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림의향’/‘文人’(1) : 옥봉 백광훈(玉峯 白光勳)-옥봉 백광훈의 생애와 문학(中)
■‘문림의향’/‘文人’(1) : 옥봉 백광훈(玉峯 白光勳)-옥봉 백광훈의 생애와 문학(中)
  • 장흥투데이
  • 승인 2020.09.03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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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봉은 ‘조선 최고의 문장인 팔대 문장가’ 인정받았던 천재 시인
백수인 조선대 교수

백수인(白洙寅, 조선대 교수)

▶…장흥 안양면 기산리 출신으로 기봉 백광홍의 아우이지만 어렸을 때 해남으로 이거했던 대문인. 최경창·이달과 함께 삼당파(三唐派) 시인으로 불렸고 이산해·송익필·최경창·최립·이순인·윤탁연·하응림 등과 함께 조선 최고의 문장인 팔대 문장가의 한 사람으로 인정받았고 천재시인 이하(李賀)에 비견된다는 칭송을 들었던 대시인이었다. 시인 백수인(조선대학교 명예교수)씨의 선생에 대한 생애와 문학을 3회에 걸쳐 연재한다-편집자 주...◀

<지난호에서 계속> 옥봉에게 시를 주고받으며 서로 정을 나눈 많은 친구 중에 가장 돈독한 우의를 나눈 사람은 고죽 최경창이라고 할 수 있다. 두 살 아래인 고죽과는 14세 때 청련의 문하에서 만나 함께 수학한 이래, 17세 때 서울로 가서 송천의 문하에서도 함께 공부했다. 18,9세 무렵 옥봉은 낙향하고 고죽은 서울에 남으면서 서로 떨어져 살게 되었다.

이후 고죽은 옥봉과 달리 줄곧 벼슬살이를 하였다. 고죽은 23세에 진사가 되었고, 29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북평사를 시작으로 예․병조의 원외랑을 거쳐 36세에 정언(正言)이 되어 명나라를 다녀왔다. 1575년 고죽이 영광의 수령으로 부임하자 서로 만나 회포를 풀었고, 이후 옥봉이 벼슬에 나가 서울에 있을 때에는 봉은사 등지에서 만나 수창하였다. 고죽은 그 후로도 대동도찰방(大同道察訪) ·종성부사(鍾城府使)를 지냈고, 1583년 방어사(防禦使)의 종사관(從事官)에 임명되었으나 상경 도중 타계하였다.

부춘정 앞 바위에 새겨진 옥봉의 용호龍湖

옥봉과 고죽은 떨어져 살면서 서로를 그리워하는 시를 많이 썼다.(「玉峰詩集」에 수록된 고죽과 관련하여 지은 시는 오언절구 5수, 칠언절구 4수, 오언율시 6수, 오언고시 2수, 칠언고시 1수로 총 18수에 달한다.)

“문 밖 풀은 낟가리처럼 우거졌고/거울 속 얼굴은 이미 시들었네./가을 기운 도는 밤을 어찌 견디리./게다가 이 아침 빗소리까지 들리니./그림자라도 있다면 서로 위로하련만/그리울 때마다 홀로 노래할 뿐이네./외로운 베갯머리 꿈이 오히려 가엾으니/바다와 산이 멀다고 말하지 않으리. 門外草如積 鏡中顔已凋 那堪秋氣夜 復此雨聲朝 影在時相弔 情來每獨謠 猶憐孤枕夢 不道海山遙”(白光勳, “憶崔嘉運”, 앞의 책, 中)

친구 고죽을 생각하며 지은 시 중 하나이다. 이 작품은 오언율시로 ‘門外’와 ‘鏡中’, ‘秋氣’와 ‘雨聲’ 의 표현에서 보듯 대비적 정황 묘사가 뛰어나고, ‘相弔’와 ‘獨謠’로 집약되는 그리움의 정서가 감동적이다.

고죽도 옥봉을 그리워하는 시를 많이 썼다. 고죽의 다음 시는 두 사람의 속 깊은 우정을 짐작하게 한다.

