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할까
■특별기고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할까
  • 장흥투데이
  • 승인 2020.09.18 14: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승주 교육학 박사

한승주/교육학 박사, 대덕중 22회, 산외동

“두 번은 없다. 지금도 그렇고/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아무런 연습 없이 태어나서/아무런 실습 없이 죽는다./우리가, 세상이란 이름의 학교에서/가장 바보 같은 학생일지라도/여름에도 겨울에도/낙제란 없는 법./반복되는 하루는 단 한 번도 없다./두 번의 똑같은 밤도 없고,/두 번의 한결같은 입맞춤도 없다.(하략) -‘두 번은 없다’ 일부

이 시 ‘두 번은 없다’는 폴란드 시인 비스와바 쉼보르스카((Wislawa Szymborska, 1923-2012)의 시다. 이 시에서 ‘아무런 연습 없이 태어나서 아무런 실습 없이 죽는다’라는 구절은 인생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 것이다. 우리들 인생이란 것이 부모님의 뜨거운 사랑으로 이 세상에 태어났으며 저 세상으로 돌아갈 때도 아무런 실습 없이 어느 날 갑자기 갈 수밖에 없다. 그러면 태어나서 죽는 순간까지를 인생, 또는 삶이라고 한다면 어떻게 살다 가는 것이 현명하겠는가? 모두들 ‘행복하게 살다가야지.’라고 할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일까? 또한 행복한 삶을 위한 조건은 무엇일까? 사람마다 행복의 조건은 다를 것이다. 우리나라와 같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돈’ 많은 사람 중 한 명은 00그룹 이 모 회장일 것이다. 그는 과연 행복할까? 지금 몇 년째 병상에 누워서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행복’이라는 단어조차 기억 못할 지도 모른다. 이러한 상황에서 ‘돈’만 있으면 행복하다고 말 할 수 있는가. 우리나라의 대표적 항공사의 가족들도 그렇고, 또 ‘돈’ 많은 재벌들의 추악한 민낯을 우리는 언론을 통해서 똑똑히 보아왔다.

이쯤되면 ‘건강’이 행복의 조건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건강’한 삶이란 또 어떤 삶일까? 우리는 습관적으로 건강해지려고 조금만 아파도 병원에 간다. 그런데 병원에 가면 정말 많은 환자들을 본다. 이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지기 위해서 ‘건강’을 찾으려고 병원에 온 것일까? 각각 사연이 있어서 병원에 오겠지만 ‘돈’ 때문에 치료도 제대로 못받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혼란스럽지 않은가. ‘돈’이 행복의 조건도 아니라면 ‘건강’이 행복의 조건이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돈’ 없으면 ‘건강’을 회복하기도 쉽지 않으니 말이다.

예전 크게 아팠던 적이 있다. 세 번의 수술과 중환자실의 입원.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삶’에 대한 갈망이 컸던 때였다. 40대 중반의 나이에 죽음이라는 단어를 생각해야 했던 시기.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시간들이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도 나보다는 가족의 걱정을 먼저 생각했던 것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찔한 순간이다. 만약 내가 병원에서 회복되지 못하고 죽음의 세계로 갔다면 살아있는 가족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다행히 지금은 건강이 회복되었지만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걷고 있다. ‘건강’을 위해 매일 15,000여보를 걷는다. 많이 걷다보면 보이지 않았던 많은 것들도 보이게 되고 건강도 좋아지니 일석이조가 아니겠는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도 ‘행복’은 고민할 수밖에 없다. 나는 학생들과 기나긴 인생 설계를 논할 때 가끔 이런 말을 한다. ‘30-30-30’. 지금은 100세 시대이니 30년 동안 인생 준비를 철저히 하고(소위 스팩 specification을 쌓고), 30년 열심히 활동하고(즉 확실한 직업 활동을 통해 돈도 많이 벌고), 30년은 즐겁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도 하고, 나라와 이웃, 가족을 위한 봉사도 하면서 말이다. 은퇴 후 ‘행복’한 삶을 위한 준비를 하지 않으면 노년의 쓸쓸함이 앞을 가로막을 것이다.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두 번 인생은 없다고 말한 시인처럼 어떤 인생이 행복한 삶일까? 그렇게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어떤 마음가짐이 필요할까? ‘몸’과 ‘마음’이 모두 건강해야 한다. 행복한 ‘삶’에 대한 확실한 가치관이 확립되어야 한다. 세계가 ‘코로나19’로 대혼란의 변혁기에 접어들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새로운 질서가 확립될 것이다. 그동안 ‘삶’과 ‘죽음’의 영역에서 신(神)의 지배에 의해 종교가 성행했지만 이제는 종교도 의지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14세기 중세 유럽 사회에서 페스트(Yersinia Pestis)로 인해 유럽 인구의 30%에 가까운 3,000만 명이 사망했다. 극한의 공포 속에서 유럽인들은 공황 상태로 내몰렸다. 페스트의 여파로 잉글랜드와 프랑스 사이의 백년 전쟁도 중단되었다. 교황청의 추기경마저 절반 이상 사망해 종교가 위안을 줄 수도 없었다. 교황권이 하락하고, 죽음으로 인한 염세주의에 물든 중세 유럽인들은 종교에 환멸을 느끼게 되었다. 사람들이 우후죽순 죽어 나갔던 14세기 중반 이후 유럽에는 삶에 대한 비관주의와 함께 정서적인 공허감이 유행했다. 이로써 중세 유럽 시대의 봉건적 질서는 토대부터 동요되기 시작했다. 신(神)으로부터 위안을 받지도 못하고 가톨릭의 부패는 종교개혁을 앞당겼다. 16~17세기는 유럽의 대표적인 종교인 가톨릭이 부패할 대로 부패했을 때다. 그래서 가톨릭교회의 쇄신을 요구하면서 개혁 운동이 일어났는데, 대표적인 종교 개혁자로는 칼뱅과 루터가 있다. 아마도 ‘코로나19’이후 종교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이 확립될 것이다. ‘행복’한 삶의 한 방편으로 종교에 의지했던 것들이 이제 새로운 의지의 대상이 필요한 세상이 도래한 것이다. 그 의지의 대상이 꼭 신(神)이 아닐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도 우리 천관 가족들은 ‘작은 행복’이 있지 않은가? 전국 어느 지역보다도 돈독한 향우애와 서로 살펴주는 연대의식, ‘코로나19’로 인해 올해는 <천관가족축제>가 취소되었지만 2021년이면 우리의 연대의식의 산물인 <월간 천관>이 40년이 되는 해이다. 우리의 이러한 자긍심이 또 하나의 ‘행복’한 삶이 아닐는지. 모두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라도 가족이나 지인들에게 전화 한 번 합시다. ‘화향백리(花香百里), 주향천리(酒香千里), 인향만리(人香萬里)’라는 말이 있다. 우리 천관가족 모두는 정이 넘치고 향이 넘치는 그런 사람들이니 말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전남 장흥군 장흥읍 동교3길 11-8. 1층
  • 대표전화 : 061-864-4200
  • 팩스 : 061-863-4900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선욱
  • 법인명 : 주식회사 장흥투데이 혹은 (주)장흥투데이
  • 제호 : 장흥투데이
  • 등록번호 : 전남 다 00388
  • 등록일 : 2018-03-06
  • 발행일 : 2018-03-06
  • 발행인 : 임형기
  • 편집인 : 김선욱
  • 계좌번호 (농협) 301-0229-5455—61(주식회사 장흥투데이)
  • 장흥투데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0 장흥투데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jhtoday7@naver.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