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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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흥투데이
  • 승인 2021.04.20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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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흐르고 꽃이 피네

일선 스님 (보림사 주지. 시인. 수필가)
일선 스님(보림사 주지, 시인, 수필가)

 

흠뻑 내린 봄비에 꽃들은 다투어 피어나고 경칩이 지나고 나니 연못에는 개구리 울음소리 청아합니다. 비바람에 너무 일찍 떨어진 향기로운 매화꽃이 아쉬워 두리번거리다 물의 흐름을 거슬러 뒷산에 오릅니다.

나무들은 잎눈이 봉긋이 솟고 약수터 옆에는 춘난이 소담하게 꽃대를 밀어올리고 수줍은 미소를 짓고 있습니다. 멀리 앞산에는 빗살무늬 나뭇가지 사이로 노을 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참으로 한 마음이 청정하면 모든 것이 꽃이 되는 경이로운 모습입니다. 한 구비 호젓한 산길을 넘어가니 계곡의 물소리가 바람에 묻어옵니다. 겨우내 침묵으로 더욱 깊어진 골짜기는 청량한 소리를 내어 귀를 맑게 씻어 줍니다. 순간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것은 진달래가 군락을 이루어 반갑게 피어 있습니다. 물은 흐르고 꽃이 피는 황홀한 만남에 문득 길을 잃고 천지간에 홀로 서 있습니다.

꽃은 뜻이 있어 흐르지만

물은 뜻이 없어 흐르지 않네.

ㅡ 선객 ㅡ

한참을 지나서 정신을 차리고 나니 옛날 청화산 원적사의 봄이 그립습니다. 청화산은 이중환의 택리지에 나오는 십승지의 하나로 일체 난리가 없는 길지라고 하여 우복동이라고도 하였습니다. 한편 어느 날엔 한 무리의 군인들이 총을 들고 산에서 내려오면서 혼자 있느냐고 묻고 숟가락 숫자를 세며 노려보았습니다. 한참 세월이 지나서 알고 보니 오일팔 광주 민중 항쟁으로 인한 수색작전이었으며 친구들이 자취하던 주인집은 연탄공장을 했는데 아들은 끌려가서 죽었다고 했습니다. 부처님 가피로 우복동에서 난리를 피해서 무사했으니 무상이 참으로 신속하여 더욱 발심이 되었습니다. 원적사는 원효대사가 창건하신 절로써 육이오 때 폐사된 선방을 복원하여 많은 선객들이 거쳐 간 도량입니다. 한편 지금 범어사 방장이신 지유스님은 서암스님과 절친한 도반으로 함께 원적사에서 정진하면서 종소리를 듣고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선방뒤 바위는 봉황의 형상으로 상서로운 기운이 뭉쳐 있었습니다. 아랫마을은 육이오 난리를 피해서 자리를 잡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서암 스님은 독립 운동가의 자손으로 일본대학 종교학과에 다니다가 졸업반 때 폐결핵 말기로 판명되어 귀국하였습니다. 집에서는 독립운동가의 자손으로 상대를 알아야 극복할 수가 있다고 유학을 떠났는데 웬일이냐 고 놀라면서 각혈이 심하여 죽는다고 포기를 했습니다. 하지만 이왕 죽는다면 마지막 부처님께 기도나 하고 죽는다고 하여 관세음보살님 전에 백일기도를 하였는데 꿈에 관세음보살님이 침을 놓아 주신 것을 가피로 건강을 회복하였습니다. 큰스님은 천축사 무문관을 비롯하여 만공선사의 회상에서 함께 정진하였고 특히 금오스님과 칠불에서 목숨을 걸고 수행했던 일화는 참으로 감명이 깊었습니다. 한편 원적사에서 사는 조건으로 삼년 동안 산을 떠나지 않겠다는 서약을 하라고 해서 다짐을 하니 방부가 허락되었습니다. 큰스님은 자비스럽고 인자하셨는데 특히 일상사에서 검소하셨고 걸림 없이 나오는 유머가 일품이었습니다. 국수는 삶을 때 물은 항상 육십사 도로 끓이라고 했는데 팔팔 끓이라는 뜻이었습니다. 마침 여름 안거부터는 봉암사 선방 조실스님으로 가시고 나서 제자 스님과 함께 정진을 했습니다. 스님은 출가하기 전에 국선도의 도장을 운영했고 무술을 합하면 이십 여단이나 되었습니다. 단련된 몸은 유연하여 자재로웠지만 큰스님은 항상 지혜가 부족하다고 경책하였습니다. 그래서 단전호흡을 하면 저렇게 경락이 열리고 건강해지는데 어째서 욕망의 뿌리가 뽑히지 않고 지혜가 나오지 않는지 의심을 했습니다. 그러나 중학교 때 부터 신선도의 호흡법과 인연이 되어 나름대로 호흡을 했는데 도사를 만나 호흡법을 자세히 배우게 되어 기뻤습니다. 한편 원적사는 속리산 문장대 뒤라서 겨울에 추운 곳이었는데 호흡 수행과 추위를 이기는 냉수욕을 일상으로 하며 경락을 열고 밀교의 차크라를 여는 정진을 함께 연마했습니다. 한편 틈나는 데로 국선도와 무술을 익혔지만 큰스님은 봉암사에서 가끔 오시면

