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봉 백광훈의 생애와 문학(下)
옥봉 백광훈의 생애와 문학(下)
  • 장흥투데이
  • 승인 2020.09.17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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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림의향’/‘文人’(1) : 옥봉 백광홍(玉峯 白光勳)
‘조선 최고의 문장인 팔대 문장가’ 인정받았던 천재 시인
백수인 시인

백수인(白洙寅, 조선대 교수)

▶…장흥 안양면 기산리 출신으로 기봉 백광홍의 아우이지만 어렸을 때 해남으로 이거했던 대문인. 최경창·이달과 함께 삼당파(三唐派) 시인으로 불렸고 이산해·송익필·최경창·최립·이순인·윤탁연·하응림 등과 함께 조선 최고의 문장인 팔대 문장가의 한 사람으로 인정받았고 천재시인 이하(李賀)에 비견된다는 칭송을 들었던 대시인이었다. 시인 백수인(조선대학교 명예교수)씨의 선생에 대한 생애와 문학을 3회에 걸쳐 연재한다. 이번 호가 최종호이다-편집자 주...◀

2) 인간애와 이별의 시

만나고 헤어지는 게 인간사이고 자연의 섭리이다. 만나기도 어렵지만 정든 사람과 헤어져야 하는 ‘이별’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이별’에 대한 감정을 읊은 노래가 많다. 이별의 노래에는 대개 애틋한 인간애가 드러나기 마련이고, 이는 인간이 갖는 본연의 감정이다.

옥봉의 시에 드러나는 다른 특징 중 하나는 이별의 시가 많다는 것이다. 이는 옥봉의 삶이 인간적 정분을 중시하고 인간의 만남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랑의 실천이었음을 말해 준다.

“천리 먼 길 그대와 어찌 헤어지나/한밤 중 길 떠나는 걸 일어나 보네./외로운 배는 이미 멀어졌는데/달은 지고 차가운 강이 우네./千里奈君別 起看中夜行 孤舟去已遠 月落寒江鳴(白光勳, “別尹成甫”, 위의 책)

‘윤성보와 헤어지며’라는 시이다. 윤성보는 해남 윤씨로 선조 때의 문신이다. 성보(成甫)는 자(字)이고, 이름은 유기(惟幾)이다. 헤어지기 서운한 친구가 한밤중에 배를 타고 떠나는 상황을 그린 시이다. 특히 결구는 화자의 심정을 자연물인 달과 강에 기대어 표현함으로써 그 감동을 더하게 한다. 즉, 달이 지고 난 후, 강물이 거세지는 것을 ‘운다(鳴)’라고 한 것이 그것이다.

“강가에 아침이 오니 빗방울이 먼지를 적시네./먼 길 떠나는 사람 한 잔 술로 보내네./문밖 나서면 바로 아득한 나그네 길이니/눈길 끝엔 구름과 안개, 애 끊는 봄날이네./江上朝來雨浥塵 一杯相送遠行人 出門卽是天涯路 目極雲煙腸斷春”(白光勳, “春日贈別”, 위의 책.)

옥봉 기념관 내부
옥봉 기념관 내부

이 작품도 누군가와 봄날 헤어지면서 써준 시이다. 먼 길을 떠나는 친구에 대한 정이 ‘한 잔 술(一杯)’에 고여 있는 듯하다. 문밖 나서서 아득한 길을 가야 할 상대의 처지를 헤아리는 정이 깊다. 특히 헤어져야 하는 슬픔이 ‘애를 끊는(腸斷)’다고 표현한 것을 보면 두 사람의 우정을 가히 짐작하게 한다.

옥봉 유허비

“어젯밤엔 달이 밝더니 오늘 밤엔 눈이 내리네요./달이 첩의 마음을 알고 눈이 당신을 붙잡네요./내일 아침 남녘 역마길 홀로 떠나실 때/흐느끼며 흐르는 강물 소리를 꼭 들어보세요. 昨夜月明今夜雪 月知妾意雪留君 明朝獨去驛南路 鳴咽江流君試聞(白光勳, “代琴娥別鄭明府”, 위의 책)

