곳에서는 누구도 탓하지 않았고

고래고래 소리 질러도 누구 하나 시비 거는 사람이 없었으니 지금 생각해 보면 험난한 세월을 넘어오던 장흥사람들의 해방구였는지 모른다.

그렇게 소전 머리는 아버지들의 말 못 한 사연이 새겨졌다. 지금은 잘 정리된 토요시장으로 변하여 왁자지껄 낯선 사람과 낯익은 사람들을 마중하고 있지만, 가끔 찾아온 늙은 어머니, 아버지는 과거의 오래된 건물을 찾아보며 내색하지 않지만 힘들게 살아온 소전 머리의 삶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부산 다리에서 강바람이 불어온다. 서부파출소로 오르는 길에서 들어보는 물소리가 정겹다. 새벽부터 박림소 찬물에 물을 적시고 건수 마찰하던 노익장들은 다들 어디로 떠난 걸까.

박림소 강물이 슬그머니 장흥 다리를 넘어가고 있다.

1930년경 사진 속에서 보았던 죽 다리를 상상해 본다. 동부와 서부를 연결해주던 죽다리로 사람들이 편하게 오가던 다리를 1934년경에 장흥교가 신설되었고, 1958년경에 증축되어 이용하던 다리도 사라지고, 다리 밑에서 열리던 보림 문화제도 공설운동장으로 떠나갔다. 이제 새로 놓은 장흥대교 아래에서 매년 여름이면 인정이 넘치는 물 축제가 왁자지껄 화려하다.

오늘도 장흥의 역사는 만들어지고 기록되고 있다.

군청 앞에서는 자기의 의견을 거침없이 쏟아내고, 촛불을 밝혀 진실을 숨길 수 없다며 소리 지른다. 장흥 문화가 군청 앞 중앙로에서 만들어지고 소통되고 있다. 칠거리는 떠들썩함을 내어주고 침묵에 들었다.

오늘도 변함없이 칠거리로 사람들이 분주하게 오간다.

예전처럼 법원과 검찰청, 경찰서를 오가는 사람과 장원봉을 넘어가는 등산객, 교회를 오가는 사람, 토요시장으로 가는 사람, 장흥 문화원을 찾아가는 사람에게 속살을 내어주는 칠거리가 오늘따라 정겹다.

혹여, 바람에 실려 어디론가 떠나고 싶거든 주저 말고 왔다 가시라. 오실 때에는 그때 그 가난한 아들딸로 가만히 와 보시라. 오셔서 꼭, 한번 옛날 소전 머리도 들려 가시라. 시간에 쫓기지 말고 천천히 이곳저곳 둘러보며 때 묻지 않고 살았던 어린 시절을 추억하며 쉬어가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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