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인물3/김두헌 박사 - 대한민국 제1호 문학박사 취득하다
■근대인물3/김두헌 박사 - 대한민국 제1호 문학박사 취득하다
  • 김선욱
  • 승인 2018.08.17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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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학술원종신회원 등 대한민국 윤리학계 태두로 인정
‘조선가족제도연구’등 윤리학‧가족제도 관련 수많은 명저 남겨
재경장흥군향우회 초창기, 제2대‧제3대 향우회장 역임하기도
대한민국 제1호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던 김두헌 박사
대한민국 제1호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던 김두헌 박사

 

김두헌(金斗憲, 1903년 12월 27일~1981년 10월 22일)은 일제강점기부터 활동한 대한민국의 철학자요, 윤리학자이며 교육인이다. 호는 예동(汭東)이다.

김두헌 박사의 출생지는 장흥읍 원도리다.

김 박사는 대구의 대구고등보통학교에 진학했다. 1921년에 대구고보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유학, 1929년에는 도쿄 제국대학 문학부 윤리학과를 졸업하였다. 도쿄제대 졸업 후 귀국하여 교육계에 투신했다. 이화여자전문학교, 혜화전문학교의 강사와 교수를 지냈다.

이후 1930~1934년 혜화전문 교수, 1945년 잠시 대동상업학교 교장직을 맡다가 그 해에 진단학회 상임위원, 서울대학교 전신인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부교수가 되고, 1946년 서울대학교 철학과 주임 교수가 되었다.

1952년에는 서울대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수여받았다.(대한민국 문학박사 제1호)

1949년 문교부(지금의 교육부) 고등교육국장이 되었으며, 문교부 국장으로 근무하면서 자신이 국립대학교 전환에 산파 역할을 한 전북대학교의 총장으로 1952년에 이동하였으며, 숙명여자대학교 총장을 거쳐 1960년부터는 1972년까지 건국대학교 대학원장을 지냈다.

사망할 때까지 건국대학교 대우교수로 있었다. 1954년에 대한민국학술원 종신회원이 되는 등 대한민국 윤리학계의 태두로 인정받았다.

1960년 건국대학교 대학원장에 취임하고, 1967년 서울로터리클럽 회장, 1969년 중국문화학원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으며, 1970~1981년 윤리학회 회장, 1972년 건국대학교 대학원 명예교수가 되었다.

그의 학설은 인격완성주의・민족국가주의・자유민주주의・가치변증법・중도사상에 기초하고 있다. 특히 국가주의와 민족주의를 강조하는 보수주의 유파에 속한다. 전공인 윤리학 외에 한국의 가족제도에 관심을 보여《조선가족제도연구》(1949), 《현대의 가족》(1975)와 같은 저서를 남겼다. 이 중 《한국가족제도연구》라는 제목으로 새로 출간된 《조선가족제도연구》는 《신동아》가 1985년에 선정한 한국의 100대 명저 가운데 사회학 분야에 포함되기도 했다.

국민훈장 모란장·학술원 공로상·문화훈장 대통령장·서울특별시문화상 등을 수상하였다.

김두헌 박사는 재경장흥군향우회와 인연도 깊다. 김 박사는 재경향우회 초창기 때(재경 장흥군 향우회 창립)인 1992년부터 1970년까지 제2대, 제3대 향우회장을 역임하며 초창기 장흥군향우회 발전을 이끌기도 했다.

한편, 김두헌 박사는, 도쿄제대 졸업 후 귀국하여 교육계에 투신하며 이화여자전문학교, 혜화전문학교의 강사와 교수를 지냈는데, 혜화전문학교 교수로 재직하던 일제 강점기 말기에 국민총력조선연맹 문화부 문화위원을 지내면서 학생들에게 학병으로 참전한 것을 독려하는 등 조선총독부의 전시 체제에 협조한 행적이 있다. 이로 인하여 김두헌 박사는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가운데 교육/학술 부문에 들어가 있다.-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2004년 12월 27일). 《일제협력단체사전 – 국내 중앙편》. 서울: 민족문제연구소. 342쪽쪽)

다음은 김두헌 박사가 한국윤리학회 회장을 역임할 당시 경향신문이 김두헌박사와 인터뷰한 내용의 전문이다.