이 시는 좀 특이한 이별시이다. 제목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정명부와 이별하는 금아를 대신하여’ 쓴 시이다. 즉, 이별하는 사람은 ‘정명부’와 ‘금아’이고 작자는 이러한 이별을 보고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이 시는 이별하는 남녀를 관찰자의 관점에서 노래한 것이 아니라, 이별 당사자인 ‘금아’를 화자로 내세워 이별의 슬픔을 노래하고 있다. ‘달’을 떠나는 사람, ‘눈’을 자신(금아)에 빗대어 표현하였다. 특히 내일 아침 홀로 떠나실 때 ‘흐느끼며 흐르는 강물 소리’를 꼭 들어보시라는 당부에 화자의 슬픔이 녹아 있다. 이처럼 이 시는 여성 화자를 내세웠다는 점이 특이하다.(여성 화자를 내세운 옥봉의 시로 대표적인 것은 ‘龍江詞’를 들 수 있다. )

그렇지만 이 시가 ‘금아’의 심정만을 상상하여 노래한 것은 아니다. 기실 금아의 목소리를 빗대어 ‘정명부’를 떠나보내는 자신의 슬픈 감정을 표출한 것이다.

옥봉의 시에서 이별의 시는 참으로 많다. 만나고 헤어지는 인간애가 시편마다 소중하게 잘 드러나 있어서, 옥봉의 정감어린 인간애를 물씬 느끼게 한다.

(3) 사향의 시

수구초심(首丘初心)이란 말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어릴 적 뼈와 마음을 키워 왔던 자신의 고향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더욱이 부모형제, 처자식 등 가족을 고향에 두고 타향에 있을 때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란 이루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일이다. 옥봉에게도 고향을 생각하고 그리워하는 시가 많다. 그 중 몇 편을 살피기로 한다.

“서울 땅 그대와 헤어지는 곳/돌아가는 그대에게 할 말이 없어/도리어 고개 돌려 강남 쪽 바라보니/푸른 산엔 또 해가 지는구나. 長安相送處 無語贈君歸 却向江南望 靑山又落暉”(白光勳, “贈友南還, 앞의 책)

우수의 시인 옥봉의 '옥봉문집'
우수의 시인 옥봉의 '옥봉문집'

 

이는 얼핏 보면 이별의 시 같지만, 자세히 보면 고향을 그리워하는 내용을 담은 작품이다. 친구는 고향에 돌아가는데, 자신은 가지 못하고 서울에 남게 되어 도리어 고개를 돌려 남쪽 고향을 바라보니, 오늘도 푸른 산엔 또 해가 지고 있다는 내용이다. 이별의 상태로 타관에 있는 자신의 처지를, 언제나 그리운 고향으로 돌아가게 될까를 생각하는 간절한 마음이 ‘또(又)’에 함축되어 있다.

“나그네 길에 단오를 만나고 보니/ 지방은 달라도 풍물은 같구나./머나먼 고향집 가여운 딸애는/종일토록 뒤뜰에서 놀고 있겠지. 路上逢重五 殊方節物同 遙憐小兒女 竟日後園中”(白光勳, “長城道中”, 위의 책. 이 시의 전구 ‘遙憐小兒女’는 두보가 안록산의 난 때 포로로 잡혀 장안에서 가족을 그리며 쓴 시 ‘月夜’에서 그대로 따왔다.)

이 시의 화자는 집을 떠나 길을 가다가 그네 타고 노는 등 단오절 민속놀이를 만난다. 다른 지방 낯선 길에서 고향에서와 같은 풍물을 본 것이다. 이로써 문득 고향 생각이 사무친다. 특히 아버지를 객지에 보내고 뒤뜰에서 혼자 놀고 있을 가여운 딸에 대한 연민의 정이 잘 드러나 있는 작품이다.

“두 해 동안 서울 땅 나그네로 떠돌 땐/꿈에 본 고향 산 얼마나 정겨웠나./오늘 와 참모습을 만나고 보니/꿈일까 두려워 고개를 드네. 二年辛苦客秦城 夢見鄕山別有情 今日却逢眞面目 擧頭猶怕夢中行”(白光勳, “到女院望月出山”, 위의 책.)

앞의 두 편의 시는 객지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는 내용이었지만, 이 작품은 화자가 고향에 있다. 객지에서 고향을 그리워했던 마음과 고향에 돌아와서 느끼는 감정이 효과적으로 드러나 있다. 두 해 동안 서울에 있으면서 얼마나 고향을 그리워했으면 꿈에 고향의 산(월출산)을 보았을까, 그 심정을 짐작하게 한다. 그리운 고향 산을 만나 정겨워 하지만 항상 깨고 나면 한낱 꿈이었다. 오늘에 그리운 고향에 와서 실제로 그 월출산을 바라지만, 이게 또 꿈일까를 두렵다는 내용이다.

