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문화원 2013년 발행_사진자료 일부 발췌((이경엽.양기수.이옥희) ▲제11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장흥읍 원도리(현 장흥교도소 자리) 들판에서 연습하는 장면(1970년) ▲제11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장흥읍 원도리 들판에서 연습하는 장면으로 주변에 초가들이 보임(1970년) ▲고줄 위에 소리꾼과 줄패장을 태우고 행진하는 장면. 예전에는 문벌과 재력을 어느 정도 겸비한 한량들이 기생을 태우고 행진을 했다고 함. 기생의 설소리에 맞추어 멜꾼들은 “상, 사-, 뒤~여!” 하는 후렴구로 화답함(1970년 광주) ▲제11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청사초롱을 단 고줄을 메고 행군하는 장면. 청사초롱의 모양이 현재의 것과는 다르며 고머리에 색천이 감겨 있지 않음(1970년) ▲제 11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출전 당시. 맨 앞부터(우측) 서부기, 덕석기, 영기, 농지천하지대본기, 버꾸놀이패, 청사초롱, 고줄의 순서로 행군하는 장면.(1970년) ▲제 11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수많은 청중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청사초롱을 단 고줄을 메고 행군하는 장면.당시 ‘장흥 보름줄다리기’ 라는 명칭으로 출전함(1970년) ▲고싸움 준비를 위해서 청사초롱을 떼어내려고 고를 내리는 장면. 이때 농악패는 버꾸놀이를 한판 벌인다. 장흥 버꾸놀이 농약패가 쓴 고깔의 꽃은 담배꽃으로 장흥에서만 썼다. 공력과 비용이 많이 들어 대물림을 하여 썼다고 함.(1970년)▲제 11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고싸움을 벌이는 장면으로 격렬한 고싸움 못지 않게 한복을 입은 여성들의 응원도 열렬함. (1970년) ▲제11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암고와 숫고가 결합하는 순간 장면. 암고의 편장이 숫고를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이채로웁(1970년)제11회 예술경연대회에서 줄당기기를 하는 장면. ▲맨 앞쪽 웃옷을 벗은 분이 당시 편장을 맡았던 장흥읍 행원리 故정철수 씨임. 80년대 초반까지 고싸움을 지도함.(1970년 광주) ▲3. 제26회 군민의날 보림문화제(1996년)1996년 장흥서초등학교에서 올라오고 있는 서부고. ▲고싸움을 하기 전에 고를 아우르고 있는 동부고. ▲6. 제39회 군민의 날 보림문화제(2009년, 양기수 송기태 제공)고싸움줄당기기에 사용되는 덕석기로 장흥읍 동동리에서 오래전부터 전해오는 것임. 긴 장대 꼭대기를 짚으로 감싸고 황, 청, 백, 적, 흑의 오방색 드림을 묶어 균형을 잡음. ▲1994년 4월 20일 행원마을 분들이 고를 만들기 위해 기본 새끼 줄꼬기를 하는 모습.▲기본 새끼줄로 3합의 줄을 만듦. ▲3합 줄을 다시 3합하여 9합의 줄을 만드는 모습.▲9합의 줄을 다시 3합하여 27합의 줄을 만듦. ▲27합의 줄을 다시 3합하여 81합의 줄이 되어 고 모양을 이룸.▲81합이 된 고를 접어 몸통을 만듦. ▲고머리에 대나무를 넣고 새끼줄로 다시 감아 고의 모양을 만들면서 고싸움을 할 때 쉽게 부셔지지 않도록 보강함.▲완성된 서부고. 군민회관 앞에서 고를 떠멜 장정들을 기다리는 1994년 5월 1일의 아침. 저작권자 © 장흥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전남진 장흥 다른기사 보기