■“퇴폐한 현실 참을 수 없어”

“지난 반세기의 일제치하, 해방, 동족 전쟁, 4.19, 5.16 등 격심한 사회변동에서 한국인의 정신 기저는 뿌리째 흔들렸습니다. 가치 판단이 뚜렷하지 못해 서구의 퇴폐풍조마저 상륙시켰고 우리의 전통적인 것은 모두 잃어가고 있습니다.”

김 교수는 자의식 없는 서구의 문화 모방이 정신마저 혼미하게 하고 있다고 개탄한다.

“그러나 이미 서구적인 이성이 스며든 과거의 전통 사상만 고수하고 있을수는 없습니다. 종래의 ‘에토스’를 근대적인 것과 조화될 수 있도록 수정 재창조 하는 것이 한국윤리학의 사명입니다.”

올바른 가치관에서 동서 문화의 조화를 이룬 변증법적 윤리를 생성 발전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는 것이 老교수의 주장. 그러나 사회체재 변화에 따라 사회윤리의 변화를 인정하는 김 교수는 참신한 새 세대가 역사의 활력소가 되지만 기성세대를 노쇠, 노후로 몰아내는 것은 한국윤리관에는 어긋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보수적이긴 하지만 그들에게는 노련, 노숙한 면이 있지 않느냐는 주장. 사회체재가 경제제일주의로 흘러 금력과 권력의 만능사조는 믿음의 신성한 기본관계마저 저버리게 되었다고 고 개탄했다

거리의 급증하는 여관을 보고 성(性) 윤리의 타락을 측정할 수 있다는 김교수는 남녀동등의 윤리가 성도덕의 타락으로 밖에 없는가, 라고 반문했다.

그는 사회 안정은 경제와 군사 등 권력 장치의 강화에도 있지만, 가정의 안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하고, 오염된 사회에서 가정을 지키는 게 가장 해결이 시급한 고민이라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학회 첫 사업으로 무감각해진 양심과 양식을 일깨우는 운동을 대학가에서 전개시키겠다고 다짐한다. 그리고 연내에 학회 이름으로 퇴폐한 사회풍조에 못을 박은 국민윤리를 제정, 발표하겠다고 다짐한다. 철학회 산하분과였던 윤리학회를 창설한 김두헌 교수는 한국윤리학의 체계를 시도하는 한편 사회현실에 대한 고발을 계속하겠다고 학술활동으로 학회지 및 도서를 간행하고 생활문화의 실제적인 면에도 손을 대겠다는 의욕을 보였다.

『조선가족제도연구』로 서울대 제1호 문학박사 학위를 받은 김두헌 교수는 『윤리학 개론』,『민족원론』, 『사회사상』 등의 명 저서를 냈다.

60년 이래 건국대학원장으로 재직, 15일부터 일본경도에서 열리는 반공대회에 한국대표로 참석한다. (경향신문/1970년 09.04)

■김태길 박사의 김두헌박사 회고

다음은 대한민국학술원 회장을 지낸 한국 철학계의 원로이자 수필가 김태길(사진) 서울대 명예교수가 『앞서가신 회원의 발자취』(대한민국학술원, 2004, 36p-39p)에서 쓴 김두헌 박사에 대한 회고문의 일부이다.

“…(상략)… ‘경성대학’이 발족한 것은 1946년 이른 봄이었고, 이 때 김두헌 선생은 그 철학과의 주임교수로 임명되었다. 경성대학이 발족할 당시의 철학과 전임교수는 모두 네 사람이었고, 그 가운데 윤리학을 전공한 분은 김두헌 선생뿐이었으므로 나는 자연히 그 분을 지도교수로 모시게 되었다.

첫 학기의 강의가 시작되기 전에 나는 김두헌 선생의 자택을 물어물어 찾아갔다. 성북동에 있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한옥에 그 분은 살고 있었다. 나는 윤리학을 공부할 뜻을 말씀드리고, 다만 나의 소질이 철학을 공부하기에 부족하다고 생각되어 걱정이라는 말을 하였다. …김두헌 선생은 매우 근엄한 어조로 말씀하셨다. “비록 소질이 좀 부족하더라도 꾸준히 정진만 하면 철학의 문도 열리게 마련일세.” 그 때 나는 27세의 늙은 학생이었고 김두헌 선생은 43세의 비교적 젊은 교수였다. 그러나 나는 동경제국대학을 졸업한 그 분의 이력에 압도되었고, 또 눈을 지긋이 감고 느릿느릿 낮은 목소리로 말씀하시는 그 분의 근엄한 태도 앞에서 자연히 머리를 조아리고 말았다.

