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文林義鄕의 메카’ 구축에 “반드시 이것이 필요하다”
■사설 -‘文林義鄕의 메카’ 구축에 “반드시 이것이 필요하다”
  • 김선욱
  • 승인 2021.02.18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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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 역대 고문집- ‘재차 수습, 정례적 국역화, 박물관 비치·전시’ 추진을

지난 1976년, 당시 윤수옥 장흥문화원부원장이 장흥에 산제한 고문집(古文集)을 수습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당시 이상구 문화원장이 이를 수용했다. 하여 유림인과 각 주요 성씨 문중 등을 대상으로 고문집 수습에 대한 의의 및 필요성을 설득하는 등 1차연도에 고문집 수습운동을 펼쳤고, 2차연도는 수습된 문집을 중심으로 이를 해제하는 작업에 착수, 1977년 말에 《장흥문집해제》가 발간될 수 있었다.

이때 수습된 문집자료는 모두 122종(분량 236책, 문집집필자 등 관련 인물 144명)이었다. (여기엔 문집 외에도 기양사의 《선시보주》 등 전적류, 《반곡난중일기》 《강제일사》 《정강일기》 등 일기류, 《지제지》 《환영지》 등 지지류가 포함되었으며, 장흥 출신 인물 문집 외에도 장흥 소재 문집도 함께 수습된 것이었다.)

이때 수습된 문집은 원본이건, 복제품이건 모두 장흥문화원 서고에 보관했다. (현재도 보존돼 오고 있다.)

당시 장흥문화원에서는, 역대 고문집에 대한 수습, 보관과 해제 작업에 이어 연차적으로 이들 문집을 국역화 하여 ‘향토고전선집’을 간행할 계획이었으나, 재원 등이 확보되지 못해 이 사업이 원활하게 추진되지 못하다 최근래 이르러 겨우 10여 권을 번역한 실정이다.

장흥의 고문집(古文集), 즉 유문집(遺文集)은 1976년 당시 모두 수습된 것이 다는 아니었다. 즉 당시 확인된 문집이 122종, 관련 인물 144명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문집해제’ 발간 이후에도 각 문중과 유림인들에 의해 당시 수습되고 확인되지 못했던 인물의 문집들이 속속 알려졌기 때문이다.

실례로, 최근 필자가 인천인씨 장흥파에 대한 연원과 역사·문화·인물을 고찰, 취재하는 과정에서, 인천인씨 선인들 중 《장흥문집해제》 목록에 수록된 인천이씨 인물은 17명에 불과했고, ‘문집 해제’에 빠졌지만 유문집을 남긴 이들이 무려 40여 명이나 더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와 관련, 향토사학자 위성 씨를 비롯 고문학자 이병혁-이봉준 씨 등 장흥 향토·고문학자들에 의하면, ‘장흥문집해제’에 수록된 이들은 130여 명(장흥인물이 아닌 10여명 제외)이었지만, 이후에 확인된 문집을 남긴 이들이 더 밝혀지고 있어, 현재로는 유문집을 남긴 장흥의 역대 문인들이 최소 200~250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장흥군은 ‘장흥의 4메카’ 중 하나로 ‘문림의향(文林義鄕)의 메카’ 구축을 지향하고 있다.

그렇다면, ‘문림의향’ 지향의 장흥군이나, 장흥문화원은, 그 ‘문림의향’과 절대적으로 관련이 있는 이 문제를 어찌 해야 하는가.

‘문림의향’의 의미 중 ‘의향(義鄕)’에 속하는 자산(자원)은, 예컨대 회령진성이나 정유재란 때 이순신 수군 재건로에 속하는 안양 해창진 등 관련 유적지의 복원 및 시설화 그리고 그 의미를 담는 기념물 조성이나 의인들의 조명작업 등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문림(文林)은 조금은 그 성질이 다르다. 본질적으로 장흥 문림(文林)의 동인과 성과인 역대 문인들의 유문집의 경우, 이를 집대성하고 국역화 하는 일이 주 업무의 하나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기실 의향(義鄕)의 요체에 속하는 의리(義理)·절의(節義) 정신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그 기반이 문(文)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장흥의 역대 사림(士林)·문림(文林) 출신의 선비며 문인이었던 역대의 선인들이 남긴 문집(저작물)등 유문집을 수습하여 이를 해제하고, 또 국역화하는 등 ‘장흥 역대 유문집의 집대성’이야 말로, 진정으로 문림의향의 정체성을 규명하고 문림의향의 그 기본 바탕을 밝히고 알리는 일에 다름 아닐 것이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첫째, 제2차 유문집 수습 운동을 펼쳐야 한다. 그리하여 가능한 한 역대 문인이 130명에만 그치지 않고 200~250명 명 모두의 문집이, 비록 원본이 아닌 복제품 형태일지라도, 거의 다 수습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둘째, 추가·보완된 유문집을 해제하는 ‘장흥문집해제’ 속간집을 발간해야 한다.

셋째, 현재는 장흥의 역대 문집들은 장흥문화원 서고에 비치, 보관된 상태이다. 아무나 함부로 관람할 수도, 외인이면 더욱 쉽게 관람할 수도 없다. 이제는 이것들을 문화원 밖으로 끄집어 내야 한다. (물론 문집 원본은 장흥문화원 서고에 그대로 비치해 두고, 이들 복제품을 제작하면 될 것이다).

그리고 이들을 방촌유물전시관의 특별실(장흥 고문학실) 같은 특별한 공간에 별도로 비치, 전시하고 연례적으로 특별전을 마련, 군민이며 일반 관광객들도 쉽게 상시에 관람할 수 있도록 하여, 장흥이 명실상부 ‘문림의향’임을 천명도 하고 널리 홍보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군 조례 제정을 통한 일정의 군재원을 확보하여, 연례적이고 정례적으로 ‘장흥역대 고문집 국역화 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 사업은 본래 1977년 장흥문화원이 계획하였던 사업이었지만, 예산 등 재원이 마련되지 못하여, 지지부진한 상태에있다가 최근래 이르러 겨우 10여 권이 간헐적으로 국역화되었는데, 이제는 이 사업이 연차적이고 정례적으로 추진될 수 있도록 제도적인 정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200〜250여 명 모두의 문집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충분히 국역화 할 가치가 있는 문집 100여 권이라도, 연작 형태로 국역화 돼 발간되고 이것들이 모아진다면, 이것이야말로 바로 진정한 문림의향의 핵심적인 자원이요, 자산이 아니겠는가. 아니, 이렇게 되어야 비로소 ‘문림의향’의 전통이 제대로 계승되어질 것이고 그 정체성이 명명백백히 규명되어질 것이 아니겠는가.

이를 위해 우선, 장흥 출신의 고문학·한학‧향토사학자, 문학·문화계 원로 등으로 구성된 ‘장흥고문집국역화추진위’ 같은 것을 구성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장흥 출신의 국문학 교수 등 전문가들도 10여 명에 이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들도 같이 포함시키면 더 나을 것이다.

아직 늦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 적기도 여태 가시지는 않았다. 그나마 장흥 출신의 향토사학자며 고문학자, 문화계 원로들이 여태 생존하여 나름대로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 늦으면 이 적기마저 절로 가셔지고 말 것이다. 장흥군이, 장흥문화원이 이제라도 이 사업을 서둘러야 하는 이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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