몇 작품을 예거하여 옥봉의 사향 시를 살폈다. 이밖에도 고향을 그리워하는 애절한 내용의 작품들이 많이 있다. 따라서 사향의 시가 옥봉 시에서 하나의 특질적 영역임에 틀림이 없다.

4. 마무리

옥봉은 조선 중기 당풍의 시를 주도한 시인이며, 영화체에 빼어난 명필이었다. 또한 명리를 함부로 구하지 않은 선비 정신에 투철한 시인이었다.

그는 잠깐 두 세 번의 공직 생활을 한 것을 제외하면 거의 전 생애를 시와 더불어 자연에 묻혀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직이란 중국 사신의 제술관이 된 것과 만년에 참봉 벼슬에 나간 것을 말한다. 제술관이 된 것은 스승 노수신의 천거와 부름으로 이루어졌지만, 이 일로 옥봉의 문명이 나라 안팎으로 떨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이를 기화로 조정에서는 여러 차례 벼슬을 권했지만 나아가지 않았다가 만년에야 마지못해 높지 않은 벼슬길에 올랐다. 경제적 궁핍 때문이었다.

그는 훌륭한 스승을 만나 학문을 닦았다. 청련 이후백, 송천 양응정, 소재 노수신, 사암 박순, 석천 임억령 등이 그들이다. 옥봉이 당시에 능한 시인으로 문명을 얻게 된 데에는 이러한 스승들을 만나 천부적 소질을 계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벼슬하지 않았으면서도 수많은 시인 묵객들과 교유하였다. 그가 교유하며 시를 주고받았던 사람들은 시인, 학자, 스님, 벼슬아치 등 당시 사회의 인텔리들이었고, 그 수는 무려 160여 명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당대에 실력을 인정받은 시인이었을 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사랑의 정신이 녹아 있는 성품에 있었다.

이와 같은 그의 성품은 그의 작품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 자연을 사랑하고 전원을 동경하는 시, 사람과의 만남을 소중하게 여기는 인간애가 녹아 있는 이별의 시. 고향과 가족을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사향의 시, 여기서는 다루지 않았지만 쥐락 낭만의 시가 그의 시적 특성이다.

따라서 옥봉은 조선시대 당풍시를 대표하는 휴머니즘의 시인이요, 선비 정신에 투철한 아름다운 시인인 것이다.(끝)

<참고문헌>白光勳, 「玉峰詩集」/白光弘, 「岐峰集」/李達, 「遜谷集」/李晬光, 「芝峰類說」/林憶齡, 「石川集」/鄭澈, 「松江集」/崔慶昌, 「孤竹集」 /許均, 「鶴山樵談」/姜晳中, “玉峰 白光勳의 詩世界”, 「韓國漢詩作家硏究」 제6집, 한국한시학회, 2001./權純烈,, “孤竹 崔慶昌 硏究”, 「古詩歌硏究」 제9집, 한국고시가문학회, 2002./金永國, “玉峰 白光勳의 詩 硏究”, 원광대 대학원 박사논문, 1994./金鍾西, “玉峰 白光勳과 湖南詩壇의 交遊”, 「韓國漢詩硏究」 제10집, 한국한시학회, 2002./金鍾西, “玉峰 白光勳 詩에 나타난 田園의 양상” 「韓國漢詩硏究」 제8집, 2000./金鍾西, “玉峰 白光勳 시의 含蓄的 性格”, 「韓國漢文學硏究」 제35집, 한국한문학회, 2005/金鍾西, “玉峰 白光勳 詩의 風格”, 「韓國漢詩硏究」 제3집, 한국한시학회, 1995./林采龍, “白光勳의 作品世界”, 「中語中文論叢」 제6집, 중국어문연구회, 1993./백수인, 「岐峯 白光弘의 生涯와 文學世界」, 시와사람, 2004./변종현, “白光勳 漢詩 硏究”, 「교육이론과 실천」, 경남대교육뮨제연구소, 2002./安炳鶴, “白光勳 詩 小考”, 「語文論集」 제27집, 민족어문학회, 1987./정 민, “寄內詩 맥락에서 본 백광훈의 「龍江詞」”, 「한국고전여성문학연구」 제5집, 한국고전여성문학회,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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