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림의향 ‘文林(5)/ 장흥 詩 남긴 혜심‧천인 선승
■문림의향 ‘文林(5)/ 장흥 詩 남긴 혜심‧천인 선승
  • 김선욱
  • 승인 2020.11.26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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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각국사 혜심‧정명국사 천인…천관산 시문 남겼다
혜심 … ‘천관산 의상암 우거 중 몽인 남긴 시 보고 차운해 짓다’

천인 … ‘원상인이 철쭉 지팡이 선사함에 사례하여’ 시 짓다
김선욱/시인, 본지 편집인

앞서 장흥문학의 고문학을 소개하는 ’문림의향 ‘文林’ 편에서 장흥인 최초의 시인으로 고려 시대의 문신 위계정(魏繼廷, ?~1107)과 고려조 승려시인으로 최고봉에 이르렀던 원감국사 충지(圓鑑國師 沖止, 1226~1292)를 소개한 바 있다.

그렇다면 이들 장흥인 두 사람을 제외하면 고려조에서 장흥의 고문학은 전무했을까?

아니다. 장흥출신의 문인으로 위계정, 원감국사 충지 외 장흥문학이 출전되지 않는다고 해도, 장흥의 지명에 관한 시문 4편과 산문 1편 등 총 5편이 있었다. 이 시문 5편도 장흥 땅(지명)에 관한 시였으므로 당연히 장흥의 고문학에 편입돼야 마땅하다.

이들 5편 시문과 시인들을 고찰해 보자

먼저 장흥 시 4편을 연대 별로 구분해 보면 ①진각국사 혜심(眞覺國寺 慧諶, 1178∼1234)이 1200년 초반에 쓴 시-‘천관산 의상암에 우거하다가 몽인夢忍거사가 남긴 시를 보고 차운해 지은 시(寓居天冠山義相庵 見夢忍居士留題 次韻敍懷)’ ②정명국사 천인(靜明國師 天因,1205∼1248)이 1240년에 쓴 시- ‘원상인이 철쭉 지팡이를 선사함에 사례하여(謝圓上人惠躑躅柱杖)’ ③정혜묘원 진감대선사 정오(丁午, 생몰 미상, 1313년 충숙왕 국통 책봉)가 쓴 시- ‘금장사金藏寺’ ④목은 이색(牧隱 李穡,1328~396‘이 지은 장흥출신 장군 정세운(鄭世雲, ?~1362)에 대해 찬(贊) 한 시- ’증시중정공화상찬(贈侍中鄭公畵像贊)’ 등이다.

그리고 이들 4편의 시 외에 ⑤산문으로 정명국사의 ‘천관산기天冠山記’가 있다

이규보가 극찬한 선승 혜심--장흥 천관산에 머물며 詩 짓다

무의자 시집

13세기 초, 장흥 천관산과 인연이 깊은 저명한 시인이요 선승인 두 분이 출현한다.

진각국사 혜심(眞覺國寺 慧諶, 1178∼1234)과 정명국사 천인(靜明國師 天因,1205∼1248)이다. 27세 차이가 나는 혜심과 천인은 사제간이기도 하다. 혜심이 조계산 수선사의 제2세 사주(社主)였을 때, 천인이 혜심의 문하에서 수행을 했기 때문이다. 이 두 스님은 송광산으로도 불리는 조계산과 가까운 천관산에 들러 천관산 관련의 시문을 남기는 행보를 남겼다.

진각국사 혜심은 장흥 땅 천관산에 들러 의상암에서 한 편의 시를 남겼으니 ‘천관산 의상암에 우거하다가 몽인夢忍거사가 남긴 시를 보고 차운해 지은 시(寓居天冠山義相庵 見夢忍居士留題 次韻敍懷)’가 그 시이다.

당시, 천관산에는 89 암자가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의상암은 그 89암자 중 하나로 천관사의 남쪽 첫 번째 동에 있었던 암자로 알려지고 있다.

