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 ‘조선 수군 재건로’ 재조명‧재정립 운동 본격 추진되길
■사설 - ‘조선 수군 재건로’ 재조명‧재정립 운동 본격 추진되길
  • 김선욱
  • 승인 2020.11.19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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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경 박사의 ‘백사정‧군영구미 위치 검토’ 논문 발표에 즈음하여

오는 11월 25일, 이수경 박사가 ‘난중일기의 백사정과 군영구미의 위치 검토’라는 주제의 강좌를 갖는다. 이 강좌에서 이수경 박사는 전남도가 2013년에 추진한, 이순신의 ‘조선 수군 재건로’ 사업 중 하나였던 장흥부 소속의 ‘백사정’과 ‘군영구미’의 위치에 대한 그동안의 연구 성과를 밝힌다. 이 박사는 이미 발표된 논문에서 당시 장흥부 ‘백사정’과 ‘군영구미’는 지금의 ‘보성군 회천면 일원’이 아니며 ‘백사정은 장흥 탐진강변’이고 ‘군영구미는 안양면의 선소’로 추정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미 이번호 보도 기사에서 밝힌 바 있지만, ‘이순신 길 조선 수군 재건로’ 조성 사업에서 전남도는 ‘군영구미=회천면 군학마을’ 비정을 토대로 본 사업을 추진했고 이에 대하여 장흥의 향토사학자 위성 씨는 ‘역사의 왜곡’으로 주장하고, 군영구미의 지명을 ‘안양면 해창마을’로 변경해 줄 것을 요구했지만, 이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후, 장흥군 문화계에서도 이 사안에 관심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왔다. 특히 장흥문화원에선 지난 2017년∽2019년 인문학 강좌를 통해 ‘이순신 수군 재건로’와 관련된 주제의 강좌를 4회나 개최한 바가 있었다. ‘①2017.4.24.-‘회령포 문화축제의 방향과 이순신 조선수군 재검토‘/박형상 ②2017.10.13.-’조선 수군 재건과 회령포-명량대첩 12척의 기적을 일구다/김덕진 교수 ③2018.9.20.-‘난중일기...이순신 조선 수군 재건로 현장 답사’/이수경 박사 ④2018.9.21-‘조선 수군 재건과 회령포-명량대첩 12척의 기적/박형상’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 4강의 강좌에서 설득력이 있고 구체적인 논거로 문제점을 지적한 강좌는 없었다. 장흥출신 박형상은 ①④의 강좌에서 ‘군영구미=회천 군학리’설의 부당성, 전남도 이순신 수군 재건로 고증자 노기욱 씨의 ‘군학리-회령포 향선 직진설’에 대한 허구성 등을 지적하고 ‘군영구미=안양 해창’설을 주장했지만, 설득력이 미흡하고 논거도 미약한 부분이 있었다. ②의 김덕진 교수도 ‘장흥부 백사정=율포 백사정’으로, ‘군영구미=안양면 선소’로 추정하며 이 부분을 극히 약술하고 말았고 ③의 강좌에서 이수경 박사도 백사정이나 군영구미의 지명, 군학리에서 향선 이동설 등은 아예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동안 장흥문화원의 인문학 강좌의 이순신 수군 재건로 관련 강좌에서 ‘군영구미는 장흥 땅이었다’ 등의 구체적인 논거는제대로  제시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비하면, 위성 씨의 이른바 ‘노기욱이 대변하는 보성군 측의 고증’ 등에 대한 문제 제기는 보다 논리적이고 반박의 논거도 보다 설득적이다.

장흥 쪽 논자들이 주장하는, ‘신에게는 배 12척이 있습니다(今臣戰船尙有十二)’의 장계를 올렸다는 열선루와 회천 군학리에서의 향선 이동설 등의 역사적 허구성은 차치하고, 가장 핵심이라 할 수 있었던 ‘군영구미(軍營龜尾=軍營仇未)=회천 군학마을’에 대한 위성 씨의 반박 논거만 보도록 하자.

회천 군학리는 당시 장흥부 회령방에 속했으며 1914년에 비로소 보성군 회천면이 되었다. 그러므로 군학리는 1914년 이전 기록에선 장흥읍지에만 나온다.