“간밤 산중에 빗발을 재촉하더니/푸른 벼랑에 떨어지는 폭포가 부딪치며 우레 소릴 내네./나의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상사몽을 깨워버려/다만 금강 고개 마루에 이르러서 돌아오고 말았네. 昨夜山中雨脚催 蒼崖飛瀑激成雷 驚吾脉脉相思夢 只到金剛嶺上廻”(崔慶昌, “寄玉峰”, 「孤竹集」)

‘옥봉에게 부침’이라는 제목의 칠언절구다. 옥봉에 대한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상사몽을 깨워버린 아쉬움을 노래한 시이다. 얼마나 그리우면 꿈속에서조차 옥봉을 만나러 금강 고개 마루를 넘겠는가. 여기서 금강은 해남의 진산인 금강산이다.(權純烈,, “孤竹 崔慶昌 硏究”, 「고시가연구」 제9집(한국고시가문학회, 2002), 163-164쪽.) 따라서 꿈속에서 고죽이 금강 고개 마루에 이르렀다는 것은 옥봉이 살고 있는 마을 가까이까지 갔다는 의미이다. 그 순간 꿈을 깨고 말았으니 얼마나 아쉬웠겠는가. 그의 옥봉을 향한 그리운 정이 감동으로 다가온다. 이와 같은 두 사람의 우정은 다른 시편들에서도 흔히 발견할 수 있다.

옥봉의 송강 정철과의 사귐도 남다르다. 송강이 담양 창평에 머물렀던 10여 년 동안 옥봉은 식영정, 소쇄원, 환벽당 등지에서 송강을 비롯한 김성원, 양자미 등과 자주 어울리며 수창한 것으로 보인다. 옥봉은 송강보다 한 살 연하인데, 옥봉은 17세 때에 송천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송강은 21세 때 송천에게 나아가 글을 배웠다. 송강이 옥봉과 변산에 놀러가서 지은 시가 있다.

“물이 얕으면 용굴이 보이고/소나무 성기면 학 둥지 드러나네./신선 사는 곳 알려거든/모름지기 흰 구름 높이 들어가야 한다네. 水淺窺龍窟 松疏露鶴巢 欲知仙在處 須入白雲高”(鄭澈, “與白玉峰光勳遊邊山”, 「松江集」 續集 卷一)

‘변산에서 옥봉과 노닐며’라는 제목의 시이다. 이 시는 우정 어린 정조도 드러나지만 이백과 두보가 선유(仙遊)하며 호기를 부리듯 “호탕하고 超逸한 기상”( 金鍾西, 앞의 논문, 122-123쪽.)도 엿보인다. 옥봉이 서울에서 친한 데가 별로 없어 외로운 생활을 하고 있을 때 송강을 고인(故人)으로 부르며 가까이 지냈고, 서궁(덕수궁)에서 숙직을 하는 송강에게 부치는 시를 쓰기도 했다.

“옛집엔 희미한 등불 비치고/빈 뜰에 낙엽이 떨어지네./멀리서도 그대 마음 알 것 같은데/서궁의 밤은 비바람이 치는구나. 古屋照殘燈 空庭病葉下 遙知故人懷 風雨西宮夜”(白光勳, “寄季涵直省”, 앞의 책)

명필가이기도 했던 옥복의 서체

“숙직하는 계함에게 줌”이라는 시이다. ‘계함’은 송강의 자이다. 비바람 치는 밤 서궁에서 홀로 숙직하고 있을 송강을 생각하는 옥봉의 정분이 잘 드러난 작품이다. ‘옛집’과 ‘희미한 등불’, ‘빈뜰’과 ‘낙엽’이 쓸쓸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거기에 비바람까지 치니 친구 생각이 더욱 애절할 수밖에 없다. 1580년 정월에 송강이 강원도 관찰사로 부임을 했고, 옥봉은 이 무렵 낙산사 가는 스님 편에 송강에게 시 한 편을 부치는 등 두 사람의 우정은 죽을 때까지 변치 않았다.

이밖에도 그의 문집을 통해보면 그와 교유했던 인물은 주로 학자와 시인들로 120여 명에 달하고 40여 명의 시승들과도 사귀었다. 또한 몇 명의 기녀들에게 준 시들도 보인다.(金鍾西, 앞의 논문 96쪽, 金永國, 앞의 논문 32-33쪽 참조)

3. 시 세계의 특질

옥봉 시에 대한 평가 중 가장 일반적이고 개괄적인 지적은 ‘당풍’이라는 것이다. 즉, 조선 시대에 ‘당풍의 시’를 완성도 높게 구현한 세 사람(三唐派) 중 한 사람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옥봉의 시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평가에도 귀 기울일 만하다. 이는 옥봉 시를 이해하는 주요한 방법의 하나가 될 것이다.