천관산 의상암에 머무를 때 몽인거사 유제留題 서회叙懷를 보고 그 운을 빌려 짓다

(寓居天冠山義相庵 見夢忍居士留題 次韻叙懷)

절집안의 주지가 근심하는 것은 / 主席叢林是所憂

세상을 등진 스님들을 침해한 고뇌이네 / 厭離雲水苦相侵

이끼를 헤쳐 돋은 바위 사이의 길에 / 養苔封斷巖間路

가린 집을 밀쳐낸 바다 위의 봉우리 / 掩戶推還海上峰

온종일 부는 솔바람은 귀를 맑혀주고 / 竟日松風淸可耳

제 때에 오른 산달은 좋은 벗이구나 / 有時山月好知音

다행히 이 절은 스스로 굴레를 벗어 / 儂家幸自脫羈絆

명세커니 일생을 탁발승으로 살리라 / 誓畢一生雲水心

-痴人 李奉俊 譯

*留題 : 명승지를 유람하며 그 느낌을 써 놓은 詩句. *叙懷 : 품은 생각을 펴다. *苦相 : 운이 불길한 인상. 고뇌에 찬 얼굴. 고통스러워하는 얼굴. *雲水 : 雲水僧, 托鉢僧. 雲水衲子.

*厭離 : 世上을 싫어하여 떠남. *推還 : 物件을 찾아옴 *羈絆 : 굴레.  굴레를 씌우듯 자유를 얽매는 일

진각국사는 법명이 혜심(惠諶), 자는 영을(永乙)이며, 자호는 무의자(無衣子)다. 시호는 진각국사, 탑호는 원소圓炤이다.

혜심은 나주(羅州) 화순현(和順縣) 사람이다. 조계산(曹溪山)에서 수선사(修禪社)를 만들어 교화 활동을 하고 있던 보조국사 지눌(知訥)에게 출가하고 1210년 보조국사가 입적하자 칙명으로 법석을 이어 받아 수선사의 제2세 사주(社主)가 되었으며, 간화선(看話禪)을 강조하면서 수선사의 교세를 확장하였다.

당대 고종(高宗)은 혜심에게 선사(禪師)에 이어 대선사를 제수하였으며, 1220년(고종 7) 단속사(斷俗寺) 주지로 명하였다. 1234년 6월 26일 입적하였다. 나이 56세, 법랍 32세였다.

저서로 <선문염송집(禪門拈頌集)> 30권, <심요(心要> 1편, <조계진각국사어록(曹溪眞覺國師語錄)> 1권, <구자무불성화간병론(狗子無佛性話揀病論)> 1편, <무의자시집(無衣子詩集)> 2권, <금강경찬(金剛經贊)> 1권, <선문강요(禪門綱要)> 1권을 남겼다.

고종은 혜심의 사후에 진각국사(眞覺國師)라는 시호를 내렸다.

고려조 대표적인 문인 이규보((李奎報,1168~1241)가 찬한 ‘진각국사비(眞覺國師碑)’가 강진군 월남산 월남사(月南寺)에 세워졌다. 현재 비문은 잔비(殘碑)만이 전해 오고 있는데, ‘조계산 제이세 고 단속사 주지 수선사주 증시 진각국사 비명 병서 봉선술(曹溪山第二世故斷俗寺住持修禪社主贈諡眞覺國師碑銘 幷序 奉宣述)’라는 비명으로 <동문선> 제118권에 출전돼 있다.

혜심은 승려시인으로 유명했다. 특히 고려조 최초의 선시집으로 평가받는 <무의자시집(無衣子詩集)>에는 칠언절구·오언절구 등 시 수백 수와 단편 시, 산문·기(記) 등이 수록되어 있어, 그의 선시인(禪詩人)으로서 높은 품격을 가늠케 하고 있다.