경성대학이 문을 연 첫 학기에 내가 청강한 김두헌 선생의 과목은 <윤리학 강독>과 <윤리학 개론>이었다. …나는 어느 날 그 분의 연구실에 들러서 당돌한 질문 하나를 던졌다. 그 분이 옳다고 믿는 학설이 무엇이냐고 겁도 없이 물었던 것이다. 그 때 김두헌 선생이 나에게 준 대답은 지금도 기억에 뚜렷하게 남아있다. “성급하게 하나의 학설을 선택하려고 서두르기 전에 여러 학설을 두루 공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는 것이 그 분의 대답이었다. 그 때 나는 그 분의 대답에 만족하지 않았지만, 지금 돌이켜 보건대, 그 분의 겸손한 자세가 옳았다고 생각된다.

…김두헌 선생은 1952년에 전북대학교 총장직에 취임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고등교육국장 자리를 떠난 다음에 서울대학교로 돌아오지 않고 고향 가까운 곳으로 자리를 옮긴 것이라고 생각된다. 전북대학교에서 총장 임기를 마친 다음에 김두헌 선생은 다시 서울로 돌아왔고, 1958년부터 숙명여자대학교의 총장직을 맡기도 하였다. 선생은 1960년에 건국대학교 대학원장에 취임하였고, 1972년 같은 대학교 명예교수가 되었다. 또 선생은 1970년에 한국윤리학회를 창설하여 그 초대회장직을 맡기도 하였다.

김두헌 선생은 1952년에 서울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1969년에는 중국문화원으로부터 명예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선생이 대한민국학술원 회원이 된 것은 1954년이었다.

김두헌 선생의 저술 가운데서 대표적인 것으로는 『조선가족제도사』가 있다. 이 책은 본래 일제시대에 어떤 기관의 연구비를 받고 쓴 것으로서 초판은 일본어로 되어 있다. 해방 후에 다시 우리말로 옮겨서 출판하게 되었고, 오늘날도 우리나라 가족제도의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귀중한 자료로서 평가되고 있다.…(하략)…

/김선욱 기자

김두헌 박사의 프로필

▶경력

△장흥읍 원도리 출신 △1929년 일본 도쿄제국대학 윤리학과 졸업 △1929년 이화여전 강사 △1930~1934년 혜화전문 교수 △1945년 잠시 대동상업학교 교장 △1945년 진단학회상임위원 △1945년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부교수 △1946년 서울대학교 철학과 주임 교수 △1949년 문교부(지금 교육부) 고등교육국장 △1952년 전북대학교 총장 △1952년 서울대학교에서 문학박사학위 △1954년 대한민국학술원 종신회원(윤리학) △1960년 건국대학교대학원장 △ 1967년 서울로터리클럽 회장 △1969년 중국문화학원서 철학박사학위 취득 △1970~1981년 윤리학회 회장 △1972년 건국대학교 대학원 명예교수

▶상훈 : 국민훈장 모란장·학술원 공로상·문화훈장 대통령장·서울특별시문화상 등 수상

김주헌 박사의 대표적인 저서의 하나인 '민족이론의 전망'
김두헌 박사의 대표적인 저서의 하나인 '민족이론의 전망'

▶저서 :

▴『윤리학개론(倫理學槪論)』(대성출판사.1946)

▴『민족이론(民族理論)의 전망(展望)』(을유문화사.1948)

▴『조선가족제도연구(朝鮮家族制度硏究)』(을유문화사.1949)

▴『서양윤리학사(西洋倫理學史)』(진문사.1954)

▴『도의원론(道義原論)』(을유문화사.1957)

▴『민족원론(民族原論)』(동국문화사.1960)

▴『현대사회사상(現代社會思想)』(어문각.1968)

▴『한국가족제도연구(韓國家族制度硏究)』(서울대출판부.1969)

▴『국민윤리(國民倫理)』(대학문고사.1971)

▴『현대인간혼(現代人間論)』(박영사.1973)

▴『현대(現代)의 가족(家族)』(을유문화사.1975)

▴『인생의 도리(道理)』(을유문화사.1975)

▴『가치론(價値論)』(박영사.1975)

▴『서양윤리학사(西洋倫理學史)』(박영사.1976)

▴『우리 민족의 활로』(박영사.1976).

▴ 논문집-『김두헌박사 화갑기념논문집』(어문각.1964)

▲김두헌박사의 대표적 저서 <민족이론의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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