상촌 신흠(象村 申欽)은 옥봉의 시를 ‘천득’(天得)으로 이루어졌다고 극찬했다. “기는 완전하고 소리는 맑고, 색은 옅으면서 예스럽고, 뜻은 바르면서 법도에 맞기”(其氣完 其聲淸 其色淡而古 其旨雅而則)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기, 성, 색, 지가 잘 갖추어진 ‘천득’이란 상촌의 평을 다시 빌리면 ‘정음’(正音)의 경지라고 할 수 있다.( 申欽, “玉峰輯序”, 白光勳 「玉峰集」)

이정구(李廷龜)는 “시는 반드시 그 취향이 올바라야.”(詩必正其趣向)하는데 옥봉 시는 이를 얻었다고 하였다.(李廷龜, “玉峰集序”, 위의 책.) 이것도 따지고 보면 상촌의 평과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최립(崔岦)은 ‘염담온자’(恬澹醞藉:편안하여 욕심이 없으며 따습고 온화함), 허균은 ‘고담’(枯淡:욕심없고 담박함), 남용익(南龍翼)은 ‘수랑’(瘦朗:수척하고 밝음)이라고 각각 옥봉 시의 특질을 지적하였다. 김석주(金錫冑)는 옥봉의 시를 “매미소리 들려 오는 맑고 시원한 초가을의 분위기가 있다.”고 하여 ‘청담’(淸淡:맑고 담담함)의 풍격을 비유적으로 지적하였다.(金鍾西, “玉峰 白光勳 詩의 風格”, 「韓國漢詩硏究」(韓國漢詩學會, 1995), 202-203 쪽)

만시(挽詩)에 드러난 옥봉에 대한 평도 옥봉 시의 특질을 적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율곡과 송강은 옥봉 시를 ‘맑음’(淸)이라 하였고, 송인은 ‘당풍을 익혔다.’고 했다. 고죽은 위진(魏晉)의 시를 능가한다고 하였고, 김천일은 두보와 이백을 배웠다고 했다. 윤기(尹箕)는 맹교(孟郊), 이호민(李好閔)은 맹교와 가도(賈島)의 쓸쓸하고 수척함을 닮았다고 했고, 정호(鄭澔)는 위응물(韋應物)과 맹호연(孟浩然)의 평이하고 담박한 시풍을 전범으로 삼았다고 했다.(위의 논문, 202-204쪽)

현대의 옥봉 시 연구가들은 저마다 옥봉 시에 대한 특질을 체계적으로 분류하여 시 세계의 본질적 가치를 밝히고 있다. 시의 형식이나 문체, 당시를 전범으로 했을 때의 그 풍격의 문제 등도 시학 연구의 측면에서 보면 더없이 중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옥봉 시를 이해하기 위한 더욱 중요한 것은 우선 시가 담고 있는 내용 측면이다. 내용의 측면에서 옥봉 시의 특징은 연구자들의 관점과 기준에 따라 다양하게 지적되어 왔다. 안병학은 옥봉 시의 특질을 ‘現實的 處地와 田園에의 憧憬’, ‘憂愁와 安定의 喪失’, ‘展望의 不在와 日常的 삶’으로 나누어 고찰하였고(安炳鶴, “白光勳 詩 小考”, 「語文論集」 제27집(민족어문학회, 1987), 임채룡은 ‘情恨과 懷古’, ‘隱逸과 景物’, ‘脫俗과 交遊’로 분류하여 논의 하고 있다(林采龍, “白光勳의 作品世界”, 「中語中文論叢」 제6집(중국어문연구회, 1993). 또한 김영국은 옥봉시의 내용을 ‘溪山風流’, ‘樓亭題詠’, ‘人情’, ‘脫俗’으로 나누어 보았다(金永國, 앞의 논문).

옥봉이 남긴 시는 오언절구 116편 137수, 칠언절구 199편 231수, 오언율시 72편 79수, 칠언율시 34편 37수, 오언고시 16수, 칠언고시 14수로 총 451편 514수에 달한다(위의 논문, 36-37쪽). 이처럼 많은 양의 시의 내용을 몇 개의 갈래로 나누어 특징짓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 하면 자칫 분류 기준이 명확하지 않으면 한 편의 시가 여러 특징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굳이 갈래를 짓는 일 자체가 무의미하게 될 수밖에 없게 된다. 따라서 시학적 측면에서 그 기준을 마련해야만 시 세계의 특질이 드러나리라고 판단된다. 가령, 시적 대상을 기준으로 하여 갈래짓는다거나, 화자나 청자의 성격에 따른 분류 등을 통해 시적 특질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접근 방식은 옥봉 시에 대한 본격적 연구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이 글은 옥봉의 시를 이해하는 정도에 목적을 두기 때문에 편의상 그의 시적 풍모를 알 수 있는 대표적인 작품 몇 편을 감상하는 것으로 의의를 갖고자 한다. 옥봉 시의 특질은 한 마디로 말하면 그의 인간적 삶을 정감어린 목소리로 담담하게 보여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옥봉 시를 서정적 갈래로 나누어 몇 편의 작품을 살피기로 한다.