이규보(李奎報)는 혜심에 대해 평하기를, “사(혜심)의 천성이 온하하며 크고 착실한 위에, 이미 유학에서 불교에 이르기까지 모든 내외의 경서에 통달하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런 까닭에 불법을 말하여 선양할 때나 게송을 찬술할 때에는, 능숙한 재인(宰人)이 소를 해부하는 칼날을 자유자재로 놀리는 것처럼 여유가 있었다. 이러하지 않고서야 어찌 발자취가 서울 땅을 밟은 일이 없으면서, 능히 앉아서 온 나라의 숭앙함을 누림이 이와 같을 수 있겠는가. 아, 정말 선문(禪門)의 바른 눈이며 육신이 그대로 보살인 자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師性冲和碩實。旣自儒之釋。凡內外經書。無不淹貫。故至於談揚佛乘。撰著偈頌。則恢恢乎游刃有餘地矣。不如是。安能迹不踐京都。而坐享一國所仰若是哉。噫。眞可謂禪門正眠肉身菩薩者歟”-李奎報, ,<東國李相國集> 卷35, ‘曹溪山第二世故斷俗寺住持修禪社主贈諡眞覺國師碑銘’(韓國文集叢刊2, 民族文化推進會, 1989), p.66- 라면서, 그의 인물됨이 유불에 정통하고 원숙한 시재(詩才)를 지녔음을 극찬하였다.

고려 후기 문신 최자(崔滋,1188∽1260)도 <보한집>에서 “기상은 살아 생동하는 것을 숭상하고 말은 익숙하고자 한다. 처음 배울 때에 기상이 생동한 뒤라야 장한 기상이 넘치고, 장한 기상이 넘친 뒤라야 노성(老成)한 기상이 호탕해진다. 무의자(無衣子)가 태학생이었을 때 시 ‘들길을 가다가〔野行〕’에서 ”뽕 따는 아낙네 든 광주리 봄빛을 가득 담고, 고기 잡는 노인 쓴 삿갓 빗소리 담고 가네(臂筐桑女盛春色 頂笠蓑翁戴雨聲)’라고 하였고… ‘비광(臂筐)’이라는 구절은 기상과 시어가 모두 생동하여 당시 숭상하던 것이었다 …(補閑集曰。氣尙生語欲熟。礿學之氣生然後壯氣逸。壯氣逸然後老氣豪。無衣子爲太學生時野行云。臂筐桑女盛春色。頂笠蓑翁戴雨聲。…臂筐之句。氣與語俱生。爲時俗所尙。-<매호유고梅湖遺稿>/시(詩)/칠언율시(七言律詩)/‘제목을 잃다〔失題〕’ p.23- 면서, 특히 ‘비광(臂筐)’의 구절을 들어 그의 시인으로서의 역량을 높이 평가하였다.

이처럼 당대 신진사인(新進士人)의 구심점에 있었던 문인 이규보와 최자도 혜심을 시에 뛰어난 시승으로 인정했던 당대의 저명한 승려 시인이었다.

천인, 산문 ‘천관산기’ 앞서, 천관산 詩 짓다

<동문선 6권>에 출전하고 있는 천인의 시

 

혜심의 시에 이어, 두 번째로 출현한 장흥 시문은, 정명국사 천인(靜明國師 天因, 1205∼1248)의 ‘원상인이 척촉(철쭉)의 지팡이를 선사함에 사례하여(謝圓上人惠躑躅柱杖)’라는 칠언고시로, <동문선 6권>에 출전하고 있는 시다.

원상인이 척촉의 지팡이를 선사함에 사례하여

(謝圓上人惠躑躅柱杖)