수행을 점검 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외도들의 수행인 호흡법을 익혀서는 안 된다고 호된 경책을 주셨습니다. 하지만 함께 사는 스님은 스승의 가르침을 듣지 아니하고 호흡법을 익히면 깨달음이 빠르다고 하면서 계속하자고 했습니다. 또한 그간 감추고 혼자서만 보았던 성명쌍수를 닦는 참으로 신비한 혜명경을 보여주며 몸과 마음을 함께 닦아야한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한국 선방에서는 스님들이 호흡 수행을 하지 않고 화두 수행만을 고집하니 건강을 잃고 고생하는 스님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큰스님께서는 화두를 바르게 들면 호흡은 자연스럽게 깊어지고 임동맥이 뚫리는데 먼저 호흡법을 위주로 수행하면 임독맥을 유통하여 건강은 좋지만 자칫 집착하여 신통을 구하는 외도가 된다고 크게 나무라고 경책을 하였습니다. 사실은 그간 신통력을 구하고 있었고 몸의 기맥이 열리고 나니 온종일 앉아도 다리가 아프지 않아서 바로 선정에 들어가니 수긍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또한 밀교의 차크라를 여는 책을 보며 추위를 이기는 뚬모 수행을 익히니 점점 기력이 좋아졌고 힘이 나서 겨우내 찬방에서 정진을 했습니다. 한편

티벳의 성자 밀라레빠는 아버지의 재산을 탈취해간 큰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서 신통수련을 하여

원수를 갚았지만 인과로 고통스러워하였습니다. 또한 신통을 구하는 것은 술책이며 욕망이기에 남을 헤치고 고통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스승인 나로빠를 만나서 원한은 원한으로써 해결되지 않으며 윤회의 수레바퀴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가르침에 참다운 수행을 이루고 십만 송의 게송으로 깨달음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오직 자비심의 실천이야말로 참다운 수행이란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큰스님의 제자는 호흡법을 버릴 수 없다 고하여 끝내 하산하고 말았습니다. 그간 함께 수행하면서 지켜보니 운동을 잘하고 몸은 건강하고 자유롭게 쓰는데 지혜가 없고 욕망을 버리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단전호흡은 다섯 가지 신통이 열리고 불로장생이 목표지만 부처님 호흡은 여섯 번째 신통인 번뇌의 흐름이 끊어진 누진통을 얻어 열반을 성취하는데 있었습니다. 큰스님 가르침대로 단전호흡 수행을 그만하고 싶어도 앉으면 선정에 들어가니 즐거움을 참으로 버리기가 어려웠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깨닫고 나서 처음에 화엄경을 설하여 모든 만법이 오직 한 마음인 것을 밝히는 것이 요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알아듣지 못하니 근기를 낮추어 아나파나사티의 들숨 날숨을 관찰하는 방편법을 설하였다고 큰스님은 다시 한 번 경책하였습니다. 그런데 소승의 가르침을 배우는 불자들은 대승의 가르침을 인정하지 않고 대승의 불자들은 소승의 가르침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또한 부처님은 간화선을 가르치지 않았다고 비방을 하지만 부처님이 마지막에 보리수하에서 나는 무엇인가를 의심하고 새벽별을 보고 깨달았고 큰스님은 말씀하였습니다. 그러나 깨닫고 보니 또한 별이 아니더라고 했습니다.