(1) ‘전원 공간’과 은일시

명필로도 잘 알려졌던 백광훈의 초서 오언시

옥봉은 평생 가난한 선비였다. 그는 그의 생애가 말해주듯이 한 번도 권세를 탐하지 않고 오로지 시에서 삶의 가치를 구했던 시인이었다. 28세에 진사시에 합격하고 나서 더 이상 과거에 연연하지 않기로 한 것은 그의 생애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진사시에 합격하는 일까지는 선비로서의 체면이었고, 더 이상 과거 시험에 뜻을 두지 않은 것은 세속의 권세를 취하지 않고자 하는 그의 사상이요 철학인 것이다. 그는 남달리 생애를 통해 수많은 시승들과 교유한 것도 그의 탈속적 사상의 면모인 것이다. 그는 전원공간의 생활을 동경했고,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에 가치를 두었다.

“외진 곳에 사니 후미져서 오는 이 드물고/일 없어 사립문은 낮에도 열지 않네./꽃 가득한 작은 뜨락엔 봄기운 고요한데/한 마디 산새 소리가 푸른 이끼에 내려오네. 幽居地僻少人來 無事柴門晝不開 花滿小庭春寂寂 一聲山鳥下靑苔”(白光勳, “幽居 一”, 앞의 책)

“종일토록 사립문에 찾는 이 없고/때때로 먼 곳 새는 온갖 소리로 지저귀네./매화꽃 다 지자 살구꽃 피어나고/가랑비 한 줄기에 봄이 더욱 깊어지네. 竟日柴門人不尋 時聞幽鳥百般吟 梅花落盡杏花發 微雨一簾春意深”(白光勳, “幽居 二”, 위의 책)

위에 예거한 작품은 “幽居”라는 제목으로 쓴 두 수다. 은거해 사는 선비의 삶의 모습과 정취가 잘 드러나 있다. 시적 화자는 세속과 떨어져 후미진 곳에 자연과 더불어 사는 유유자적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 시에 구현된 전원 공간은 봄날의 정취를 자아내는 정적인 풍정이다. 찾아오는 사람 없으니 사립문을 여닫을 필요가 없고, 봄꽃만 뜨락 가득 피어 있는 풍경이다. 멀리서 온갖 새 지저귀는 소리 들리고, 거기에 가랑비 조금 내리니 봄이 더욱 깊어지는, 선비들이 동경하는 아름다운 전원 공간이다.

“시냇가에 복사꽃 두세 가지 피어 있고/빗속에 쓰러진 울타리 너머 초가집 있네./황소는 쟁기질 마치고 푸른 풀밭 위에 누워 있다가/농부 돌아 올 때 얘기하며 함께 오네. 溪上桃花三兩枝 雨中籬落隔茅茨 黃牛耕罷在靑草 田父歸時相語隨”(白光勳, “溪村雨中”, 위의 책)

이 작품에서 보여 주는 공간도 한 폭의 그림이다. 시냇가에 복사꽃, 울타리 너머 초가집, 황소와 농부 등이 어우러지는 정경이 평화롭고 안온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옥봉은 이러한 자연 속에 묻혀 사는 생활을 동경하고, 그러한 삶에 자족했던 것이다.

“비 내리는 산 속에 나그네 찾아오니/가을 배추 뽑아 들에서 밥 먹었네./가난하게 사는 일이 부끄럽지 않으니/서로 붙잡고 온종일을 보냈네. 雨中山客至 野飯折秋菘 不愧貧居事 相留到日終”(白光勳, “金君宗德來訪” 위의 책)

이러한 삶이 부끄럽지 않다는 게 이 시가 주는 주된 메시지이다. 손님이 찾아 왔지만 자신의 삶을 조금도 과장하지 않는다. 특별히 대접할 것도 없이 산 속에서 가난하게 사는대로 가을배추를 뽑아 먹으며 정담을 나누어도 하루가 부족한 것이다.

옥봉의 시에는 전원 공간을 소재로 삼아 그 공간 안에서의 삶을 동경하거나 그 안에서의 안빈낙도하는 삶을 노래한 작품이 많다. 그가 구하는 삶은 선비로서의 학문을 닦으며 욕심 없이 올바르게 사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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