지제산은 높아 몇 천 길인가 / 支提山高幾千仞

오르고 또 올라도 그 근원 찾지 못하려니 / 上上不得尋其源

상인의 다리 힘은 늙어서도 튼튼하여 / 上人脚力老猶健

여러 날 아침 저녁 깊이 더듬어 / 冥搜數日窮朝昏

숲 속을 뚫고 가서 문득 얻은 것 있으니 / 行穿中林忽有得

한 그루의 척촉이 바위 뿌리에 나 있었다 / 一條躑躅生嵌根

꺾어서 주장을 만들려 하매 길이도 넉넉한데 / 裁爲柱杖尺度足

껍질이 모두 벗겨져 속 나무만 단단하다 / 皮膚脫盡精堅存

울릴 듯 붉은 옥이 마디 눈을 드러낼 때 / 鏗然紫玉露節目

푸르른 이끼 흔적 점점이 아직도 있다 / 尙有點點蒼苔痕

내가 행각하려는 것을 상인이 생각하고 / 上人念我欲行脚

그것을 내게 주니 어찌 이리 은근한고 / 持用惠我何殷勤

위험한 곳 올라갈 때 남은 힘이 있으니 / 登危陟險有餘力

언제나 너의 은혜 입는 것 진실로 알겠구나 / 信知造次承渠恩

너는 내 손에 떨어진 것을 한하지 말라 / 報渠莫厭落吾手

나는 호남의 마을들을 두루 다니고자 하나니 / 我行欲遍湖南村

다른 날에 화하여 용이 되면* / 雲雷他日化爲龍

한 번 들어 하늘과 땅을 머금을 수 있으리라 / 一擧尙可吞乾坤

어떻게 길이 방 안의 물건이 되겠는가 / 那更長爲堂中物

유유히 남북으로 돌아다닐 수 있는데/ 悠悠南北狂馳奔

- 출전 : <동문선> 제6권 / 칠언고시(七言古詩)

ⓒ 한국고전번역원 | 양주동 (역)

*‘다른 날에 …… 되면’ : 신선神仙 호공壺公-동진시대 도교의 대가이자 명의였던 갈홍葛洪(284~363)의 저서 <신선전(神仙传)>에 나오는 84명의 신선 중 1인-이라는 신선이 이 비장방費長房(호공에게 도를 배운 제자, 선인)을 돌려보내면서 죽장竹杖을 주어 타고 가게 하였다. 비장방이 그것을 타니 자는 듯 하다가 문득 집에 도착되었는데 죽장은 칡덩굴 언덕에 던지니 변하여 용이 되었다. 또 술사術士 진련陳憐이 밤에 용을 타고 집에 왔는데 용이 변하여 청죽장(靑竹杖)이 되었다.

애초 이 시문의 자료를 제공해 준 김희태씨(전남도 문화재전문위원)은 다음과 같이 이 시에 대한 감상기를 적어 보냈다.

고려시대에 ‘천관산기’를 남긴 정명국사 천인 스님이 천관산에 오르자, 당시 절에 있던 원상인(圓上人)이 척촉(躑躅, 철쭉나무)의 주장(柱杖, 지팡이)을 선물했다. 척촉. 장흥 천관산 철쭉의 오랜 역사를 말해 준다. 원상인의 척촉 주장 선물에 감사의 뜻을 담아 천인 스님이 7언 20구의 시를 짓는다. 이 또한 『동문선』에 실린 명작이다. 그런데 그 시의 한 구절에 ‘호남(湖南)’이 보인다. ‘호남’이란 용어를 어느 때부터 써 왔을까 늘 궁금해 오던 차였는데, 고려시대에 장흥 천관산에서 지은 시에서 ‘호남’이란 용어가 처음 나오는 것이다. 그 이전에는 두 가지 설이 있었다. 고려 말의 광주출신 문관 탁광무(1330~1410)의 문집 『경렴정집』(권1)의 ‘경렴정편액(景濂亭扁額)’의 시 첫 구절, ‘해동형승천호남(海東形勝擅湖南)’ 구절이 먼저였을 것이라는 것(한국문집총간 6집 249쪽). 또 하나는 목은 이색(1328~1396)의 회덕 미륵원 남루기에서 그 기원을 찾는 이다. 그러나 기록상으로는 애매하다. 그런데 기존의 주장보다 150여년이나 앞선 시기에 이미 ‘호남’이란 용어를 사용했고, 그것도 장흥 관련 기록에서 나왔다.