초기 위빠사나 전법사로 많은 위빠사나 서적을 번역하고 간행한 김열권거사님과 오랜 탁마를 통해서 남방의 큰스님 가운데는 호흡법과 의심법을 같이 가르치는 마스터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스님은 두 가지를 조화롭게 하니 한국스님으로서는 처음이라고 하였습니다. 거사님은 처음에 성철스님 문하로 출가하여 간화선을 배웠지만 남방으로 건너가서 위빠사나를 수행했기 때문입니다.

큰스님께서는 이제부터는 직지인심견성성불의 경절문인 화두를 하라고 조주선사의 무자 화두를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러나 단전호흡을 익혀서 얻은 선정의 즐거움을 버리고 아무 맛도 없는 화두를 챙기는 것이 참으로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익힌 단전호흡법을 의지하여 일어나는 망상을 호흡으로 대치하면서 조주선사의 무자 공안을 의심으로 참구하였습니다. 호흡위에 다시 화두를 실으니 힘이 생기고 서로 조도가 되어 좋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젊은 혈기에 일어나는 욕망을 다스리기가 힘들고 밤이면 장좌불와를 한다고 해놓고 깨보면 머리가 방바닥에 박혀있어 죽고 싶은 심정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또한 산중에서 먹을 것이 부족해서 배가 고파 아랫마을에 가서 탁발을 하는 날에는 더욱 수마를 극복하기가 힘들었습니다. 때로는 오십 리 길을 걸어서 봉암사에 가서 부식을 가지고 와야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은사스님께서 사형님과 함께 맛있는 과자와 부식을 가지고 찾아 오셨습니다. 경상도 깊은 산골 오지의 암자에 찾아오셔서 수행을 격발시켜 주신 은사스님의 은혜가 한량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공부길 을 모르고 깊은 산중의 암자에서 정진하는 것이 힘들어 하산의 유혹이 끝없이 일어났습니다. 한편으로는 큰스님과의 삼년결사 기약을 지키려고 내친 발걸음을 수없이 돌이켜야했고 학창시절에 의심했던 일체 언어와 생사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놈의 생사 문제만 해결되면 세상에 나가서 한바탕 멋지게 살것 같은데 이것이 하산의 발걸음을 잡는 철천지원수였습니다.

삼년이 되면 고시에 합격하듯이 의심이 해결이 된줄 알았는데 도저히 인수가 없어 절망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별안간 천지가 무너지고 밤새워 수마와 싸운 천근만근 무거운 몸과 번뇌가 일순간에 사라지고 잠이 없는 맑은 경계의 체험이 왔습니다.

그래서 큰스님께 찾아가서 깨달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다그치며 무었을 깨달았느냐고 거듭 물었습니다. 조주 무자를

깨달았는데 마치 농아가 꿈을 꾸었지만 말을 할 수가 없는 것과 같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조주선사의 무자 화두를 다시 물으시고 머뭇거리니 그것은 식광의 경계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시 무자 화두를 일러 주시며 이제 힘을 얻었으니 더욱 정진하라고 격려를 해주셨습니다. 그러나 식광의 경계가 사라지지 않고 앉으면 금방 삼매에 들어가서 하루가 금방 지나가니 환희심에 취해서 더 이상 화두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큰스님께 간청하여 육이오 사변이후 처음 개설하는 봉암사 하안거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진달래

연분홍 참꽃이여

산이 다하고

물이 다하고

천리를 달려왔네

한결같이 걸림없는

참 바람으로

화전놀이 하는 아낙네들

어허둥실 참바람 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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