‘군영구미’는 모든 역사서, 향토자료, 고지도 등에도 출전하지 않는다. 군사가 주둔한 지역을 표현했다고 할 때, 당시 보성만에 접한 장흥부에서 군사가 주둔한 ‘구미’는 회령진(회진면)과 해창 뿐이다. 회령진이 목적지이므로 회령진은 아니었다. 결국 ‘군영구미’는 해창 뿐이다. 이순신이 배설에게 회령진으로 가기 위해 군영구미로 배를 보내라고 했다(보내지 않았다). 이 말에서 알 수 있는 것은, 군영구미는 배가 정박할 만큼 수심도 깊어야 한다는 것이다(군학리 일대는 전선이 정박할 만한 장소가 없다).

노기욱은 ‘지역민들이 가져온 행선으로 양곡과 8월 15일 말 4필에 실은 보성의 군기물자, 병사(120명)를 싣고 군학에서 바다로 출정하였다’고 주장하며 군학마을을 군영구미로 비정하였다. 그런데 그 근거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장흥 땅 백사정에서 점심을 먹고 군영구미로 가니 장흥의 군관 감관監官, 색리가 군량을 모두 훔쳐갔다…군영구미에서 잤다” -‘난중일기’의 이 대목은, 당시 군영구미에는 군량을 저장하는 창고도, 장군이 머물 수 있는 객관도, 양곡‧색리를 관장하는 감관도 있었으며, 배도 정박할 수 있는 바닷가 선창도 있어야 한다. 보성 회천면 백사정에서 군사가 주둔하고 창고도 있고 선창도 있는 곳의 기록이나 이를 지정학적으로 실증할 수 있는 곳은 한 군데도 없다. 군학마을 끝 조금 튀어나온 듯한 축대 같은 흔적도 있고 이곳을 ‘구미영성’이라고 하고 회령폐현으로 추정된다고 했지만, 기록에 의하면 회령폐현은 내성을 축성하지도 않았고 회령진성에만 내성을 축성하였다.

그런데 해창은 “장흥부의 세미(세금을 걷는 곡식)를 보관했으며 바다를 통해 서울창고로 운반했다. 선소船所는 창고 앞에 있었다. 선창은 매년 부역하는 민정을 동원하여 땅을 팠다. 대선 1척, 병선 1척, 사후선 1척이 있어 모두 좌수영에 소속되어 있다-(1747, 정묘지)”. 또 1872년 장흥부 고지도(규장각 소장)에도 아주 소상하게 해창과 전선 3척, 그리고 창고가 그려져 있다.

이처럼 해창은 조선조에 세미를 걷고, 감관을 두고 보관 관리하였으며, 대선을 이용하여 그 세미를 경창으로 운반하여 국고를 충당하였던 곳이었다. 또 전라좌수영 또는 우수영에 편재된 수군도 주둔하였다. 또 선창도 있었다. 그러므로 군영구미는 바로 해창이었던 것이다.

이순신은 정유년 8월 18일, ‘군영구미에서 늦은 아침(晩潮)에 회령포로 갔다’고 했다. 군학마으ᅟᅡᆯ에서 회령포까지는 거리가 너무 멀다. 그렇지만 해창에서 회령포까진 늦은 아침에 갈 수 있는 거리다.

이항복은 <백사집>에서 이순신이 통제사로 다시 제수된 뒤, “한 마리 말로 달려 회령포에 이르러(單騎馳到會寧浦) 경상우수사 배설을 만났다”라고 적었다. 이밖에도 “순신이 한 마리 말로 달려 배설을 만나다(會寧浦舜臣單騎馳見楔)-윤휴의 <백호집>”, “회령포에 한 마리 말로 이르다(會寧浦單騎馳到-안방준 <은봉전서>” 등 여러 기록에서도 밝히듯, 이순신은 회천의 군학에서 향선으로 해로를 통해 회령포에 갔던 것이 아니다. 안양면 해창서 말을 타고 달려 회령포에 이르렀던 것이다(날랜 군사와 수종꾼들도 이런 장군을 뒤따랐을 것이었다).

이것이 위성 씨가 밝힌 ‘군영구미=해창’설이었다.

이제 며칠 후엔 이수경 박사가 군영구미와 백사정에 대한 연구 논문을 밝힐 것이다.

이를 계기로 장흥 학자들이며 장흥 문화계에서도 ‘이순신 수군 재건로’에 대해 더 깊이 있는 연구와 그 방향성에 대한 조율과 공유가 뒤따르고, 군이나 장흥의 문화계에서도 정유재란 때의 장흥과 관련된 이순신 수군 재건에 대한 보다 확실한 조명 운동 그리고 이로 인한 장흥 향토사의 올바른 정립이 이뤄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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