이 시에서 천인스님은 ‘천관산 원상인이 천인국사의 운수행각에 벗하며 의지하라고, 아니 행각을 미리 알아차리고 주장을 선물로 주니 그 은근함이 고마울 뿐 이라는 것. 그런데 나에게 온다고 한스러워 말라’고 한다. ‘호남의 여러 마을들을 그 척촉 주장을 친구삼아 두루 다니면서 불법을 전수하고 민심을 살필지니. 민의 아픔을 보살피는 구도(求道), 구환(求患)의 길에 동행할 터이니’

철쭉꽃[躑躅花]은 전라도의 약재로 나온다.(<세종실록지리지> 전라도 약재조). “척촉의 주장으로 불법을 펴니 마음 다스림이요, 철쭉꽃은 약재로서 몸을 다스림이니. 안과 밖, 성과 속이 따로가 아니로구나. 호남의 곳곳 촌촌이…’ 했을 터이다.

…중략… 그때 『동문선』에서 천인의 원상인 척촉 주장 관련 제영도 보았을 터인데, 그냥 지나쳤던 듯싶다. 이 시가 다시 눈에 들어 온 것은 장흥 한방 해설사 관련 강의(2010.10.16, 「한방 특구의 역사적 배경」)를 준비할 때이다. 전통의약, 한방, 약재, 약초 등에 관한 장흥 자료를 모으다 보니 가장 오래된 기록 가운데 하나가 천관산 ‘척촉’이었던 것. 『세종실록지리지』에 전라도 약재 조에 ‘躑躅花[철쭉꽃]’이 나오는데, 당연히 천관산 철쭉과 연결 된다고 보았던 것이고 이때 「장흥 한방특구의 역사적 배경」강의 글은 보완을 하여 『장흥문화』 34집(2012)에 실었다.

‘한 번은 지나쳤지만 20여년이 지나 다시 보면서 장흥 한방 특구의 역사 배경과 연관을 시켜 보았고, 이처럼 보는 관점에 따라 문학작품이라도 역사 기록으로 살아날 수 있으며, 또 하나 더 확인 한 것이 ‘湖南’이란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한 기록이 바로 장흥 천관산을 배경으로 한 역사인물들의 글에서 읽어 냈던 것인데 그때가 2011년의 일이다. - 라고.

정명국사 천인(靜明國師 天因, 1205~1248)은 강진군 만덕산의 백련사 제2세주로, 백련사의 원묘국사 요세(圓妙國師 了世, 1162∼1245)의 제자로 ‘천관산기’도 저술, 장흥과 인연이 아주 깊은 승려였다. 속성은 박朴씨다. 어릴 때부터 명석하여 널리 익히고 많이 기억하는데다가 특히 문장에 능하여 주위에서 칭찬이 자자하였다고 한다.

1228년 5월, 천태지관과 참회행 그리고 염불을 종합적으로 수행하는 대중운동으로서 백련결사(白蓮結社)를 조직하여 천태종을 부흥시켰던 백련사白蓮社 원묘국사 요세(了世, 1163~1245)의 문하에 들어갔지만 잠시 만덕산을 떠나 송광산(松廣山) 수선사(修禪社)에서 당시 대중적 참선을 실천하는 정혜결사(定慧結社)를 이끌고있던 혜심(慧諶: 1178~1234)의 문하에서 조계선(曹溪禪)을 배우기도 했다.

천인은 1245년에 만덕산 백련사의 제2세 주법主法이 되었고, 1248년 7월 7일에 주법을 원완圓脘에게 물려주었다. 동문선 제83권 서(序)편 ‘만덕산백련사정명국사시집서(萬德山白蓮社靜明國師詩集序)’에 천인은 ‘호적(胡賊)의 난을 피하여 상왕산(象王山) 법화사(法華社)에 왔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산의 남쪽에 있는 용혈암(龍穴庵)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유작을 남기지는 않았지만, 사후 문인들이 말년의 유고를 여러 편 수습하여 〈정명국사시집(靜明國師詩集)〉 3권과 〈정명국사후집(靜明國師後集)〉 1권을 찬술하였지만 온전하게 전하지 않고, 〈시집〉에 담겨있던 임계일(林桂一)의 서문과 18 편의 시문들이 〈동문선(東文選〉에 남아있어 그의 행적을 추적하는 것에 길잡이가 되고 있다./김선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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